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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해방이후 최초로 결성된 무속인 단체 대한승공경신연합회의 조직과 변천
개별적 활동 무속인들을 단일창구를 통해 하나로 묶는데 큰 힘이 된 경신회
기사입력: 2018/11/05 [08:10]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장정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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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후 최초로 결성된 무속인 단체 대한승공경신연합회의 조직과 변천
종교적 집단형태 이룬 것은 없지만 민간신앙 가운데 전래된 무속신앙
 

무속단체는 1920년 6월 1일 숭인조합이 “무녀들을 통제하여 종래 자칫하면 풍속을 문란케 하고 위생에 장애가 된 무녀기도의 폐를 제거”하고 “기도를 일정한 장소에서, 조합원은 모두 영과 신을 존승하고 풍속을 문란케 하거나 비위생적일 수 있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목적으로 창립된 이후 신리종교(1922년 신리교 교정원으로 출발) 문화연구회(1927) 성화교(1931) 서선신도회(1929) 등이 해방 전 활동했다. 해방 이후에는 무량천도(1945)가 있다.    

일제시대 무라야마 지존은 『조선의 유사종교』에서 조선의 각 종교를 분류하고 있다. 자신들의 고유 종교인 신도, 불교, 기독교 등 제도권 종교를 제외한 다수의 조선의 종교단체를 유사종교로 분류하고 있다. 조사에서 무격과 점술가로 구성된 무속단체를 숭신계로 분류하고 있다.     

무속숭신계는 우리 나라의 재래적인 무당들의 신행위(禱神行爲)를 하는 신앙단체들을 말한다. 여기에는 접신무와 접신이 현상이 없이도 무축을 기업으로 하는 세습무도 포함된다. 무속은 천신,지신,인귀,칠성신,산신,해신,삼신(三神),가정신 등 여러 가지 신들을 숭신하는 다신교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무속신앙이 어떤 종교적 집단의 형태를 이룬 것은 없었다. 다만 민간신앙 가운데 전래되어왔다.     
▲ 무속신앙이 어떤 종교적 집단의 형태를 이룬 것은 없었지만 민간신앙 가운데 전래되어 왔으며 근래에 와서 하나의 종교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들 교단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민족 고유의 신교(단군신교)의 한 변형이라 자인하기도 한다. 사진은 대종교 어천절 마니산 홍익재제 봉행 모습         

자신들 종교를 민족 고유의 신교(단군신교)의 한 변형이라 자인하는 무속 교단    

그러던 것이 근래에 와서 하나의 종교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때로 이들 교단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민족 고유의 신교(단군신교)의 한 변형이라 자인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은 해방이후 국조 단군을 숭배나 신앙대상으로 한다고 하여 하나의 교단을 만들기도 하였다.    

숭신계 유사종교에 속하는 것은 ①임진란에 신령의 도움을 주었다는 중국의 군신 관우, 조선 개국의 천강신이라고 하는 단군, 조선 문화개발의 시조라고 하는 기자(箕子)와 같은 조선사회의 개척, 조선문화의 개발 및 조선사회의 원호를 했다고 믿어지는 영웅신을 존숭하고 그 신덕에 감사함과 동시에 민중의식을 복고적으로 통일하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생활의식을 만들려고 한 것 ②전통적으로 민간신앙으로 되어 있던 무당들을 규합하는 한편 그 구폐를 교정함과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현대에 적합하도록 선도하고 그럼으로써 민중의 요구에 응하려고 한 것 등이 그 주된 것이다.    

①관우를 숭배하는 관성교(觀聖敎)
②단군을 숭배하는 단군교(檀君敎) 대종교(大倧敎) 삼성교(三聖敎)
③기자를 존숭하는 기자교(箕子敎) 기사교(箕師敎)
④무당의 단체인 숭신인조합(崇神人組合),신리종교(神理宗敎),문화연구회(文化硏究會),교정회(矯正會),성화교(聖化敎),영신회(靈神會),서선신도 동지회,황조경신숭신교(皇祖敬神崇神敎)
⑤칠성신을 숭배하는 칠성교(七星敎)
⑥기타 지아교(知我敎),영가무교(詠歌舞敎 등이 있다.    

해방이후 최초로 결성된 무속인 단체 대한승공경신연합회의 변천    

대한승공경신연합회(이하 경신회)는 해방이후 결성된 최초의 무속인 단체다. 1950년대말 출범초기에는 무속인 스스로 필요에 의해 구성된 자발적 성격의 단체가 아니라 관 주도적 성격이 강했다. 대한승공경신연합회는 무속인 혹은 무속과 관계된 사람들에 의해 설립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연구자들은 자발적 구성으로 기술하기도 한다. 5.16 군사정부가 혁명공약으로 내걸었던 6대 공약 가운데 3번째는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바로 잡기위한 청신한 기풍을 진작시킨다.”이다.     

혁명정부의 국민재건운동을 통하여 국민의 의식개혁과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진다고 생각되는 모든 행위에 구악으로 단정한 추방운동에 해당되었다. 혁명정부가 처음부터 의도하고 기획된 것이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발생했다.     

중앙정보부 감찰실에 근무하던 박실장이 퇴근길에 본 병굿의 한 장면이다. 흔히 말하는 “좋은 약이란 약을 다 먹고 조선팔도 명기 서린 명산대찰을 찾아 기도도 했다. 좋다는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녀보았지만 고칠 수 없는 환자들의 마지막 의지처”인 무속의례를 본 것이다. 그것도 의례를 통해 괘유할 수 있다는 설명보다 당시 과도한 30여만원이라는 굿 값이 사이비의 기준으로 등장한 것이다. 박실장의 이와같은 사이비 기준은 이후 무속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동조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들을 규찰하고 계도할 단체가 필요에 의해 주도되었다. 박실장의 구상은 군 선배 손대령에게 전달되었다.  

중앙정보부 감찰실에 근무하던 박실장과 손명진 회장에 의해 설립했다.(최남억의 저서 「무당」에서 박실장, 손대령이 이 두 사람을 말한다. 편집자 주) 대한승공경신연합회 작명도 박실장이 했다. 이때에는 최남억 회장이 참여하지 않았다. 종로 사무실로 옮기기 전 손명진이 최남억을 영입했다. 손명진 회장이 무속인 단체장에서 물러서게 된 이유는 종로 3가 사무실에서 손명진 회장의 운영방식에 불만을 가진 사무실 동료가 중앙정보부에 밀고하면서 초대 손명진 회장은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그 뒤를 이어 최남억 회장이 되었다.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은 최남억은 무속에 대한 이해를 위해 경희대 서정범 교수와 많은 시간을 가졌다.     

1960년대에는 대한정도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1971년 대한승공경신연합회(문화공보부 등록 제273호)가 공식출범하면서 기존의 관 주도 단체에서 자발적 모임으로 자리잡았다. 대한승공경신연합회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태생적으로 종교라고 할 수 없는 사회단체적 성격이 강했다.     

‘승공활동’에 참여케 하는 동시에 무속행위 보장    

「승공활동」에 참여케하고 동시에 무속행위가 보장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무속해위는 물론 장승 등 민간신앙적 요소를 미신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무속행위를 재가집(무속 행위 의뢰자)에서 하는 경우, 초·향을 사르고 경문을 읽는 의례조차 ‘경범처벌법’에 대상이던 시대에 경신회 회원은 예외적 행위자가 될 수 있었다. 전국조직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경신회 회원에게는 지부장의 재량권이 신고와 무마라는 권한으로 활용되었다. 1994년 3월 8일 대한승공경신연합회 등록(서울특별시 제19호), 1997년 10월17일 대한승공경신연합회 사단법인설립(공보처 제59호), 2000년도 7월17일 남북화해의 흐름을 타면서 ‘승공(勝共)을 뺀 대한경신연합회(이하 연합회)로 법인명칭 변경(행정자치부 및 경찰청 소관 제11호)을 하였다.    

설립목적;통일세대를 맞이하여 민족사관을 고취시키며 상호교류를 통하여 한민족 토속문화를 보존,육성,발전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주요행사; 전국무속대제전,호국영령위령제,국태민안 기원대제,국태민안 남산대제, 각 시도 본부 대동제 및 용왕제,무형문화재(민속,무속)공연 및 보존활동,전국회원체육대회(5월),하계회원수련회(7-8월),전국무속대제전(9-10월),국태민안 단군대제(11월),정기총회(12월)가 있다.     

1971년부터 현재까지 등록증은 약 8만 장, 매년 신분증 수취 무속인은 1만 5000명    

조직으로 서울특별시본부를 비롯 18개 지부와 동아시아 무속신앙 포럼,전통민속위원회,도당굿,무악보존회 언론기관으로 한국민속신문이 있다.    

1대 최남억, 2대 최수진, 3대 최용호, 4대 이성재(무업에 종사하는 현업자로 첫 회장에 당선되었다.) 회원자격으로 협회주최 한국무속강좌에 참여 후 수료한 자, 무속제례 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 자, 숭신무복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주요사업으로 ①전통문화분야의 상호교류사업 ②한민족 토속문화 보존육성사업 ③통일에 대비한 민족고유문화 보존육성 ④출판물 발행에 의한 제반사업 ⑤전통민속,무속의 심층연구 및 공연에 관한 사항 ⑥기타 본회 목적달성에 필요한 사항이 있다.     

경신회에서 공식적으로 회원들에게 발급해주는 등록증은 지난 1971년부터 현재까지 약 8만 장에 이르고 매년 발행되는 수첩과 신분증을 받아가는 무속인은 1만 5000명 정도가 된다.    

경신회가 종교단체화를 모색하면서 1971년 설립된 천우교    

천우교는 1971년 해방이후 처음 결성된 대한승공경신연합회(이하 경신회)가 종교단체화를 모색하면서 설립되었다.     

1988년 5월 경기도 남이섬에서 경신회와 다른 종교단체로 구제중생(救濟衆生), 국태민안(國泰民安), 지상천국건설(地上天國建設)을 목표로 창교했다. 창교배경으로 사단법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원단체 가입요건에 맞추어 진행되었다. 초대회장으로 최남억 경신회 이사장이 겸직을 했다. 조직은 경신연 조직을 새로운 단체에 편입시킴으로 독자성이 없는 조직체계로 설립되었다.     

천우교 본부는 출범 당시 광명사(일명 전씨당 당주, 대표 전광선 서울시 도붕구 우이동 산 68번지 소재)에 두고 있었다. 광명사가 굿당으로 경신연과 관련없는 단체, 무속인들과 크고작은 갈등이 있어왔다. 본부를 경신회가 위치한 용산구 소재 대호빌빙 지하 박인호 무속보존위원장 사무실 겸 전통한양굿 학원으로 이전하게 된다. 강의실 한편에 마련된 신단에는 환웅을 중심으로 환인,단군 그리고 산신과 용신을 신앙대상으로 하고 있다. 박인호 탈퇴이후 본부는 폐쇄되었다.
 
천우교의 기반이 되고 있는 무속은 한국의 민간신앙 중에서 무당을 중심으로 하는 토착적 종교현상을 말한다. 종교의 삼대 요소를 흔히 경전과 의례와 조직이라고 분류하고 있다. 한국의 무속은 이 세 가지 모두를 갖추고 있다. 의례를 집전하는 사제집단인 무당과 그를 따르는 신도조직 그리고 구전으로 내려오는 교리가 있다.     

문자화되기 이전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종교외 집단, 무속인들의 이익단체이자 종교적 기능을 하는 순수한 의미의 종교 교단이 아닌 것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무속에서 사제가 되는 무당을 이능화는 그의 저서 『조선의 무속고』에서 신교를 주관하는 사람, 대개 춤으로 신을 내리게 하고 노래로 신을 즐겁게 했으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여 재앙을 피하고 복을 받게 했다. 단군 이래 한국에는 고유종교가 있고 이를 신교라고 정의하고 있다.     

최남억 회장의 ‘천우교’ 창종 의지는 ‘교단이 됨으로써 제 멋대로 행동하는 무속인들을 제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신자토 요시노부의 주장은 대필작가의 생각과 최남억 회장의 생각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작가의 생각이 최남억 회장의 생각으로 기술된 부분도 있다. 이와같은 현상은 자료만으로 연구되었을 때 오는 오류라 할 수 있다. 최남억 회장의 종교화 시도는 이후 이성재 회장에 의해 좀더 구체화되었다.  

이성재 회장은 한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한국민족종교협의회(민종협)가 이사회를 열고 ‘민족종교 경천신명회’의 회원 가입 신청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종협의 회원가입은 무속이 무교를 종교 법인화되는 등용문의 역할을 했으며 민족종교 경천신명회는 사단법인 대한경신연합회에 소속된 전통무속인 회원들 가운데 종교법인화에 뜻을 모은 전통무속인들이 주축이 돼 새롭게 조직된 단체라고 했다. 월 회비 30만원의 10년분에 해당하는 3.600만원을 입회금으로 납부 완료 후 이사회 승인을 기다렸다. 최남억 회장은 무속단체로는 민족종교협의회 가입이 여의치 않자 별도의 종교단체인 ’천우교‘를 창종하듯 이성재 회장 역시 ’천지신명회‘라는 별도의 종단을 창종했다. 두 단체 모두 내부적으로는 조직,인적 구성원 모두 경신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 해방이후 최초로 결성된 무속인 단체 대한승공경신연합회는 경신회의 모체로 개별적 활동 무속인들을 단일창구를 통해 하나로 묶는데 큰 힘이 됐다. 사진은 경신회의 송년회 모습.     

개별적 활동 무속인들을 단일창구를 통해 하나로 묶는데 큰 힘이 된 경신회    

무속계의 대표적 단체 경신회는 해방이후 최초의 무속 단체로 출범했다. 경신회의 출범은 단순히 이익집단의 시작이 아니다.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무속인들을 협회라는 단일창구를 통해 하나로 묶는데 큰 힘이 되었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냄으로 무속인들의 권익보호는 물론 사회적 지위향상에도 큰 역할을 했다. 회원증 발급을 통해 무자격 사이비 무속인들의 난립을 막았다. 이와같은 순 기능에도 불구하고 경신회는 무속을 대표하는 종교단체로 발전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국유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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