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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논란, 참여정부 실패 되풀이 않으려면

양형모 | 기사입력 2018/08/16 [20:15]
전문가 “정부, 기금 고갈 공포감 조성하지 말고 적정소득 보장해야”

국민연금 논란, 참여정부 실패 되풀이 않으려면

전문가 “정부, 기금 고갈 공포감 조성하지 말고 적정소득 보장해야”

양형모 | 입력 : 2018/08/16 [20:15]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이 들끓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8월13일 오후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모두(冒頭)발언을 통해서 “국민연금 개편은 노후소득 보장 확대라는 기본 원칙 속에서 논의될 것”이라며 “국민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일방적 개편은 결코 없다”고 못박았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연금 제도 개편의 방향과 목표를 분명히 제시한 셈이지만, 이날 발언을 통해 당·정·청 사이의 균열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文대통령 “국민 동의없는 일방 개편 없다” 직접 여론 잠재우기 나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발언에서 두 차례나 ‘노후소득 보장 확대’를 강조했다. ‘국민연금 소진 시기 3년 앞당겨진다’ ‘국민연금 받는 나이가 65세에서 68세로 높인다’ 등 최근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국민연금 정책자문안 세부내용에 쏠린 시선을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기본 원칙 쪽으로 다시 끌어당겨오겠다는 속내다. <8월13일 양형모칼럼-‘국민연금 보험료인상 예고…어떻게 달라지나’ 참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公約)이자 정부의 국정과제이다. 국민연금 가입기간 동안의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을 뜻하는 ‘소득대체율’은 현재 45%(40년 가입 기준)로,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50%까지 올려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심각해질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다만 이를 위해선 국민연금 보험료와 연금 지급시기 등 전반적인 연금 제도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국민연금 개혁의 첫발을 떼는 논의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혼선이 빚어졌다. 보건복지부는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실시해 발표한다. 연금 전문가와 이해당사자 대표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서 국민연금 제도 발전 방안도 논의한다. 8월17일 공청회를 통해 4차 재정계산위원회 정책자문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정부의 정책 방향대로라면 ‘노후소득 보장 확대’라는 카드를 먼저 내민 뒤에,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가입자가 매달 내는 보험료율을 높여 ‘더 내고 더 받자’고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게 순서였다. 그런데 지난 10일부터 일부 언론을 통해 정책자문안 세부내용이 하나둘 보도되기 시작했다. 정책을 패키지가 아니라 조각조각 접한 국민들은 분노했다.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65세에서 68세로 높인다고 하자 ‘죽을 때까지 국민연금만 내라는 말이냐’며 분노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사흘 새 1천건이 넘었다. 이에 복지부는 12일 박능후 장관 이름으로 입장문을 내어 “정책자문안일 뿐 정부안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청와대와 여당은 국민연금 논란을 두고 복지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자문안이 언론 보도로 공개되고, 공개된 뒤 논란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적극 대응하지 않아 되레 논란을 키웠다는 것이다.

13일 문 대통령은 “일부 보도대로라면 대통령이 보기에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최근 언론 보도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복지부를 향해서도 “정부 각 부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과 적극 소통하면서 국민이 알아야 할 국정 정보를 정확하게 홍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자세로 업무에 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와 추미애 대표도 정책자문안이 사전유출되어 논란이 커졌다며 복지부를 질책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과연 청와대와 여당, 정부는 국민연금 논란이 이처럼 커지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국민연금이 얼마나 파괴력 있는 정치적 이슈인지는 2003~2007년 노무현 정부 때의 학습효과를 통해 확인된 바다. 

참여정부 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낮추는 법 개정안 내놓아     

참여정부 때에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한 뒤 반년 만에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2003년 1차 재정계산 결과, 당시의 보험료율 9%와 소득대체율 60%를 유지할 경우 2047년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된다는 추계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때 정부는 소득대체율을 2008년부터 50%로 인하하되 보험료율을 2030년 15.9%로 조정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국민연금 비판 여론 등으로 인해 국회에서 논의가 3년여 공전됐다. 2007년 4월, 여야는 보험료율을 9%로 유지하면서 소득대체율을 2028년 40%까지 낮추는 합의안을 발표했다. 이때 개정된 국민연금법이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 그 뒤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나 국회는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어려운 고차방정식을 딱히 풀어내지 못했다.     

17일로 예정된 공청회에서 논의될 사안도 일찌감치 논란이 예고돼 있었다. 특히 이번 4차 재정계산 결과 2060년으로 예정된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기가 3년가량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현행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2028년까지 40%로 축소되는 소득대체율 조정을 놓고서 가장 큰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13일 “마치 정부가 (노후소득 보장에 대한) 대책 없이 국민의 보험료 부담을 높인다거나, 연금 지급 시기를 늦춘다는 등의 방침이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알려진 연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만 했을 뿐, ‘노후소득 보장 확대’에 필요한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국민연금을 정치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13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년 동안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공석이고, 연 6% 넘던 기금운용수익률도 1% 이하로 떨어지는 등 문재인 정부의 무능함이 드러났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17일 공청회에서 제안된 정책안은 국무회의를 거쳐 최종안이 결정된 뒤에 10월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최종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는 오랜 진통이 예상된다. 여야 간 정치적 입장 차이가 극명한데다, 국민 여론에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13일 문 대통령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 최종안이 결정될 것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17일 공개될 정책자문안에는 사회적 논의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밑그림은 담겨 있지 않다.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의 역할 조정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후소득보장위원회’(가칭) 등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담겨 있긴 하지만, 이는 최저임금위원회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논의 또는 합의기구는 아니다. 복지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사회보장위원회 또는 국회에서 별도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연금 관련 논의를 이어나가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안(案)을 복수안으로 국회에 전달하거나, 정부안을 내놓지 않고 국회에서 입법 발의안을 내는 등의 우회로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정책자문에 간여한 한 전문가는 “복잡하고 민감한 국민연금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면 정부가 ‘정부안 아니다’ ‘결정된 게 없다’고만 할 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인 사회적 논의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불신 팽배 국민연금 해법은?
전문가 “재정만 강조 신뢰성 상실…국민이 참여 사회적 합의 필요”
    

“국민연금이 신뢰를 얻으려면 적정소득을 보장해야 한다. 연금제도의 논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8월17일 발표되는 국민연금 4차 재정계산 결과 발표를 앞두고 국민연금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은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국민적 불신이 가득한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은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최고 수준에 이를 정도로 노후 대비가 안 된 나라이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노후를 개인이 알아서 하라고 하는 곳은 없다. 개인에게만 맡겨서는 노년에 양극화만 더욱 심해지기 때문이다.

땅에 떨어진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면 국가가 적정연금 지급을 약속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금 고갈’에 대한 공포를 없앨 수 있도록 적정연금 보장을 약속하면서 제도 개선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13일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와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에 따르면, 위원회는 각각 소득보장 강화와 재정안정에 초점을 맞춘 두 개의 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보고서에는 보험료율 인상, 수급연령 조정 등 구체적인 연금 개혁안뿐만 아니라 노후빈곤을 줄이기 위한 사회 전체적인 방향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정부는 2013년 3차 재정계산 때까지는 재정안정에 초점을 맞춰 왔다. 2060년이면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면서 겁을 주고 연금급여액을 깎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했다. 그 결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1988년 70%에서 현재 45%까지 낮아졌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재정안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연금미수령 공포론과 연금불신이 커졌고, 이러한 인식은 연금개혁을 가로막는 한국 사회의 주요한 방해물이 됐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제도 도입 수순을 제대로 밟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88년 국민연금을 도입하면서 정부는 가입자가 소득의 3%를 40년간 부담하면 수급 연령 때 평균소득의 70%를 받도록 설계했다. 지속 불가능한 형태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보험료율을 올리거나 소득대체율을 깎는 과정에서 기금 고갈이 불가피하다고 공포 분위기를 형성해 온 게 사실이다. 국민 사이에 국민연금은 ‘부실한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강제로 뺏어가는 준조세’라는 인식이 퍼지게 된 이유다.지난 3월 국회에서 개최한 국민연금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크지슈토프 하게메예르 독일 본 라인 지그 대학 명예교수는 “노후 빈곤 문제를 효과적으로 완화하지 못하는 저가 연금은 국민의 비용 부담 의지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며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이대로는 기금이 없어질 테니 더 내야 한다’는 식이 아니라 ‘조금 더 내면 사회안전망을 강화할 수 있다’며 국민에게 제도에 대한 신뢰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유례없이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의 재정위기가 불가피하다. 지금부터라도 가입자들이 더 내고 수급자들도 부담을 나눠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가 필요한데 그동안 정부 실책(失策)으로 이러한 동력을 잃어버린 상태다.
양형모(경영학 박사·애원복지재단이사 ·본지 고문·hm18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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