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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3.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도우심

이부평 기자 | 기사입력 2019/04/25 [05:37]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3.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도우심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이부평 기자 | 입력 : 2019/04/25 [05:37]

거룩한 백성들은 가족들로 구성된다. 가족들은 결혼으로 연합된다. 결혼은 신뢰에 의해 결속된다. 결혼생활에서 신뢰가 깨질 때, 사회 구조가 헝클어지기 시작한다. 오늘날 서구사회에서 우리는 이러한 일이 대규모로 발생하는 것을 본다.

 

하나님께서는 한 몸”(2)으로서의 결혼으로 아담과 하와를 서로에게 주셨지만, 이러한 하나됨을 유지하는 일은 이 타락한 세상에서는 힘든 과제가 될 수 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자마자 죄는 그들 사이의 신뢰를 손상시켰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행한 것을 가지고 그들을 추궁하시자, 아담은 하와 탓으로 돌렸다(3:12). 그 이후로 줄곧 상대방을 탓하는 일이 부부 관계를 손상시켜왔다.

 

한 배우자가 간음을 저질러 정절을 지키지 않았다고 다른 배우자에게 혐의를 제기할 때,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결혼생활을 아예 끝장내는 행위도 정당화된다(5:32). 설령 그 주장이 사실무근이라 할지라도, 의심은 결혼 관계가 그 위에 서 있는 토대를 파괴시킨다. 사적인 성적 문제에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는 것에 관해서는 한 배우자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도 어렵고, 다른 배우자가 설명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의 결혼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 민수기 511~31절은 아무런 잘못된 일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배우자에 대한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의 배우자들이 극복하도록 돕기 위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최선을 하셨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말씀들 중 몇 가지 측면은 현대 독자들에게 이상하게 보이며, 심지어는 역겹게 보이기도 한다. 가장 충격인 것은 여호와께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심을 처리하는 절차는 제공하셨지만, 간음을 저지른 의심을 받는 남편에 관하여는 그에 상응하는 아무런 지시도 주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특별히, 간음을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는 아내에 대한 의식이 가혹하고 굴욕적인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매우 불공평해 보인다. 예식 절차는 매우 특이하다. 특별히 여인이 성막 바닥의 티끌을 섞은 물을 마셔야 하는 부분에서 특별히 그렇다(17,24).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려고 하셨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이스라엘 사회에서 남자들이 기본적으로 법적인 문제들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여자들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현대 그리스도인 여성들을 법적 영역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여호와께서는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의 무리와 함께 일하고 계셨다. 남자들은 간음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이스라엘 법정을 주관했다. 그래서 남자로만 구성된 법정은 남편 쪽으로 쉽게 기울어질 수 있었다. 따라서 간음의 의심을 받는 아내는 지금까지 남편에게 정절을 지켜왔다 할지라도 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에 직면할 수 있었다.

 

간음으로 고소된 무고한 여성들은 남자들만으로 구성된 법정이 그들에게 린치를 가할 수 없도록 특별한 보호를 필요로 했다. 간음으로 고소된 남성들은 그러한 보호가 필요 없었고, 따라서 그들을 위한 아무런 의식도 없었다. 이스라엘의 사법 체계는 사형을 언도하기 전에 최소한 두 명의 증인을 요구하였다(17:6; 19:15). 그리고 간음한 여인과 통정한 남자도 그녀와 함께 사형에 처해질 것이었다(22:22 참조). 이러한 규정들은 근거 없는 고소로부터 남성과 여성 모두를 보호하였다. 입증할 수는 없어도, 혹은 상대 남의 신원을 확인할 수는 없을지라도, 남편은 아내가 외간남자와 놀아났다는 확신을 떨쳐 버릴 수 없을 수 있었다. 그 남편은 아내에 대한 거짓증언을 꾸며낼 유혹을 받을 수 있었다. 그가 아내와 결혼생활을 지속하더라도 그 결혼이 결코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이렇게 의심받는 여성들과 그들의 결혼생활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문제를 인간법정에서 취하여 자신이 친히 판단하셨다. 하나님 자신이 그분의 성막 본부에서 판결을 내리신 것은 이것이 유일무이한 사례이다. 그분께서는 오직 여성들에게만 최고 재판 심리를 허락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간음 혐의를 받는 여자들에게 유죄나 무죄를 선고하기 위해 정교한 예식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정확히 아셨으며, 제사장의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그분의 뜻을 알리시는 것 등과 같은 수단을 통해서 휠씬 더 단순하게 그분의 판결을 통보하실 수 있으셨다(28:30, 27:21). 그러나 성소에서 행해지는 엄숙한 예식은 의혹을 품는 남자에게 정의가 충만히 실현되고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판결이 옳다는 깊은 인상을 줄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내를 정죄하신다면 그의 의심은 확증될 것이며, 아내는 형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그녀가 무죄하다고 옹호하신다면, 남편은 긴장을 풀고 아내를 주저 없이 받아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그들의 결혼생활은 치유될 수 있을 것이었다.

 

의심을 풀기 위하여 남편은 소제를 가지고 그의 아내를 성막에 있는 제사장에게 데리고 간다. 그 예물은 기름도 붓지 않고 유향도 두지 않은 것이었으며(5:15), 일반적인 소제(2:1)와는 다른 것이었다. 제사장은 그 여자를 재판관 역할을 하실 하나님 앞에 서게 하였다. 그녀는 하나님 앞에 겸손의 표시로 머리를 풀어 내렸고, 제사장은 그녀의 손에 소제물을 두었다(5:16,18). 그 다음에 그는 그녀로 하여금 맹세를 하게 시켰는데, 그것은 그녀의 남편에 대하여 정절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녀에게 임할 조건적인 저주였다(19-22). 제사장은 저주의 말을 두루마리에 쓴 다음 성막 바닥의 티끌 취하여 섞은(17) 거룩한 물에 빨아 넣어 그 글자들을 지웠다(23). 이것은 독한 양조주였다! 그 다음에, 제사장은 하나님께 소제를 드렸고, 마지막으로 그 여인으로 하여금 그 물을 마시게 하였다(24-26).

 

그 액체가 간음 혐의를 받는 자의 몸으로 들어갈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징벌의 유무가 하나님의 판결을 드러내었다. 여인이 범죄에 대한 양성 반응을 보인다면, 그녀의 생식 기관들이 손상을 입을 것이며, 더 이상 자녀를 낳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녀가 무죄하다면 그녀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그녀의 생식능력도 보존될 것이다(27,28).

 

이 절차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으로서, “미래 임신 불능테스트였다. 이것은 순결과 거룩함은 양립할 수 있지만, 부정과 거룩함은 서로 적대적이라는 원칙에 근거하고 있다. 레위기 7:20, 21절과 비교해 보라. 이 구절에서, 신체의 제의적(祭儀的) 부정의 상태에 있으면서 거룩한 희생의 고기를 먹는 자는 누구든지 끊어질 것이다. 즉 남자든 여자든 내세를 잃는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후손의 계보가 끊어지는 일을 통하여). 민수기 5장에서 시험하는 물질은 거룩한 물이었다. 거룩한 성막 바닥에서 취한 티끌은 그 거룩함을 높여주었으며, 그것의 시험하는 기능은 상징적으로 조건적인 저주를 그 속에 넣음으로써 강조되었다. 도덕적으로 순결한 여인은 거룩한 물질과 접촉하였을 때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죄가 있는 여인은 그녀의 도덕적 부정과 하나님의 거룩하심 사이에서 발생하는 나쁜 화학적반응에 의해 형벌을 받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간음 혐의를 받는 아내에 대한 예식은 간음 억지력을 발휘했다. 아무런 인간 증인들이 없다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시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으셨다. 인간의 법정에서 징벌을 모면한 여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육체적 고통과 (히브리 여인에게는 큰 타격인) 불임의 슬픔, 그리고 간음(Adultery)을 뜻하는 주홍 글씨 A처럼 확연하게 드러나는 항구적인 낙인으로 고통을 겪을 수 있었다 (5:27). 이런 방식으로 여인에게 유죄선고를 내리는 것은 종종 남성 공범자를 체포하도록 이끌었다.

 

반면에, 하나님에 의하여 무죄로 판명된 여인은 명망이 더럽혀지지 않고, 그녀의 결혼 생활이 온전히 회복된 상황에서 삶을 계속 영위해 나갈 수 있었다. 이것은 확실히 아내와 남편에게 크나큰 복이 될 것이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의심은 종종 일평생, 혹은 여러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 전혀 근거가 없는 때에라도 의심은 저절로 사실인양 포장되는 경향이 많고, 그것이 접촉하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가족들이 신뢰하는 사랑으로 연합되어 강해질 수 있도록 의심에서 놓여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 충성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분이 그들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사실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분으로부터 숨기워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유일한 분별력 있는 접근 방식이 다윗의 시에 잘 나타나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139:23,24).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히 이것은 위협적이 아니라 안도감을 가져다 준다. 다윗이 비극적인 간음을 행했을 때에라도 (삼하 2:11), 하나님은 그를 회개시켜 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순결로 이끌 수 있으셨다(51).

 

한나 세네쉬는 전지(全知)한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갈망을 가졌다. 그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젊은 유대계 헝가리인으로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다가 나찌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녀는 혹독한 고문과 함께 심문을 받다가 결국은 총살형 집행대에 의해 총살을 당했다. 한나는 1942년에 아래와 같은 시를 썼다(현대 히브리어를 번역하였다).

 

고독

 

말없이, 수색,

자백, 거짓말 없이,

라고 묻지 않고도

모든 것을 이해하는 분을 내가 만날 수 있을까.

 

하얀 천처럼 그분 앞에서 펼쳐놓고 싶어요,

마음과 영혼...

쓰레기와 황금을.

직관력 있으신 그분은 이해하실 거예요.

 

그리고 내가 그 가슴을 약탈하여,

모든 것을 비우고 다 주어버린 후

나는 비통도 고통도 느끼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얼마나 부요하게 되었나는 알 수 있을 거예요.

 

여기 또 다른 한 여인은 그런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죄의 의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죄인이었다. 주께서 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그분께로 나아갔다.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거기 데려다주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주님께 헌물을 가져갔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풀어 내려서 눈물로 겸손하게 그분의 발을 씻기고 자신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아드렸다.

 

그러자 그 바리새인은 죄인으로서 그녀가 한 일들을 가지고 그녀에게 낙인을 찍었다(7:37-39). 주님께서는 그녀가 행한 모든 일들을 다 아셨다. 그리고 그분은 또한 바리새인이 행한 모든 일들도 아셨다. 심지어 그녀를 비난하는 그의 생각도 읽으셨으며, 그 놀란 바리새인이 아무 말도 큰 소리로 한 것이 없었지만 그 생각들에 대해 답변하셨다. 민수기 5장에서 간음을 의심받는 무죄한 여인을 옹호하신 것처럼, 주님은 그 여인이 무죄하다는 판결내리지 않으셨다. 대신에 그분은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7:48,50). (주형식 목사)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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