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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의 대부 문동환 목사 98세로 소천
군부독재에 맞서 해직·복직 반복, 민주화 운동 이끌어
기사입력: 2019/03/10 [18:59]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매일종교 뉴스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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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의 대부로 군부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을 한 문동환(98·사진) 목사가 9일 오후 소천했다. 향년 98.

 

고인은 1921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독립신문 기자로 일한 목사 문재린(1896~1985)과 여성운동가 김신묵(1895~1990)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문익환(1918~1994) 목사의 동생이다.

그는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였던 명동촌에서 시인 윤동주 등과 성장하며 민족을 돌보는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38년 은진중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신학교를 다니다 해방 후 조선신학교(한신대 전신)로 편입해 졸업한다. 이후 도미해 웨스턴신학교와 프린스턴신학교를 거쳐 하트퍼드신학대학원에서 종교교육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61년 귀국해 모교 한신대 기독교교육학 교수로 부임했고 67년 서울 수도교회에 부임해 목회했다. 이때부터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탐욕으로 죽어가는 인류와 지구를 살리는 생명의 신앙공동체중요성을 역설했다.

 

유신정권의 탄압으로 75년 한신대에서 해직된 후엔 해직 교수 및 민주 인사 등과 함께 실험적 교회인 갈릴리교회를 공동 목회했다. 이듬해 ‘3·1 민주구국선언문사건으로 2년 가까이 수감됐으며 석방 후에도 동일방직 등의 노동운동을 지원하다 투옥됐다.

 

79년 한신대에 복직했으나 신군부 등장으로 다시 해직돼 미국으로 망명했다 85년 귀국했다. 88년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 평민당 수석부총재를 지냈다. 91년 이후 미국에서 성서 연구에 주력하다 2013년 영구 귀국했다. 문 목사는 노령에도 바벨탑과 떠돌이’(2012) ‘예수냐 바울이냐’(2015) ‘두레방 여인들’(2017) 등을 출간하며 생명공동체와 민중신학 연구에 천착했다.

 

유족으로 해리엇 페이 핀치백(한국명 문혜림) 여사와 아들 창근 태근씨, 딸 영미(이한열기념관 학예연구실장) 영혜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 11호실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한신대 학교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12일 오전 7.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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