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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종교없는 삶’(필 주커먼 著. 박윤정 옮김. 판미동 刊. 420쪽. 1만8000원)

이중목 기자 | 기사입력 2018/09/15 [20:37]
‘종교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실용적인 인문학적 지침서’

서평●‘종교없는 삶’(필 주커먼 著. 박윤정 옮김. 판미동 刊. 420쪽. 1만8000원)

‘종교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실용적인 인문학적 지침서’

이중목 기자 | 입력 : 2018/09/15 [20:37]

무종교 문화와 종교 없는 사람들을 활발히 연구하고 있는 미국 필 주커먼 사회학과 교수의 ‘종교없는 삶’(원제: 'Living the Secular Life'. 박윤정 옮김. 판미동 刊. 420쪽. 1만8000원)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르게 종교인, 무종교인 모두에 지침서가 될 수 있는 책이다.     

뉴욕타임스는 ‘종교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실용적인 인문학적 지침서’라는 평가를 했으나 저자는 종교없이도 선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면서도 종교를 비난하지 않는다.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증가하는 탈종교화의 배경과 사회적 의의를 밝히는 작업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저자는 주목받지 못했던 무종교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종교의 의미는 물론이고 인간성의 본질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종교 없는 사람들이 정체성과 믿음, 성향 면에서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지만 도덕성과 인간애, 공동체와 사회에 대한 연대의식,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 등에서 핵심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자세히 살펴본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무종교주의의 전통을 되새겨 보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종교 없는 사람들의 내면과 삶의 방식을 탐구하여 ‘종교 없이 살아도 괜찮을지, 자녀를 종교 없이 키워도 될지, 종교 없는 사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난이나 큰 병을 맞닥뜨릴 때 종교 없이 어떻게 대처할지’ 등 막연한 불안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제적인 지침을 준다.     

종교 없는 사람은 도덕적이지 않을 것이란 명제는 편견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도덕적 준거를 굳이 외부(신)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인간은 타인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일 때 더 좋은 결과가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안다.     

내면의 성찰을 통해 관용과 배려의 정신을 배운다. 기원전 600년쯤 작성된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에는 '다른 사람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적혀 있다. 비슷한 시기 공자(기원전 551~479)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고 했다. 저자는 이런 '황금률'이 무종교인의 도덕적 준거이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종교 없는 삶’은 종교적 바탕이 강한 미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무종교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국내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저자는 빠르게 탈종교화된 유럽,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등의 흐름에서 분명한 예외처럼 보였던 미국 역시 지난 25년간 무종교인이 두 배로 늘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무종교인이 전체 인구의 56.1%를 차지했다. 종교 없는 사람들이 인구의 과반을 넘은 것은 1985년 첫 조사 이래 처음 있었던 일이다.     

‘종교 없는 삶’이 주장하는 논리에 따르면 세상에 무종교인이 많아진다고 우려할 일이 아니다.

무종교인이 많은 사회가 오히려 더 건강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메이카와 덴마크가 극명한 사례다.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가 대부분인 자메이카 국민은 정기적으로 교회에 가고, 기도를 자주 하며,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많다. 반면 덴마크는 기독교 문화를 갖고 있지만 무종교 쪽으로 기울어 있다. 국민들은 교회에 잘 나가지 않고, 기도도 거의 하지 않고,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종교성 측면에서 볼 때 자메이카는 종교적인 나라이고 덴마크는 무종교적인 나라다. 그런데 자메이카는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인 사회인 반면 덴마크는 폭력이 가장 적다. 자메이카의 살인율은 10만명당 52명, 덴마크는 10만명당 1명도 되지 않는다.    

단지 하나의 사례가 아니다.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나라일수록 종교성이 강하고, 부유하고 안정적인 나라일수록 무종교적인 경향이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가난하고 정정(政情)이 불안한 아이티, 엘살바도르, 콜롬비아, 라이베리아, 짐바브웨 등은 종교성이 강한 나라다. 반면 높은 수준의 풍요와 평화를 누리는 노르웨이, 뉴질랜드, 호주, 일본 등은 무종교성이 더 강하다.    

개인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 종교적 성향이 강하면 대체로 편견도 강하다. 종교적으로 강경한 사람일수록 인종차별 성향도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9·11 테러 직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테러 행위 혐의가 있는 죄수의 고문을 허용했다. 2009년 조사에 따르면 종교성이 강한 미국인일수록 고문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았고, 무종교성이 강한 미국인은 정부의 고문 허용 정책을 대체로 반대했다.    

저자는 무종교 개인과 사회의 건강성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종교가 없는 개인과 사회라고 해서 타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가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정한' 종교인에 대해선 높이 평가한다.     

저자는 무종교인이라는 개념이 그리 선명하지 않다고 말한다. 종교적인 사람도 어떤 면에서는 무종교적이고, 무종교인들도 어느 면에서는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없지만 유령이나 환생은 믿는 사람, 종교 활동은 하지만 특별한 믿음은 없는 사람, 한때는 매우 종교적이었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은 사람 등 누구를 무종교인으로 볼 것인가도 문제로 남는다.

 

이처럼 종교성과 무종교성을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바라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안에서 한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을 뿐이며, 심지어 삶의 시기마다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든, 종교 없이 사는 사람이든 삶의 경로에 따라 달라지는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이처럼 『종교 없는 삶』은 종교 없는 삶이 무엇을 의미하고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확신하지 못하는 무종교인, 또한 종교 없는 사람들을 통해 진정한 종교적 가치를 생각해 보게 한다는 점에서 종교인들 모두에게 유익한 경험이 된다. 즉 종교인에게는 의지하던 종교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무종교인에게는 종교 없는 삶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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