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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신흥부유층 ‘돈주’, 권력층과 공생…‘계획경제’ 흔들어
북한식 ‘시장 제도권 편입·자율성 제고’ 높여…김정은식 새 경제관리법 이끌어
기사입력: 2019/06/04 [20:08]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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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식 시장 제도권 편입·자율성 제고높여김정은식 새 경제관리법 이끌어     

 

북한 주민들도 직접 상점에 가지 않아도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쉽게 물건을 살 수 있다. ‘만물상’ ‘옥류’ ‘내나라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식품과 화장품, 의약품, 신발 등 필요한 제품을 신용카드로 구매하기도 한다. 판매자에게 상품에 대한 문의나 의견을 남길 수도 있으며, 상품 생산자들 사이에서 가격을 낮추기 위한 경쟁도 활발하다.

 

평양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은 대성백화점에는 샤넬, 코치, 오메가, 다이슨 등 고가 브랜드의 제품들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모습을 뽐내고 있다. 이 백화점은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쇼핑뿐 아니라 수영, 사우나, 식사, 게임 등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종합쇼핑몰로 탈바꿈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 당국이 2000년대 초반 이후 도시 개발을 본격화하자 돈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부동산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철거를 앞둔 주택의 딱지를 웃돈을 얹어 구매하거나 편법으로 지인의 이름을 도용해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보유했다. 투기 열풍으로 10년도 안 돼 주택 가격은 50배 넘게 상승했다.

 

북한의 이런 모습은 여느 시장경제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은 계획경제를 강하게 추진해왔지만 변화의 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시장경제가 도입되는 등 크게 변하고 있다. 그간 북한 지도자들은 시장은 자본주의 온상이라며 사회주의 장벽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 평양 만경대구역의 광복지구상업중심(센터)에서 주민들이 물건을 고르는 모습/사진=조선신보    

 

이러한 노력에도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후 주민들의 자구적 경제활동이 시작되면서 장마당을 중심으로 한 시장화는 당국의 통제와 묵인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확대·심화돼왔다. 조부, 부친과 달리 유학파 출신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직후부터 시장경제의 힘을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시장을 제도권에 편입하고 기업의 자율성 제고를 위한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돈주가 있다. 돈주는 장마당으로 몰려든 주민을 상대로 부()를 축적한 신흥 부유층이다. 당국과는 합법도, 불법도 아닌 회색지대에서 공생하고 있다. 민간 은행이 없는 북한에서 돈주는 국영기업이나 개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부업을 하기도 한다. 중국 접경지역의 정보망을 활용해 환차익으로 이익을 거두기도 한다. 무역회사부터 써비차(service+car·사람이나 짐을 나르는 영업차량)’까지 사업영역도 다양하다.

 

회색지대는 김 위원장의 집권 이후 급격히 확장되고 있다. 대북 제재 여파로 곳간이 바닥을 드러내고 수출길도 막힌 북한은 돈주들의 장롱 속 돈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외화의 출처를 묻지 말고, 투자를 받고 활용하라고 지시한 것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과거 북한에서는 국가가 모든 상업시설을 운영했지만 이제는 시장경제 국가와 같은 형태로 돈주가 국영기업의 명의를 빌리거나 국가 소유의 건물을 임대해 직접 인력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사업체를 운영한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 등이 2015년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식당 64.7%, 상점 57.3%, 지방산업공장 25.7%, 중앙공업공장 20.9%가 사실상 돈주와 같은 개인이 국영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위원장 집권 전인 2012년 조사보다 늘어난 수치다.

 

김 위원장이 공을 들인 평양의 여명거리도 사실상 돈주의 작품이다. 북한 당국은 20163월 착공해 1년여 만에 왕복 8차선 도로에 82층 아파트 등 고층 빌딩 100동이 늘어선 여명거리를 조성했다. 대북제재 속에서도 돈주들은 국영기업의 명의를 빌려 투자하고, 중국에서 건축자재를 신속하게 조달하며 이 대형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돈주들을 등에 업은 김 위원장은 여명거리 외에도 평양에서만 창전거리(2012), 은하과학자거리(2013), 위성과학자주택지구(2014), 미래과학자거리(2015)를 건설했다.

▲ 평양의 신시가지 여명거리    

 

주택시장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사회적 혜택의 일환으로 직장을 통해 근로자들에게 주택을 무상으로 공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돈주는 아파트 건설에 필요한 자금과 자재를 조달하고 그 대가로 아파트 입주권을 받아 일반 주민에게 그 아파트를 판매하며, 건축 과정에도 참여한다. 돈주의 투자수익은 통상 200300%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이나 기업소 입장에서도 국가 할당량을 채울 수 있고 근로자들의 주택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조선신보가 5월18일 공개한 평양 대성백화점.    


돈주들의 주택 사유화를 눈감아주던 북한 당국은 지난 3월 함경북도 나선경제특구에 한정해 주택의 사유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까지 했다. 이 지역 돈주와 노동당 간부들은 자본과 권력 등을 총동원해 기존 주택의 입주권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KDB미래전략연구소 한반도신경제센터 김철희 연구위원은 “(이번 조치는) 북한이 주택의 개인 소유권을 처음으로 인정한 정책으로, 기존의 영구임대 형태로 입주한 주민에게 일시불 또는 25년 분할납부 조건으로 소유권을 주는 것이라며 북한 정부는 주택판매를 통해서 민간자금을 흡수하고 재산세 등 세수확대로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시범실시 후 법적·제도적 보완을 거쳐 대도시로 확대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평양 지역의 돈주들이 갖고 있는 현금보유액은 얼마나 될까

 

북한의 경제 구조는 폐쇄적이어서 데이터가 오픈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측정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하지만 북한경제를 경험한 무역회사 간부들을 통해 북한 실물경제의 현황에 접근할 수 있다. 이에 북한 실물경제 부문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오고 있는 숙명여대 곽인옥 교수가 기고한 글과 테이타 등을 통해 이를 살펴본다

▲ 곽인옥 숙명여대 교수

2017년 기준으로 북한 내부의 현금보유액은 총1000억달러(100)정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 중에서 민간부문에서 300억달러(30), 정부부문에선 700억달러(70) 정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미국과 적대(敵對)국가로 대결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무역회사와 장마당의 큰 돈주들은 대부분 달러를 사용하고 있으며 북한 전체의 화폐유통으로, 전체의 70%가 달러로 유통되고 있다.

 

평양지역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이 집중돼 있는, 명실 공히 북한의 심장이요 핵심지역이다. 이곳에는 국가기관의 중심지로서 중앙당, 인민무력부, 보위부, 보안성 청사들이 위치해 있다. 또한 교통물류 중심지로서 평양역, 시외버스터미널과 무역회사물류창고가 집중 배치돼 있다.

 

무엇보다 평양은 북한경제를 이끌어가는 특권기관 산하 무역회사의 본사와 대표적인 시장이 구역마다 2개가 있으며 평성과 함께 전국적인 도매지역으로서, 물품을 지방으로 운반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22개 명문대학교가 집중되어 있어 중요 인적자원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체사상의 중심지인 금수산 태양궁전도 위치해있다.

 

평양지역 중심구역은 200만명이 살고 있는데, 상류층은 5%10만명이다. 이들은 가계소득이 한 달에 2000달러(200만원)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대돈주, 중돈주들이다.

 

대돈주들은 1000만달러(100억 이상)100, 100만달러(10억 이상)이상이 1000명으로 파악된다. 1000만달러를 가지고 있는 100명은 서로 카르텔을 형성하여 ‘100인 클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김일성, 김정일 친척들이나 중앙당 산하 무역회사 간부들로 막강한 특권을 누리고 있는 자본가들이다. 또한 고난의 행군 이후 장마당을 통해 자금을 축적한 신흥자본가들이 있다. 100만달러(10억이상) 1000명은 중앙당부장, 인민무력부장, 보위부장, 보안원장(국장), 중앙당산하 무역회사 간부 등 국가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무역회사와 장마당을 연결해주는 도매상인들이 신흥자본가세력으로 성장해온 사람들이 있다.

 

중돈주는 10만달러(1억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로서 10만명이다. 이들은 겉으로 계획경제처럼 보이지만 세세하게 뜯어보면 명의는 국가로 되어있지만 개인이 투자해서 운영하는 개인식당, 개인상점, 개인사우나 및 수영장 등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법관(보위부, 보안원, 검찰소)과 군부(군관)들의 중간간부들도 이에 속한다.

 

중류층은 15%, 30만명으로 한 달 가계소득이 1000달러(100만원)이상 수입을 올리는 소돈주들이 이 계층에 속한다. 이들은 무역회사와 장마당을 연결하는 대규모 도매상인들과 가내수공업자들이다

평양지역 돈주들의 현금보유액 현황 (2017년 기준

  

다음으로 하류층은 80% 160만명이다. 이들은 북한에서 먹고살아가기가 가장 어려운 계층으로 3개 단계로 분류하였다.

 

첫째, 1년 생존이 가능한 15만 세대이다. 이들은 각종 도매장사, 시장매대장사, 택시운전사, 무역회사 창고장을 하는 사람들이다. 새롭게 부임된 법관(보위부, 부안원, 검찰소)과 군대 군관이 이에 속한다.

 

둘째, 1개월 생존이 가능한 15만 세대이다. 이들은 중상류층의 집을 수리하거나 목수 일을 하며, 메뚜기 시장에서 음식장사, 석탄장사, 야채장사 등을 하는 사람들이며, 장마당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셋째, 3일 생존이 가능한 사람들로서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10만세대로 10~100달러 밖에 현금을 보유한 것이 없어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변변한 직장이 없고 장마당에서 행방꾼, 구르마꾼, 달리기꾼으로서 장마당 단거리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평양지역은 중상류층과 하류층이 20:80으로 빈부(貧富)의 격차가 매우 심하며, 권력을 갖고 있는 특권기관의 간부들이 대돈주이며, 무역회사와 장마당을 통해 신흥자본가들이 급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평양 주민 200만명 중에서 50%100만명은 변변한 직업 없이 장마당에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평양 주민들의 경제생활에 있어서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획기적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며, 남북경제협력은 이러한 측면에서 매우 필요하다고 하겠다.  

 

스파게티 vs 강냉이밥에도 빈부 양극화 가속

신흥자본가 기호식품 즐기며 호화 생활하층민 잡곡 위주 주식만박탈감 확산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북한은 시장화로 인해 계층사회로 변모하였다. 대북제재로 경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신흥 자본가 돈주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대다수 주민들의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고난의 행군시절 국가의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삼았던 돈주들은 대북제재라는 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있다. 자금줄이 묶이면서 장마당이 위축될 기미를 보이자 개인이나 기업소에 현금을 빌려주거나 밀수한 물건을 공급하며 시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는 상황에서도 돈주들은 여전히 명품을 몸에 걸치고 외국인 전용 호텔에서 먹고 마시며, 피부관리도 받는다. 이들은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주민들과는 달리 호텔에 전문 예술인들과 촬영기사 등을 고용해 화려하게 예식을 치른다. 대동강에서 요트를 타고 웨딩촬영도 진행한다. 결혼식 비용은 1만달러(1100만원)가 훌쩍 넘기도 한다.

▲ 지난 5월21일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봉동면 일대에서 일부 논이 물 없이 말라 있다.    

 

이러한 생활은 일반 주민들의 삶과는 전혀 다르다. 통일연구원 박영자 연구위원 등이 201811월 펴낸 보고서 김정은 시대 북한 경제사회 8대 변화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시장화에 따른 소득의 차이가 커졌다. 이로 인한 밥상의 빈부격차 역시 뚜렷해졌다. 상층 주민은 기본적으로 쌀밥을 주식으로 하고, 고기나 과일 등 다양한 부식물을 섭취하는 등 식생활에 구애받지 않으며, 아이스크림이나 커피 등의 기호식품도 즐긴다. 평양 시민의 경우 피자, 스파게티, 햄버거, 콜라는 물론 철갑상어회 같은 보기 힘든 음식도 사먹는다.

 

반면 하층 주민은 강냉이밥과 같이 잡곡 위주의 주식만을 섭취하고, 고기는 거의 섭취하지 못한다. 보고서는 밥상의 빈부격차가 더 이상 국가의 조정이나 분배체계로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2017년 북한 중앙통계국과 유니세프(UNICEF)가 공동 조사한 다중지표군집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집까지 수도관으로 식수가 공급되는 가구 비율은 55.6%에 불과하다. 돈주들은 평양의 고층 아파트에 거주하는 반면, 국민 절반가량은 식수조차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커지고 있다. 사회주의체제를 지속시키는 핵심 가치이자 원리인 집단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평양의 한 소식통은 자유아시아방송(RFA)돈주들의 호화생활은 일반 주민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며 이들의 화려한 생활을 목격한 주민들은 적지 않은 충격으로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크게 낙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돈주들은 권력기관이나 지역 내 폭력조직과 결탁해 주민들을 착취하는 등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RFA에 따르면 대북제재 여파로 2019년 들어 무역거래가 끊기면서 기업소나 상인들이 돈주를 찾아가 높은 이율로 돈을 빌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 소식통은 돈주들은 채무자들이 매달 원금의 5~10%에 달하는 이자를 갚지 못할 경우 폭력배들을 동원해 위협과 폭력을 행사하면서 강제적으로 이자를 받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임동우 지음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통일 시대, 평양의 미래는?

 

6·25한국전쟁은 평양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었다. 당시 평양의 인구는 30만명, 전쟁 동안 떨어진 폭탄 수는 35만기에 이르렀다. 도시의 모든 것은 송두리째 사라져버렸다. 빈터가 되어 버린 평양에 김일성은 이상적인 사회주의 도시를 세우려고 했다. 평양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도시다. 주택가 한가운데 공장이 있을뿐더러 논과 밭이 도시의 복판에까지 들어와 있기도 하다. 곳곳에는 광장과 기념비가 널려 있다. 요긴하게 쓰일 데가 없는 공간들이다. 소중한 땅을 함부로 낭비한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와 한참 다른 나라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평양은 철저하게 사회주의 도시계획에 따라 만들어졌다. 한국의 도시는 돈의 논리대로 굴러간다. 땅값이 비싼 곳에는 쇼핑센터나 회사 건물이 들어선다. 주택가나 공장은 변두리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치솟는 땅값을 감당해내기 어려운 탓이다.

 

녹지와 공원도 많이 만들기 어렵다. 이곳에서는 세금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정부나 돈에 휘둘리기는 마찬가지다. 이렇듯 도시 곳곳에 무엇이 들어설지는 얼마나 돈이 되는지에 따라 결정되곤 한다. 사회주의 도시는 전혀 다른 논리로 만들어진다. 사회주의자들은 대도시를 마뜩하지 않게 여긴다. 도시에 필요한 식량과 상품은 농촌과 변두리 공장에서 온다. 이래서는 도시와 농촌 사이의 생활수준이 크게 차이 날 수밖에 없다. 농민과 노동자들은 변두리로 밀려나고, 도시에는 가진 자들만 모여 살게 될 터이다. 평등을 앞세우는 사회주의자들로선 마땅치 않은 모습이다.

 

그래서 사회주의자들은 마이크로 디스트릭트’(micro district)라는 도시설계 방식을 즐겨 따랐다. 이는 주택단지마다 작업장과 농지, 학교, 동사무소(주민센터) 등을 함께 몰아놓는 설계방식이다. 어느 곳에나 자신이 살 집이 일터와 함께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잘사는 사람만 따로 떨어져 살기는 어렵다. 도시 구조로 빈부의 차이를 없애려는 노력이라 할 만하다.

 

평양의 중심은 김일성광장이다. 여느 자본주의 국가라면 도시 한복판에 백화점이나 업무용 빌딩이 들어서기 마련이다. 반면 김일성광장 근처에는 인민 대학습당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로 치면 국립도서관과 초등학교 등이 서울 명동 중심에 들어선 셈이다.

 

김일성은 큰 광장 옆이나 번화한 거리에는 노동자들을 위한 궁전, 극장, 영화관 같은 문화시설들을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평양의 중심가에는 상가가 있을 법한 곳에 박물관, 미술관, 학습당이 들어선 곳이 많다. 사회주의는 노동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라는 믿음을 도시로 표현한 셈이다.

 

건축가 임동우(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평양의 특징을 생산의 도시'(city of production), ‘녹지의 도시'(city of green), ‘상징의 도시'(city of symbolism)로 갈래 잡는다. 그러나 평양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는 평양 광장 주변에 노점상이 늘어나는 모습을 눈여겨본다. 돈이 되는 길목에 자리 잡는 노점상은 시장경제의 시작을 나타내는 표시와도 같다. 그만큼 북한 사회에도 자본주의가 서서히 스며든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앞으로 평양은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나갈까? 임동우 교수는 사회주의 공간에서 자본주의 공간으로 옮겨갈 평양의 미래를 조목조목 풀어준다. 중심지의 학교나 도서관 등은 상업시설로 빠르게 바뀔 것이다. 평양 곳곳에 있는 논과 밭에도 임대료를 높게 받을 수 있는 건물이 속속 들어설 것이다. 공장지역엔 큰 아웃렛들이 자리 잡기 좋다. 원래 공업이 발달한 곳에는 항구, 철도,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는 상가가 들어서기에도 좋은 환경이 된다. 하지만 평양은 사회주의 도시의 성격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을 것 같다. 북한의 경제규모는 크지 않다. 따라서 우리와 같은 대규모의 재개발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유럽의 도시들도 이미 있던 시가지에 자본주의의 색깔이 조금씩 더해지는 정도로 변하고 있다. 게다가 평등을 내세우는 사회주의자들은 도시 재개발을 꺼린다. 낡은 집들이 헐리고 새 건물이 들어서면 도시 모습은 깨끗해진다. 하지만 새로워진 공간에는 잘사는 사람들이 들어선다. 못사는 이들은 개발비용을 당해내지 못하는 탓이다. 이들은 더 살기 안 좋은 곳으로 내몰릴 뿐이다.

 

자생적인도시는 우리 시대의 고민거리다. 멀리서 식량과 자원을 가져오지 않아도 스스로 굴러가는 도시 말이다. 점점 바닥나는 자원과 심각해지는 환경 문제는 자생력 있는 도시에 눈길을 돌리게 한다.

 

임동우 평양 도심 아파트는 미래의 강남될 것” 

건축 전문가 임동우 교수가 말하는 북한 주민의 내적 변화

 

"과연 도시의 인프라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도시의 구축 환경은 그 사회의 이념, 정치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로마에 가면 판테온을 방문하라고 권한다. 고대도시 로마의 권력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도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만든 도시공간이 다시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서 그 사회의 시스템을 변화시킨다. 광화문 광장이 없었다면, 탄핵도 없었다고 본다.”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미국 보스턴 하버드대학교 유학 시절 들었던 일화를 언급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1964년 보스턴과 외곽을 잇는 노면전차가 놓였다. 한국 같으면 두 손 들어 크게 환영할 호재였겠지만 빈부 격차가 심한 미국에선 전혀 다른 반응을 낳았다. 보스턴 시민들은 운행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결국 그린라인의 정거장 일부가 사라졌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돈 없는 사람들이 노면전차를 타고 우리 동네로 오는 것이 싫다는 백인 부유층의 거부감이 작용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차량을 타고 올 수 있는 계층의 사람들만 받아들이겠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던 셈이다.

▲ 27개의 북한 도시를 표시한 지도 앞에 선 임동우 홍익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북한 도시의 변화에 인민의 욕망이 담겨 있다고 진단한다.  

 

김정은, 자본계층의 욕망 억압못해평양에 재개발과 입주권 매매 성행

 

이처럼 도시 공간의 속성은 사회와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 영향을 주게 된다. 즉 도시의 환경을 보면 그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이러한 기조 위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들, 특히 북한의 평양을 들여다봤다. 그렇게 평양의 건축물이라는 말하지 않는 대상들과의 대화를 계속 시도해왔다. 2010년 평양을 방문한 바 있는 임 교수는 이듬해 평양건축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란 저서를 통해 평양을 도시 공간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2013년 뉴욕 젊은건축가상, 2014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평양전총감독을 역임했다.

 

평양과 사회주의 도시를 지속적으로 들여다 본 임 교수가 도출한 잠정적 결론은 결코 낙관적이지만 않다. 평양 등 북한의 도시들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들처럼 무질서하게, 무계획적으로 비대해지리라는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사회주의자에게 도시는

 

-평양도 결국 이 범주에 포함될 텐데, 사회주의에서 도시가 갖는 의미는?

 

“1917년 혁명 성공 뒤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도시가 무엇인가를 놓고 논의가 많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언급을 많이 했듯이 노동자들의 제대로 된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 차원에서 제기된 질문이었고, 후대 사회주의자들이 솔루션을 냈다. 1930년대의 모스크바 마스터플랜이 하나의 모델이 됐다. 마이크로 디스트릭트(micro district)란 개념으로 구체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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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디스트릭트란 무엇을 뜻하나?

 

쉽게 말하면 아파트단지다. 사회주의자가 도시에서 코뮌(주민자치제)을 실현하는 공동체로 기능한다. 공간을 평등하게 갖는다는 개념을 구체화시킨 것으로, 사회주의 통치자들은 건축물 하나에도 이념을 따졌다. 도시화도 하나의 혁명 과정으로 본 것이다.”

▲ 사회주의 이념이 투영된 옛소련, 현재 벨라루스의 민스크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사진=위키미디어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도시화는 억제되어야 할 대상인데.

 

도시화는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불거진 문제이다. 그 전에는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산업화의 여파로 이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공간에 몰려 살게 되면서 이슈가 된 것이다. 농촌의 농민들이 도시로 흘러가고, ()가 집중되고, 그 안의 노동자는 점점 열악해지고. 고대도시 로마가 인구 100만 명을 거느린 이래, 18세기에 들어서야 100만 인구를 가진 도시 런던이 출현했다. 그러니까 약 2000년간 인류는 100만 도시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런던이 (18세기 이후 단기간에) 500만 도시로까지 커졌다. 그때부터 말도 안 되는 문제들이 발생했고 사회주의자들은 대도시라는 것은 억제해야 되는 것이란 개념을 갖게 됐다. 실제 부르주아 출신인 엥겔스는 공기는 열악하고, 노숙자들이 득시글하며, 햇빛도 안 드는 데다, ­하수도도 변변치 않은, 쥐들로 들끓는 맨체스터의 뒷골목을 둘러 본 뒤 이것을 어떻게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이념으로도 도시의 확장은 막을 수 없었다.

 

그 시작은 소련이었다. 그들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은 했지만 1950년대 들어 주거 공간을 어마어마하게 공급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전쟁 이후에 복구도 해야 했고, 사람이 많이 태어났으니까. 그래서 적용된 모델이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다. 그 건축 양식이 동유럽, 중국, 베트남,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로 퍼져나갔다. 시기와 재료 사용만 다를 뿐이다. 가령 다른 나라는 콘크리트로 지었는데 베트남은 70년대에 벽돌을 많이 썼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었겠는데.

 

하나의 도시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민들을 위한다는 사회주의 국가가 (도시의 확장을 통제한다고) 사람들을 갑자기 다른 곳으로 내쫓을 수는 없지 않겠나. 즉 이상은 있으되 현실에서 적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쨌든 평양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됐다. 게다가 폐허의 책임은 자기들이 아니라고(미국이라고) 핑계를 댈 수 있었다. ‘미 제국주의의 침략, 일제 잔재의 청산, 봉건제도의 타파, 이 모든 것이 사라진 토대 위에 사회주의의 상징을 건설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도시로서의 평양이 갖는 위상은 북한에서 특별한 것 같다.

 

출신 성분이 좋은 사람들이 산다. 중국처럼 1가구1자녀 정책을 편 것도 아니니까 아이를 많이 낳는다. 외부 유입도 있었겠지만 내부 성장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인구 300만 도시가 된 것이다. 그래도 북한 주민의 10분의 1 수준이니 억제가 잘 된 편이다.”

 

-억제의 부작용도 있지 않았을까?“

 

북한의 물류 인프라가 발달하지 못한 것은 A도시와 B도시의 사람과 물류가 왕래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초기 평양은 김정희 건축가의 작품인가?

 

김정희는 1953도시와 건설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 나온 내용이 1950년대 김일성광장 등 평양의 복구 마스터플랜으로 실행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러시아에서 유학할 때, 김일성이 그를 불러와 재건계획을 세우도록 한 것은 사실이다. 북한 선전영화 한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는 그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그 정도로 김일성이 총애했다. 북한 지방도시계획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 이전 사망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행적은 현재로선 베일에 가려져 있다.”

 

평양 거리에 등장한 분양광고

 

-평양도 1970~80년대 인구가 팽창했고, ‘살림집이라고 하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인구가 늘어났을 때 어떻게 수용하느냐가 문제다. 소련에서 온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를 북한에선 주택 소구획 계획이라고 했다. 6~7층 규모의 중층 아파트 단지가 1970년대까지 들어섰다. 그런데 80년대 들어 이 사이즈로 수용할 수 있는 이상의 속도로 인구가 증가했다. 그 결과 광복거리, 통일거리가 나왔다. 행정구역상 평양이지만 도시 외곽(suburban)인 셈이다. 대규모 개발을 통해 인구를 수용한 것이다. 그리고 소련에서부터 고층아파트 모델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련은 판상형(일자형)인데 북한의 고층아파트는 김정일의 영향인지 조형성을 강조했다. 건축에도 프로파간다(propaganda·선전)적인 것이 많아졌다.”

 

-이후 김정은 시대에 어떻게 변화가 되고 있나?“

 

2012평양의 타워팰리스로 유명했던 창천거리, 미래학자거리의 초고층 아파트가 대동강변에 세워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과거의 광복거리, 통일거리는 주민을 많이 수용하는 것이 목표였다. 지금도 더 지을 땅이 많다. 그런데 거기가 아닌 강변에, 그것도 원래 존재하던 건물을 부수고 재개발로 건축을 진행했다. 빈 땅에 한 것이 아니다. 왜 이런 수고를 감수했을까. 사람들이 원하는 지역에 새 아파트를 지으면 수요가 있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 평양 광복거리와 통일거리는 도심 외곽에 조성됐지만 최근의 여명거리와 미래과학자거리는 강을 접한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 /사진 = 임동우     © 매일종교신문


-북한 법에선 땅, , 주차장이 국가 소유인데

 

사회주의 도시에서 부동산 개념이 존재하기는 어렵다. 개인의 소유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입주권에 관한) 매매는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그러다 보면 부동산 개념이 생겨난다.”

 

­소유권만 없을 뿐 나머지는 자본주의 국가의 부동산 시스템과 흡사한데

 

그렇다. 평양에 비파동이라는 동네가 있다. 기존 주택을 헐고, 높게 짓는 일들이 지난 10년간 야금야금 벌어지고 있다. 돈주(錢主), 중국 자본이 들어와서 부동산 개발을 진행하는 것이다. 2018년에 누군가 자료를 보내줘서 봤는데 평양거리에 근대식 시설, 면적은 몇 제곱미터라는 문구가 담긴 분양광고가 있었다. 나라가 특정인에게 아파트를 재공한다는 개념만 있으면, 이런 광고가 있을 리 없다. 어느 정도 국가의 컨트롤 하에서의 묵인이라고 볼 수 있다. 장마당처럼 말이다.”

 

-북한에서도 자본력을 갖춘 계층이 형성됐다고 볼 수 있나.

 

평양, 북한 여러 곳이 개발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돈 있는 계층의 요구를 안 들어주면 불만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이념, 주체사상 등이 통했지만 지금 돈 있는 사람들에게 (욕망을) 포기하라고 말하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북한을 자주 방문하는 외국 친구를 만났는데 평양에 돈 있는 사람들이 원산에 많이 간다고 하더라. 왜 그러냐하면 평양은 통제가 있으니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이렇게 풀어주지 않으면 곤란해진다. 돈이 곧 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 당국은 형식적으론 국가의 통제 아래 두지만, (자본계층이) 갖고 싶은 것을 갖도록 고려할 것이다.”

 

-북한이 아파트를 지을 때 더 이상 동구권 모델만 참조하진 않는 것 같다.

 

그렇다. 한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최근 북한 아파트의 평면도를 보면 우리나라 주상복합처럼 짓는다.”

 

-인테리어도 도입됐나?

 

장마당은 생필품 위주다. 반면 중국에서 물품을 가져와야만 하는 인테리어는 개인 비즈니스에 속한다. 소수에게만 해당한다. 다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로마를 느끼려면 판테온에 가라고 했다. 평양이라면 어디쯤일까?

 

김일성 광장. 도시 중심에 큰 광장을 두는 발상은 부동산 개념에서 허용될 수 없다. 그 주변에는 동유럽권에서 영향을 받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도 있다. 평양 건축들을 둘러보면 역시 여기는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갭이 있음을 알게 된다.”

 

다양성은 자본주의의 증거

 

-북한의 과시적 건축물과 비루한 현실이 대비가 되는데.

 

사회주의는 혁명을 통해 이념을 실현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 인민의 계몽이다. 계몽에는 선전, 과시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대규모 건축물이 나온다. 첫째, 부동산 개념이 없고 둘째, 과시를 해야 사람들이 계몽된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없던 시절, 군중을 모아 연설하는 데 김일성 광장이 필요했다. 다만 안 좋은 현실을 덮기 위해 생겨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1990년대에는 아무것도 없다. 70년대 경제력이 우리나라와 비등비등할 때 대규모 건축물, 공간이 나왔다.”

 

-여명거리를 보면, 김정은조차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김정은으로선 옛날 방식을 유지해서 이 나라를 계속 통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안위를 잘 보존할 수 있을지를 고려할 것이다. 젊으니까 과감한 면도 있고, 더 길게 봐야하는 면도 있다.”

▲ 북한 체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건축물로 꼽히는 김일성 광장. 선전과 과시의 공간이다.  

 

-북한 인민의 내면에 자본주의 물이 들어갔음을 실감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쇼윈도. 사람들이 간과하지만 굉장히 큰 부분이다. 광복거리와 통일거리 건설 때만 해도 건물 몇 개 박아놓는 것이 아파트 개발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 등을 보면 아파트 디자인이 다 다르다. 우리나라보다 더 다양하다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에서는 다양성은 배제돼야 하는 가치 중 하나다. 사회주의에선 통일된 가치관, 효율성, 합리주의를 추구했다. 다양성을 추구하면 효율성은 오히려 떨어진다. 그런데 지금 북한이 다양성을 허용한다는 이야기이다. 요즘 보면 북한 패션도 완전히 달라져 있다. 옛날엔 길거리에 10명이 있어도 패션은 두 가지(남자, 여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10가지다. 사람들의 표출에서 달라진 북한을 느낀다.”

 

-개인 욕망과 체제의 힘 사이에서 북한이 점점 개인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 아닌가?

 

불가항력적이다. 중국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중국에서 살다보면 통제를 당한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 누가 와서 검문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말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 정도로 나라가 통제에 자신감이 있으면 오픈 업(open up)이 된다. 북한은 쉽게 오픈 업을 하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점점 못하게 한다가 아니라 손바닥 안을 다 내려다보고 있다는 쪽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북한 부동산은 중국 돈주들의 엘도라도?

 

-미래 평양은 어떻게 변모할까?

 

베를린에서 전시를 한 적이 있다. 지금 평양의 모습, 즉 건물에 선전문구와 인공기가 걸려있는 사진을 보여줬다. 그리고 똑같은 배경에서 선전문구와 인공기만 포토샵으로 지웠다. 그리고 삼성, LG의 광고판을 입혔다. 두 장면이 다 미래도시 평양의 정답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지금부터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그렇게 변할 것이다. 다른 사회주의 도시들에서 일어났던 문제들이다. 지금 사회주의 도시에 관한 논문을 보면 그 많던 녹지는 다 어디로 갔는가?’, ‘우리의 공적 공간은 왜 상업시설에 점령되었는가란 주제를 다룬다. 자본화의 결과물인 것이다. 북한은 이런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그 중간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북한이 사는 길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도시들도 나아갈 방향이다.”

▲ 평양의 미래과학자거리. 건축물의 다양성은 돈 있는 계층의 욕망을 상징한다. /사진=조선중앙통신

 

-김정은시대에 들어와서 평양에 초고층 건물들이 올라가는 현상을 어떻게 보나?

 

지금은 북한이 국제 제재 속에 있다. 그러나 언젠가 제재에서 풀린다는 전제에서 봤을 때, 하나의 도시개발 방향성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체제 선전을 떠나서 말이다. 이는 다른 사회주의 도시들에서 일어난 일이다. 도심의 고급 아파트, 도시 외곽의 개인 주택. 이미 있던 현상이다.”

 

-평양을 제외한 북한의 나머지 도시들은 어떤 상태인가?

 

()는 평양에 집중돼 있다. 다만 원산·신의주 등을 포함한 5~6개 도시들에서 개발계획도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국토의 균형발전에 대해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기본 틀이 있다. 북한이 이것을 무너뜨리진 않을 것 같다. 이것을 무너뜨리고, 평양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시간문제일 뿐, 지방 도시들의 개발 플랜은 다 서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의주는 중국 자본과 투자협약이 됐다고 들었다. 원산은 관광특구로 개발될 것이다. 지방의 도시를 살리지 않으면 인구가 평양에 더 몰릴 수밖에 없다. 이 말은 북한 정권의 통제가 불가능한,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위험 요소가 계속 평양에 몰려든다는 것을 뜻한다.”

 

-북한에 투입된 중국 자본은 어느 정도로 파악되나?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른다. 다만 중국 조선족을 만난 적이 있다. 북한의 어느 지역 부동산 개발을 해서 짭짤한 수입을 얻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레벨에서 (개발이) 어마어마하게 진행된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일일이 파악하진 못하겠지만 북·(北中) 접경지역 사람들 중에서 분양사업에 관련된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2018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됐다. 중국에서 관광객이 아주 많이 늘었다고 한다. 중국은 북한을 하나의 기회로 보는 듯하다. 중국의 힘은 더욱 더 커질 것이라고 본다. 결국 한국의 경쟁 상대는 중국이 되지 않을까 싶다,”

 

북한 도시와 한국 지방도시의 접점

 

-고가아파트는 건물 자체보다 어떤 인프라와 커뮤니티를 거느리느냐에 더 영향을 받는다. 북한에도 이 개념을 적용하면 여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가 부촌에 해당한다. 부동산을 통한 계급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닌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북한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에서 겪는 문제다. 도심 외곽에 고급화된 주택들이 생겨나고, 도심지에서는 여명거리와 미래과학자거리가 교통·환경·전망 3박자를 갖추고 있다.”

 

-이곳이 미래의 강남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 하지만 땅을 살 수도 없는 형편이다.”-하나의 가정일 수 있겠으나 어느 날 김정은이 사유재산의 인정을 용인하면 평양은 어떻게 될까?“그런 사회에서는 결국 자본주의 시스템을 누가 더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계급이 나뉠 것이다. 변화된 시스템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만 해도 1960년대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서 아파트 산 사람은 부자가 됐다. 노동하는 것을 가치로 삼은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이것이 자본주의다. 북한의 자본주의화도 자본주의에 관한 이해도에 따라서 나뉘지 않을까.”

 

-북한 건축에 관한 연구를 지속할수록 데이터와 권위가 쌓여갈 텐데 향후 방향성을 어디에 맞추고 있나?

 

"늘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경제가 됐든, 학술이 됐든 빨리 정상적인 교류가 이뤄지면 우리나라에서 북한 전문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10명 중 9명은 밥줄이 끊길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말일 수도 있다. (북한에 관해) 전문가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전문가로서 이야기한다. 이런 사람들은 정보의 교류가 되면 총알이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데이터베이스(DB)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북한 관련 자료들이 워낙 희귀하다보니 그렇다. 하지만 자료는 공유할 필요가 있다. (북한 데이터베이스가 설계되고, 모두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이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사회주의 도시들의 전례를 봤을 때, 북한 도시는 어떻게 될까?

 

북한도 지향해야 하는 모델이란 것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향 없이 개발하다보면 탈()사회주의 도시들이 겪는 문제를 그대로 겪게 될 것이다.”

 

-북한과 한국의 도시계획 사이에 접점은 있는가?

 

“(건축가로서) 서울은 포기한 편이다. 서울은 너무 큰 도시가 됐다. 다만 지방의 중소도시들, 이른바 다 망했다고 여겨지는 도시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 이것들이 북한의 도시들과 접점이 있다고 본다. 대량생산 시대, 산업화시대 때의 사회주의 모델은 비효율의 극치였다. 하지만 동유럽의 도시들을 보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없는 자생하는 모델을 고민했다.”

 

-한국의 중소도시와 북한 도시들도 향후 자생하는 도시를 어떻게 만들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는 뜻인가?

 

(효율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등 자본주의국가에선) 소비하는 도시는 따로 있고, 생산하는 지역은 또 어딘가에 있었다. 이제 생산이라고 하는 것이 100년 전처럼 굴뚝에서 매연이 나오고, 소음이 생기고, 신발 백만 켤레씩 만들고, 이런 것이 아니다. 다시 생산을 도시로 가져오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실제 아디다스(독일의 스포츠브랜드 기업)도 독일로 다시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도시에서 생산을 일으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지역 순환경제가 생길까를 생각한 것은 사회주의에서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당시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다. 이제 북한 도시들 그리고 탈산업화로 고생하는 한국의 도시들은 비슷한 지향점에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역일꾼들, 에 사업을 적극 제안 “1달러에도 일할 사람 많다

 

최근 중국에 나와 있는 북한 무역일꾼들이 인력수급 최대 보장을 내걸면서 중국 측에 적극적으로 사업을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北中) 무역이 크게 위축되면서 일거리가 줄어들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 발 벗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 무역일꾼들은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중국측 사업자에게 터무니없는 수준의 저임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대북 소식통은 528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최근 조선(북한) 무역일꾼들이 평양이나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하루 만에 1000에서 1만 명을 모을 수 있으니 일감만 달라며 투자를 권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일부 국영기업소가 운영을 중단하는 등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일자리가 상당히 줄어들었으며 시장도 다소 침체되는 분위기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자 북한 무역일꾼들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사업을 유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 소식통은 무역일꾼들은 또 ‘(북한에서) 아침, 점심, 저녁 세끼 보장해주고 그저 사람당 하루 1달러만 줘도 일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기 때문에 (중국 대방이) 투자만 하면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면서 “(대북)제재로 일거리를 잃은 (북한) 주민들이 (중국) 하나만 바라보고 있는 상태로 보인다고 말했다.

 

평안북도와 압록강 사이로 맞닿아 있는 중국 랴오닝(遼寧)성의 평균 월 최저임금은 1365위안으로, 미화로 환산하면 약 197달러다. 북한 노동자가 30일간 쉬지 않고 일해도 중국 최저임금의 1/7 수준의 돈을 받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무역일꾼들이 터무니없는 저임금을 제시하면서까지 사업을 수주하려는 데는 북한 당국의 무리한 충성자금 요구가 주요한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소식통은 평양에서 나온 사람(북한무역일꾼) 대부분이 과도한 과제 때문에 조급해한다얘기를 들어보면 만들어 바쳐야 할 돈이 (연간) 30~50만 달러로 정도인데 평양에서 갓 나온 사람들이라 1년 안에 만들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무역일꾼들의 절박함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중국의 대북제재 적극 동참 분위기와 더불어 낮은 신뢰도 등으로 인해 여의치 않은 모습이다. 소식통은 조선 무역일꾼은 충성자금 마련을 위해서인지 본업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중국 대방(무역업자)에게 제시했다그렇지만 투자 가치와 안정성 측면이 보장되지 않아 결국엔 거의 무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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