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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설교/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 인간관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야고보서 2장 1~13절)
기사입력: 2011/09/28 [16:31]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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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설교명법문/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

 

인간관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야고보서 2장 1~13절

 

우리나라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서구문화가 급속히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켰습니다. 목표중심의 인생관을 갖게 한 것입니다. 산업화는 데드라인을 정하고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기를 원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목표 중심의 사람됨을 추구해 왔습니다. 이런 인생관이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우리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문화와 산업의 발전을 가져와 오늘의 선진한국을 만드는데 결정적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영향이 그동안 우리가 소중히 여겼던 문화적 가치, 관계중심의 인생관을 약화시켰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중국문화의 특성을 관계문화다고 말합니다. 중동문화도 중간에서 연결시켜야 모든 것이 잘된다고 관계문화를 강조합니다. 성경의 문화도 관계를 강조합니다. 관계중심의 삶, 관계중심의 문화. 성경의 예수님이 가장 중요한 계명, 큰 계명으로 강조한 것은 “네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관계가 삶을 만듭니다.

본문에도 야고보가 유대인 회당에 들어와 예배하는 가난한 이웃을 차별하는 케이스를 제시함으로써 당시의 그리스도인이 배워야할 인간관계의 레슨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경적 인간관계 어떻게 형성되어야 할까요.

첫째로 먼저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본문 1절에는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너희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우리 안에 선입견과 편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가 주인이 되어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행동을 다스린다면 사람을 차별할 수 없습니다. 성경적 인간관계의 출발점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성경적인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가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을 일깨운 시대의 고전인 찰스 쉘던이 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이 책을 통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묻기 시작하면 우리의 삶이 변할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변할 수 있습니다.

옛날 유대인의 회당 안에는 특별석이 있었습니다. 헌금을 많이 한 사람이나 중요한 사람이 앉는 좌석이 있었습니다. 과거 우리 목사님들은 앞자리를 금자리, 은혜의 자리라 불렀습니다. 미국에도 특별한 사람이 앉는 자리가 있는 교회도 있습니다. VIP가 오면 그 자리로 인도하고, 행색이 초라한 사람이 들어오면 구석으로 인도합니다.

여러분이 안내봉사를 할 때 행색이 초라하고 누추한 사람이 오면 어디로 인도하시겠습니까. 영국의 청교도 장군이었던 크롬웰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입니다. 행색이 초라한 사람이 옆에 앉으려고 하자 경호원들이 밀쳐냈습니다. 크롬웰이 경호원들을 제지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로 놔두게. 여기서는 그분이나 나나 하나님 앞에 똑같이 죄인이야.” 크롬웰이 이러한 자세는 그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주인 되어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적 인간관계형성을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두 번째 성경의 최고의 법을 따라 이웃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야고보는 본문 8절과 9절에서 주님의 최고 중요한 레슨을 전달합니다.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을 네 몸과 사랑하라는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정죄하리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법이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차별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이것은 범죄 하는 것이 됩니다. 그 다음 말씀에 살인죄와 간음죄가 나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살인죄나 간음죄를 지면 그럴 수가 있나 라고 반문하면서 자신이 사람 차별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살인죄와 간음죄 보다 큰 죄가 이웃차별의 죄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강조하신 최고의 법인 이웃사랑 하라는 명령을 범한 죄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이웃이 누구입니까. 나와 잘 어울리는 사람, 나와 비슷한 공간에서 비슷한 문화적 수준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을 내 이웃으로 인식합니다. 그런 사람들만 이웃일까요. 예수님의 이웃에 대한 정의는 우리와 사뭇 다릅니다. 이웃에 대한 우리의 지평을 넓혀주신 말씀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여리고 길에서 강도 만나 쓰러진 사람을 지나쳐 간 레위인 제사장들은 이웃사랑에 실패했습니다. 인생의 여리고 길에서 상처 받고 피 흘려 내 도움과 내 관심을 필요로 하는 그들의 이웃입니다. 그들을 이웃으로 섬겨야 합니다.

본문은 가난한 사람들이 이웃이라고 가르칩니다.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어떻게 하겠느냐.” 우리는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은 특별석으로 모시고, 행색이 초라하고 남루한 사람은 저 뒷자리로 모실 겁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행위에 대해 본문 4절은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악한 생각에 근거한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8절에서는 “그것은 최고의 법을 깨뜨리는 범죄”라고 말합니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이 계명을 깨뜨리는 범죄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까요. 우리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가난과 고통이 무엇일까’ 우리는 이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성경의 최고 계명은 이웃사랑

이웃에 고통 주는 행위 말아야

이웃사랑은 주님 은혜에 보답”


요즘 우리 이웃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무엇일까요. 기독교윤리실천운동회의 조사에 의하면 1순위가 전월세 대란입니다. 전세 값이 폭등하여 힘들어 합니다. 이런 시대에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2채 이상 다주택보유자는 전월세를 동결하거나 깎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웃을 돌보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의 다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남들이 올린다고 같이 올려서 이웃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사람 되지 마세요. 우리는 가난한 이웃들의 고통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투기바람의 결과입니다. 땅 투기나 주택투기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실수요 목적으로만 땅과 주택을 소유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이웃들을 끌어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유자금이 있다면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구제하는 일에 참여하는 이것이 이웃사랑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주님의 명령 따라 가난한 이웃들을 섬기는 일에 동참하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성경적 인간관계에 대한 주님의 레슨입니다.

세 번째로 심판의 날에 필요한 긍휼로 이웃들을 대해야 합니다. 본문 12~13절에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 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자의 심판이 있으니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마지막 날 심판 받을 때 인간관계도 주님 앞에 결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들에게 쏟아놓은 말과 행동이 심판 받을 것입니다. 그 때 ‘주님 죄송해요. 제가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세요.’ 라고 용서를 빈다면 주님이 뭐라고 하실까요. ‘그래서 내가 세상에 살 때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라고 했지 않느냐. 너에게 하나님이 베푸는 은혜와 긍휼과 자비가 필요하다면 세상 살 때도 긍휼과 자비를 베풀며 살았어야 한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은 주기도문이 가르치는 정신과 일치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는 이웃들을 선대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웃과 형성해야할 관계를 은혜의 관계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은혜입고 구원 받은 은혜의 빚을 졌으므로 은혜를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은혜로 결산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순종을 통해서만 우리의 삶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고 약속합니다. 본문 12절은 이웃사랑의 계명을 자유의 율법이라고 말합니다. 이 계명에 대한 순종은 속박의 순종이 아니라, 자유의 순종입니다. 순종하면 우리의 마음에 기쁨과 자유가 옵니다. 새로운 삶이 다가옵니다.

2차 대전 후 독일전범들을 잡아 법정에 세운 일에 헌신해온 유대인 지도자에게 유대인학살의 주동자 아이히만이 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증오심을 가지고 법정에 가서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악한 모습이 아니라, 불안과 공포에 떠는 불쌍한 노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이성은 그를 저주하라고 소리쳤으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저 인간, 불쌍하다’는 긍휼함과 용서해야 한다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그날 밤 이상한 눈물을 흘렸고, 오랜만에 단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하늘은 새로운 하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했습니다.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미움의 감옥에서 뛰쳐나왔습니다. 용서하는 순간 자유가 찾아왔던 것입니다. 새로운 하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한 순간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었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인간관계가 새로운 삶을 줍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로 이런 선물을 주기 위해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그가 우리의 범죄, 우리의 증오, 우리의 미움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향해 아버지여 저들이 몰라서 그러하오니 용서해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던 그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와 주님이 되었다면, 우리도 그 분의 은혜와 긍휼로 내 마음 속에 상처를 남긴 이웃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결단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웃들을 품고, 이웃을 존중하고, 용납하는 새 인생이 열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1년 8월 28일 (정리: 이중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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