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전체기사포커스범종교가톨릭개신교불교민족종교해외종교이슬람다문화 사회기획특집
전체기사 Trend & View 마음을 비춰보는 포토에세이 종교지도자 칼럼 이상훈 박사의 ‘바둑으로 배우는 성경공부’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편집  2018.10.21 [23:04]
범종교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안내데스크
신문사소개
광고안내
저작권문의
구독신청
불편신고
독자투고
제휴안내
개인정보취급방침
기사제보
범종교
뉴욕 이웃종교 연합수련회 “타인과의 ‘다름’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개종할 필요도, 개종시킬 필요도 없음’을 깨닫게 하는 질문과 경전 구절
기사입력: 2018/08/05 [14:18]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매일종교신문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개종할 필요도, 개종시킬 필요도 없음’을 깨닫게 하는 질문과 경전 구절
    

불교(조계사)와 원불교(플러싱.맨해튼.필라교당), 개신교(작은자공동체교회)가 함께 하는 '2018 여름 이웃종교 연합수련회' (2018 Summer Inter-Faith Retreat)가 지난달 27~29일 사흘간 뉴욕주 업스테이트에 있는 원달마 명상센터(Won Dharma Meditation & Retreat Center)에서 열렸다.     

2014년 여름에 시작 된 후 벌써 5 년째가 되는 올해 연합수련회는 불교에서 맨하탄 조계사의 도암스님과 청년들 보살님들, 원불교에서 필라델피아 교당 이도일 교무님, 조덕상 교무님과 청년들, 플러싱 교당과 맨하탄 교당의 청년, 원달마센터의 유도성 교무님과 이지은 교무님, 개신교에서 맨하탄 작은자공동체교회의 청년들과 목사 부부 등 36명이 참여했다.     

수련회의 주요 프로그램은 (1) 묵언 행선(Silent Walking Meditation), (2) 나를 돌아보고 찾는 108배 (Meditation 108 Deep Bow), (3) 다르마 & 로고스 톡 (Dharma & Logos Talk I, II : 청년들의 교직자들과의 화두에 대한 조별 담화와 청년들의 조별 토론 및 발표)인데 그 하이라이트는 주제토론.     

올해 이웃종교 청년들 사이에 토의를 통해 정한 수련회 화두(Theme,주제)는 “타인과의 ‘다름’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How Can I Understand the Difference of Others?”). 각 종교의 경전들과 수행방식에 기초해 토론하고 배우는 시간으로 진행되어 관심을 끌었다.     

화두의 경우, 청년들이 이렇게 정한 이유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과 타인과의 다른 견해(입장), 다른 가치관, 다른 종교관, 다른 정치관, 다른 세계관 등으로 인해 그 타인(지인들, 직장동료들, 친구들, 가족들)과의 사이에서 불편함, 배타의식, 갈등, 다툼 등이 발생하는 현실에서 타인과 자신 사이의 ‘다름’를 어떻게 이해하고,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관해 각 종교의 경전과 수행 방식이 전해 주는 진리(깨달음)를 통해 스스로도 성찰해 보고 자기에게 맞는 해결 방식을 찾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상대가 나와의 ‘다름’(Difference)이 아닌 ‘틀림’(그름 Wrong) 이라고 인식 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까지 확대하여 토론을 하였다.     

‘다르마 & 로고스 톡’의 경우, 도암 스님이 “매년 느끼지만 청년들의 토론이 매우 생각이 깊어 청년들의 질문과 토론을 통해 크게 배우게 된다”고 할 정도로 토론이 상당히 진지하고 고민과 성찰이 깊었다.     

각 종단 청년들이 모두 섞인 조를 4개조로 편성하는데 각 조는, 동일한 화두(주제) 아래, 종단별로 2가지씩 미리 제출한 질문 총 6가지 중 조별로 질문 2가지를 선택해 각 종단 교직자들을 돌아가면서 동일하게 질문을 하게 된다. 종교가 다른 청년들이 제출한 질문은 질문 안에 이미 깃든 취지, 관심사, 해결 지향점등에 있어 공통성과 차이성이 있는데 6가지 질문 중 2가지 질문을 고르는 토론 과정에서 자신의 종교적 지향과 성향이 이웃종교 청년들과 무엇이 공통적이고 무엇이 다른가를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모두들 자신의 존재를 싣고 토론을 하는 것이라 당연히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그런 태도와 과정을 통해 질문을 확정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자체가 종교간 공통점은 공통점대로, 차이점은 차이점대로 수용되어 서로의 종교와 신앙수행을 자연스레 존중하고 인정하게 된다.     

또한, 각 조는 각 종단 교직자들을 돌아가면서 찾아가 동일한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각 종단 교직자들에게 질문하고 담화를 나눈다. 각 종단 교직자들은(불교 스님, 원불교 교무님, 개신교 목사님) 각 조별로 청년들이 와서 하는 질문에 대해 자신의 종교 경전과 전통 그리고 신앙수행 등에 기초해 최선의 답변과 담화를 나눈다. 독특한 것은 각 종교의 교직자들은 각기 다른 어휘와 다른 개념에 기초해 설명을 하지만 청년들은 각 종교마다의 가르침의 깊이와 지혜에 깊이 공감하게 되어 모든 종교에 대한 존중심이 저절로 우러나 종교간 차별, 배타, 갈등이 얼마나 무의미 한가를 한 자리에게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각 종단 청년들은 서로에게 배울 점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개종할 필요도, 이웃종교인을 개종시킬(선교, 포교, 교화) 필요도 없음을 직접 깨닫게 된다. 따라서 자기(종교)의 신앙수행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됨과 동시에 이웃종교인의 신앙수행에 대한 존중과 겸손을 자연스레 갖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이러한 배움을 얻게하는 화두 결정과 토론 과정을 보여주는 6가지 질문과 종교 '경전(Scripture)'에 있는 ‘다름’과 관련한 다섯 구절. 작은자공동체교회의 김동균 목사가 정리했다.

*화두 ‘타인과의 ‘다름’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관련한 질문
(청년들은 종교를 혼합하여 4개 조로 만든 후, 조별로 청년들 스스로 만든 많은 질문 중에 2 가지 질문을 골라 종교 별로 따로 자리를 하고 있는 교직자들을 순회하며 즉문즉설의 형식으로 담화를 진행했다)     

질문1

뉴욕에 살다보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출퇴근길에 여러가지 이유로 마주치며 언짢은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수행을 하는 사람으로 매번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를 언짢게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질문2    

뉴욕은 또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평화롭게 공존하는것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종, 종교, 성별 등과 관련한 충돌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수면위로 이러한 문제들이 더욱 떠오른 모습입니다. 예를 들자면 콜로라도에서 제빵사가 종교적인 양심을 이유로 동성애자 부부에게 서비스를 거절 했다가 소송이 벌어져 법적인 해석을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또 뉴욕에서는 큰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양심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양심에 충돌 할 때 어떻게 해야할까요?      

질문3    

너무 다른 상대로 인하여 마음이 요란했을 때, 그 순간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질문4 

상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가, 오히려 내가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질문5
     

타인(직장동료)의 관점, 일하는 방식이 이해는 되지만 동의가 되지 않을 경우, 서로 이해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서로(상대에게나 나 스스로에게) 이해를 강요를 하지 않으면서 이해점(합의점)을 찾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까?     

질문6    

타인(내 친구)의 행동이 내 관점에서 잘못(wrong not different) 되었다고 판단 되나 친구는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이를 해결해야 하는 겁니까?  

*각 종교의 '경전(Scripture)'에 있는 ‘다름’과 관련한 다섯 구절 비교
(각 종교의 '경전'에 있는 “타인과의 ‘다름’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와 관련된 다섯 구절들을 교직자들과 청년들이 토의를 통해 미리 발췌해 와 이웃종교 경전들의 구절들과 비교하고 유사한 가르침은 연결 지어 보고 연결이 안 되는 각 종교만의 독특한 가르침은 그것대로 배워보고 이해해 보는 과정)    

A. 불교 경전 구절 

1. 상윳타 니까야 또는 상응부    

사람의 생각은 어디에나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간들 자기보다 소중한 것은 볼 수 없다. 그와같이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도 스스로는 소중하다. 그러면 스스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는 남 또한 해쳐서는 안된다.    

2. 자애경Metta Sutta    

유익한 일에 능숙하여 적정의 경지를 이루려는 이는유능하고 정직하고 고결하며, 온순하고 부드럽고 겸손해야 합니다. 만족할 줄 알고 공양하기 쉬우며 분주하지 않고 생활이 간소하며 감관은 고요하고 슬기로우며 거만하거나 탐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슬기로운 이가 나무랄 일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으며 안락하고 평화로워 모든 중생 행복하기를! 살아있는 생명이면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거나, 길거나 크거나 중간이거나 짧거나 작거나 비대거나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 가깝거나 멀거나 이미 태어났거나 앞으로 태어날 모든 중생들 행복하기를! 서로 속이지도 말고 얕보지도 말지니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 대해서도 분노 때문이든 증오 때문이든 남의 고통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어머니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목숨으로 보호하듯 모든 생명을 향해 가없는 자애를 키워나가야 합니다. 또한 일체의 세계에 대해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장애 없이 원한 없이 적의 없이 무량한 자애를 닦아야 합니다. 서거나 걸을 때나 앉아서나 누워서나 깨어있는 한 자애의 마음을 잊지 않고 확립하는 이것이 거룩한 마음가짐입니다. 사견에 빠지지 않고 계행과 정견을 갖추어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면 다시는 윤회의 모태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3. 중국 선종 제 3 조인 승찬대사의 신심명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니라.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지나니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 어긋남과 따름이 서로 다툼은 이는 마음의 병이 됨이니 현묘한 뜻을 알지 못하고 공연히 생각만 고요히 하려 하도다.    

4. 중국 선종 제 6 조인 혜능대사의 설법    

위사군이 물었다. “대사께서 설하신 법은 서쪽 나라에서 오신 제일조 달마조사의 종지(宗旨)가 아닙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제자가 들자오니 달마대사께서 양무제를 교화하실 때, 양무제가 달마대사께 묻기를, ‘짐이 한평생 동안 절을 짓고 보시를 하며 공양을 올렸는데 공덕(功德)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달마대사께서 ‘전혀 공덕이 없습니다(無功德)’라고 대답하시니. 무제는 불쾌하게 여겨 마침내 달마를 나라 밖으로 내보내었다고 하는데 이 말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청컨대 큰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실로 공덕이 없으니, 사군은 달마대사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라. 무제가 삿된 길에 집착하여 바른 법을 모른 것이니라.” 위사군이 물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습니까?”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절을 짓고 보시하며 공양을 올리는 것은 다만 복을 닦는 것이다. 복을 공덕이라고 하지는 말라. 공덕은 법신(法身)에 있고 복밭(福田)에 있지 않으니라. 자기의 법성(法性)에 공덕이 있나니, 견성(見性)이 곧 공(功)이요, 평등하고 곧음이 곧 덕(德)이니라. 안으로 불성을 보고 밖으로 공경하라(內見佛性 外行恭敬). 만약 모든 사람을 경멸하고 아상(我相)을 끊지 못하면 곧 스스로 공덕이 없고 자성은 허망하여 법신에 공덕이 없느니라. 생각마다 덕을 행하고 마음이 평등하여 곧으면 공덕이 곧 가볍지 않으니라. 그러므로 항상 공경하고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곧 공(功)이요, 스스로 마음을 닦는 것이 곧 덕(德)이니라. 공덕은 자기의 마음으로 짓는 것이다. 이같이 복과 공덕이 다르거늘 무제가 바른 이치를 알지 못한 것이요, 달마대사께 허물 있는 것이 아니니라.”    

5. 중아함경 중 구루수무쟁경(拘樓瘦無諍經 Araṇavibhaṅga Sutta from Madhyama Āgama)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거니 그르거니 말하지 말라' 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무엇이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혹은 옳다고 하고, 혹은 그르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은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혹은 발우라 말하며, 혹은 종지라 말하고, 혹은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이 이런 저런 일에 대해서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만일 이런 저런 것에 대해 그 힘을 따라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하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면, 이와 같은 것은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옳다고도 하고 또는 그르다고도 하는 것이다.

무엇이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다고도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는 것인가?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은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이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만일 이런 저런 것에 대해 그 힘을 따르지 않고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하다'고 한결같이 주장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것은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다고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거니 그르거니 말하지 말라'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옳다고 하고 또는 그르다고 하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다.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옳다고도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으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B. 원불교 경전 구절     

1. 정신 수양의 요지  

정신이라 함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를 이름이요, 수양이라 함은 안으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이하며 밖으로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함을 이름이니라.    

2. 교의 15     

대종사 봉래 정사(蓬萊精舍)에 계실 때에 하루는 어떤 노인 부부가 지나가다 말하기를, 자기들의 자부(子婦)가 성질이 불순하여 불효가 막심하므로 실상사(實相寺) 부처님께 불공이나 올려 볼까 하고 가는 중이라고 하는지라, 대종사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그대들이 어찌 등상불에게는 불공할 줄을 알면서 산 부처에게는 불공할 줄을 모르는가.」그 부부 여쭙기를「산 부처가 어디 계시나이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그대들의 집에 있는 자부가 곧 산 부처이니, 그대들에게 효도하고 불효할 직접 권능이 그 사람에게 있는 연고라, 거기에 먼저 공을 드려 봄이 어떠하겠는가.」그들이 다시 여쭙기를「어떻게 공을 드리오리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그대들이 불공할 비용으로 자부의 뜻에 맞을 물건도 사다 주며 자부를 오직 부처님 공경하듯 위해 주어 보라. 그러하면, 그대들의 정성을 따라 불공한 효과가 나타나리라.」그들이 집에 돌아가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몇 달 안에 효부가 되는지라 그들이 다시 와서 무수히 감사를 올리거늘, 대종사 옆에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죄복을 직접 당처에 비는 실지불공(實地佛供) 이니라.」    

3. 요훈품 16장    

세상에 두 가지 어리석은 사람이 있나니, 하나는 제 마음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면서 남의 마음을 제 마음대로 쓰려는 사람이요, 둘을 제 일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남의 일까지 간섭하다가 시비가운데 들어서 고통받는 사람이니라.     

4. 요훔품 33장    

중생들은 열번 잘해준 은인이라도 한 번 만 잘못하면 원망으로 돌리지마는 도인들은 열 번 잘못한 사람이라도 한 번만 잘하면 감사하게 여기나니, 그러므로 중생들은 은혜에서도 해만 발견하여 난리와 파괴를 불러 오고, 도인들은 해에서도 은혜를 발견하여 평화와 안락을 불러오나니라.  

5. 요훈품 34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선한 사람은 선으로 세상을 가르치고, 악한 사람은 악으로 세상을 깨우쳐서, 세상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데에는 그 공이 서로 같으나, 선한 사람은 자신이 복을 얻으면서 세상일을 하게 되고, 악한 사람은 자신이 죄를 지으면서 세상일을 하게 되므로, 악한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하나니라.    

C. 기독교 경전 구절    

1. 창세기(Genesis) 13, 8 –9    

13:8 아브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너와 나는 한 골육이 아니냐? 네 목자들과 내 목자들이 서로 다투어서야 되겠느냐? 13:9 네 앞에 얼마든지 땅이 있으니, 따로 나가서 살림을 차려라. 네가 왼쪽을 차지하면 나는 오른쪽을 가지겠고, 네가 오른쪽을 원하면 나는 왼쪽을 택하겠다."   
    
2. 디모데 전서(First Letter to Timothy) 6, 3 – 6 & 후서(Second Letter to Timothy) 2, 23 – 25  

6:3 다른 교리를 가르치거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경건한 생활 원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6:4 잔뜩 교만해져서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쓸데없는 질문과 토론에만 미친듯이 열중합니다. 그런 데서 시기와 다툼과 비방과 못된 의심과 6:5 분쟁이 생깁니다. 마음이 썩고 진리를 잃어서 종교를 한낱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분쟁이 있게 마련입니다. 6:6 물론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종교가 크게 유익합니다.     

2:23 어리석고 유치한 논쟁을 피하시오. 그대도 알다시피 그것은 싸움을 일으킬 뿐입니다. 2:24 주님의 종은 다투 어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모든 사람을 온유하게 대하고 잘 가르치고 참을성이 있어야 합니다. 2:25 또 반대자들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셔서 진리를 깨닫게 해주실 것입니다.    

3. 누가복음서(Luke) 12, 51 – 53    

12:51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12:52 한 가정에 다섯 식구가 있다면 이제부터는 세 사람이 두 사람을 반대하고 두 사람이 세 사람을 반대하여 갈라지게 될 것이다. 12:53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    

4. 빌립보서(Philippians) 2, 3 – 4    

2:3 무슨 일에나 이기적인 야심이나 허영을 버리고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2:4 저마다 제 실속만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도 돌보십시오.    

5. 로마서(Rome) 14, 1 – 8    

14:1 믿음이 약한 사람이 있거든 그의 잘못을 나무라지 말고 반가이 맞으십시오. 14:2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있어서 무엇이든지 먹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채소밖에는 먹지 않습니다. 14:3 아무것이나 먹는 사람은 가려서 먹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가려서 먹는 사람은 아무것이나 먹는 사람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도 받아들이셨습니다. 14:4 우리에게 남의 종을 판단할 권리가 있습니까? 그가 서거나 넘어지거나, 그것은 그의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 주님께는 그를 서 있게 하실 힘이 있으시니 그는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14:5 어떤 사람들은 어떤 날을 특별히 더 좋은 날로 여기고 어떤 사람들은 어느 날이나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각각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14:6 어떤 날을 따로 정해서 지키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아무것이나 가리지 않고 먹는 사람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먹으니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 가려서 먹는 사람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먹으니 그 역시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14:7 우리들 가운데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없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14: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

     

    

ⓒ 매일종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주간베스트 TOP10
배너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안내데스크신문사소개광고안내저작권문의구독신청불편신고독자투고제휴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범 종교의 진정성을 두루 살펴 보고 이해함으로써 각 종교와 사회의 화평과 상생, 조화를 이룬다.
회장 이옥용 /발행-편집인 신민형 / 양형모 상임고문 / 편집국장 이중목
우) 140-846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가 70번지 (83길 21)
대표 전화: 02-703-8267 | 팩스: 02-3211-4419 인터넷 매일종교신문
등록번호:서울 (아)01319(범종교신문 등록 2009년 9월 1일,2013년 6월 15일 제호변경)
기사제보 : minhyung-s@hanmail.net
Copyright ⓒ 2009-2013 매일종교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