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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삼국유사에 나타난 ‘국제결혼 통한 다민족·다문화’ 이야기
“단일민족주의를 절대적 가치로 내세우진 않았다”
기사입력: 2018/09/13 [07:08]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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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편 고조선조에 처음 등장하면서 약 15회 소개되는 다문화 결합 

고려시대 국존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역사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소개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 <국제결혼을 통한 다민족·다문화> 이야기는 정착문화와 이질적 문화가 정착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있다. 다문화사회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정착은 결혼을 통해 임금이 되는 탈해왕, 여성의 성을 남겼다는 허황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성공적인 정착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일제에 해방이라는 기쁨과 함께 분단이라는 현실을 마지하게 된다. 우리에게 분단은 또 다른 전쟁과 신 삼국시대,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 분단은 한반도에서 영토적 위축을 가져왔으며 단일민족주의라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놓았다.    

민족(民族)이란 ‘nation'을 번역하기 위해 근대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단어로 하나의 언어,문화,풍속 등을 공유하는 집단을 말한다. 프랑스에서 등장한 ‘nation'이란 말은 국민,국가,민족의 뜻을 포괄한다. 이는 ’국민‘이 스스로 주권을 갖고 특정한 공동체에 속한다는 의식을 갖는데 그 공동체가 ‘민족’이며, 이러한 ‘민족’을 단위로 스스로 ‘국가’를 건립해야 한다는 이념을 바탕에 둔 것이다. 이와 다르게 우리가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민족이란 용어는 Ethnic(인류)도 아니고, PeoPie(인민)도 아니며, ‘nation(국가)'도 아니다. 따라서 ’민족주의‘란 용어가 담고 있는 개념은 서구사람들이 생각하는 Nationalism'과도 다르다.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단일문화, 단일민족이란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단일이란 영토를 중심으로 하는 씨족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다. 그러나 1970년 산업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농촌인구의 도시진출로 인한 감소현상은 다문화 사회로 변화를 가져왔다.     

초기에는 중국내 소수민족으로 살아오던 조선족의 유입이다. 동일언어와 문화는 그들이 한국사회에 쉽게 적응을 가져왔다. 이후 동남아를 중심으로 결혼을 통한 다른 민족, 문화가 대량유입하게 된다.     

다문화 사회란 한 국가나 한 사회 속에 다른 인종, 민족, 계급 등 여러 집단이 지닌 문화가 함께 존재하는 사회를 말한다. 이와같은 다문화 사회는 삼국유사 기이편 고조선조에 처음 등장하면서 약 15회 소개되고 있다.    

곰 신앙 부족과 호랑이 신앙 부족의 화합부터 시작하는 다문화 결합 사례    

①곰과 호랑이 이것을 받아서 먹고 삼칠일(21일) 동안 조심했더니 곰은 여자의 몸으로 변했으나 범은 조심을 잘못해서 사람의 몸으로 변하지 못했다. 웅녀(熊女)는 혼인해서 같이 살 사람이 없으므로 날마다 단수(壇樹) 밑에서 아기 배기를 축원했다. 환웅이 잠시 거짓 변하여 그와 혼인했더니 이내 잉태해서 아들을 낳았다. 그 아기의 이름을 단군 왕검(檀君王儉)이라 한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는 토템신앙이다. 곰을 신앙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신앙하는 부족이 외래문화를 가지고 있는 문화와 연정을 위한 각각 물밑작업을 하는 모습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곰의 집단과 환웅의 집단간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보인 것이다. 여기에서 이류의 모습은 원신신앙 형태 하나인 토템신앙으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 사진 웅녀와 환웅 이야기는 곰 신앙 부족과 호랑이 신앙 부족이 결합하는 사례. 삼국유사에는 이를 필두로 다양한 다문화 화합 사례들이 나온다.

②박노례이질금(朴弩禮尼叱今; 유례왕儒禮王이라고도 함)이 처음에 매부(妹夫)인 탈해(脫解)에게 왕위(王位)를 물려 주자 탈해는 말했다. "대개 덕이 있는 사람은 이[齒]가 많은 법이오. 그러니 잇금을 가지고 시험해 봅시다." 이리하여 떡을 물어 시험해 보니 왕의 이가 많았기 때문에 먼저 왕위에 올랐다.

남해왕(南解王)은 그 어린이, 즉 탈해(脫解)가 지혜가 있는 사람임을 알고 맏 공주(公主)로 그의 아내를 삼게 하니 이가 아니부인(阿尼夫人)이다.

신라 제2대 남해왕은 용성국 사람 탈해를 사위로 삼았으며 제3대 박노례이질금은 그의 매부(탈해)에게 양위하고 있다. 외국인을 사위로 맞기도 하고 지혜가 있음으로 왕위를 양위하고 있다. 신라사회는 왕위 계승에 있어서도 혈연이 아닌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였다.     

③"나는 본래 용성국(龍城國) 사람이오(정명국正明國 혹은 완하국琓夏國이라고도 한다. 완하琓夏는 또 화하국花厦國이라고도 하니, 용성龍城은 왜국倭國 동북쪽 1천리 떨어진 곳에 있다). 우리 나라에는 원래 28 용왕(龍王)이 있어서 그들은 모두 사람의 태(胎)에서 났으며 나이 5, 6세부터 왕위(王位)에 올라 만민(萬民)을 가르쳐 성명(性命)을 바르게 했소. 팔품(八品)의 성골(姓骨)이 있는데 그들은 고르는 일이 없이 모두 왕위에 올랐소. 그때 부왕 함달파(含達婆)가 적녀국(積女國)의 왕녀(王女)를 맞아 왕비(王妃)로 삼았소.“

탈해의 아버지 용성국왕 함달파는 적녀국 왕의 딸을 왕비로 삼았다.     

④호력(虎力) 이간(伊干)의 아들 서현각간(舒玄角干) 김(金)씨의 맏아들이 유신(庾信)이다. 김유신의 가계는 아버지 서현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임금 구형왕의 증손자다.

유신의 부모의 만남을 보면 처음 서현이 길에서 갈문왕 입종의 아들인 숙흘종의 딸 만명을 보았을 때, 내심으로 기뻐하여 그녀에게 눈짓을 하여 중매도 없이 야합하였다. 서현이 만노군 태수가 되었을 때, 만명과 함께 가려 하니 숙흘종이 비로소 딸이 서현과 야합한 사실을 알고, 그녀를 미워하여 별채에 가두고 사람을 두어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대문에 벼락이 쳐서 지키던 사람이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 만명이 창문으로 나와 마침내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갔다.

신라에 의해 망한 가야왕실의 청년 서현에게 반한 만명이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나고 있다.      
▲ 오늘날 아랍인으로 여겨지고 있는 처용은 신라 제49대 헌강대왕이 신라연인과 결혼을 주선하고 관직도 주었다. 사진은 경주 신라밀레니엄파크의 처용 폭포.

⑤동해의 용은 기뻐해서 아들 일곱을 거느리고 왕의 앞에 나타나 덕(德)을 찬양하여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중의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들어가서 왕의 정사를 도우니 그의 이름을 처용(處容)이라 했다. 왕은 아름다운 여자로 처용의 아내를 삼아 머물러 있도록 하고, 또 급간(級干)이라는 관직(官職)까지 주었다.

동해 용의 아들 처용과 신라 여인의 결혼을 신라 제49대 헌강대왕이 주선하고 있다.    

⑥이튿날 동쪽에서 해가 뜨자 과연 중이 오더니 전과 같이 주문을 외면서 늙은 용의 간을 빼먹으려 했다. 이때 거타가 활을 쏘아 맞히니 중은 이내 늙은 여우로 변하여 땅에 쓰러져 죽었다. 이에 노인이 나와 치사를 한다. "공의 은덕으로 내 성명(性命)을 보전하게 되었으니 내 딸을 아내로 삼기를 바라오." 거타가 말한다. "따님을 나에게 주시고 나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참으로 원하는 바입니다." 노인은 그 딸을 한 가지의 꽃으로 변하게 해서 거타의 품 속에 넣어 주고, 두 용에게 명하여 거타를 모시고 사신(使臣)의 배를 따라 그 배를 호위하여 당나라에 들어가도록 했다.     

⑦태조는 교외에 나가서 영접하여 위로하고 대궐 동쪽의 한 구역(지금의 정승원正承院)을 주고, 장녀(長女) 낙랑공주(樂浪公主)를 그의 아내로 삼았다.

신라 마지막 왕 제56대 김부대왕(시호 경순왕)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귀순한다. 왕건은 그에게 경주를 식읍으로 주는 동시에 자신의 장녀 낙랑공주를 아내로 주었다. 왕건과 경순왕은 사위와 장인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⑧<삼국사(三國史)> 본기(本紀)에는 이렇게 말했다. '백제의 시조는 온조(溫祚)요, 그의 아버지는 추모왕(雛牟王)인데 혹은 주몽(朱蒙)이라고도 하니, 그는 북부여(北扶餘)에서 난리를 피하여 졸본부여(卒本扶餘)에 왔었다. 그곳 왕에게 아들이 없고 다만 딸 셋이 있었는데 주몽을 보자 범상치 않은 사람인 것을 알고 둘째딸을 아내로 주었다. 얼마 안 되어 부여주(扶餘州)의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⑨제30대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 어머니가 과부(寡婦)가 되어 서울 남쪽 못 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못 속의 용(龍)과 관계하여 장을 낳았던 것이다.     

⑩공주가 장차 귀양지에 도착하려는데 도중에 서동이 나와 공주에게 절하면서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공주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저 우연히 믿고 좋아하니 서동은 그를 따라가면서 비밀히 정을 통했다. 그런 뒤에 서동의 이름을 알았고, 동요가 맞는 것도 알았다.     

⑪<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부자 한 사람이 있어 모양이 몹시 단정했다. 딸이 아버지께 말하기를 "밤마다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와서 관계하고 갑니다 "하자 아버지는 "너는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 남자의 옷에 꽂아 두어라"하여 그 말대로 시행했다. 날이 밝아 그 실이 간 곳을 찾아보니 북쪽 담 밑에 있는 큰 지렁이 허리에 꽂혀 있다. 이로부터 태기가 있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나이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甄萱)이라 일컬었다.    

⑫건무(建武) 24년 무신(戊申; 48) 7월 27일에 구간(九干) 등이 조회할 때 말씀드렸다. "대왕께서 강림(降臨)하신 후로 좋은 배필을 구하지 못하셨으니 신들 집에 있는 처녀 중에서 가장 예쁜 사람을 골라서 궁중에 들여보내어 대왕의 짝이 되게 하겠습니다."...... 왕은 드디어 유천간(留天干)에게 명해서 경주(輕舟)와 준마(駿馬)를 가지고 망산도(望山島)에 가서 서서 기다리게 하고, 신귀간(神鬼干)에게 명하여 승점(乘岾; 망산도望山島는 서울 남쪽의 섬이요, 승점乘岾은 경기京畿 안에 있는 나라다)으로 가게 했더니 갑자기 바다 서쪽에서 붉은 빛의 돛을 단 배가 붉은 기를 휘날리면서 북쪽을 바라보고 오고 있었다. 유천간 등이 먼저 망산도에서 횃불을 올리니 사람들이 다투어 육지로 내려 뛰어오므로 신귀간은 이것을 바라보다 대궐로 달려와서 왕께 아뢰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무척 기뻐하여 이내 구간(九干) 등을 보내어 목연(木蓮)으로 만든 키를 갖추고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어 가서 그들을 맞이하여 곧 모시고 대궐로 들어가려 하자 왕후가 말했다. "나는 본래 너희들을 모르는 터인데 어찌 감히 경솔하게 따라갈 수 있겠느냐." 유천간 등이 돌아가서 왕후의 말을 전달하니 왕은 옳게 여겨 유사(有司)를 데리고 행차해서, 대궐 아래에서 서남쪽으로 60보쯤 되는 산기슭에 장막을 쳐서 임시 궁전을 만들어 놓고 기다렸다.     
▲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는 인도 힌두교성지중 하나인 아유타국의 공주로 김수로왕의 부인이 되었고 이주여성의 성공적인 정착기라 할 수 있다.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는 아유타국의 공주로 48년 배를 타고 대가야국에 와서 왕비가 되었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됐다고 전해내려오고 있다. 허황옥의 사례는 이주여성의 성공적인 정착기라 할 수 있다.

허황후의 ‘아유타국’ 출신이란 주장은 오빠 장육화상의 불교전래 설화와 함께 불교의 권위를 빌어 신성화 관념을 모색하다. 전승과 기록과정에서 일부 변형되었을 수 가 있다. 아유타국을 인도로 보는 학설도 다양하다. ①허황후가 실제 기원전 3세기경 갠지스강 중류지대에서 크게 번성하였던 불교왕조인 ‘아유디아’에서 왔다는 설. ②인도 아요디아에서 중국 사찬성 보주 일대로 옮겨와 살던 브라만 집단의 일부가 양자강을 타고 동진하여 화해를 거쳐 가락국으로 이주 설 ③1350년 경 시암왕국의 두 번째 수도 주장이다. 아유타가 태국의 수도 방콕 북쪽에 있으며 ‘불멸(사라지지 않는다.)이란 뜻의 오래된 실재하였던 지명설이다. 이 왕조는 불교를 숭배했다. 우룽 왕가가 건국한 왕국으로 400여년 동안 유지되었다. 1767년 버마인들에 의해 지배되면서 파괴되어 200여 년 동안 잊혀져 있던 도시다.    

⑬아도스님의 어머니는 고도령인데 정시 연간(240-248)에 조조의 위나라 사람 아굴마가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그를 가까이 한 다음 돌아갔다. 이 때문에 임신하여 아도 스님을 낳았다.
  
⑭원성왕(元聖王) 때에 김현(金現)이라는 낭군(郞君)이 있어서 밤이 깊도록 혼자서 탑을 돌기를 쉬지 않았다. 그때 한 처녀가 염불을 하면서 따라 돌다가 서로 마음이 맞아 눈을 주더니 돌기를 마치자 으슥한 곳으로 이끌고 가서 정을 통하였다. 처녀가 돌아가려 하자 김현이 따라가니 처녀는 사양하고 거절했지만 김현은 억지로 따라갔다.    

⑮정원 9년 신도징이 야인으로 있다가 한주의 십방현위(什防縣慰)가 되어 입지로 가는데, 진부현 동쪽 10리 남짓되는 곳에 이르러서 풍설과 큰 추위를 만나 말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길 옆에 초가집이 있어 들어가 보니 늙은 부부와 처녀가 있었다. 그 여인은 나이14,5세로 눈처럼 하얀 살결에 볼이 꽃같이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신도징의 청혼으로 그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1남 1녀의 부모가 되었지만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신도징은 아내는 옛집을 들려 벽에 걸려있던 호피를 입고 호랑이로 변하여 산으로 떠났다.

김현감호 조에 등장하는 이류(異類)간의 사랑이야기다. 처녀가 호랑이라는 맹수로 등장한다. 보이는 그대로 본다면 동물과 인간 사이에서 행해지는 성교행위가 된다. 그렇다면 넌센스가 되고만다. 한번은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면 또 다른 이야기는 남편과 자식을 배반하는 이야기다. 하루밤 그 짧은 인연이지만 목숨과 바꿀 희생적 사랑은 순애보적 사랑이며 가정을 이루었지만 그대로 헌신짝처럼 가볍게 떠나는 21세기 사랑타령으로 이야기한다. 사랑이 식어도 주변눈치를 보면서 이어가는 부부보다 각자의 방식대로 사는 것도 그리 바쁘지 않다는 저자의 생각이다.    

“단일민족주의 상징성은 있으나 절대적 가치로 보진 않았다”

삼국유사에 소재를 살펴보면 우리가 절대적 가치로 생각하는 단일민족주의는 상당부분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상징성을 수반했지만 다른 영장류와 결합도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외국인에게도 능력에 따라 왕위도 기꺼이 양위하고 있다. 한국은 지정학적인 기지이며, 대륙의 문화와 해양문화가 동시에 교차하며 모두 공존하는 다문화사회다. 이와같이 다문화사회라는 것은 그 사회가 폐쇄되지 않고 개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한국의 다문화 상황은 문화 가치관의 개방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있는 것이다.

한 사회집단이 그의 고유한 가치관을 주장하는 이른바 가치집단의 형성이 아니라, 개인이나 집단의 의식속에 여러 가치체계가 중첩되어 있는 가치복합(Valuecomplex)상태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삼국유사의 기술시점이 고려시대 몽고간섭기로 원에 의한 정략적 결혼형태가 자연스럽게 채록되었으며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여져 일연에게도 이와같은 주번 내용들이 낮설지 않았을 것이다.  (본지 논설위원·삼국유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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