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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4. 평민을 위한 특별한 거룩함
그분의 이름을 소유한 백성,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그분께 속한다
기사입력: 2019/05/09 [07:50]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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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아론의 후손으로서 남자들만이 특별히 성막에서 봉헌된 제사장으로 봉사함으로써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다(8).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거룩함의 수준을 결코 얻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남자들과 여자들 모두에게 나실인 서약을 함으로써 일정 기간 다른 종류의 특별한 거룩함을 경험할 기회를 주셨다. 이 서약은 금욕적인 생활과 일단의 희생제물을 드림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특별한 헌신을 보여주었다(6). 이런 방법을 통해 주님께서는 그들이 제사장 나라거룩한 나라에 속하였음을 근정하셨다(19:6).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목회자를 레버런드”("Reverend"-목사에 대한 경어 호칭)성하”(종교지도자에 대한 존칭)로 부르거나 사제로 간주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목회자들을 특별히 거룩하다고 여긴다. 진정 목회직은 영적 리더십과 모범적인 삶으로의 드높고 거룩한 부르심이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벧전 2:9)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베드로에 따르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장직에 속한다. 신약에서, 교회는 제사장 직분을 갖고 있지 않다. 교회가 제사장 직분이다.”

 

그래서 목회자로서 급여를 받지 않는다 할지라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성도들은 넓은 의미에서 목회자들이다. 하나님께 대한 중보자라는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우리의 유일한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시다(특별히 히 7-10장을 보라).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거룩해야 한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11:44을 인용함). 나실인의 서약을 이행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지만 (희생 제도는 폐지되었다), 나실인에 대한 지시 사항들은 하나님께서 전문적인 목회자가 아닌 남녀들의 특별한 헌신에 대하여 얼마나 큰 가치를 부여하시고 영예롭게 하시는지를 보여준다.

 

서약 기간 동안, 나실인은 세 가지를 삼갔다.

 

1. 포도로 만들거나 발효되기 쉬운, 그와 유사한 단 과일로 만든 음식이나 음료(6:3,4).

2. 머리를 깎는 일 (5).

3. 심지어 가장 가까운 친족을 장례 치르기 위해서라도 시신에게 가까이 하는 것(6,7). 

 

첫째와 셋째 규정은 제사장이 준수하는 금지 사항들을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제사장은 성막에 들어갈 때에만 포도주나 단 과일로 만든 여하한 종류의 음료(이 경우에는 발효된 음료)도 마시는 것이 금지되었다(10:9). 그리고 오직 대제사장만이 가장 가까운 친족의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21:11; 14절의 일반 제사장과의 비교 참조). 머리카락이 하나님께 드려진 나실인의 생활양식은 그 머리가 특별히 봉헌된 대제사장의 그것과 가장 흡사했다(8:12; 21:10).

 

나실인으로 봉헌한 기간의 클라이막스는 그 기간 끝에 이르러 오는데, 그 기간이 끝나면 그 사람은 일단의 희생제물을 드렸다. 거기에는 속죄제(정화제)와 번제, 화목제(화제)의 제물들이 포함되었는데, 무교병 한 광주리와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들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들과 아울러 드렸다(6:13-17,19,20). 이러한 여러 제물들을 드리는 데는 비용이 꽤 많이 들었다(21:24 참조). 나실인은 이것과 함께, 그가 무엇을 서약했던지 간에 그것들을 그의 형편에 맞게 드릴 것이었다.

 

나실인의 희생제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스라엘이 제사장을 성별할 때 드리는 것-정화제, 번제, 그리고 화제와 매우 비슷한, 제사장을 기름 부을 때의 제물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유사하였다. 위임식 제사에는 무교병 한 광주리와 아울러 드려졌다(8). 하지만 제사장의 위임식 예식이 주님께 대한 그들의 평생에 걸친 봉사의 출발점에서 일어나는 데 반하여, 나실인의 희생제물은 잠정적인 성별 기간의 끝에 드려졌다.

 

끝을 맺는 의식의 일환으로서, 나실인은 하나님께 드려졌던 자신의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아래 있는 불에 태웠다(6:18). 그 머리카락은 하나님께 대하여 사람 전체가 헌신하는 것을 대표했기 때문에, 그것을 드리는 것은 이스라엘의 예식 체계가 인간 희생 제물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것이었다. 그것은 헌신한 한 인간의 희생, , 죄를 없애기 위하여 스스로를 드리기로 서약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10:4-7, 40:6-8 인용).

 

그분의 구원을 약속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서 태어날 평생 나실인(삼손)을 위한 지시 사항들을 주셨다. 그분은 자신을 기묘자라는 이름을 가진 분으로 밝히셨다(9:6 참조). 그러고 나서 그분은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것을 예표하는 번제의 불꽃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셨다(13:9-23).

 

예수께서는 나사렛(나자레스:Nazareth) 출신이셨지만, 나실인(나지라잇:Nazirite)은 아니셨다. 발음상 비슷해 보인다 할지라도 두 단어 사이에 언어적 연관성은 없다. 따라서 그분께서는 화가들이 자주 그리는 것처럼 나실인의 긴 머리를 하지는 않으셨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실인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의 그분의 잠정적인, 헌신한 생애의 기간의 끝에 그분 자신을 희생 제물을 드리셨다. 그리스도의 이러한 희생은 그분에게, 하늘에서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7:25)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실 자격을 부여해 주었다. 그러므로 십자가상에서 그분의 희생은 이 땅에서의 그분의 생애와 하늘에서의 봉사 사이에 위치한다.

 

나실인은 제물을 다 드린 이후에 다시 포도주를 마실 수 있었다(6:20).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러한 특권을 포기하셨다. 그분은 죽음 직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6:29). 그분께서 그것을 우리와 함께 마실 수 있을 때까지 결코 그것을 마시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함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예컨대 순결하거나 부정한 간음 혐의를 받은 아내(5:11-31)에 대한 예식들과 거룩한 나실인 예식(6:1-21) 등과 같은 예식들을 집전함으로써 그분의 대표자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된 존재가 되었다. 백성을 위한 중보자로서 제사장은 또한 그들을 위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드림으로써 그들에게 복을 빌었다. 그처럼, 아론은 그의 제사장 취임 예식의 끝에 백성들을 축복하였다(9:22; 23절 참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비는 것은 매우 중요해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할 지에 대한 본보기로 주기도문을 주신 것과 꼭 마찬가지로(6:9-13), 민수기 6:24-26절에서 하나님 자신이 친히 그분의 제사장들에게 이렇게 축복하라는 말씀을 주셨다. 우리가 구약성경의 주기도문이라 여길 수 있는 민수기 6장의 제사장의 축복은 아래와 같다.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을 주시고 지키시기를 기원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당신께로 향하여 비추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기원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당신께로 향하여 드시고 당신께 행복을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6:24-26)

 

이 간략하면서도 아름다운 축복은 운문으로 구성되었다. 인간에 의해 말해지고 하나님께 그분의 백성을 축복하기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기도는 요청이다(115:15; 134:3 참조). 주님의 대표자가 그분께서 마련해 주신 단어들을 사용하여 간구한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기꺼이 응답할 준비를 갖추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져다준다. 그분께서는 그분께 탄원하라고 다음과 같이 초청하신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7:7). 우주의 왕께서 친히 은혜의 보좌로 담대하게 나아오라고 촉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은택들을 구하는 것에 관하여 소심할 필요가 없다(4:16).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시며, 보호와 행복을 포함한 그분의 선한 은총의 혜택들을 풍성하게 베풀어 주시기를 열망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호의를 자신들의 행위로 얻고자 애쓸 필요가 없다. 단지 그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제사장의 축복은 그분의 백성을 향하여 환하게 빛나고, 또 그들을 향하여 드리워진 주님의 얼굴을 언급한다. 이 두 이미지 모두 만복이 흘러나오는, 그들에 대한 그분의 은혜스러운 호의의 적극적 태도를 표현한다. 그들은 각각의 은택 하나 하나를 위하여 얻기 위하여 분투할 필요가 없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을 제공해주시는 한분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민수기 627절은, 제사장이 백성들을 축복하고자 할 때에,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한다. 축복의 확신은 하나님의 이름을 소유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그분의 이름을 소유한 백성들은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그분께 속한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정체성을 제공하시며, 그들은 그분의 돌보심 아래 있다.

 

주님의 이름은 또한 그분의 품성과 명망을 대표한다(9:16; 36:23). 그러므로 그의 이름을 지니는 것은 특권이자 책임이다. 우리의 존재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모두 그분의 이름과 연관되어 있다.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도록 허락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분께 이끌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을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시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주장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그분의 은혜의 사역과 합력하기를 실패한다면, 그분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는 것,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다(20:7).

 

하나님의 선하심과 호의는 그분의 독생자란 선물을 통하여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이 얻을 수 있다.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2:14).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일 모든 사람의 구원을 준비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들려지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분께로 오라고 초청하신다(12:32).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대제사장이시며, 언제든지 그분의 복을 내려주실 준비를 갖추고 계신다. 그들의 이름이 과거에 어떠했던지 간에, 그분은 그들에게 새길 새 이름, 그들이 영원히 그분께 속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새 정체성과 품성을 갖고 계신다(3:12).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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