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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의 유교관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8/10/22 [07:11]
유교 폐해 훈도하며 평등사상 강조

증산의 유교관

유교 폐해 훈도하며 평등사상 강조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18/10/22 [07:11]

유교 폐해 훈도하며 평등사상 강조
    

증산 자신은 몰락한 가문 출신이면서도 유교에 대한 경계심과 앞으로 폐해를 훈도하고 있다.    

갑진년 구월에 함열 회선동 김보경의 집에 계실새 보경을 명하사 유, 불, 선 삼자를 쓰라 하신 뒤에 종도들에게 뜻 가는 대로 한 자씩 짚으라 하시니 보경은 불자를 짚고 또 한사람은 유자를 짚거늘 가라사대 유는 부유니라 하시니라.     

을사년 봄에 불가지에 계실 때 유, 불, 선 석자를 써놓으시고 각기 뜻 가는 대로 한 자씩을 짚으라 하시거늘 김석이 불자를 짚으려 하더니 때마침 불목간 이가 와서 무슨 일을 하는지 묻거늘 종도들이 그 방자함을 꾸짖어 쫓으니 천사 가라사대 그도 또한 인생이라 어찌 쫓느뇨 하시고 일러 가라사대 우리가 교를 세우려하여 무슨 교가 좋을지 의논 중이니 너도 이 석자중에서 한자를 짚으라 그 아이가 유자를 짚거늘 가라사대 이 일로 인하여 후일에 너희들이 유로써 폐해를 당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증산의 유교관은 평등사상    

증산의 유교적인 견해는 당시 사농공상의 신분사회를 뛰어넘는 평등사상으로 만인을 돌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높은(종교적 지위)자리에서 가장 낮은(세속)자리로 내려오는 증산의 모습은 종교적 성스러움마저 보이고 있다.    

만인 평등사상은 천사 비록 미천한 사람을 대 할지라도 반드시 존경하시더니 형렬의 종 지남식에게도 매양 존경하시거늘 형열이 여쭈어 가로대 이 사람은 나의 종이오니 존경치 말으소서. 천사 가라사대 이 사람이 그대의 종이나 내게는 아무 관계도 없나니라 하시며 또 일러 가라사대 이 마을에서는 어려서부터 숙습이 되어 창졸간에 말을 고치기 어려울지나 다른 곳에가면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다 존경하라. 이 뒤로는 적서의 명분과 반상의 구별이 없느니라.    

유교의 최고 어른인 공자, 그에 대한 비판은 증산만이 할 수 있는 파격적인 행동이며 사상일수도 있다.     

유월 스무 이튿날 약방마당에 자리를 깔고 천사 그 위에 누우사 치복을 명하여 새 자리를 그 앞에 펴라 하시더니 문득 공자를 부르시며 소정묘를 죽였으니 어찌 성인이 되며 삼대 출처를 하였으니 어찌 제가하였다 하리요 그대는 이곳에서 쓸데 없으니 딴 세상으로 갈지어다.    

공자의 가르침이 불안하다고 본 증산은 그 이유로 공자가 노나라에서 “사구”라는 벼슬에 오른 후 소정묘를 죽인일이 있다고 본 것이다. 소정묘는 자체가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라, 소정은 관직 이름이며 묘가 이름이라고 했다. 공자는 사람을 죽였으므로 성인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본 증산의 주장은 전설적인 사건에 대한 해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대순전경”의 기록에 의하면, 공자 뿐만 아니라 아들인 백어와 손자인 자사도 부인을 내쫓았다는 것이 증산의 비판이다. 그러나 이 또한 역사적 사실인지의 여부는 확인 불가능하다. 이것 역시 공자가 부인을 쫓아냈다고 믿고 싶었던 후대인들의 믿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공자의 가르침이 부족하고 한계가 있었으며, 부인을 내쫓을 정도로 공자 자신의 가르침과 동떨어진 수준이었으며, 결국 쫓겨난 부인에게 원한을 품게 만들었다는 것이 증산의 주장이다.
(삼국유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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