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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성소의 뜰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①
죄인이 의롭게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성막 뜰
기사입력: 2018/11/07 [21:13]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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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뜰은 ‘안마당’ 혹은 ‘거룩한 곳’으로 불리며 이스라엘 진영의 중심에 거룩한 세마포 성막으로 둘러싸인 공간이다. 이곳에서 죄인이 의롭게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성막 문을 지나면 정방형으로 된 뜰의 중앙에는 번제단이 놓여져 있다. 번제단은 가로와 세로가 같은 5규빗, 높이가 3규빗의 정사각형으로 서 있었다. 이것은 확고한 안정감을 주었다. 제단의 네 귀퉁이 위에는 나무 뿔이 놋에 싸여 있고 밖으로 구부러져 있었다(출 27:2).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단 절반에 위치한 격자형 석쇠 혹은 그물이 있어 번제에 쓰이는 화목을 올려놓을 수 있었다. 번제단은 사용과 운반에 편리하도록 강하고 가볍게 만들어졌다. 이것은 싯딤나무(아카시아)에 놋으로 표면을 감싸서 불에 견디도록 만들어졌다.

놋과 불을 견디는 나무의 연합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신성의 영광을 불타는 떨기나무(가시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내시는 사건(출 3:2~4) 속에 예표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가시나무처럼 “우리의 낮은 몸”(빌 3:21)을 입고 오셔서 자신의 영광을 가리셨다. 뿐만 아니라 가시나무가 불을 견딘 것처럼 모든 시련을 견디셨다. 이것은 우리의 인성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로서 우리의 “몸은....성령의 전”(고전 6:19)이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표상이요, "교회의 표상"이기도 하다.

아담과 그의 아들들(창 4:4)이 에덴의 입구에 첫 제단을 쌓은 이래로 번제단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을 가리켰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첫번째로 번제단에 희생제물을 드렸고(창 8:20), 아브라함은 자기의 독자 대신에 모리아 산의 번제단에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는 믿음을 나타내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구속주에 대한 믿음을 제단에 피를 뿌림으로 드러내야 하였다. 희생제물의 피를 번제단에 뿌리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생명을 대신해 율법의 정죄를 받으시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용서하시고 의롭게 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번제단 위에는 매일 속죄제물이 올려졌는데, 번제단에 사용된 불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사하신 거룩한 불(레 9:24)이었고 그 불꽃은 항상 살아있어야 했다(레 6:12~13). 불은 속죄제물에 대한 가납하심을 나타냈다. 번제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여성명사 ‘올라’인데 동사 ‘올라가다’에서 온 말로 희생제물이 불살라질 때 “향기로운 냄새”(레1:9, 13, 17)가 ‘위로 올라간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연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향기로운 냄새를 받으시는 것을 의미한다.

향기로운 냄새를 올리는 목적은 헌제자를 “열납하시도록”(레 1:3)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제물을 바치는 자를 기쁨으로 가납하시도록 제물을 드렸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헌제자를 기쁘게 받으시는 것은 “그를 위하여 속죄”(레 1:4; 16:24)하시므로 모든 죄의 부정으로부터 온전히 “정결”(레 14:20; 16:30)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속죄의 제사들 중에 번제는 가장 일반적인 제사였다. 번제의 예물로는 1년 된 수양이 가장 흔한 예물이었고 때로는 어린 수송아지, 수양, 염소, 비둘기 등이 사용되었다. 번제는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해 소제(곡물)와 함께 아침과 저녁으로 드려졌다(출 29:38~46, 민 28:1~10).

이스라엘 백성들이 긴 여행을 통해 가나안 변경에 왔을 때 그들은 가데스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에돔 민족이 가로막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신속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들이고자 했지만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공포심과 불평에 빠져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결국 에돔 국경을 돌아 험한 길로 가게 되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 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 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 21:5~9).

놋뱀은 우리를 대신해 율법의 저주를 받으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놋 번제단’으로 상징된 것은 놋이 불을 견디는 것처럼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죄의 저주를 받으시고 시련을 통과하신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성도의 시련과 고난 속에 참여하시므로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계 1:15)으시다. 킹제임스역에는 “그의 발은 용광로에 달군 빛나는 놋 같고”라고 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시련의 불로 연단한 정금 같은 믿음을 주신다. 예수의 믿음은 우리를 죄로부터 정결케 하시는 믿음이다.

번제단에 불살라 드리는 제물에는 정결한 양, 소, 염소, 비둘기가 사용되었다. 죄인은 희생제물을 끌고 뜰의 북편 양 잡는 곳으로 나아와 무릎을 꿇고 희생제물의 머리 양 뿔 사이에 손을 얹어 힘껏 누르며 통회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이때 상징적으로 무거운 죄악이 희생제물에 실리는 것이다. 헌제자와 연합된 희생제물이 죄를 전가 받고 죄인을 대신해 죽임을 당한다. 이어 죄인은 떨리는 마음으로 손을 높이 들고 칼로 제물의 목을 내리친다. 제사장은 희생물의 피를 그릇에 받아 번제단의 북동쪽 모서리와 남서쪽 모서리인 사면에 뿌린다. 제사장이나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의 경우에는 네 뿔에 바르고 나머지는 제단 밑에 쏟는다. 이로써 고백한 죄인의 죄가 희생물의 피를 통해 번제단에 옮겨진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헌제자를 대신해 생명을 내어주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가 죄인에게서 죄를 제거하는 효험이 있는 것을 나타낸다.

제사장이 번제단에 피를 뿌림에 이어 헌제자는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 화제로 드릴 준비를 하였다. 죄인은 제물(수컷 - 양, 염소, 소)의 가죽을 칼로 손수 벗기었다(레 1:6; 7:8). 그리고 가죽은 제사장에게 주었다.

이때 죄인이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저의 죄가 주님을 이렇게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 양의 옷은 주님께서 피값으로 사셔서 제게 입혀주시는 의의 옷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때 죄인은 이제까지 입고 있었던 더럽고 수치스러운 죄의 옷(“무화과나무 잎”(창 3:7))을 벗기고 용서하시고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입혀주시는 옷을 받아 입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헌제자는 번제 희생제물을 ‘여섯 토막’으로 각을 떠 기름을 떼어낸 다음 다리와 내장을 단 위에 있는 나무에 벌려 놓는다. 이것은 헌제자가 자원해서 자신을 완전히 봉헌하는 것을 의미한다. 죄 뿐만 아니라 죄된 자아의 전 존재를 제단 위에 올려놓는 것을 의미하였다.

다음에는 제사장이 단 위에 뜬 각과 머리와 가름과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은 후 제사장은 제물의 내장들과 창자, 그리고 정강이의 모든 것을 물로 씻어 제단의 나무 위에 올려놓는다. 이것은 헌제자가 성령(물)의 도움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숨은 허물을 씻어내는 경험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단 위에서 완전하게 불살라졌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향기로운 냄새로 헌제자의 회개, 기도, 대속주를 향한 사랑을 기쁘게 가납하시고 흠양 하신다.

희생제물을 태우는 불은 희생제물에 대한 “열납”(레 9:24; 왕상 18:38)을 상징하는 것 외에도 ‘성령의 은사나 능력’(행 2:3), “심판”(민 16: 35; 신 4:24, 9:3; 히 12:29), 죄를 태우고 정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었다. 무엇보다 죄를 태우는 “마음의 제단 위에 정결케 하는 불”이 되었다.

이사야는 스랍 중 하나가 단에서 핀 숯을 가지고 와서 입에 대었을 때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사 6:7) 하시므로 죄가 제거되어 깨끗케 함을 입었다.

번제단의 불은 거룩한 처소(성소와 지성소)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들에게 먼저 죄를 거룩한 불에 소멸시키고 용서와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자기 의를 가지고는 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 이 제단 위에는 번제 외에도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등의 희생제물이 드려졌다. 희생 제물이 드려지고 희생 제물의 피가 단 사면에 뿌려지거나 혹은 번제단 밑에 쏟아 부어지고 그 희생의 제물들은 끊임없이 불살라 드려졌다.
주형식(서울 묵동교회 담임목사·목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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