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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하나님의 기적은 진행 중…”
사회사역 통해 ‘참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서울 참좋은교회 김여호수아 목사
기사입력: 2018/07/18 [07:37]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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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역 통해 ‘참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서울 참좋은교회 김여호수아 목사         

"회식 때 '탬버린 사역' '광(光)팔기 사역' '술주정 청취 사역' 많이 했습니다. 어떨 땐 동료 집에서 온 전화를 받아서 안심시켜 드리는 역할도 했지요."

'일과 신앙의 조화'는 크리스천들에겐 항상 난제이다. '회식 때 술은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불합리·불법적인 일을 따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매순간이 시험이다. 실제로 교회에 가는 일요일 빼곤 일주일의 7분의 6이 일상이다. '선데이 크리스천'이 '먼데이 크리스천'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방선오 장로가 쓴 『일터행전』(아르카출판사)은 이러한 난제에 현실적 해답을 제시한다. 그는 "세속에 '괜찮은 그리스도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요일 교회 예배에서 보이는 신앙은 '낮의 램프 빛'일 뿐, 정작 빛이 필요한 밤(일상)엔 불빛이 꺼져 있습니다. 밤을 밝히는 램프가 돼야 합니다." 한마디로 '모범 직장인'이다.

이러한 ‘모범 직장인’으로 경찰에서 34년을 재직하고 나와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서울 참좋은교회 김 여호수아 목사도 ‘일터행전’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서울 강남경찰서에 재직하면서 한국직장선교회 강남직장선교 연합회장을 역임하면서 직장에서 선교의 필요성과 생활 속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면서 영혼구원을 위해 힘써왔다. 직장선교 관련 각 교회에 간증집회와 치유기도를 통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특히. 인간 능력의 한계점에 위험을 무릅쓰고 들락거리는 직종의 직업군(경찰, 소방, 의료, 법무 등)에서는 세상사에서 신(神)의 영역으로 불릴 수 있는 단계의 직업에 종사하는 직장인들에게는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함을 체험을 통한 내용을 간증함으로서 보다 더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참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하고자 한다.    

-먼저 목사님에 관한 소개부터 해주세요.

저는 서울 참 좋은교회를 섬기는 김 여호수아 목사입니다. 현직에 있을 때는 김종헌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2004년 코엑스에서 미국의 론 사카 목사께서 예언집회를 갖게 되었는데 그 당시 집회 중에 모두 눈을 감고 통성기도를 하는데 어떤 강한 서치라이트 같은 것이 비추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어서 론 사카 목사님이 이곳에 모인 분 중에 3명에게 예언기도를 해주신다고 하였는데, 두 번째로 제 이름을 불러서 동명이인(同名異人)이겠지 하고 전혀 생각을 안했는데 강남경찰서에서 온 김종헌을 부르셔서 일어나 앞으로 나가 예언기도를 받게 되었어요. 그때 "모세가 죽을 당시의 네가 나의 여호수아이다"라는 이름을 주셔서 학교나 경찰 현직 때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으로 사역하는 것이 옳을 듯해서 김 여호수아 목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서울토박이구요. 공군조종사관23기로 들어가 조종간도 잠시 잡아보았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과(8회) 졸업, 경찰정보화장비분야에 34년간 재직하였으며, 총회신학대학원과정 졸업,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교단 소속으로 참 좋은교회를 섬기며, 혼미한 세상 속에서 악한 영에 사로잡혀서 영(靈)과 혼(魂)과 육(肉)의 모두가 강건해야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늘 생활 속에 머물러야 하는데, 정말 자신도 모르게 행복하다 하는 감탄사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워서 그런 분들이 정말 행복하게 살기를 소망하며,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분들을 위해 멘토와 치유기도를 통해서 삶속에 답답함을 해소하도록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를 하고 았는 김여호수아 목사     

-경찰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네, 참으로 힘들었지요. 믿음의 불모지에서 처음 시작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요. 하지만 지나고 보니까 보람이 되네요. 재직 중에 서울경찰청, 송파경찰서, 강남경찰서에 예배처소를 처음 만들 때 주역이 되었으니까요.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지요. 지금은 많이 투명해졌지만 오래전에는 모든 부탁이 술을 한잔 하면서 이루어졌지요.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술자리에 갈 기회가 없으니 승진이나 좋은 자리 부탁을 할 기회가 없지요. 아무리 열심히 남들보다 뛰어나게 잘해도 항상 뒷전이지요. ”일 따로 승진 따로“라는 말이 있었지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법고시를 보려고 방송통신대 법학과를 지원하였지요. 4년반 만에 졸업했는데요. 당시에 한 번에 졸업하는 케이스는 드물었지요. 직장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요. 그때 등록금이 전부 13,500원이 들었지요. 장학금 받아서 한 학기 1500원에 등록이 되었지요. 그런데 3학년 때 극심한 우울증에 이어 공황장애를 앓게 되었어요. 근무하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당시에 개포동에 집이 있었는데 3호선 지하철로 경복궁역까지 한 번에 못 갔어요. 3번 정도 내렸다가 갔지요. 공황장애로 숨이 꽉 막힐 것 같아서 도저히 한번에는 못 가게 되었지요. 병원에서도 특별한 약 없이 신경안정제와 소화제 정도로 처방해 주었지요.

그런데 밤새 아무리 잠을 자려고 해도 의식이 또렷해져 멀쩡했지요. 그러다가 차츰 정신이 흐릿하고 감각이 둔해지면서 저승길이 저만치 오는 듯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제 시신을 안고 우시는 모습까지 보이는 듯 했으니까요. 그때 병원 주치의로부터 직장을 옮기든가 그만두지 않으면 죽는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지요. 그래서 옮긴 곳이 송파서인데 옮겨가자마자 잠실, 그러니까 지금 새마을시장과 종합운동장 고수부지(둔치), 너무도 광범위한 곳에 24시간 근무하고 하루 쉬는 일과였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근무여건이지만 그 당시에는 무조건 하라고 하면 해야 하는 시대였으니까 가능했지요. 근무 10일째 되던 날, 저는 새마을 시장에서 신고를 받고 순찰차에서 내리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어요. 10일 중에 단 하루도 잠 같은 잠을 못 잤어요. 곧바로 응급실과 지휘보고로 내근부서에서 근무하게 되었지요. 그때 송파 서에 예배 실을 만들고 믿음으로 병을 잘 다스려 나갔지요. 그래도 경찰청보다는 일선 경찰서가 가족 같은 분위기이고, 동료의 아픔을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따뜻한 마음이 많은 것 같아요. 그 뒤에 승진하여 강남서로 왔는데요. 수요예배를 못 드리고 있어서 왜 그런가 했더니 당시 서장님이 불자(佛子)이신데 수요법회를 드리기 때문에 예배를 못 드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국 직장에 신우회가 수요예배를 드리는데 무슨 소리냐 하면서 제 혼자 예배드리기로 작정하고 찬송을 부르니 할 수 없이 경목실장님과 간사님이 함께 동참하여서 지금까지 강남서 수요예배가 이어지게 됐지요. 처음에는 서장님에게 조인트도 맞았지만 흔들리지 않고 계속하니 모두가 인정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평을 받게 되었지요. 2000년 아셈(ASEM: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 2002년 월드컵 프레스센터, 핵 안보회의 등 국제회의가 많았지만 기도로 준비하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제가 맡은 정보통신 분야의 모든 것들이 어려움 없이 잘 마치게 되었지요. 강남 서에 근무하면서 백혈병의심과 협심증, 후두용종수술, 뇌경색 화장실에서 실신 등 많은 병마(病魔)로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 또한 하나님의 은혜였지요.  

-언제부터 신앙생활을 하셨나요?    
   
저는 서울 토박이지요. 오래전 저희는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불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 낳습니다. 우연히 제 위의 누님이 숭의여중을 들어갔는데 기독교 학교이다 보니 저녁예배에 참석하는 숙제도 있어서 당시 서울에서 교회가 멀리 10리 이상 떨어져 있었어요. 어두운 밤거리를 여중생 혼자 다니기가 무서우니까 같이 가자고 해서 보디가드처럼 따라 다니기 시작하면서 신앙생활이 시작됐지요. 그런데 제 바로 위의 형이 우리가 교회에 다녀오면 혼내주고 그랬는데 생각해보니 저녁에 집안 청소를 해야 하는데 우리가 교회에 가고 없으면 형이 전부 해야 하니까 공연히 혼내주고 그럴 시간에 공부하라는 둥 말했지요.

그런데 제가 중1로 올라 가려할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요. 워낙 불심(佛心)이 깊으셔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놋대야에 더운물을 떠오라 하시고 수건에 적셔서 전신을 닦으시고, 불경을 외우고, “머리맡에 노자 돈을 노 으라” 하시면서 그 후에 “저승사자가 대문간을 넘어온다, 방문턱을 넘어왔다. 쇠사슬로 목을 조인다”까지 말씀하시다 돌아가셨는데 그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에 교회 가는 것을 못 가게 하던 형님의 꿈에 외할아버지가 성경책을 들고 나타나셔서 "내가 세상에서 잘못 믿었구나. 그러니 너도 교회에 나가라"고 하셨다면서 형님은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교회에 잘 다니고 계시지요. 그 후에 저는 조종사교육을 받으면서 더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었는데요. 특히 백령도에서 세례를 받았는데요. 일제(日帝)시대에 제주에서 제물로 바치는 어린소녀를 구하기 위하여 낫으로 구렁이를 때려잡았다는 이기풍(李基豊·1865∼1942) 목사님(평양 출생. 최초의 한국인 7인 목사. 장로교 목사·순교자. 장로회총회 총회장)의 친손녀 사위 나성균 목사님의 첫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지금 병마를 때려잡는 영권(靈權)이 그런 점과 연관이 있는 듯도 하지요.    

-은사의 능력은 언제부터 받으셨나요.?    

2008년쯤 후두에 용종이 2개 생겼어요. 처음에는 목감기로 알고 내과에 진료를 한 달간 받다가 낫지를 않아서 이비인후과에 가니까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겁먹고 경찰병원에 갔더니 후두에 용정이 2개 있다는 거예요. 그 당시 바로 밑에 여동생이 암 투병중이라고 하니까 저도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가족력이 있어 후두암이 된다고 해서, 수술 날짜를 잡게 되었지요.

당시 제가 협심증 약을 복용한다고 하니까 수술시 전신마취를 하게 되는데, 협심증이 있는 사람들은 마취에서 “못 깨어나면 사망할 수 있다”며 중대한 결정에 내과와 이비인후과 두 과장님들이 회의를 하다가 어차피 동생이 암투병중이라서 수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수술 후 깨어나던 중 혈압이 50 이하에서 오르지 않으면서 온몸의 통증과 의료진이 뇌사로 갈까봐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비몽사몽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지요. "네가 무엇을 준비했느냐?" 그 음성을 들으며 연상되는 것이 노인복지였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예전에 서울에도 노인 분들이 겨울에 창호지 문 사이에 조그만 유리를 넣어 밖을 내다보는 것이 유일한 바깥세상 보는 것이기에 장차 어른이 되면 커다란 리어카를 구해서 노인 몇 분씩 태워 이불을 뒤 집어 씌우고 세상구경 시켜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자란 기억이 났습니다. 당시 바로 1년 전에 경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과정을 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두 아들 학비에 학원비도 부족한데 아이들 마치고 하면 좋겠다고 해서 보류하고 있던 때였지요. 그래서 하나님에게 제 사정을 잘 아시는 하나님, 한번만 기회를 주시면 열심히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용서와 간구를 하였더니 기회를 주시듯 혈압이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의식이 회복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계속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듯하여 사회복지에만 관심을 갖고 학점은행에서 사회복지학과 졸업과 사회복지사2급을 취득하고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어요. 노인들 돌보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계속 기도하면서 삼성동 파출소 근무 중 길에 쓰러져 있는 행려환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처럼 악취에다 불결해서 피하고 싶고 지나치고 싶었지만 어느 날 성령님께서 어쩌면 예수님이 저를 시험하려고 저 모습으로 나타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정성을 다해 보살피게 되니까 나중에는 그런 신고는 전부 제게 연결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서울의료원 행려환자 약 50여명의 의료봉사를 우리 교회에서 하게 되면서 그분들 목욕을 시켜드릴 사람이 없다고 하여 자원하게 되었고, 그분들을 목욕시키면서 예수님을 전하며 기적과 능력을 체험하고 싶은 분을 기도 요청을 하라고 하였고 그 후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드리니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되어짐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지극히 작은 것에서 일어나듯이 제일 처음의 치유는 강남금식기도원에서 "하나님, 병으로 고통스러워하시는 노인 분들을 위하여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분들을 바라보면 가슴이 찢어질듯 한데 어찌해야 하나요? 울면서 기도할 때 성령께서 치유의 은사를 주셨다는 감동이 왔지요. 그래서 한번 확인하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 조심스럽게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추석 때여서 길거리에 밤송이들이 떨어져 달리는 차에 밟히는 것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내려서 몇개 줍다가 오른손 집게손가락 끝부분에 가시가 박힌듯한데 보이지는 않고 만지면 아파서 그대로 집에 와서 아내 모르게 방문을 잠그고 방언으로 치유은사 기도를 하였는데 정말 신기하게 성령님께서 낫게 하셨지요. 그 이후 점점 큰 기도를 시키셔서 몇 년 전에는 안양 샘 병원에서 말기 암, 그러니까 1주일을 못 넘길 분들의 병실에서 위암으로 그날을 못 넘긴다는 어느 여자 환자를 위한 기도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역사하셔서 산소마스크만 썼지 의식불명이셨는데, 그날이 5시간 남은 시간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니까 웃으며 눈을 뜨고 일어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어떤 노력이나 특별한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고 오직 성령님께서 저의 믿음을 보시고, 또 기도 받는 병이 낫고자 하는 환자분이나 보호자분의 믿음을 보고 성령님께서 판단하고 역사하는 것이지요. 

-어떤 병들을 치유하시나요?   

저는 오래 전부터 많은 병을 앓게 되었지요. 그래서 병원에 가면 병력(病歷)이 상당히 많아요. 제가 아플 때에는, 너무도 허약할 때에는 몸도 아프지만 마음도 아팠지요. 나도 남들처럼 더 건강했으면 했고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제가 치유은사를 받고 치유사역을 하다 보니 깨닫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제가 아팠던 병들의 은사를 주셨어요. 그러니까 아픔의 고통을 알게 하신 것이지요. 그래서 치유 받으려고 오시는 분들의 마음을 조금은 느끼게 되지요

그리고 병 고침의 치유는 통증이 전이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기도를 해드리면 그분의 고통이 제게도 느껴져요. 그래서 지금도 아플 때가 많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조금도 아픈 일이 없는 분이 치유은사가 있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내가 고통과 아픔 속에 성령의 은혜로 기도하며 이기고 나았을 때 그 병에 대한 은사를 주시고 그러므로 예수님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시지요. 그리고 주님께서 치유사역을 더 많이 시키시려고 제 여동생을 데려가시기 전에 동생의 몸을 통하여 성령수술을 가르쳐 주셨지요. 서울대병원에서 림프종 말기 투병할 때 매일 병원에 가면 제 여동생의 남편, 매제이지요. 매제의 입술을 통하여 그날그날 다른 장기(臟器)들의 이상을 이야기 해주면서 그 부분이 문제라고 하면, 집에 와서 큰 아들(세브란스영상의학과 근무)에게 장기영상을 보여 달라고 하고, 다음날 새벽에 여동생이름을 부르면서 기도 할때 성령님께서 수술을 시키셨지요.

우리 인체의 장기 여러 곳을 경험하게 하시고 너무도 놀랍고 동생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쯤에 주님께서 “내일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다”며 “가지 말라”고 하시더니 동생을 데려 가셨어요. 많은 슬픔 속에 “하나님 이러실 수가 있나요” 하면서 힘들어할 때 5일째 되는 날 우리가 그 토록 바라고 소망하는 천국에서 금 면류관을 받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너무도 부럽고 감사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 모습을 생각하면서 언젠가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주어진 사역에 열심을 다하고 있지요. 병은 제가 아팠던 우울증, 공황장애, 허리디스크, 백혈병 등 동생 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경험하게 하신 대부분의 병이 되겠지요.                                         
▲ ‘KBS스페셜’ 방송에 출연한 김여호수아 목사(중앙)  

-어떤 방법으로 치유하시나요.?    

저는 먼저 이름과 생년월일을 받아서 그분을 위해 하나님에게 새벽에 기도를 하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분만 멘 토와 기도를 해드리지요. 혹시 이름과 생년월일을 묻는 질문에 의심을 하시는 분이 있는 데요. 세상에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 너무도 많지요. 건강하신 분은 모르겠는데 제게 오시는 분들은 상당히 힘드신 분, 성령님의 전적인 초자연적 능력이 집중해야 하는데 여러 명에게 분산되면 능력이 안 나타나기에 한분 본인에게 집중하려는 것이지요.

새벽에 벌써 병마를 때려잡던가 결박하지요. 우리 몸은 병도 생기지만 거기에 상응하는 자연치유력도 하나님께서 숨겨 놓았지요. 그런데 사단이 흩어 놓아 병에 잡혀서 환자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지요. 아무리 믿음생활 오래하고 성경을 줄줄 외우던 사람도 병마에 잡히면 힘을 못쓰지요. 그동안 쌓아놓은 믿음이 순식간에 다 무너져 내리지요. 그러하기에 항상 깨어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겠지요. 그리고 오전이나 오후에 방문을 하시면 대부분 병마로 고생해서 일그러진 얼굴로 오시지요. 그러면 먼저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으라고 해요. 가끔 잃어버린 때도 있지만, 저와의 멘토 전과 멘토 후에는 전혀 다른 얼굴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멘토는 그날, 그날 성령님께서 제 입술을 통해 들려주시고 주로 전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신 간증들을 통해 이야기하면서 기도받기를 원하는 분들이 자신도 그렇게 치유받기를 간절히 소망할 때에 성령님께서 치유기도를 해주라고 감동이 올때 기도를 해드리지요. 그런데 이때 받는 분의 믿음을 보시기에 거기까지 멘토를 통해 성령이 충만하도록 멘토하는 사역을 하고 있지요.      

-앞으로 목사님의 사역계획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사역의 계획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셨고 저는 오직 순종하며 갈뿐이지요. 후두용종 수술할 때 프로포플의 마취 부작용으로 천국에 갈뻔 했다가 살려주시면서 노인 전부를 위한 노인복지를 하라고 하셨으니 노인복지를 최우선으로 해야겠지요. 다음은 건강한 가정을 위해 결혼대상자들 중에 정말로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시는 짝들을 만나게 해서 하나님께서 이름지어주셨듯이 이(이혼율) 제(제로에) 도(도전하는) 결혼연구원, 그러니까 ‘이제도결혼연구원’을 지금보다 더 활성화해서 참으로 이혼율 없이 죽을 때까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정을 대한민국 온 천하에 세워서 가정의 행복이 나라의 행복이고 정말로 살기 좋은 이 나라 이 민족이 되도록 하려고 합니다. 성전은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놓으신 참 좋은 교회 성전에 빠른 시일 안에 입당예배를 드리고 수많은 영혼을 구하는 것과 양수리에 치유센터를 건립하여 병마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부담 없이 치유 받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보다 더 소중한 천국을 가기 위한 삶을 전하여 영혼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도결혼연구원을 통하여 세상에 수많은 남여 결혼대상자들에게 참된 자기 짝을 찾아주어서 건강한 가정에 건강한 자녀들을 쑥쑥 낳아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혈통의 인재들을 많이 배출해서 우리나라를 정말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목사님에게 치유은사 말고 다른 은사사역은 어떤 것이 있나요?    

은사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신 소중한 사명 도구이지요. 하나님에게 쓰임받는 자체가 도구이며, 도구는 도구일 뿐이지요. 예를 들면, 모나미 볼펜과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그 주인의 쓰임에 편리하고 유용하면 사랑받지만 불편하거나 쓸모없으면 쓰레기통에 쳐넣어 버리게 되듯이 은사사역자들은 이점을 명심해서 항상 긴장해야하며, 병마와 싸워 결박하려면 배가 너무 부르면 안되지요. 싸움터에 나가는 용병이 몸집이 둔하면 잘 싸울 수 없듯이, 세상에 보이는것에 현혹되면 바로 그 힘을 잃어버리지요. 과거에 대단했다는 이야기는 하나의 지나간 스토리이지요, 그런 것으로 현혹해서 정말 어려운 분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매우 안타깝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신앙이 떨어지고 복음증거의 문이 막혀가고 있는 듯하고요.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님과 실시간으로 소통을 하고 있으므로 제가 뛰어난 게 아니라 성령님께 물어보면 세상에서 알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지요, 사람들의 인성을 알 수 있어서 가령 어떤 사람이 도움이 될까 아니면 해(害)가 될까? 청소년들의 진로 방향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삶속에 계획을 주셨지요. 그런데 사단들이 흩트려 놓아 알 수가 없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런 분들은 머피의 법칙처럼 하는 것 마다 망하고, 안되고 힘들지요, 마치 네비게이션 과 같아서 목적지대로 찾아가면 순조롭고 기쁨과 감사가 저절로 나오겠지요. 예를 들면, 어떤 기업의 프로젝트에서도 성공할지 실패할지 인간이 어떻게 알겠어요. 모든 일에 일정부분은 신(神)의 영역인데 이 부분을 하나님의 힘을 빌려서 해결한다면 편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 되겠지요.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 뚜렸할 때 기적의 능력이 나타나지요. 감사합니다.                       

‘다임’ 연구 및 체험교실 개설     

김 여호수아 목사는 ‘참 좋은 세상’을 만드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고령화·저출산 시대를 맞아 이에 대한 해결방안의 하나로 다임(多姙)을 장려하고 이를 실현하고자 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임신이 안 되는 경우에나 임신을 위한 방법에 대하여 연구하고, 새로운 방법을 체험함으로써 불임(不姙)으로 인해 가정의 불행을 적절히 대처하거나 개선하므로, 불임으로 인한 또 다른 가정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불임의 문제점으로 오늘날 우리가 복잡 다단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환경호르몬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남자와 여자의 생리구조의 문제점 등으로 결혼 후 수년의 시간이 흘러도 임신이안 되는 가정들이 많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며, 어제에 신기했던 일들이 자고 나면 또 다른 새로운 것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복잡 다변한 시대에 살아가지만 우리의 삶속에 가장 중요하고 꼭 이루어야만 하는 (성경에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기에) 임신에 관해서 아직도 삼신할머니가 점지해주셔야만 아이가 태어나는 줄 알고 있다.                                      
▲ 다임 연구 및 체험교실을 개설한 김여호수아 목사    

이는 오래전 생사화복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모를 때 하는 이야기이며, 지금은 하나님만이 생명의 주권자이시기에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심을 믿어야 한다.

 환경호르몬으로 남자 정자의 숫자가 적어서 수정이 어렵다. 여성의 건강이 산성체질이어서 수정이 어렵다. 자손이 귀한 가정이라서 임신이 어렵다. 약물 중독으로 인해 임신이 어렵다.근본적으로 자손이 없는 가정, 너무 약골이어서 임신이 어려운 경우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권자이시며 필요한 때 적절한 방법을 통하여 주심을 알 수 있다.그러면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병·의원을 찾아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결과 많은 가정이 해결 받지만 그럼에도 해결하지 못하고 낙심하거나 포기하는 분들을 위하여 혼적인 세계에서의 불능의 문제점들을 영적인 세계의 치유방법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우리의 몸은 영과 혼과 육으로 이루어졌으며 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 임신하기 어렵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축복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 반듯이 태아를 기를 수 있는 건강 상태가 되어야 선물을 받을 수 있다.인체의 각 장기들이 건강해야 특히, 아기집이 튼튼해야 선물을 받을 수 있다.근본적으로 선물을 받을 수 없는 가정에서는 선물을 안 받는 것이 축복이다.           

◆기존 방식과 전혀 다른 ‘다임’ 연구 및 체험교실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기존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임신을 하는 과정을 소개 및 실시함으로 고정관념을 깨고 그 동안 무지했던 사람의 임신 근본을 영적인 개념에서 연구 체험함으로서  새로운 방법의 임신을 통해 영과 육이 건강한 아이 낳는 것을 체험하기 위한 것이다.참가방법으로는 먼저 준비된 양식에 의거해 인터넷 접수를 통해 ‘다임’만의 특별한 심사 방법(비공개) 에 의해 참가 대상가정을 선별한다. 1차적으로  2018년 9월1일 개강( 20가정예정)하여 9월1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3개월 과정에 참가비용은 추후 결정키로 했다.‘다임’ 과정은 신체적으로 건강하지만 임신이 되지 않거나 되었다가 자주 실패하게 되는 가정의 문제점들을 맨투맨 상담을 통해 근본원인에 접근하므로 다른 방법의 연구 및 체험이 이뤄진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 가정의 난임은 무엇이 문제일까? ▲새 생명을 받게 된 사례에 대한 탐구 및 닮은 사례 만들기 위한 준비 ▲마음을 통하여 아기 양육을 위한 장기들의 반란 ▲마음을 통해 건강한 아기집 만들기 ▲똑똑하고 건강한 아기 임신을 위한 신체 관리 ▲원하는 성별의 자녀 임신하기  ▲태교의 필요성 등을 익히게 된다. 고정관념을 벗어나 또 다른 방법의 임신을 연구 및 체험 하는 과정이기에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상담과 멘토가 필요하다. 의학적으로 특별한 결함이 없음에도 임신이 안 되는 경우에 멘토를 통해 영성을 다스리므로 임신이 되도록 하며,  따라하다 보면 임신될 확률이 높다.    
(문의: 서울 참좋은교회 김여호수아 목사 010-3235-1094) 
         
믿음은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한국전력 직장선교회 간증 (2010년 8월31일)        

에벤에셀의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그리고 오늘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며 눈물의 기도를 하나도 흘림 없이 귀담아 들어주시고 어린아이와 같이 연약하고 어리석음을 애타게 바라보시며 기다리시다가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이루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부족함이 많은 저에게 감동의 체험과 기적의 은사들을 주셔서 그것들을 보고 체험한 것들을 만방에 전파하라는 오로지 주님의 명령에 따라 이 자리에 섰습니다.

성령님! 이 자리에 함께하셔서 방해하는 악한 세력이 없게 하시며 저의 인간된 모습은 가려주시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역사하신 일들만 전하므로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의 귀가 열려서 전하는 이나 듣는 이가 함께 은혜 받는 귀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간증 설교를 하고 있는 김여호수아 목사  

불교 믿는 가정에서 출생   

저는 서울 강남경찰서 정보통신계장으로 있는 경위 김종헌입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선 것도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 한 부분임을 믿습니다. 아멘.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며 당시에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이 그러하듯이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불교를 믿는 가정에 태어났습니다. 교회는 크리스마스 때 연극구경과 과자선물 받으러 동네 친구들과 몰려서 가는 것이 전부였지요. 그러던 중 제 위에 누님이 미션학교인 숭의여중을 들어가면서 학교숙제를 하다가 다니는 교회에서 저녁예배를 드리고 오는 숙제가 있는데, 그 당시 1962년에는 서울거리도 어둡고 교회도 멀리 떨어져 있어 중학교 1학년 여중생이 다니기에는 너무 무서웠지요.    

제 누이는 제게 함께 교회에 가자고 하였고 저는 그때부터 어린나이지만 밤길에 누군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지금의 직장에 적성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기억으로는 천막교회가 많았고 강대상(講臺床)에는 붉은 십자가를 수놓은 천의 밑에는 ‘성령 충만’이라는 붉은 글씨가 눈에 띠므로 보기만 해도 성령 충만이 머릿속에 가득한 것입니다.

저는 당시에 믿음은 없고 누나를 기다리며 가끔 멍석 한켠에서 들락거리는 쥐를 보게 되면 ‘저놈의 쥐를 어떻게 잡아서 혼내줄까’ 궁리하다 보면 어느덧 예배는 끝나고 누나와 함께 예배 중 목사님이 하시던 이야기를 하면서 집으로 오는데, 저는 한눈을 팔아서 제대로 기억나는 내용이 별로 없었지요. 밤늦게 집에 오면 저와 누나 보다 위의 형이 기다리고 있다가 쓸데없이 교회에 다녀왔다면서 그 시간에 공부나 하지 밤늦게 돌아다녔다며 빗자루나 몽둥이로 몇 대씩 때렸는데 맞으면서 다음에는 안 간다고 했지만 숙제 때문에 다음 주에 또 가곤 했지요.     

그러던 중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얼마나 불도(佛道)에 정진하셨는지 돌아가실 때 감기처럼 며칠간 앓으시다가 돌아가시는 바로 그날에는 놋대야에 물 떠오라고 하시면서 손수 몸을 다 닦으시고 머리맡에 노자 돈 놓으라 하시고, 그러고는 저는 앞부분만 알지 뒷부분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불경(佛經)구절을 외우시더니 “대문간을 넘어 저승사자가 들어온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얼마 후에 “방 문지방을 건너온다”고 하시더니 “쇠사슬로 목을 조른다. 조른다.”

하시면서 돌아가셨지요. 며칠간 아프시며 진지도 못 드시다가 밥해 달라는 소리에 외숙모는 신바람이 났지만 그 밥도 못 잡수시고 돌아가셨지요.     

장례를 치르고 나서 전에는 시골에서 보통 푸닥거리를 한다고 하면서 무당을 불러 굿을 했는데, 굿 하면서 떡시루에 하얀 쌀가루를 곱게 깔고 그 위에 하얀 창호지를 덮은 후 한참 굿을 하고 나서 열어보면 죽은 사람이 어떤 동물이나 곤충으로 환생했나를 쌀가루 위에 남겨지는 발자국이나 어떤 흔적으로 알게 된다고 하는데 그때 우리할아버지는 나비가 되셨다고 하더군요. 그 후에 저는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내내 여름방학 숙제로 곤충채집을 해서 제출할 때에 매미, 잠자리, 풍뎅이, 오줌싸게, 하늘소, 여치 등 다 잡아 내도 줄곧 나비는 빼고 냈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선생님께서 왜 나비를 빠뜨렸냐고 물으시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나비가 되셨다고 해서 나비는 안 잡았다는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래~~ 참 착하네” 하시면서 웃으시곤 하셨는데 어려서부터 순진하다고 할까 아니면 좀 바보스럽다고 할까 아무튼 무엇인가 믿게 되면 확실하게 믿으며 자라왔지요.                     

어린 시절 누이와 함께 약수교회에 출석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몇 달 후 교회에만 가면 때리곤 하던 제 위의 형이 밤에 잠을 자다가 꿈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보았는데 하얀 두루마기를 입으셨고 옆에 성경책을 들고 계시면서 형에게 “내가 잘못 믿었단다. 나도 지금 다시 성경을 보니 너도 교회에 다녀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잠에서 깨었다고 하면서 그동안 우리에게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한 것을 미안해했지요. 그러면서 제 누이와 저는 서울 약수동에 있는 약수교회에 다녔는데, 형은 함께 교회에 다니기가 창피했는지 그 옆에 있는 신일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공군에 들어가 백령도에서 근무하면서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오래전 제주도에선 토속신을 많이 믿던 때에 어느 마을에 산신이라며 매년 구렁이에게 소녀를 제물로 바치던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때 소녀를 잡아먹으려는 그 구렁이를 낫으로 때려잡아 소녀를 구했는데, 마을에서 자신들이 모시는 산신(山神)을 잡아 죽였다고 난리를 치던 그 마을의 사람들을 모두 전도했다는 이기풍 목사님의 손녀사위가 되시는 나성균 목사님이 목사가 되고 처음 주시는 세례를 저는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백령도에서 근무할 당시에 매일 새벽 새소리로 깨워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줄곧 새벽기도를 드리곤 했지요.   

지금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씀은 마가복음 1장11절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로,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이 말씀을 묵상하고 새벽길을 달려 교회로 가며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나로 말마임아 기뻐하신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도 저와 같이 이 기쁨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군 제대 후 한국통신기술공사에 입사 및 퇴사     

군 제대 후에 한국통신기술공사에 들어가 근무를 잘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저를 강하게 훈련시키려고 처음에는 달콤한 매력이 들게 하여 쿠웨이트 방위를 위한 미국인근무자들과 교체 멤버로 10여명을 뽑는데 선발이 되게 하셨어요. 한달 급여가 당시에 우이동쪽에 집 한채 값을 준다고 하니 그때 제 나이 26살에 누구나 해보고 싶은 일이었지요.     

저는 다니던 회사에 조금도 망설임 없이 사표를 내고 곧 떠날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지요.

그런데 1981년 이란과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면서 쿠웨이트에서 교체하는 것을 무기한으로 미루게 되었고, 저는 회사를 미리 그만 둔 상태에서 ‘중동에 간다’는 소문은 동네방네 모두 내어놓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내놓고 보니, 한국중공업이라는 회사를 통해 나가게 됐는데, 사우디아라비아 내에서도 가장 아래쪽에 있는 예멘과 국경에 접해있는 ‘지잔’이라는 곳에서 1년간 일하게 되었습니다.    

전기기술자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    

전기기술자로 가기는 했는데, 사실 저는 전기기술이 없었어요. 당시에 사우디에서는 인력난으로 남들보다 저렴한 시급의 급료를 받는 것으로 채용이 되었던 것이지요. 한 달에 강북의 집 한채를 살 수 있는 고수입이라는 말에 지원했으나 최초 해외 취업의 꿈은 사라지고 주변에

소문낸 것을 무마하고 당장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해외에 나가는데 속으로는 많은 걱정이 되었지요. 결혼 전인 상태에 있던 지금의 아내가 선물을 사준다고 하기에 다른 것은 필요 없고 성경책 두 권을 사주면 떨어져 있는 동안 서로 성경을 보면서 기도해주기를 제안했지요. 그 어떤 선물보다 가장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았지요.

갈까, 말까 망설이다 얼떨결에 비행기를 타고 제다를 거쳐 사우디 남부 예멘과 국경인 지잔 이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얼마나 더운지 처음에 비행기가 도착해선 바로 나갈 수가 없더군요.

몇 번을 들락거리며 적응한 후에 나가니 너무 더워서 숨을 쉴 수가 없을 것 같았고, 당시에는 온도계가 아날로그 온도계가 거의 다였는데 57도 정도가 최고였는데 수은주가 한계에 도달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더웠지요.

그렇게 더운 날씨와 싸우면서 달러를 벌기 위해 매일 새벽6시에 일어나 밤10시까지 일했던 당시 중동근로자들의 피와 땀이 우리나라를 지금 이만큼 발전시키는데 기여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곳에서 달러를 벌려고 고생하며 일한 사람들 중에는 귀국 후에 풍토병으로 죽은 사람들도 많이 봤어요.    

저는 통신전자, 그러니까 약전(弱電)을 전공하여 강전(强電)에 대해선 특별히 아는 지식이 없었으며 공사현장의 경험은 전혀 없었는데, 제가 간 그곳은 시멘트 공장을 만드는 플랜트 전공의 일을 하는 현장이며 그곳에서 제가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운전도 못했고, 심지어 공구이름 조차 생소한 것이 많았으니까요.

건설 현장의 일은 아시다시피 도급이라는 작업으로 시간 따먹기 일 즉, 시간이 돈이지요. 한 팀 에 보통 4~5명이 어떤 일의 양(量)을 며칠 내에 완성하는, 그러면 얼마를 임금으로 정하는데 저처럼 일 못하는 사람과 하려는 팀이 없었어요.

저 같은 사람이 간혹 몇 명은 있었지만 보조역할만 하고 일이 서툴러서 어려움이 많았지요. 그래서 저는 우리 팀원들에게 늘 미안해서 일할 때는 보조 역할이나 하고 휴식시간에는 물을 길러다 마시게 했지요.     

사우디 사막에서 약 500미터 떨어진 곳으로 물 한말의 통을 들고 걸어갔다 오는데 긴팔 옷을 입지 않으면 노출된 피부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태양의 열기아래 물을 받으러 가는 것이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가 좀 수고해서 함께 일하는 분들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생명수의 공급이라 생각하니 그 역할은 참으로 기분이 좋았지요.

그래도 일을 잘하지 못하니까 건설현장 반장의 눈에는 찬밥신세가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부터 갑자기 사람들이 감전(感電)으로 첫날은 1명, 둘째날 2명, 셋째날 4명, 넷째날 3명 이렇게 감전으로 10명이 죽는 사고가 연일 일어났어요. 

사선(死線)을 넘나든 사우디 생활    

잇따른 죽음에 그곳 근로자들은 두려움에 파업을 하고 모두가 공터에 나와서 대책을 세워주기를 요구하며 작업을 거부하게 되었어요. 공사 현장에서 전기과장과 반장들이 회의 후에 내놓은 대책안은 누구 한 명을 지정하여 전기를 끌어주고 그곳에서 감전사고가 나면, 책임을 그 사람에게 묻는 것으로 하였고 그 한사람을 찾는데 아무도 지원하지 않으니까 제게 그 일을 맡기게 되었지요. 제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걸 아는 사람들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저는 그날부터 매일 새벽기도를 하면서 단 한명도 다치는 사람이 없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했고 밤에 일마치고 오늘도 지켜주심에 감사기도를 하였지요.

그 당시에 얼마나 무서웠던지 공사 현장에 이리저리 늘어진 전선들이 갑자기 제게 튀어 올라 몸에 닿아서 감전되어 죽을 것 같은 공포감에 들기도 하였으니까요. 그 이후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단 한명도 감전으로 죽는 사고가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현장에서 어떤 건물과 건물 사이를 공급해 주는 땅에 묻힌 케이블을 포클레인으로 작업을 하다가 전선을 찍어서 전기공급이 중단되었어요. 이렇게 굵은 케이블이었지요.

저는 전기를 공급하는 분전반에 가서 나이프 스위치를 내리고 그리고 이렇게 팔뚝만한 퓨즈를 모두 뽑아서 땅바닥에 놓아두고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와서 동(銅)케이블 연결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굵은 선을 모두 벗겨 조이는 일을 하는데 갑자기 전기가 들어와 감전이 되면서 의식을 잃게 되었지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옆에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전기 안 들어와서 일을 못하게 되어서 일을 빨리 하려고 그 곳에 빼놓은 퓨즈를 하나하나 모두 꽂고 스위치를 갑자기 올린 겁니다.     

이곳이 한국전력이니까 혹시 현장경험이 있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전선연결 작업은 무척 땀이 많이 나지요. 더구나 사우디의 열기 속에서는 옷이 흠뻑 젖어 있는데, 그런 가운데 전기에 감전이 되니 순간에 뒤로 펄쩍 나가떨어지면서 저는 ‘여기서 죽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의식은 끊어졌고 한동안 시간이 흐른 뒤에 잔잔히 귀속에 들리는 소리가 있었지요.

‘일어나라~ 일어나라~’ 그리고 한동안 있다가 다시 ‘일어나라~ 일어나라~’ 그 곳에서 죽어있는 저를 하나님께서 일어나라고 재촉하시는 소리였지요. 그때에는 솔직히 그 소리가 하나님의 음성인 것조차 몰랐어요. 간간히 들렸다가 안 들리고 그리고 얼마 후에 들리는 소리를 듣고 저는 의식을 회복해서 일어났지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 소리가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듯합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소생    

사람들은 저를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이구동성으로 역시 기도하는 사람이니까 하나님이 살려줬나 보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지요.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중동에서는 날씨가 워낙 더우니까 평소에 심장이 늘어져 있다가 전기로 감전이 되게 되면 곧바로 심장마비가 되어서 죽는 것이 다반사였거든요. 그런데 그곳에서 저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일어나라’는 음성을 들려주셔서 그 음성을 듣고 살아서 이렇게 간증을 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때의 하나님은 지금도 이곳에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다음은 오래전 삼성1파출소 야간 근무를 하던 중 순간의 사고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설수도 없었던 놀라운 기적과 같은 내용을 전하겠습니다. 파출소 근무를 하면서 새벽 3시경에 순찰차에 조수석에 앉아 112사건 처리를 마치고 순찰을 돌던 때인데 갑자기 역삼동 쪽에서 오토바이 날치기 사건이 발생, 무전(無電) 연락이 오면서 삼성역 방향으로 도주 중이라는 내용으로 우리는 삼성역 사거리 안전지대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범인으로 의심되는 오토바이 1대가 오더군요.     

가까이 도주해오는 그 오토바이는 정지신호를 하기도 전에 삼성역사거리에서 휘문사거리 쪽으로 달아나서 우리는 잡으려고 뒤쫓는데 글라스타워빌딩 뒷골목에서 또 한대의 오토바이가 튀어나와 2대가 나란히 도망가는데 삼원가든 사거리에서 1대는 차가 오는 위험을 무릅쓰고 반대편 차도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은 1대를 쫓게 되었는데 은마아파트 상가 앞 횡단보도 앞에서 우리 뒤쪽을 한번보고 반대편으로 도망가려고 달리다가 중앙에 가로수를 심어놓은 경계석에 부딪치면서 사람은 공중으로 날아오르다 떨어지고 오토바이는 반대편에서 오는 택시 본 네트 부분에 부딪치는 뜻하지 않은 대형 사고가 발생하게 되었지요.                           

하나님에게 긴급히 ‘SOS'     

매우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사고였지만 저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라고 저도 모르게 소리쳤어요. 하나님에게 긴급히 'SOS'를 쳤던 것이지요. 그리고 너무 큰 사고여서 솔직히 그 순간 자리를 피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하나님! 지금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제게 지혜를 주셔서 순찰차를 몰고 반대편의 차도로 가게 하셨고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차들은 경광등이 켜진 순찰차를 발견하고 가까이 달려오지를 않았지요.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이 떨어질 때, 운 좋게 살았더라도 달려오는 차에 치여서 사망할 뻔한 위급한 상황이었지요.

그리고 순찰차에서 내려 공중에 날아가 떨어진 사람을 살펴보니 잠시 의식을 잃었을 뿐 곧바로 일어나게 되었고 얼굴은 물론 팔다리 어디도 다치지 않았지요. 순식간에 발생한 사고인데도 하나님께서는 마치 스폰지로 받아 내려놓은 듯 타박상 하나 없이 받아 주셨던 것입니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119를 불러 서울의료원으로 후송하고 교통사고 처리를 그곳 담당파출소에 인계하며 특별한 어려움 없이 잘 마무리가 되었지요.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만큼 아찔한 큰 사고였지만 어느 순간에 “하나님!”하고 소리쳤더니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는 하나님께서는 저의 모든 것을 살펴보시고 계시다가 ‘SOS’를 치는 순간 모든 것을 실수함 없이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 ‘주남 내손 잡아주세요’ 행사 때의 김여호수아 목사   

매일 새벽예배와 함께 기도생활    

시편 18편 6절에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 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너희가 나의 능력을 믿으면 부르짖으라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뜻이 조금은 아는듯하여 매일매일 새벽예배와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땅에 떨어짐 없이 하늘에 올라가 쌓여 있다가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어느 한 순간에 갑작스런 어려움이 생길 때 하나님에게 ‘SOS’를 보내면 즉시 그동안 쌓아놓은 기도의 물코를 터서 응답해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적절한 방법으로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매일매일 틈나는 대로 기도를 저축하듯 하여서 삶 속에서 갑작스런 환란이나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을 찾으므로 구별된 결과를 체험하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찬송 한 장할까요.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다음은 어느 여름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강남병원에는 시립병원이어서 서울에 있는 행려병(行旅病) 환자들이 많이 몰려오지요. 스스로 오는 사람도 있고 인근 각 경찰서에서 길거리에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112 신고를 받게 되면, 시립병원으로 싣고와서 병원응급실에 인계하고 갑니다. 그러면 짧게는 2~3일, 길게 1주일 정도 머물다가 답답하니까 몰래 달아나거나 본인들이 퇴원을 요청해서 나가게 되는데 병원 주변 한전 본사건물 뒷골목 등을 배회하다가 길에 쓰러져 다시 병원에 인계되는 일을 반복하는 실정이지요.    

그 분들은 정말 인생의 온갖 고통과 어려움 속에 망가질 대로 다 망가져서 죽음을 기다리며, 지금 살아있는 삶 자체가 버거워서 자포자기를 하면서 길거리 아무 곳에나 쓰러져 잠들곤 하지요. 구걸을 해서 단돈 얼마를 받으면 곧바로 소주를 사서 병째 마시고는 길거리에 쓰러져 잠들곤 하지요. 길가다 무작정 가게에 들어가 돈 달라고 떼를 쓰고 그렇게 해서 가게 주인이 112신고를 하여 달려가 보면 저항하다가 힘이 빠져서 집힐듯하면 곧바로 쓰러져 간질 증세 흉내를 내거나 의식을 잃은 척 하기도 하지요

뿐만 아니라 전혀 씻지를 않으니 특히 여름에는 근처만 가도 냄새가 진동을 하며 옷에 배이는듯 하니까 솔직히 저희 경찰관들도 그런 신고가 떨어지면 피하고 싶고 주로 경찰 짬이 작은 직원이 많이 처리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행려환자 신고가 많은 파출소에 근무하면서 처음에는 저도 다른 동료들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얼마간 지나면서 그 분들을 바라보며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요.            

행려병자들 돌봄의 생활     

어쩌면 예수님이 지금 행려병자의 형상으로 내게 보여주면서 내가 어떻게 하는지 시험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는 그분들을 발견할 때 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였지요. 신발이 없는 분들에게는 신발을, 배가 고파하는 분에게는 빵과 우유를, 마음이 아파서 괴로워하는 분에게는 위로를 드리면서 그분들을 위하여 기도했지요.

하나님에게는 똑같은 사람들이고 어떻게 얻은 인생인데… 저분들도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내일의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게 해주세요.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을 대하게 되었지요. 그러다보니 저희 팀의 근무 때에 행려환자 신고가 들어오는 것은 거의 제 담당이 되었지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저절로 신바람이 나기도 하지요. 비록 파출소 근무가 힘들더라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나의 삶속에서 보여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할 때 그분들의 마음이 열리고 기쁨과 감사하는 일들이 많이 생기는 듯 하더군요. 그래서 전도도 많이 하게 되니까 몇 년간 계속 전도 상을 받게 되었지요.

여러분도 주어진 삶의 테두리 속에서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일이 무엇인가 찾아 신바람 나게 열심히 해보세요. 다른 사람들이 악취로 느껴지는 냄새도 오히려 은혜의 향기로 느껴질 테니까요 .     

1999년 8월10일 오후 2시경. 그날은 중복(中伏)이라 유난히도 더운 날이었지요.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서 근무복 등쪽이 젖을 정도로 더워서 흐르는 땀을 젖은 손수건으로 닦고 있을 때 112신고에 따른 무전이 날라 왔지요.

‘강남병원 건너편 00식당 뒤에 안전’

저는 순찰차를 급히 몰고 갔지요. 강남병원 건너 상가 앞에 도착해 보니 그곳에는 벌써 여러 구경꾼들이 모여 있더군요. 신고는 상가 냉면집 뒤편에 어떤 사람이 의식을 잃고 죽어간다는 내용이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전날 병원에서 나온 행려환자 배00씨가 술이 취한 상태로 그곳에 들어가 죽으려고 자살을 시도하였다는 것이다. 더위로 창문을 열어놓았는데 손님 중에 어디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해서 찾아보니 사람이 좁은 구석 틈바구니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냉면집 주인에게 알렸고 막상 들어가 보려니 엄두가 않 나고 해서 112 신고를 하였다고 합니다.
  
냉면집 주인은 혹시나 식당 뒤에서 행려환자가 죽기라도 하면 장사하는데 지장이 있을까봐 하는 염려와 함께 경찰이 와서 빨리 해결해 주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상가 뒷편에 에어콘 실외기가 있는 매우 좁은 통로 안에 위치하고 있어 두 사람이 들어가기도 곤란했고, 매우 무더운 날씨여서 땀이 주루르 흐르는 실정이었지요.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아마 경찰관 복장이 아니었다면 그곳에서 옷을 입은 채로 대소변을 봐서 코를 찌를 듯한 역겨운 냄새를 참으며 들어가 다 죽어가는 사람을 업고 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 피하고 싶은 일이었지요.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업기도 좋은데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 사람은 더 힘들더라고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겨우 업고 나왔습니다. 순찰차에 태우려니 너무 옷에 오줌과 똥이 범벅이 되어서 자동차 시트를 버릴까봐 안 되겠다 싶어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업고 강남병원 응급실로 갔지요. 그리고 평소와 같이 응급실 간호사에게 인계하려 했더니 워낙 냄새가 심해서 간호사가 코를 움켜쥐고 받기를 꺼려하더군요. 누군들 안 그렇겠어요. 
   
저는 샤워를 시킬 만한 장소를 찾아서 총기벨트를 끌러서 침대 옆에 올려놓고 간호사에게 물비누를 달라고 해서 행려환자 배00 씨의 옷을 벗긴 후 머리부터 샤워를 시키는데 몸 여기저기에 용의 문신이 가득하더군요. 샤워를 시킨 후 병원환자복을 입혀서 간호사에게 인계하니까

간호사가 미소를 지으며 받더군요.

샤워를 하는 도중에 배00씨도 의식이 돌아왔는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저와 나이가 같았고 그전에 마산에서 회사를 착실히 다녔는데 부인이 가출을 해서 한참을 기다려도 안돌아와 부인 찾는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이 모양이 되었다고 한탄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프더군요. 그리고는 저에게 자기는 지금까지 모든 경찰관을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저씨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리더군요.    

저 또한 가슴이 찡해 오는 것을 느꼈어요. 사람과 사람사이에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면 메아리쳐오듯이 사랑하는 마음이 되돌아오는 듯했어요.

저는 그분에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고 권면하였지요. 어떻게 얻은 인생인데…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거저 얻어 사는 우리의 삶 ...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후 그분은 길거리를 방황하던 일을 접고 고향인 마산으로 내려갔지요. 우리가 살면서 평범한 가정을 갖고 있다가도 이상하게 풀리면 그렇게 되는구나 생각할 때 우리는 항상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실지 모르므로 늘 깨어 기도하며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삶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생활은 오직 은혜로 가능해

신앙은 오직 은혜로 가능하며 은혜는 기도할 때 주시며 은혜 안에 거할 때 영광의 열매를 맺습니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음으로, 주의 은혜가 생명보다 나음으로 주님을 앙망하고 사모하고 갈망하는데 구체적인 행동이 기도입니다.

신앙생활은 은혜로 가능합니다. 은혜로 주님사랑이 가능하고 은혜로 늘 깨어 기도의 생활함이 가능하고, 은혜로 천국을 소망함이 가능하고, 은혜로 주님오심을 사모하게 되고, 은혜로 주님과 친밀해지고, 은혜로 회개가 가능하고, 은혜로 마음의 변화를 받고, 은혜로 사건사고의 위험에서 지켜주시고 은혜로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을 먹어야 하듯이 영혼도 매일매일 은혜를 받아야 하며 바로 지금 은혜를 받고 있어야 합니다. 어제까지 은혜를 주셨어도 오늘 은혜를 안주시면 끝나는 것입니다. 나무 가지에 있는 과일이 열매가 될 때까지 나무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 의미가 있지 바람이 불어 중간에 떨어지면 끝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생활은 은혜가 끊어지면 지금까지 쌓아놓은 모든 것이 끝나게 되는데, 이는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 은혜가 없는데 앞날을 기대하며 어떻게 되겠지 하는데 기독교는 절대 우연은 없고 심지 않으면 거둘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우리가 영접하지 않으면 구원과 해당사항이 없듯이 은혜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은혜 안에서 상급을 쌓게 되고 장래 소망이 이루어지고 지난날 은혜가 지속이 됩니다. 지금 은혜가 끊어지면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늘 기쁨과 감사와 행복이 가득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 함께 기도드립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인도하신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일들을 부족함이 많은 제가 두서없이 전하였습니다. 잘못 전한 부분은 바로 잊게 하여 주시고 은혜의 내용들만 기억나게 하셔서 이곳의 모든 분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전할 수 있는 값진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체험과 기적의 은사를 많이 주신 뜻은
고양시 직장선교연합회에서 간증(2009년 12월3일)    

에벤에셀의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그리고 오늘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지난 시간동안 고통과 슬픔 그리고 눈물의 기도를 하나도 흘림 없이 귀담아 들어주시고 어린아이와 같이 연약하고 어리석음을 애타게 바라보시며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이루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특별히 부족함이 많은 저에게 감동의 체험과 기적의 은사들을 많이 주셔서 만방에 전파하라는, 오로지 주님의 명령에 따라 이 자리에 섰습니다. 성령님! 이곳에 오셔서 저의 인간된 모습은 가려주시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역사하신 일들만 전하므로, 전하는 이나 듣는 이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은혜 받는 귀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생생한 감동이 많은 서울 토박이    

저는 서울 강남경찰서 정보통신계장으로 있는 경위 김 종헌입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선 것도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 있는 한 부분임을 믿습니다. 아멘.    

저는 서울에서 나서 서울서 자라고 서울에서 사는 토박이 인데 제가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지난날을 생각해보니 모두가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걸작품의 생생한 감동들이 많이 있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이 그러하듯이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불교가정에 태어났지만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시려고 꿈으로, 환상으로 또는 음성으로 생생한 증표들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속에 언제나 함께 하시며 사랑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좋은 것으로 베풀어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심을 알리는 도구로 사용해 주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감동의 순간순간들을 풀어놓으려면 몇날 몇일을 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경찰관의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책이 곧 출판이 되니까 기회가 되신다면 문장력은 없지만 솔직한 감동의 순간들을 글로 표현한 책이 세상에 알려질듯 합니다. 그때 저를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간증 설교를 하고 있는 김여호수아 목사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분명한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지금도 이 자리에 함께 하셔셔 역사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바닷물 속에 마지막 물속으로 들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처절함 속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소리에 응답하신 하나님! 칼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험한 현장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아들에게 용기를 주셨던 하나님의 음성!

오토바이 날치기를 쫓다가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찾는 아들에게 응답주신 하나님~ 한겨울에 방 한칸이 없어서 작은 목소리의 속삭임에도 강남에 33평 아파트로 응답주시는 하나님~·

제가 그동안 환상으로, 음성으로 그리고 기도의 결과로 경험한 하나님의 자랑 이야기는 몇 날 몇일을 하여야 하겠지만 오늘은 목사님께서 제게 요청해주신 1명의 신우회원 예배에서 현재 60-70명이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전해드립니다.

저는 1999년 3월1일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강남경찰서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경찰관 1명이 전도 되면 그 뒤에 대략 100명이 전도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경찰관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 하는 기회가 많으므로 진솔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때 참으로 진실된 크리스천이 많아질 것입니다.     

“김 집사는 강남경찰서의 그루터기”    

법회를 드리는 날에 수요예배를 드리게 되니, 그 당시에 저희경찰서에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전혀 없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제게 틈만 나면 “김 집사는 강남서의 그루터기야”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여러분 그루터기가 뭔지 아시나요?

집에서는 교회를 다니지만 직장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혹시나 알려지면 불이익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듯, 기회주의적인 믿음을 하나님께서 좋아하실까요?    

저는 먼저 제가 몸담고 있는 사무실 직원들 그리고 옆 사무실 직원들에게 모범을 보였습니다. 어느 날 저는 중요행사 때에 갑자기 변압기가 터져 정전 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파출소로 이동해 나가게 되었어요. 파출소 생활의 경험이 적어서 비록 서툴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많은 지역 주민들이 열심을 다하는 저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사람 경찰관 맞아!” 하는 소리도 들었지요. 특히 길거리에 쓰러져 누워있는 행려환자들을 만나면서 저도 처음에는 남들처럼 더럽고 냄새가 많이 나서 피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제게는 그분들을 만나게 되면 어쩌면 예수님이 저 모습으로 내가 어떻게 하는가 보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얼마 후에 저는 다시 경찰서 근무를 하게 되었고 전도에 힘쓰다 보니 예배인원이 29명까지 이르게 되었어요. 경목실(警牧室)이 좁아 소회의실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지요.                       

‘너희는 내게 부르짖어라’     

건축을 하면서 믿음의 식구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결국은 또 저 혼자 남았어요. 소망교회에서 많은 돈을 드려 아름다운 성전을 지었지만 뎅그러니 빈 성전이 되어 정말 민망했어요.

목사님께서도 외부 강사를 초빙하려해도 예배드리는 식구가 너무 적어 못하신다고 하시면서 한 10명 정도라도 함께 예배드리면 좋겠다고 하셔서 저는 “목사님, 10명이면 너무 적잖아요. 50~60명은 모여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요” 이렇게 말씀을 드리며 저는 매일 새벽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조용히 묵상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소곤거리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산에가 보면 그루터기 나무에도 싹이 나고 줄기가 나던데요. 저를 통해 싹이 나고 줄기가 나서 우리 경찰서교회에 예배식구가 가득하게 해주세요.    

매일 새벽 울부짖는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한명, 한명 늘어나더니 올해 초에는 장로님과 안수집사님 두 분이 전입해 오면서 예배식구들은 점점 늘어났어요. 경찰관들만 모여 예배를 드리다가 이제는 경찰 선교를 지지하는 분들도 많이 참여하게 되었지요.

모두가 성령님이 보내 주신거지요. 이제는 저희 목사님의 목표가 10명에서 50명 그리고는 100명으로 늘어났어요. 목사님이 기분이 좋으시니까 저희들도 기분이 좋아졌지요. 목자가 기분이 좋아야 양도 기분이 좋으니까 여러분들도 각자 섬기는 교회에 목사님이 기분이 좋아지도록 노력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매일 새벽 직원들의 이름 부르며 기도     

저는 매일 새벽기도 때에 저희 서장님과 과장님, 그리고 직원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합니다. 비록 새벽시간이라서 그 분들은 잠들고 있지만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할 때 그 영혼들은 기도의 고마움을 기억하고 비록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업무적으로 만나게 되면 무척 반가워하며 친근감을 느끼게 하지요. 이 방법을 잘 활용하면 출세의 지름길이 될 듯합니다.     

저희 경찰서는 정문에 민원인이 출입할 때 알사탕을 하나씩 드리게 해놓았지요. 하나님사랑이라도 입으로 부르며 사탕을 바구니에 넣고 그리고 손을 얹고 기도하지요

‘하나님! 저희 강남경찰서를 출입하면서 이 사탕을 받는 손길위에 축복하시고 이 사탕이 몸속에 녹아서 몸에 퍼질 때 하나님의 사랑이 온몸에 퍼지는 놀라운 기적의 사탕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말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면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저의 믿음과 바램이지만 저희 강남경찰서를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은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사랑이 몸 안에 퍼져서 언젠가는 하나님을 잘 믿는 귀한 일꾼들이 되리라 믿습니다.

여러분도 자기가 일하는 직장에 어느 부서라도 자세히 하나님 관점에서 찾아보면 일할 좋은 조건들이 있을 것입니다.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하세요.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다 함께 기도드립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인도하신 이 자리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일들을 부족함이 많은 제가 두서없이 전하였습니다. 잘못 전한 부분은 바로 잊게 하여 주시고 은혜의 내용들만 기억나게 하셔서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전할 수 있는 값진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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