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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풍맞은 최저임금 인상…文대통령 속도조절

양형모 | 기사입력 2018/07/18 [07:34]
文 “1만원 대선공약 못지키게 돼 사과”…김동연 “두자릿수 인상, 경제 부담”

역풍맞은 최저임금 인상…文대통령 속도조절

文 “1만원 대선공약 못지키게 돼 사과”…김동연 “두자릿수 인상, 경제 부담”

양형모 | 입력 : 2018/07/18 [07:34]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公約)에 대해 사실상 포기 선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7월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결과적으로 대선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최저임금의 인상속도가 기계적 목표일 수는 없으며 정부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의 인건비 급등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을 감안해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가능한 한 조기에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올해와 내년으로 이어지는 최저임금의 인상폭을 우리 경제가 감당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사·정 모든 경제주체들이 함께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보면서 인상폭을 조절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과 동시에 최저임금과 관련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어 문 대통령은 “소상공인들의 경영이 타격받고 고용이 감소하지 않도록 일자리 안정자금뿐 아니라 상가임대차보호, 합리적인 카드 수수료와 가맹점 보호 등 후속 보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조찬 간담회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나 “최저임금이 하반기 경제운용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부총리는 2019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두 자릿수에 이른 것과 관련해 시장과 기업의 경제 심리에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대내외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10.9%라는 인상폭이 지나치게 높아 김 부총리가 주장해 온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속도조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의 적정 인상폭과 시기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이뤄지지 않은 채 최저임금 인상률이 결정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으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학계, 소상공인 등 다양한 계층이 중립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최저임금위를 구성하는 등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사 모두 반발에 입장 정리…‘속도조절론’에 힘 실어주기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2020년 최저임금(시급) 1만원’ 공약 불이행에 대해 사과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을 조기에 진화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14일 새벽 2019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820원(10.9%) 오른 8350원으로 의결한 이후 소상공인을 비롯한 사용자 측과 노동계 양쪽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한쪽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인상’이라고 주장한 반면, 다른 쪽에서는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된 것을 감안하면 실제 인상률은 한 자릿수에 그친다’고 비판했다. 이틀여간 청와대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신중 모드’를 유지해 왔으나, 대선 공약사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격렬한 논란에 문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文대통령, 최저임금 속도조절론 힘 실어

문 대통령이 사실상 공약 파기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최저임금위 결정을 수용한 것은 정부·여당에서 제기해 온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에 일정 부분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번 최저임금위의 결정 배경을 “우리 경제의 대내외적 여건과 고용 상황,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어려운 사정 등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처한 현실을 고려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경제성장률 3% 달성이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이어지는 데다 상반기(1∼6월) 월평균 취업자 수 증가폭이 14만2000명으로 정부 목표(32만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미·중(美中)무역전쟁 여파 등까지 감안하면 최저임금 인상폭의 한계가 불가피했다는 얘기다.문 대통령은 그러나 정부 경제정책의 한 축(軸)인 ‘소득주도성장’은 지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2020년 1만원’ 달성이 물리적으로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가능한 한 조기에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해와 내년에 이어서 이뤄지는 최저임금 인상폭을 우리 경제가 감당해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기반으로 한 소득주도성장이 동력을 잃지 않으려면 정부가 정교한 부작용 보완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이다. 최근 문 대통령의 인도·싱가포르 순방을 수행했던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현지 브리핑에서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은 서민 소득을 높이고 수요를 활성화해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정책”이라며 “다만 지금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의 비용을 줄여주는 정책이 (최저임금 인상) 속도와 맞지 않아서 돈이 돌기 전에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에 따른 후속조치 계획이 주로 논의됐다. 문 대통령은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경영이 타격받고 고용이 감소하지 않도록 일자리안정자금뿐 아니라 상가임대차보호, 합리적인 카드 수수료와 가맹점 보호 등 조속한 후속 보완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근로장려세제 대폭 확대 등 저임금 노동자와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여주는 보완대책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與, 상가임대차법 등 입법 박차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최저임금 안착을 위한 민생입법 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추미애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는 최저임금의 안정적 보장을 위해 모든 정책수단을 입체적으로 동원하는 총력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며 “민주당은 소상공인을 위해 9월 정기국회에서 카드 수수료 제도 개선과 상가임대차법 등 입법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번 결정에 노동계와 사용자 측 모두 불만족스러울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감안하면 실질 인상률이 극히 미미하고 오히려 줄 것이라는 (노동계 일부의) 주장은 명백히 사실과 다르며,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줄이고 경제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는 야당의 주장도 명백한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정치적 공세”라고 비판했다. 이어 “최저임금 인상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만들자는 것”이라며 “정부는 영세 자영업자, 소상공인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위의 대표성과 독립성 강화 위한 제도개선 필요해

최저임금위원회가 올해로 출범 32년째다. 하지만 최저임금 결정 표결에 노사가 모두 참여한 게 절반도 되지 않는다. 논의 과정은 거의 매년 파행이다. 이해 대립을 조정하는 소통의 장(場)이라기보다 갈등과 반목만 재확인하는 꼴이다. 최저임금위의 최저임금 논의구조 개선과 일관된 최저임금 산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대표성의 문제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전원회의는 근로자ㆍ사용자ㆍ공익위원 각 9명씩 모두 27명으로 구성된다. 근로자위원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위원 추천의 전권을 쥐고 있다. 최저임금법 시행령에서 ‘총연합단체인 노동조합에서 추천한 사람 중 제청한다’고 했는데, 해당 노조가 두 곳뿐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노조가 주축인 양대 노총이 대표적인 저임금 노동자인 비정규직, 여성, 청년들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의식해 양대 노총이 비정규직ㆍ청년 대표에 일부 자리를 내주고 있지만 500만명에 이르는 직접 이해 당사자들을 대변하기에는 부족하다.

사용자위원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최저임금이 새로 결정될 경우 임금을 올려야 하는 비율은 5인 미만 사업장이 절반을 넘는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4%에 불과하다. 대표 추천권이 없는 소상공인들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의 양보로 올해 처음 회의에 참여했지만 논의는 여전히 대기업 이익을 대변하는 경총 등이 주도했다. 경총 등이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을 요구하며 최임위를 보이콧할 때 소상공인들이 “우리는 5인 미만 사업장 차등 적용”으로 요구가 다르다고 선을 그은 이유다. 근로자ㆍ사용자위원 모두 실제 이해당사자를 대변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

노사 간 밀당(밀고당기기)인 최저임금 논의에서는 중재역을 맡은 공익위원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을 노동부가 임명하다 보니 독립성 시비가 잦아들지 않는다. 정권에 따라 사용자나 노동자 쪽으로 오락가락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국회, 시민사회단체 추천 등 공정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익위원 선출 방식도 바꿔야 한다. 오락가락 하는 최저임금 산출 기준을 일관성 있게 정립하고 그 근거를 확립하는 것도 시급하다.
양형모(경영학 박사·애원복지재단이사 ·본지 고문·hm18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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