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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안동교구 설립 50주년…‘기쁘고 떳떳하게’
신자 5만여명…1969년 대구대교구에서 분리…‘가난한 영성’ 이어져
기사입력: 2019/06/09 [20:59]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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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5만여명1969년 대구대교구에서 분리가난한 영성이어져   

 

천주교 안동교구는 한국천주교에서 가장 가난한 교구로 통한다. 5만명 남짓한 신자 규모로 천주교 16개 교구 가운데 가장 작은 교구이다. 하지만 교구 설정 50주년(529)을 맞아 안동 외곽의 교구청에서 만난 사제와 신도들은 외부인들에게 매우 안정되고 평온한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안정과 여유는 무엇 때문일까. ‘기쁘고 떳떳하게’. 교구청 곳곳에 걸린 문구에 눈길이 쏠렸다. 초대 교구장 두봉 레나도(90· 본명 르네 뒤퐁) 주교가 취임사에서부터 줄곧 강조해오면서 생명처럼 지켜 온 교구 사목(司牧)표어다. 표어의 연원을 귀띔한 교구장 권혁주(64) 주교의 인사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작고 가난한 교구라서 더 행복합니다. 가난을 함께 견뎌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신앙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서로 도우며 살았다는 데 자부심을 가집니다.” 

▲ ‘가장 작고 가난한 교구’라는 천주교 안동교구의 초대교구장인 두봉(오른쪽) 주교가 안동교구청 앞에서 현 교구장인 권혁주 주교의 손을 다정하게 맞잡은 채 격려의 말을 전하고 있다.  

 

작고 가난한 교구라서 더 행복서로 도우며 살았다는 데 자부심

 

권 주교의 말마따나 안동교구의 지난 50년은 가난한 영성(靈性)’을 실천해 온 역사였다. 1969년 대구대교구에서 분리되면서 두봉 주교가 초대 교구장으로 22년간 사목하다 박석희 2대 교구장에 이어 2001년부터 권 주교가 책임지고 있다. 서울의 웬만한 본당보다 신자수가 적어 가장 작고 가난한 교구라는 별명이 줄곧 따라붙지만 교회 밖에선 농민 교구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관할 지역이 문경, 상주, 봉화 등 대부분 농촌인 데다 농촌, 농민과 관련해 숱한 시련을 겪은 탓이다.

 

지역에 가톨릭농민회(가농)를 가장 일찍 설립하고 농민들과 끊임없이 연대했던 역사는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1979년 정부 정책에 반대하던 농민이 끌려가 고문을 당한 이른바 오원춘 사건은 아주 유명하다. 

 

가톨릭농민회를 가장 일찍 설립해 농민들과 연대농민 교구로 알려져

 

정부는 농민들과 함께 이에 항의하는 두봉 주교를 강제추방 대상에 올렸지만 교황청의 항의와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철회됐다. 이 사건으로 초대 교구장 두봉 주교는 한국 사회에서 농민의 대부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1973년 안동교구가 건립한 안동 문화회관도 일반에 회자되는 건물이다. 안동 문화회관은 당시 안동에서 가장 높은 6층짜리 건물로, 한 부분만 성당으로 쓰면서 일반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개방했던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지역 사회를 도와 함께 성장하는 천주교를 부임 이후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는 두봉 주교의 사목 방향은 한 치의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얻은 신임이 가난하지만 함께 나누는 신앙으로 발전했다고나 할까.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는 대세 속에서도 안동교구에는 귀촌, 귀농자들이 적지않이 찾아들고 있다.

 

교구가 주선하는 생명공동체 모임이며 유기농업, 식생활 개선, 교육 개선과 관련한 프로그램은 인기가 높다. 그래서 8년 전 관할지역인 봉화군 춘양에 세워진 춘양 본당미사엔 늘 100여명이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526일 안동실내체육관에서 열린 50주년 감사 미사의 타이틀도 다름 아닌 기억, 감사, 그리고 다짐이었다. 권 교구장은 우리 사목 방향의 초점은 전에도 농민이었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두봉 주교의 뜻을 이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두봉 주교는 고맙고 감사드린다. 용기 내시라고 권 교구장을 격려했다

 

안동 유림들의 마음 연 두봉 주교교구보다 사람이 먼저실천

 

안동교구를 말할 때 초대 교구장 두봉(杜峰) 주교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언제나 기쁘고 떳떳하게를 외치고 실천하는 프랑스 중부 오를레앙 출신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였다. 이젠 누가 봐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 두봉 주교는 가장 가난한 교구인 안동교구의 산증인이다

지난 22년간 초대 교구장을 지낸 두봉 주교도 처음엔 유림(儒林)의 본향인 안동에서의 생활이 몹시도 버거웠다고 한다.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사목을 하며 내 삶을 바치고 싶었다고 하지만 오죽하면 교황청에 못하겠다는 의견을 전했을까.

 

하지만 유림들과의 거듭된 만남 끝에 그들의 본 모습을 알게 된 뒤로는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이웃종교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한다. “대다수 유림이 나쁜 짓을 하지 않아요. 양심적으로 정직하지요.” 심지어는 유교 전통에서 바르고 잘 사는 사람이 천주교 신자가 되면 굉장히 좋은 신자가 된다고까지 말했다. 그 이유는 바탕이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안동교구에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마다 유림들이 솔선해 도움을 주었고 꽉 막힌 문제도 풀어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 22년간 초대 교구장을 역임한 두봉 주교  

 

두봉 주교 교회는 사회에 도움 줄 수 있어야대통령 표창 올해의 이민자상받아

 

두봉 주교가 목숨처럼 여기는 사목의 으뜸 방향은 교구가 아닌, 사람이다. 그래서 농민의 인권에 무엇보다 치중했고, 특히 한국 사제가 교구를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네 차례나 교황청에 안동교구장으로 한국 주교를 임명할 것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낸 일화도 유명하다. 그에게 신앙과 사목은 교회 따로, 사회 따로가 아니다. 그는 교회는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안동 문화회관을 세워 일반 모두의 열린 공간으로 내놓은 것을 비롯해 국내 최초의 전문대학인 상지대를 안동에 세운 주인공이기도 하다. 1982년 프랑스 나폴레옹 훈장을 받았는가 하면 5월에는 국내에서 대통령 표창인 올해의 이민자()도 받았다.

 

기쁘고 고맙고 떳떳하게’. 두봉 주교 자신은 귀족이 아니라서 쓸 수 없다며 주교라면 누구나 으레 정하는 사목표어를 한사코 사양했다고 한다. 하지만 교구에서 기쁘고 고맙고 떳떳하게라는 말은 모든 신행(信行)과 사목의 지침인 사목표어로 굳어져 있다. 신부로 15, 주교로 21년 한국에서 40여년을 선교한 끝에 일선에서 물러나 지금은 의성 봉양문화마을의 작은 집에 머물고 있지만 지금도 한 달에 절반은 피정에, 강의에 매우 바쁘게 보낸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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