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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피흘리는 아픔 겪지 않고는 진정한 목소리 들을 수 없어”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부활절·한국교회·신앙과 인생’을 말하다
기사입력: 2019/04/20 [21:43]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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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부활절·한국교회·신앙과 인생을 말하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85)417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가시 면류관과 장미창은 남았다물질은 불에 타도 고통과 영광이라는 종교적인 메시지는 불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령 전 장관은 부활절을 앞두고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최악의 불구덩이 속에서도 살아남은 면류관과 장미창처럼, 한국교회도 부활절을 맞아 재탄생하고 거듭나는 체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5(현지시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로 빚어진 손실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처절한 고통을 상징하는 면류관과 빛이 들어오는 장미창(rose window: 큰 원형창으로서 중간의 격자가 중심으로 부터 방사상으로 나온 것이다. 교회당의 동서 양쪽에 보통 쓰임)이 보존된 것에서 이와 같은 메시지를 읽어낸 것이다

▲ 이어령 전 장관은 파리 노트르담 대상당 화재와 관련해서 “물질은 불에 타도 ‘고통과 영광’이라는 종교적인 메시지는 불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현재 한국교회와 기독교에 통과제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린 것처럼 교회가 피 흘리는 아픔을 겪지 않고는 진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태아가 4의 산도를 빠져 나와야 세상에 나오는 것처럼, 한국 기독교도 모체로부터 영양을 받는 태내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며, 갈수록 생명이 위협받는 반()생명시대에 생명을 말할 수 있는 곳이 곧 교회라고 역설했다. 정보화시대 이후 다가올 생명 자본주의시대에 생명을 존중하는 교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전 장관은 예수님의 부활은 거듭남, 곧 육체도 정신도 조건도 달라지는 것이라며 세상에 진짜 기적은 부활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슬픔으로 시작한 인간의 삶이 진정한 기쁨으로 할렐루야를 외치며 거듭난 게 기독교인의 삶이라며 기독교인은 이런 삶과 세계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지성을 넘어선 영성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이 시대 사람들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 시대의 석학으로 꼽히는 이 전 장관은 2007년 일본에서 하용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기독교에 입문했다. 이후 지성에서 영성으로’ ‘생명이 자본이다등을 통해 인문학적 토대 위에서 기독교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고 있다. 그는 암 진단을 받은 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을 최소한도로 슬퍼하면서 즐기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며 집필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이어령 반생명 행태 만연한 지금, 교회는 더욱 생명을 전해야

 

한국사회에서 이어령 전 장관은 어쩌면 가장 인문적인 길을 통해 구도(求道)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평생 새로운 우물을 파며 지성을 길어 올렸던 그는 73세이던 20077, 딸 민아 목사의 투병을 계기로 세례를 받았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발걸음을 뗀 뒤 10여년이 흐른 그는 생명과 죽음에 대한 우물을 파고 있었다.

 

이 전 장관은 암 판정을 받고 투병(鬪病)’ 아닌 친병(親病)’ 중이다. 항암 치료를 받지 않고 암과 더불어 일상을 살고 있다.

 

처음 암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내 머리 속에 있는 것들이 다 어디로 갈까, 글 쓰던 것은 다 어쩌지, 이 생각을 먼저 했다. 세상 모든 게 사라지고 죽음에 직면했을 때 비로소 생명을 알게 되는 것이다. 삶의 한계가 있다는 걸 알고 사는 삶이 처음이다. 어느 순간이든 여태껏 살던 것과 아주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죽음이란 순간순간 멈추는 것이다. 늘 보던 제자인데 암 소식을 듣고 오늘 보는 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런 점이 있었구나하고 그동안 못 보던 게 보이더라.”

▲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암 선고를 받은 80대 노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는 3시간여 동안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거의 3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나는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느냐고 물으면 여전히 낮에는 무신론자이다”, “밤이 되면 모든 것이 달리 보인다고 답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6살 때 논두렁에서 굴렁쇠를 굴리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경구)’를 느꼈다. 삶과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왔다. 말할 수 없는 생사(生死)의 문제를 다루는 게 종교이다. 태어나서 몇 살 때부터 기억하나. 죽는 순간을 본 사람이 있나. 제일 중요한 태내(胎內) 속의 기억이 없듯 무덤으로 들어가는 기억도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양 기슭이 없는 다리 위에 서 있는 존재이다. 결국 종교에 대해선 믿음이란 말밖에 말할 수 없다. 안 믿으면 없는 것이다. 구체적인 확증, 그런 건 없다. 믿는 이에겐 종교가 있고, 안 믿으면 희극과 같다. 다만 예술가는 상상력으로 신()에게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다. 내가 문학예술을 했기에 상상력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신학(神學)에서 자 빼면 시학(詩學)이다.”

 

이 전 장관은 현 시대를 반생명시대로 규정했다. 이 시대에 생명과 사랑을 말하는 것이 기독교의 역할이라고 했다.

 

세례를 받았지만, 당시 하용조 목사님에게 교회 안 다니고 헌금이나 주차 봉사 안하는 대신 하나님이 나를 쓰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말과 글을 통해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다. 나의 기독교관은 무엇과도 대신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생명이 자본이다라는 책을 쓴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반생명 시대다. 온통 생명에 반()하는 짓들을 하고 있다. 인간이 이미 기계가 됐다. 의안이 진짜 사람 눈보다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고 마크 트웨인이 말했던 것과 같은, 그런 시대이다. 인간의 지혜로 출산마저 의료화하고 더 이상 사람들은 애를 낳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 시대 문명의 잘못이다. 생명자본주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가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 하지만 그야말로 생명, 하나님의 시대가 올 것이다.”

 

그는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14:6)’라고 강조한 말씀에 주목했다.

 

이걸 빼고 기독교를 말할 수 있을까. 없다. 이성을 가진 자는 진리를 찾고, 구도하는 자는 길로 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얻는 것이 생명이고 영생(永生)이다. 현세의 욕망을 극복했을 때 생명으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생명을 말하는 교회는 드물다. ()의 수단을 말하는 교회는 많으나, 생의 목적인 생 자체를 이야기하고 들려주는 교회는 참으로 드물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자꾸 말하지 말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여기에서 먹고 사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죽지 않는 빵과 생명을 주시려고 한 것이다. 오병이어 다음 날 사람들을 피해 산으로 가신 분이 예수님인데 오병이어를 마치 여기에서 먹을 것을 구하면 주시는 것으로, 그걸 기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참된 교회는 없다.”

 

그러면 크리스천이란 어떤 존재일까.

 

슬픔을 느끼는 인간이 종교를 가질 수 있다. 지금 눈물 흘리는 사람이 크리스천이 될 사람이다. 어제까지는 슬펐지만 예수 믿고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서 생명의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해를 보고 문을 열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며 저것 봐하고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 크리스천이다. 그런데 지금 몇 사람이나 그런 기쁨을 느끼고 있을까?”

 

이 전 장관은 늘 입버릇처럼 자서전은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한국에는 참회, 회개의 문화가 드물다. 한국 사람이 쓴 자서전을 보면, 다들 변명만 한다. 나는 참회할 용기도, 위장할 용기도 없어서 자서전은 안 쓸 것이다.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만든 커다란 기념관도 싫다. 그냥 지금 내가 사는 곳, 내 살결 냄새 나는 걸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 컴퓨터 8대 있는 방, 작업실을 그대로 남겨둬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걸로 충분하다.”

 

훗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물음에 그는 기억되길 바라지도 않아라며 환하게 웃었다.

 

곧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질 걸. 뭘 바라겠어. 내 글 중에 20년이나 40년 뒤, 한두 세대 뒤의 아이들에게 읽힐 수 있는 글이 과연 몇 개나 될까. 그것만이 내가 죽고 난 뒤의 평가이다. 호적 나이로 85, 한국 나이로 86세에 문명 비평적인 글을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평생 우물을 판 사람이다. 무엇이 나올까 갈급함에 늘 새 우물을 파왔는데, 지금 돌아보니 덮혀 있던 옛 우물을 다시 파내는 삶도 있더라. 기독교를 믿고 나니 그런 옛 우물을 팠더라도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남는다.”

 

이어령, 문화부 장관 시절 눈물 자아낸 감사 편지의 사연은

 

이어령 전 장관은 노태우 정부 시절 초대 문화부 장관을 맡은 2년여의 기간 동안 그는 가장 보람됐던 일로 서울 시내 쌈지공원을 조성한 일을 꼽았다. 이는 그가 장관 시절 눈물을 보였던 몇 안 되는 기억이기도 하다

 

그 당시 서울 시내엔 어떤 용도로도 활용하기 힘든 이른바 자투리땅들이 있었다. 변두리로 갈수록 이러한 노는 땅은 더 군데군데 많았다. 대부분 동네 주민들이 연탄 등을 쌓아놓고 쓰는 용도로 활용됐다. 이 장관은 고건 당시 서울 시장과 함께 이 땅의 활용도를 고민했다. “하루는 서울 지적도를 쫙 펴놓고 이 자투리땅들을 전부 찾아냈어요. 그리고 그중 몇 군데를 찍어서 조그만 쌈지공원을 만들기로 결정했죠.”

 

이 전 장관은 작은 공원 안에 유명 조각가의 작품을 세우고 바람에 따라 소리를 내는 풍경(작은 종)들도 달았다. 여러 예술가들의 재능기부가 한몫했다. “이곳에서 주민들이 자유롭게 뛰놀도록 하자. 여기서 숨구멍이 트이고, 아이들이 여기 설치된 작품들을 감상하며 시인을 꿈꾸고 미술가를 꿈꾸도록 하자.” 그의 이런 포부는 곧장 문화부가 왜 공원을 만드느냐?’는 국회의 항의에 부딪혔다. 그때마다 그는 그곳은 가장 문화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 한가운데 놓인 문화 아리아’”라고 강조했다.

 

개원식 때 고건 전 시장과 함께 참석한 이 전 장관은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왈칵 눈물을 쏟았다. “동네 어린아이들이 색종이 같은데다가 맞춤법도 다 틀린 비뚤비뚤한 글씨로 장관님 고맙습니다라고 적어 쭉 붙여놨더라고요. ‘틀림없이 편지를 쓴 아이들 중에 예술가가 배출될 것이다, 이게 문화다라고 생각했어요. 그 풍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확 날 것 같아요.” 

 

이 전 장관은 당시를 회상하며 재미있는 일화도 하나 털어놓았다당시 그가 공원 안에 풍경을 달아놓겠다고 했을 때 직원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한사코 그를 뜯어말렸다. ‘그 동네 사람들은 남의 집 문패까지 훔쳐간다장관이 세상 물정 모른다는 얘기가 그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고집을 부려 풍경을 달았다. ‘댕그랑거리는 게 아름다우니 아무도 떼 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었다

 

우스운 건 그렇게 큰소리치고 나서, 그 공원 가까이 사는 우리 직원 한 명에게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한 번씩 누가 떼어 갔나 확인해 보라고 시켰어요. 그 직원은 아침마다 나한테 보고했어요. ‘아직 안 떼 갔습니다라고. 그런데 그 풍경, 내가 장관 그만둘 때까지 그대로 있었어요. 내 생각이 맞았던 거예요.”

 

이렇게 만들어진 쌈지공원은 30년이 흐른 지금도 서울 일대 곳곳에 남아 마을의 쉼터가 되고 있다. 그는 그 후 소식을 듣기로는 마을 사람들이 공원에서 잔치도 열었대요. 이만한 보람이 어딨을까요라며 지금도 고건 시장 만나면 거기 한번 가봅시다말합니다라고 했다.

▲ ‘창조’라는 단어는 이어령의 한평생을 설명하는 ‘열쇠’와 같은 것으로, ‘창조의 아이콘’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이어령을 부르는 호칭은 아주 다양하다. 교수, 장관, 고문, 이사장. 대개는 고민하다가 쉽게 선생님으로 부른다. 지난 50여 년 이어령이름 석 자 앞뒤론 수많은 타이틀이 붙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지만, 또 어느 것 하나에도 얽매인 적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어디서나 자유롭게 사고했고 자유롭게 글을 썼다.” 그 덕에 그에겐 창조의 아이콘이라는, 누구도 쉽게 얻지 못할 별명이 수년 동안 호()처럼 따라붙었다.

 

창조라는 단어는 이어령의 한평생을 설명하는 열쇠와 같은 것이었다(2013년 호영송 저서 창조의 아이콘 이어령 평전338). 그의 지난 행보는 대부분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의 첫발이었다. 초대 문화부 장관 시절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을 기획했고,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엔 13개국 언어의 24시간 통역 봉사단을 꾸려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 한창 고민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를 2002디지로그라는 신어(新語)를 통해 일찍이 강조한 바 있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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