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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와 성화의 경험②

주형식 | 기사입력 2018/12/13 [10:51]
성화된 생애의 능력을 제공하는 촛대

성소와 성화의 경험②

성화된 생애의 능력을 제공하는 촛대

주형식 | 입력 : 2018/12/13 [10:51]

성화된 생애의 능력을 제공하는 촛대
    

“그가 또 회막 안 곧 성막 남편에 등대를 놓아 상과 대하게 하고 또 여호와 앞에 등잔에 불을 켜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출 40:24~25).   

촛대는 금 한 달란트를 망치로 쳐서 만들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정금 촛대로 재창조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가 침을 당하는 것은 교회가 당하는 환난을 예시한다. 환난은 교회를 정결하게 하여 성령의 임재로 빛을 드러내는 촛대가 되기에 적합하게 한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는 가장 기본적인 달란트이다. 악한 종은 이 달란트를 감사히 여기지 않았다. 그는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마 25:18). 그러나 성경은 누구든지 작은 달란트를 갖고도 영광스러운 성령의 통로가 될 수 있고, 가장 높은 이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과 생애로 변화될 수 있다.     

성소의 기물들을 만든 장인 브사렐은 하나님께서 인성을 통해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하게 하셨다. 그로 하여금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출 31:2~3) 기물들을 만들게 하셨다. 성령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우리를 빚으셔서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자로 만드실 수 있다.    

촛대는 살구꽃이 만개한 형상이다. 각 가지마다 꽃과 꽃받침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가지들 끝에는 등잔을 가지고 있다. 줄기와 가지들은 한 모양, 한 속성과 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줄기인 그리스도와 가지인 신자들이 한 속성, 한 품성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예시한다. 각각의 여섯 가지에는 아름답게 피어나는 세 개의 봉오리 진 꽃과 꽃받침, 1개의 등잔을 가지고 있었다. 가운데 줄기에는 네 개의 봉오리 진 꽃과 꽃받침, 1개의 등잔이 있었다. 살구나무의 가지들은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각 가지들은 나무의 중심 줄기에 붙어 있다. 그러므로 가지들은 아름다운 품성의 꽃향기와 진리의 빛을 가진 “참된 증인”(계 3:14)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한 충실한 파수꾼으로 서 있다.     

일곱 가지를 가진 황금 등대는 꽃이 만개한 살구나무 형상으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살구나무는 추운 겨울을 지나고 제일 먼저 깨어남을 알리는 나무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전 15:20)가 되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한다. 또한 살구나무는 세상에 ‘파수꾼’이며 ‘깨우는 자’인 그리스도와 이스라엘의 파수꾼을 상징한다.     

“살구나무”는 히브리어로 ‘솨케이드’'(ׁד󰚂󰙌, Almond)이며, 이 말은 ‘잠을 자지 않고 있다’(to be sleepless), 또는 ‘경계한다’(to watch)는 뜻의 동사 ‘솨카드’에서 온 말이다. 살구나무는 모든 나무들 중 겨울잠에서 제일 먼저 깨어나는 나무로써, 깨어 있거나 경계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예레미야는 살구나무의 실물 교훈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백성에게 증거하였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 가지”(마케일 솨케이드)를 보여주었다(렘 1:11~12).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솨카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고 하였다.     

살구나무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백성에게 경고하시는 말씀들이 신속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상징하였다. 살구나무가 신속히 봄을 알리듯이 파수꾼은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신속히 알리고 경고해야 한다. 그러므로 황금 등대는 파수꾼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함과 동시에 세상에 빛을 주고 세상을 깨우며 파수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상징한다. 요한은 요한계시록 1장에서 일곱 촛대 사이를 파수하시면서 지키고 계신 그리스도를 보았다. 살구나무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나타나는 또 하나는 아론의 제사장직을 탐내고 반역을 일으킨 자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아론을 자신의 종으로 세우셨다는 표징을 주신 것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론의 마른 살구나무 지팡이에 생명을 주셔서 “움이 돋고 싹이 나고 꽃이 피어서 열매가 열”(민 17:8)린 것이다.     

촛대는 한 개의 줄기와 여섯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성경에서 숫자 ‘6’이 불완전한 사람을 상징하듯이 여섯 가지는 “너희는 가지니....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라는 교훈을 준다.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예수님과 연합하면 ‘충만 수’, ‘완전 수 칠’이 된다. 예수님과 연합된 교회와 파수꾼은 완전하다. 일곱 가지들은 한 성령, 한 진리 안의 다양한 역사를 보여준다. 일곱의 빛은 각각 다른 가지에서 나오지만 근원은 하나이다. 한 나무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빛을 이룬다. 타이터스는 A.D. 70년에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 촛대를 가져갔고 개선문에 촛대의 그림을 새겼는데 일곱 가지가 모두 동일한 높이로 되어 있다. 이것은 모든 가지가 그리스도가 인성으로 승리하신 부분까지, 그리스도에게 이르기까지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교훈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히 2:11). 촛대의 일곱 가지는 시대와 지역적 배경,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완전한 하나의 기별이 선포될 것을 상징한다.     

촛대의 불빛은 기름이 태워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희생 없이는 빛을 낼 수 없다. 촛대에 사용되는 기름인 “감람유”(출 27:20, 21; 레 24:2, 3)는 감람나무의 꼭대기에서 얻은 최상의 것이었다. 이것은 절구에 찧어서 만들어졌다. 성경은 이것을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레 24:2)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고난에 참여하시는 성령의 헌신을 예표하였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에 기도하던 장소는 “겟세마네”(막 14:32) 동산인데 “기름틀(oil press)”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감람산은 올리브 나무로 사방이 둘러싸인 곳이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자주 모이던 곳(눅 22:39, 요 18:2)이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감람유를 찧어내셨다.     

우리의 품성의 변화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내재해 계셔서 하나님의 속성을 넣어 주심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성령은 항상 우리에게 겸손과 고난과 희생을 통해 빛을 발하도록 하신다. 각 시대의 개혁자들은 철저한 헌신과 겸비한 정신을 가지고 복음을 선포하였다. 특별히 1170년대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왈덴스인(Waldenses)들은 중세기 유럽의 개혁 운동의 선봉주자들이었다. 이들은 진리를 옹호하기 위해 수세기에 걸쳐 알프스 산지를 떠돌며 세상의 재물을 포기하고 신앙을 위해 화형주와 교수대에서 죽어갔다. 이들은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처럼 고난을 통해 세상의 빛을 전하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위한 빛의 전달자가 될 수 없다. 끊임없이 밝은 빛을 내게 하는 것은 하늘의 사자들이 금 그릇에 있는 금 기름을 금관을 통하여 성소의 등잔에 넣어 주기 때문이다.    

살구나무의 꽃과 빛은 빛 되신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생애 가운데 역사하심으로 드러내는 품성의 빛을 상징한다. 촛대는 나의 생애의 모든 빛은 그리스도라고 말해준다. 이 빛은 살아있는 나무로 생명 안에서 역사한다. 요한은 예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 1:9)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한 생명에 참여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빛을 증거하고 그의 형상을 증거한다.    

아론이 아침과 저녁으로 향을 사를 때마다 등불을 손질하고, 새로운 심지로 갈아 끼웠다. 등불은 항상 밝혀져서 꺼지지 않아야 하였다(출 30:7~8). 그리고 어떠한 불도 등잔의 심지에 붙이는데 사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놋제단 위에서 타고 있는 불로 친히 하나님께서 점화시켜 주신 불이어야 하였다. 오직 갈바리에서 흘러나오는 빛만이 모든 사람의 생애를 구원으로 이끈다. 그리고 이 등불은 항상 떡상 앞에서 떡상을 밝혀 주었다(민 8:2~3). 우리는 모든 말씀을 십자가의 빛으로 조명해야 한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시 18:28).     

각 사람은 계속 타오르게 해야 할 자기 자신의 빛이 있다. 만일 하늘의 기름이 황금 관들을 통하여 이 등잔으로 흘러 들어간다면, 만일 황금 관이 그들 자신을 비워 버리게 된다면, 만일 자아가 비워진 그릇에 그것이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그리하여 거룩한 기름을 받을 준비가 이루어진다면, 거룩한 기름으로 잘 채워진 그 등은 상당히 효과적으로 죄인들의 길에 그 빛을 던질 수 있다. 주형식(서울 묵동교회 담임목사·목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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