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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증산신앙) 종단의 종교 혼합현상①종교적 혼합의 의미와 역사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8/11/21 [21:08]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혼합되지 않은 ‘순수한’ 종교

한국불교(증산신앙) 종단의 종교 혼합현상①종교적 혼합의 의미와 역사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혼합되지 않은 ‘순수한’ 종교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18/11/21 [21:08]

①종교적 혼합의 의미와 역사-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혼합되지 않은 ‘순수한’ 종교


<연재 순서>
①종교적 혼합의 의미와 역사
②김형렬의 미륵불교
③서백일의 용화교
④김계주의 무을교


‘혼합주의’라는 개념은 한꺼번에 묶어놓을 수 없는 이질적인 종교와 개별종교, 신앙들이 서로 융합되어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 개념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이 말의 뿌리는 그리스어에서 나왔다. 플루타크 영웅전에 등장하는데 서로 경쟁상태에 있던 크레타 사람들이 외부로부터 위험에 닥치자 상충된 입장들을 유보하고 함께 뭉쳤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16세기에는 에라스무스의 용어를 빌어서 서로 모순대립하는 신학적 입장들의 공통점을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였다. 훨씬 뒤에 가서야 이 말은 ‘함께 섞어 흔들어서 혼합한다.’는 그리스어의 표현과 유추해석되어 쓰였다. 두덴(Duden)사전에 따르면 혼합주의란 ‘여러가지 종교와 신앙 또는 철학적 교리의 혼합으로서 내적인 동일성은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오늘날의 혼합주의 개념을 틀 지운 것은 17세기 독일의 신학계에서 벌어진 논쟁이었다.

혼합 개념은 한국․중국․일본 삼국 가운데 일본에서 주로 사용하면서 보편화되었다. 일본에서는 카네모토 이후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사상, 종교등의 절충 또는 조화라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되었으나, 일종의 종교적 신크리티즘(syncretism)개념으로 정의 되기도 한다. 최문기 교수는 혼합의 실례로 불교 사찰에서 찾고 있다. 산신각, 유교제사에 떡이 주요 제물로 등장하는 형태, 가톨릭교에서 전례를 무(巫)에서 굿의 한 형태로 생각한다든가 묵주나 성수, 그리고 십자가상을 비결처방이나 부적의 형식으로 간주한다. 성모마리아상, 성인상 앞에 향을 피우는 신앙형태를 통해 혼합 현상이 설명될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혼합적 현상으로 삼국시대 국가의 왕권강화 차원에서 유불도 삼교가 수용되었을 때를 보더라도 큰 충돌과 대립 없이 진행된 수용의 양상은 배타와 차별이 아닌 다양한 문화를 역동적으로 포용하고 조화하는 특질을 보유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즉 한민족 문화의 기층에는 종교들 간의 분열과 대립을 조화하는 포함 삼교의 문화적 특성이 선험적으로 내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종교를 접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통적으로 내재해 있다는 사실과 원리를 논리적으로 천명하고자 시도한 인물이 바로 최치원(崔致遠)이다. 그는 「난랑비서」에서 “우리나라에는 깊고 오묘한 도가 있다. 이를 풍류라 한다. 이 교를 설치한 근원은 선사에 자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삼교를 포함한 것이요, 모든 중생과 접하여서는 그들을 인간화하였다. 당시 동아시아 문화의 정수였던 유불도 삼교와의 직접적인 대비를 통해 ‘풍류(風流)’를 밝히고, 그 특징을 ‘포함삼교’를 통해 드러내었다. 현묘지도(玄妙之道)로서 풍류가 있었다는 최치원의 언명은 신라에 예로부터 전해지던 고유의 전통과 문화가 계승되고 있음을 명백히 한 것이다. 나아가 풍류에 본래부터 삼교의 정신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이치가 담겨 있음을 설명하여 한국 선도의 사상적 폭과 포용력을 역설하였다. 최치원의 이같은 시도는 삼교의 문화가 반복 재현될 수 있었던 종교적 심성이 한국 선도의 한 측면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밝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우리나라에는 깊고 오묘한 도가 있다. 이를 풍류라 한다.”고 했다. 당시 동아시아 문화의 정수였던 유불도 삼교와의 직접적인 대비를 통해 ‘풍류(風流)’를 밝힌 것이다.  

최치원을 비롯하여 김시습이 삼교의 융화를 지향하였고, 휴정은 󰡔삼가귀감(三家龜鑑)󰡕을 저술해 상이하게 이해되었던 삼교의 공통분모를 모색한 것은 어떠한 종파나 이질적인 사상체계도 받아들일 수 있는 종교적 심성이 면면히 계승되고 있음을 증언한다. 아울러 원효의 원융회통(圓融會通), 의천의 선교합일(禪敎合一), 지눌의 정혜쌍수(定慧雙修), 율곡의 이기지묘(理氣之妙) 등은 서로 상반된 상대를 부정하지 않고 긍정하면서 화합과 평화를 지향한 선각자들의 노력을 가늠하게 한다.

사전적 의미로 ‘혼합’이란 ‘뒤 섞어서 한데 합함’, “녹여서 하나로 합치는 것”이나 “융해하고 화합하는 것”을 의미하고, 영어로 융합을 의미하는 ‘fusion’도 라틴어의 ‘fundo(융해하다)’나 ‘fusus(융해)’에서 유래하고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상의 모든 종교는 기존 문화의 혼합을 통해 형성된다고 말할 때, 역사 현상으로서의 혼합현상이 적용되는 것이다. 어떠한 종교가 수용되었을 때, 이전에 있던 요소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새 종교 안에서 새로운 요소와 결합하는 것이다. 결국 순수한 종교나 순수한 종교 사상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한 종교는 불가피하게 여러 종교 전통의 사상적 유산을 동시에 수용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종교적 혼합(syncretism)은 ‘두 가지 이상의 종교적 요소(혹은 전통)의 상호접촉에 의하여 생기는 현상, 형태’로 규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현상이나 형태에 대해서는 그것을 보는 시각이나 보이는 상황에 따라서 다르다. 일본은 신크리티즘의 현상을 혼성교, 혼효종교, 습합종교, 중층신앙, 융합종교, 종교적 중층화, 종교적 병렬화 과정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개념과 내용 파악의 어려움을 보이는 것이라 하겠다. 영어권에서도 syncretism 이외에 blending, parallelism, coalition, co-existence 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크레티즘(syncretism)이라는 말은 종교개혁 이후 신학적 욕설로 쓰이기 시작했다. 종교개혁 직후 17세기 독일의 루터파 내에는 ‘혼합주의 논쟁(syncretism controversy)이 벌어졌다. 신학자 칼리투스(George Calixtus)는 당시 루터파 내에 존재하던 여러 진영들이 중요한 진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불일치하는 점들과 서로에 대한 적의를 누그러뜨리고 주님의 제자로서 일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반대자들에 의해 순수한 루터주의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난받았다. 반대자들은 칼라투스를 종교를 무원칙하게 뒤섞는다는 의미에서 혼합주의자(syncretiist)라고 불렀다. 혼합현상 개념을 ‘숨은 종교(Cryto-religion) 모델이라고 불렀다. 한국에서는 1929년 백낙준이 개신교사를 서술한 영어 논문에서 처음 쓰기 시작했다.

종교에서 혼합은 사실 종교 전통 사이의 교섭 관계를 의미한다. 특히 종교사상의 혼합 내지 교섭 관계는 무궤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원칙에 입각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복, 구도, 개벽의 삼대 신념 유형은 어느 종교 전통(특히 고전 종교)에나 다 있는 것이다. ‘하나’의 종교-그리스도교 또는 이슬람-에 익숙한 유럽과는 달리 한국사회는 처음부터 다종교사회이다. 유럽이 단일종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하나의 사회를 강조한 데 반해. 한국은 여러 종교가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유럽이 사회의 통합을 위해 하나의 종교를 필요로 하고 그 때문에 다양한 종교를 관용할 수 없었던 데 반해. 한국은 사회의 통합을 위해 하나의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종교간의 만남과 교환이 일상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그 만남 위에서 삶이 펼쳐졌다.    

한국사회에서 종교적 혼합현상으로 다종교사회인 것은 단순히 여러 종교가 공존한다는 현상을 넘어 한 종교 안에서 여러 종교가 서로 만나고 있다는 데서 가장 잘 드러난다. 다른 종교와 혼합되지 아니한 ‘순수한’ 종교란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다. (삼국유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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