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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모 칼럼
'고령화 사회의 덫'…가족 붕괴시키는 '치매간병 살인'
고령화 사회…환자 갈수록 늘어 가족들 '간병 시간'에 큰 부담 느껴…정부 '국가치매책임제' 도입
기사입력: 2018/08/03 [17:54]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양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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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29일 새벽 6시30분. 서울 송파경찰서를 찾은 C씨(55)는 대뜸 “자수하겠다”며 두 손을 내밀었다. C씨는 1년여 전 어느 봄날 새벽 서울 방화동 자택에서 술을 마신 뒤 어머니 J씨(78)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살해했다. J씨는 중증 치매 환자였다. 수년간 노모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수발을 들었던 C씨는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욱하는 마음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홀로 어머니를 모신 탓에 J씨가 숨진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고시원을 전전하던 그가 1년2개월이 지나 경찰서를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어머니를 좋은 곳에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싶어요.”      

스트레스 극심한 보호자는 ‘숨겨진 환자’인구 고령화에 따라 치매 환자가 늘면서 ‘간병 살인’이나 ‘간병 자살’ 등 관련 범죄가 급증하는 추세이다.한국은 2016년말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13.2%로 유엔이 정한 고령화사회(7% 이상)로 분류된다. 지속적인 노인 인구 증가로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20% 이상)에 진입할 전망이다. ‘황혼의 덫’으로 불리는 치매 환자도 크게 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치매 환자는 고령 인구 662만 명 가운데 9.8%(64만8000 명)로 추산된다. 이 비중은 ▲2020년 10.4% ▲2050년 15.1%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병원 측은 예상했다.이는 곧 간병 가족의 부담과 직결된다. 김희진 한양대 의대 교수팀의 ‘치매 환자 보호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치매 환자 가족이 가장 큰 부담으로 꼽는 것은 ‘간병 시간’이다. 전체 응답자(100명)의 절반은 3년 이상 환자를 돌봤으며 이들은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을 환자 곁에서 보낸 것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부담은 일반적으로 가족 구성원 중 어느 한 명에게 오롯이 전가되는 게 보통이다. 치매 증세가 심해질수록 간병 시간이 늘어나지만 이를 가족 간에 분담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사례도 상당수다. 응답자의 27%는 퇴사, 51%는 일하는 시간을 줄였다.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들은 사회관계가 끊기거나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에 시달리기도 한다. 치매 환자 가족을 ‘숨겨진 환자’라 부르는 이유다.

고령사회가 직면한 불편한 진실

치매간병 범죄는 바로 이 숨겨진 환자에 의해 일어난다. 범죄는 크게 ▲간병 살해 ▲환자 살해 후 자살 ▲간병인 자살 세 가지로 나뉜다. C씨의 사례가 첫 번째에 속한다. 주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철호 남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간병 기간이 길어지거나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희박할 때, 생활고나 간병비 부담이 늘어날 때 범행 확률이 높다”고 진단했다.환자를 살해한 뒤 본인이 자살하는 사례도 있다. 범행 후 자살(시도)은 존속 살해의 특징이다. 2014년 1월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 씨의 아버지 B씨가 치매를 앓는 부모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B씨는 15년간 치매 환자인 부모를 간병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생활고에 우울증까지 겹쳤다. 현장에서는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간다”는 유서가 발견됐다.   

배우자가 치매 환자를 보살피는 ‘노노(老老) 간병’에서는 동반자살 가능성이 높다. 2014년 8월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치매를 앓던 A씨는 경찰에 자신의 남편이 죽었다고 신고했다. 남편 역시 치매 환자였다. A씨는 남편의 용변을 처리하다가 “힘들지 않나. 나도 힘들다”며 함께 죽자고 제안했다. 번개탄을 피우고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남편만 사망했다. 경찰은 A씨를 자살교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이는 우리에 앞서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도 일찌감치 사회 문제로 비화됐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2007~2014년 일본에서 일어난 간병 중 살인·살인미수사건은 371건이다. 1주일에 한 번꼴이다. 김원경 일본복지대 지역케어연구추진센터 연구원은 “환자의 폭언, 생활고 등으로 스트레스가 폭발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며 “환자가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데서 오는 충격 역시 간병인에게 견디기 힘든 칼날이 된다”고 설명했다.

‘간병 실직’ 넘치는데…국공립 시설은 대기 순번 1000번대
독거노인은 복지, 치매는 의료…따로가는 정책이 ‘그늘’ 키워
    

8년째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L씨(57)는 얼마 전 하던 일을 그만뒀다. 시어머니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이다. 86세인 시어머니는 지난 2010년 알츠하이머로 인한 치매 진단을 받았다. 

“초기에는 의사소통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말을 잃으신 상태예요. 운동능력과 균형감각도 많이 떨어져 모든 움직임이 느리고 잘 넘어지세요. 옆에 사람이 있어야 해요. 다행히 어머니는 ‘예쁜 치매’예요. 치매환자 중에는 의심병이 있거나 곁에 있는 사람을 괴롭히는 증상이 많은데, 어머니는 조용한 편이에요.” 

시어머니의 치매는 현재 경증에서 중증으로 진행 중이다. 병원에서는 어머니를 집에서 돌보기 힘든 상태로 진단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8년 동안 시어머니를 돌봐온 L씨는 “길을 잃은 느낌”이라고 했다. 치매 초기에는 집에서 시어머니를 돌보며 구(區)보건소 치매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집에 있는 시간 동안 시어머니를 돌보고 센터 프로그램 시간에 맞춰 시어머니를 모시고 오가는 일은 주로 L씨의 몫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어머니의 증상이 ‘이 정도만 돼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치매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착실하게’ 진행됐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시간도 그와 비례해 늘어났다. 혼자서 대소변 처리가 힘든 시어머니는 낮에는 10분마다 한 번씩, 밤에는 1시간마다 잠에서 깨 L씨를 깨웠다. 

“자꾸 밖으로 나가려는 증상도 심해지셨어요. 한겨울에 잠옷에 조끼 하나 걸치고 사라져서 온가족이 발을 동동 구르며 찾아나선 적도 많아요.” 

L씨는 ‘요양원에 모셔도 되는 걸까?’라는 고민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요즘이 시어머니를 돌봐온 시간 중 가장 힘들다고 했다. 시어머니를 ‘예쁜 치매’라 말하던 이씨의 목소리에서 고단함과 막막함이 묻어났다.     

◆요양시설 넘쳐나는데…‘길 잃은’ 치매노인들 

우리나라 치매환자들은 대부분 치매를 진단받은 후 가정과 재가방문서비스, 주간보호시설, 병원, 요양시설을 반복적으로 이용하다 사망에 이른다. 서비스와 시설 면에서 치매환자에게 알맞은 돌봄을 제공하는 요양시설이 많지 않을뿐더러 적지 않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치매 돌봄가족들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어려움이다. 권용진 서울대학교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임상부교수)은 “전반적으로 치매전문 요양시설이 부족하고, 특히 신체기능이 비교적 건강한 중증치매 환자들이 갈 곳이 없다”고 지적한다. 

한국에서 치매환자가 사회보험의 지원을 받아 갈 수 있는 곳은 크게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두 곳으로 나뉜다. 요양시설(요양원)은 2008년부터 도입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에 따라 요양등급을 받은 노인들이 의탁할 수 있는 곳으로,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돼 월 55만~65만원 수준에서 이용할 수 있다. 장기요양등급은 65세 이상 노인이거나 치매 등 노인성 질병으로 6개월 이상 스스로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목욕, 간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제도다.

노인요양시설에 장기간 입소시켜 신체활동을 지원하는 시설급여와 요양보호사가 직접 가정을 방문해 가사활동 등을 돕는 재가급여로 나뉘어 총 5등급으로 운영된다. 요양시설에 입소 가능한 등급은 1~2등급과 조건부 ‘시설급여’를 받은 등급자들로, 혼자 힘으로 거동이 거의 불가능한 노인들이 이에 속한다. 신체활동이 가능한 3~5등급자들과 아예 등급을 받지 못한 ‘건강한’ 노인들이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요양시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국공립 요양시설과 민간요양시설 간 서비스 질(質) 차이도 문제가 된다. 2년 동안 치매 어머니를 민간요양원에 모셨던 J씨(53)는 요즘 국공립 요양원을 알아보고 있다. “남편과 함께 어머니를 뵈러 갔는데, 배변 처리가 제대로 안되어 있고 발톱도 2㎝ 가까이 자라 있더라고요. 어머니가 치매가 있으시다보니 간병인들도 기피하는 분위기였어요. 너무 속이 상하고 안되겠다 싶어서 국공립 요양원 입소를 알아봤는데, 대기 순번이 1000번대예요. 집에서 가깝고 시설이 좋은 요양원은 언제 자리가 날지 몰라요.”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7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요양시설은 2016년 기준 3137개로, 2015년(2935개)에 비해 202개 늘어났다. 공급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요양시설이 부족한 탓이다.

J씨처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평가에서 서비스 우수 등급을 받는 국공립 요양시설은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건보공단이 운영하는 서울 세곡동 서울요양원은 2018년 3월 현재 대기자가 1034명을 넘어섰다. 서울요양원 관계자는 “하루 평균 3건 정도 입소신청이 들어오는데, 퇴소자는 한 달에 10명 미만”이라며 “신청 후 보통 5~6년을 기다려야 입소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요양시설 입소가 어려운 치매환자들은 차선책으로 요양병원을 찾게 된다. 이 경우 국민건강보험을 적용받지만 치료 비용이 발생하고 장기 입원 시 간병인이 필요해 요양시설 대비 2~3배 가까운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된다. J씨는 중증치매인 어머니를 다시 집으로 모시고 와야 하나 고민 중이다. 그는 “치매환자들이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안전한 시설이 더 많이 필요하다”며 “시설이 아니더라도 가족들이 환자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보이지 않는 치매돌봄의 끝, ‘숨겨진 환자’ 치매가족     

서울 은평구에 사는 H씨(51·가명)는 치매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20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신체적으로는 건강하지만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배변기능이 크게 약화된 어머니는 24시간 돌봄이 필요했다. 장기요양등급을 받아 하루 3시간 요양보호사가 집을 방문하는 재가서비스를 받았지만 요양보호사가 돌아간 뒤 황씨가 퇴근하기 전까지 어머니가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위험한 상황들이 발생했다. 

“혼자 요리를 하시겠다고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려 놓았다 불이 날 뻔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에요. 여름에는 더워서 기저귀를 하지 않고 외출하셨다 주변에 민폐를 끼치기도 했고요.”

적어도 H씨가 직장에 나가 있는 8~10시간 어머니를 돌볼 간병인이 필요했지만 장시간 간병인을 고용하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컸다. 어머니의 증세가 심해지며 H씨는 결국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월 150만원 정도이던 수입은 25만원 가량으로 크게 줄었다. 당장은 저축한 돈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늘어날 병원비와 간병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가 걱정스럽다.

H씨처럼 치매환자를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두는 ‘간병실직’은 치매가족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일해서 버는 돈에 비해 간병 부담이 클 경우 환자를 주로 돌보는 가족은 직장을 그만두고 간병에만 매달리게 된다. 이미진 건국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치매환자가 이용할 수 있는 재가서비스가 부족한 점을 치매가족의 ‘간병실직’이 빈번한 이유로 꼽았다. 환자가 장기요양등급을 받았을 경우 1일 최대 3시간 요양보호 서비스가 지원되지만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치매환자에게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가정방문만으로 돌봄이 어려울 경우 환자를 주야간 보호시설에 보낼 수도 있지만 서울 외 지역에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나머지 시간 동안은 오롯이 가족이 돌봄 부담을 지게 되고,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되면 결국 지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용할 수 있는 재가서비스가 다양하지 않고 가정돌봄이 어려운 치매환자들이 갈 곳이 많지 않다는 것도 이러한 문제를 부추긴다. 대한치매학회가 실시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치매환자 보호자의 78%가 간병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거나 일하는 시간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환자 간병시간은 환자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평균적으로 경증치매는 4시간, 중증치매는 7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오랜 기간 치매환자를 돌봐온 가족은 ‘숨겨진 환자’다. 7년 동안 치매 시아버지를 돌봤던 주부 K씨(56)는 지난해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치매에다 거동마저 불편했던 아버지를 눕히고 일으키느라 오른쪽 어깨와 팔에 무리가 온 탓에 정형외과 치료도 필요한 상태다. K씨는 요즘도 꿈에 자주 아버지가 나타나 잠에서 깨는 일이 많다고 했다.

환자 간병에 매달려 지내는 환자가족은 사회관계 단절과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 우울증 등을 호소한다. 극단적인 경우 자살이나 간병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17년 대구에서는 한 70대 남성이 치매로 거동이 어려운 아내를 간병하다 살해해 징역 4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치매 간병이 가정경제에 타격을 미치는 ‘간병 파산’과 가족의 삶마저 무너뜨리는 ‘가정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치매돌봄 가족을 위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전용호 인천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선진국에서는 치매환자뿐 아니라 돌봄가족에 대한 돌봄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며 “영국과 스웨덴 등에서는 치매환자 가족에게 매달 40만원 정도를 지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치매노인들은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20년 이상 사시기 때문에 장기간 돌봄에 따른 가족의 ‘번아웃’이 심하다”며 “경제적 어려움과 정서적 우울증, 체력저하 등 다양한 문제가 나타나지만 당장 치매가족을 위한 상담서비스나 치료 지원이 전무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공공서비스의 숨겨진 그늘, ‘등급외자’      

경증치매인 B씨(73)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작은 집에 혼자 살고 있다. 지난 2월 전국에 한파특보가 내려진 날 방안은 ‘냉골’이었다. “어르신, 방이 왜 이렇게 차요? 안 추우세요?” 종로구 치매지원센터 최유선 사회복지사의 물음에 B씨는 “이리 와 앉으라”며 손짓했다. B씨가 가리킨 곳은 두껍게 깔아놓은 이불 위였다. B씨는 차가운 방바닥 위에 전기장판과 매트리스, 이불들을 켜켜이 쌓아놓고 겨울을 나고 있었다. 연일 계속된 추위에 전기장판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언뜻 봐도 화재 위험이 높아 보였다. 외국에 살고 있는 아들이 유일한 가족이지만 연락이 잘되지 않는다. 벽에 붙어 있는 아들 사진에 대해 물으니 B씨의 표정이 이내 어두워졌다. 

B씨는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한 ‘등급외자’다. 이 때문에 돌봐줄 사람이 없음에도 등급자들이 받는 요양방문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장기요양등급에 속한 노인은 장기요양시설과 요양방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등급외자나 등급 미신청자들은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고령에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기초노령연금이나 기초생활수급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통장에 거래내역이 남아 있어 노령연금과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르신은 장기요양등급이 없는 데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기 때문에 요양보호 신청을 하게 되면 요양보호사 비용을 자비로 내야 해요. 아들이 보내주는 돈에서 월세를 내고 남은 약간의 돈이 생계의 전부인지라 부담이 큰 상황이에요.” 최유선 사회복지사가 말했다.

B씨는 등급외자들을 위해 진행하는 치매지원센터의 프로그램도 이용하지 못한다. 서울시는 노인장기요양등급에 속하지 않아 혜택을 받지 못하는 ‘등급 외 경증 치매노인’을 위해 ‘기억키움학교’ 12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각 자치구 지역 치매지원센터에 이용 신청을 하면 대상자와 가족이 상담을 받고 적합 여부 판정회의를 통해 이용가능 여부가 결정된다. 하지만 B씨처럼 보호자가 없고 혼자서는 바깥출입이 어려운 독거 치매노인들은 접근하기 쉽지 않다. 

경기도 광주시에 사는 G씨(81)는 4년 전 뇌경색 발병 후 치매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노인성치매 초기라고 진단했지만 세 차례에 걸친 장기요양등급 신청에서 모두 등급 외 판정을 받았다. 겉으로 봤을 때 건강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팡이를 짚고 집 안이나 집 주변 이동이 가능하고, 어느 정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심사에 반영됐다. G씨의 아들은 “치매환자들은 그날그날 날씨나 컨디션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심사 당일 컨디션이 좋으면 점수가 낮아진다”며 “등급판정 기준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같이 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한 등급 외 노인은 24만4000여명으로 추산된다. 특히 기억력 등 인지기능이 떨어지지만 신체기능은 양호한 경증 치매환자는 그동안 장기요양등급 서비스의 ‘사각지대’였다. 등급판정이 신체기능을 중심으로 이뤄진 탓에 비교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경증 치매환자는 서비스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정부가 이같은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 1월 신설한 것이 장기요양 ‘인지지원 등급’이다. 가벼운 치매환자에게 신체기능과 관계없이 장기요양등급을 부여하는 것으로, 경증 치매노인 돌봄을 확대하고 가족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그동안 등급을 받지 못해 공공서비스 밖에 있었던 경증 치매환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환자와 가족들은 월 한도액 제한 때문에 실질적으로 한 달에 12일 정도밖에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점을 아쉬워한다. 

김남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팀장은 “기존 치매등급 서비스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지등급을 신설하는 것이 어느 정도 효율성이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2014년 치매환자를 위한 치매특별등급(5등급)이 신설됐지만 환자와 가족들이 5등급을 받지 않고 상태가 진행되길 기다렸다 더 높은 등급을 받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는 치매등급으로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충분치 않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처음 치매특별등급이 도입됐을 때 정부는 5만여명의 경증 치매환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5등급 인정자 수는 그에 못 미치고 있다.

◆신변 보호장치 없는 위태로운 독거 치매      

보호자가 없는 독거 치매노인의 상황은 더욱 위태롭다. 적절한 돌봄에 앞서 주거와 신변 위험에 노출돼 있다. 자치구 보건소가 운영하는 치매센터와 동주민센터의 방문이 이루어진다 해도 치매약 복용이나 개인위생, 주거환경 등의 관리가 어려워 언제 어떻게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서울 종로구 행촌동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Y씨는 배우자와 이혼한 후 10년 넘게 혼자 살고 있다. 임대주택 거주자로 다른 독거 치매노인들에 비해 주거환경이 안정된 편이고 기초수급 지원도 받고 있지만 공과금과 가스, 신문구독료 등이 미납돼 끊기는 일이 다반사다. 2년 전 넘어져 허리수술을 받은 후 지속적인 병원진료와 관리가 필요하지만 본인이 치료받기를 거부했다. 병원비가 없기 때문이었다. 한 달에 60만원가량 지원되는 수급비는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다.   
    
인지와 판단능력이 부족한 치매노인들은 경제관념 또한 흐려진다. 치매증상의 하나로 돈에 대한 집착이 심해져 정상적 자산관리가 어렵고, 식비·병원비·세금 등 생계에 필요한 필수 지출항목에 대한 개념이 사라지곤 한다. 보호장치가 없는 독거 치매노인들의 경우 낯선 이의 접근에도 취약하다.

Y씨는 치매를 앓고 있는 동시에 우울증에 따른 자살고위험군 환자였다. 책상에는 ‘노인고독사’와 관련된 신문기사 스크랩이 놓여 있었다. 그가 얼마 전 쓴 것이라며 내민 종이에는 “내가 죽으면 아무 곳에도 연락하면 안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서였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Y씨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는 요양시설 입소라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최근 5년간 65세 이상 1인 가구 현황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독거노인 수는 2017년 기준 134만명으로, 5년 전인 2013년(111만명)에 비해 23만명 증가했다. 10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복지부가 추정한 치매 유병률 10.2%를 단순 적용할 경우, 치매 독거노인은 13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초고령 노인 수가 증가한 데다 독거 형태로 거주하는 노인 수도 늘고 있어 향후 독거 치매노인 수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독거 치매노인의 발굴과 관리 대책은 없는 상태다.

임정기 용인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독거노인을 관리하는 복지 분야와 치매를 조기검진하는 의료 분야가 서로 연계돼 있지 않아 독거 치매노인에 대한 관리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지역 복지관을 통해 독거노인이 발굴된 경우 복지서비스 제공자들이 치매를 판단하기 어렵고, 치매조기검진을 통해 대상자를 발굴했다 하더라도 복지 서비스가 따라와주지 않으면 방치되기 쉽다는 것이다. 치매가 정신질환이라는 측면에서 지역 정신보건센터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정신보건센터에서는 성인 정신질환자들을 같이 관리하다보니 치매환자에게 집중할 여력이 없다. 임 교수는 “복지와 의료, 정신건강 분야가 분절되어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기존에 있는 체계들을 연계·활용해 통합적인 치매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종인 치매협회 회장 역시 현재 연계 없이 시행되고 있는 치매관리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기존 65세 이상 노인에게 실시되고 있는 독감 예방접종 사업과 치매선별검사의 ‘커플링’을 제안했다. 독감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을 찾는 노인들에게 치매조기검진을 함께 실시하는 방법으로, 기존 제도를 활용해 치매 발굴과 조기검진율을 높이는 아이디어다. 우 회장은 “동네병원에서 치매환자를 1차적으로 선별만 해도 환자 발굴에 드는 인력과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치매, 가족을 넘어 ‘국가 문제’로 인식해야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간병 범죄를 막기 위해 정확한 현황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경찰청은 치매를 포함한 간병으로 인한 살인·자살 등 범죄 통계조차 작성하지 않고 있다. 제대로 된 통계는 없지만 각종 사례 분석에서 간병의 고통과 경제적 부담 등이 간병 범죄의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일본이 2013년 정부에서 치매 환자를 책임지는 ‘오렌지 플랜’을 발표한 것도 이같은 진단에서다. 가족이 매달 일정 금액(13만~43만원)을 내면 전문 간병인이 환자를 24시간 돌보는 시스템이다. 스웨덴 역시 1996년부터 치매 전문 간호사를 매년 7000~1만 명씩 양성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2017년 6월3일 ‘국가 치매책임제’를 내놨다.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의 부담을 줄이면 관련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국적으로 47개에 불과한 치매지원센터를 250개 이상으로 늘리고, 치매책임병원을 지정할 계획이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요양보호사도 대폭 확충하기로 했다.     


또한 치매 의료비의 90%까지 건강보험을 적용한다. 2017년 10월부터 중증치매 환자는 건강보험 의료비의 10%만 부담하면 된다. 2015년 기준 중증치매환자 1인당 의료비와 요양비를 합한 평균금액은 연간 2천만 원이 넘는다. 대학병원에서 통원치료를 하는 경우 건강보험 적용률은 40%.다른 중증질환 평균인 77.9%의 절반 수준으로, 환자 가족들의 의료비 부담이 컸다.

대부분의 간병 범죄가 존속 범죄라는 면에서 한국 특유의 가족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철호 교수는 “노후를 자식에게 기대는 관행에다 부양책임이 특정 자식에게 쏠리는 가부장적 문화 등이 존속 살해라는 비극을 낳기도 한다”며 “치매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때 끔찍한 범죄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형모(경영학 박사·애원복지재단이사 ·본지 고문·hm18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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