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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앱 숫자와 '득룡망촉(得隴望蜀)',그리고 해탈

신민형 | 기사입력 2019/05/12 [19:25]
하늘소풍길 단상

헬스 앱 숫자와 '득룡망촉(得隴望蜀)',그리고 해탈

하늘소풍길 단상

신민형 | 입력 : 2019/05/12 [19:25]

학창시절엔 성적 올리려고 기를 썼다. 직장생활에선 인사고과로 남보다 빠른 승급, 승진하려고 애썼다. 결혼 이후엔 좋은 동네와 좋은 집, 좋은 차로 소위 상류사회에 합류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러나 중고등대학 모두 2차 학교 다녔고, 평생직업이라 생각했던 직장은 일찍 그만두었으며. 부채도 자산이라며 부풀리던 상류사회의 허세는 풍선처럼 터져버렸다.

 

그렇지만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어서 2차 학교서 쌓은 인연과 행복이 1차 학교만큼 컸다. 평생 직장에서의 출세를 누리지 못했지만 그보다 변화무쌍하고 생동감 넘치는 즐거운 삶이었다. 또한 허세를 청산하니 오히려 나를 위해 사용하는 돈과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일류, 출세, 성공이란 게 어차피 빈손으로 돌아갈 인생에서 보면 고만고만 별차이 없으며 그렇게 목매달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게되는 과정이었다. 안분지족(安分知足),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경지다.

 

그러면서 잘난 척, 즐겁게 시작한게 '하늘소풍길 산책과 단상'이다. 맨발로 흙길을 걷다가 한적한 숲속 벤치에 누워 하늘 바라보고 새소리 듣는 시간에 도취했다. 그런 즐거움 속에 사계절 나뭇잎새와 그를 통해본 하늘의 변화를 담은 사진첩도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산책 후 아내를 불러내어 예전에는 갖지 못했던 조촐한 외식을 즐길 수 있었다. 아둥바둥 등급을 유지하려 해 누리지 못했던 여유였다. 제로 상태의 파산에서 조금의 용돈이 지갑에 들어오면 함께 아둥바둥해야했던 아내에게 아낌없이 순대국 칼국수를 샀는데 그 용돈 사용만큼 풍족하고 보람있게 느낀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쓴 돈이야말로 진짜 '내돈'임을 절감했다. 대출 낀 강남아파트, 오르락내리락 주식은 쓰지 못하는 한 내 돈이 아니었다.

 

이런 안빈낙도, 안분자족의 생활을 하늘소풍길 산책과 함께 즐기며 일주일에 한번쯤은 '하늘소풍길 단상'이라는 페북 글을 올렸다. 사계절 변화와 마음의 흐름을 정리한 수년간의 느긋하고 만족스런 세월이기도 했다.

▲ 헬스 앱 기록표와 옛 산책에서 담은 사계절 하늘 모습.     © 매일종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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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그런 느긋함을 기록했던 페북의 '하늘소풍길 단상'이 뜸해졌다. 그저 괜찮은 칼럼과 옛 추억을 공유하는 폐북 활동이 주가 되었다. 감정이 메말라가고 단상을 정리할 열정이 사라졌거니 했다.

 

그러나 최근 족저근막염을 앓으면서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족저근막염의 원인이 너무 긴 산책시간에 있었으며 그토록 많은 걸음을 걷게 만든 것은 삼성헬스앱이었는데 바로 이 앱이 하늘소풍길 감성과 단상정리의 여유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앗아간 것이다.

 

걸음 수를 체크하고 가입자들의 순위를 보여주는 삼성헬스앱은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이 앱을 지난해 설치한 뒤로 기록도전에 취했다. 숲속 낮잠즐기기, 옹달샘 등목시간이 은연중 사라졌다. 차라리 그 시간에 많은 걸음 거리와 숫자로 헬스앱 도전자 백수십만명과의 경쟁에서 앞서가고 싶었던 것이다. 상위 1~2% 등급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한두걸음 더 걸어도 앱에서 앞서간 순위를 바로 보여주니 그 유혹을 떨칠 수가 없었다.

 

구성주민센터서 단국대에 이르는 법화산 종주 횟수도 점점 늘어났다. 기록 성취가 산책의 가장 큰 즐거움으로 대체된 것이다. 성적, 인사고과, 생활수준의 등급을 올리려고 기 쓰던게 걸음 수에 의한 건강등급에 목매는 데로 옮겨간 것이다. 산책 거리와 걸음 수 체크 이외에도 건강한 걸음 수 기록도 있었는데 건강한 걸음 비율을 높이기 위해 빠르고 큰 걸음을 걸었으니 예전의 느긋한 산책은 멀어졌고 발에 탈이 날 수 밖에 없었다.

▲ 소걸음 산책하고 페북 글 올리며 머문 법화산 샛길 모습들.     © 매일종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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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바라는 것은 끝이 없다'는 후한서 잠팽전의 사자성어 '득룡망촉(得隴望蜀)'은 나이 불문, 여건 불문 항상 적용되는 말이다.

 

나이 먹으며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소위 무소유 삶으로 유유자적해졌다고 자부했지만 결국 또 다른 쪽 욕심으로 옮겼을 뿐이다. 만약 다시 학교 다닌다면 성적 올리려고 노력할거고, 직장 다니게 되면 남들보다 성실히 근무해 인정받고 싶어할거고, 애들 출가 안 시켰으면 좋은 환경 만들어주려고 기를 쓸 것이다.

 

안빈낙도, 안분지족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지나온 세월을 폄하하면 안된다. 삶의 과오가 아니라 열심히 성실히 사는 한 과정이다. 그 과정은 삶의 순리이기도 하다. 안빈낙도, 안분지족도 내 나이와 여건상 그에 어울리는 순리의 과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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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숲속 벤치에 누워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다가 페북글을 올리는 시간을 갖는다. 이렇게 숲속 벤치에 몇시간째 머무는 것은 헬스앱 설치와 기록도전 이후 처음이다. 족저근막염 발병 덕분이다.

 

그런데 힐끔 헬스앱 기록을 엿보게 된다. 상위 17% 등급이다. 이젠 상위 1~2% 도전이 아니라 20%를 넘어보려는 도전이다. 득룡망촉의 욕심이 반대로 작용하는 것이다. 되도록 무리한 걸음을 자제해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다. 과거 일류, 출세, 성공을 지향했던 것처럼 이제 건강 챙겨 고종명 복 누리고자 하는 순리의 과정이다. 건강염려증이라는 부정적 표현은 금물이다.

 

생이 지속되는 한 득룡망촉은 활력소다. 진정한 무소유, 안분지족, 안빈낙도의 기쁨을 누리게 하는 해탈은 숨이 끊어져야 가능하다. 그리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 바로 해탈에 이르는 길이다. 다시 느긋해진 오늘의 하늘소풍길 산책도 내 여건과 나이에 걸맞는 삶이자 해탈과 초월로 가는 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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