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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10. 고기 가마를 탐함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기사입력: 2019/07/03 [22:29]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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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다베라에서 받은 불의 경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분하지 않다니! 상황이 진정되자, 그들은 다시 죄를 저질렀다. “그들 중에 있는 인간쓰레기들이 게걸스럽게 먹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며 말하기를 우리에게 먹을 고기가 있으려면 좋으련만! 애굽에 있을 때 먹곤 하던 생선, 오이, 멜론, 부추, 양파, 그리고 마늘들이 생각나는구나! 이제 우리의 식도가 쪼그라들었구나! 전혀 아무것도 없구나! 우리가 기대할 것은 이 만나 밖에는 없구나!’하니”(11:4-6, Tanakh).

 

인간쓰레기들잡족이었다(12:38 참조). 이 섞인 무리들이 식탐(食貪)의 폭동을 선동하였다. 그들이 굶주려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거룩한 영양사에 의해 그들의 건강을 위하여 완벽하게 디자인된 맛있고 영양분이 많은 음식을 풍성하게 갖고 있었다(맛에 관하여는 출 16:31과 민 11:8을 보라). 그분께서는 그들이 그분의 모든 처방을 잘 따른다면 애굽인들을 괴롭혔던 질병 중 어떤 것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15:26). 음식을 주시는 일에 있어서 아무런 차질도 없었다. 하나님 자신이 음식의 공급자이셨으며, 그분은 항상 정시에 음식을 제공하셨다.

 

섞인 무리들은 그들의 배가 그리운 옛 애굽 시절 엄마가 집에서 요리해 주신 것을 달라고 속에서 꾸르럭 꾸르럭 소리를 내자 불평을 해댔다. , 맞아! 생선과 신선한 야채와 멜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곁들임 요리이거나 양념들이었다. 주식은 고기였다. 광야 이곳에서 받은 천국의 씨리얼은 잊어 버려라. 우리에게 맥도날드나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아니면 집에서 만든 바비큐를 달라! 우리는 일일 최저 콜레스테롤과 최소의 발암물질도 얻지 못하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만나를 거절하고 경멸하는 것은 그분께 대한 큰 모욕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섞인 무리들보다 애굽에서 더 고된 삶을 살았고, 그들처럼 호사스럽게 산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곧 불만이 그들에게 확산되었고, 마치 굶주리고 있기나 한 것처럼 징징거림이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백성들은 그들의 필요를 몸에 좋은 것으로 채우는 것보다는, 미각을 만족시키는 것이 최고라고 주장하였다.

 

식사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탐식이다. 탐식은 일반적으로 많이 먹는 것뿐만 아니라,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건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탐식은 오늘날 현대사회의 가장 심각한 죄악들 중 하나이다. 탐식으로 인하여 생기는 고통, 일의 손실, 그리고 의료비용의 대가는 매우 크다.

▲ 미켈란젤로의 에덴동산

 

또 문제되는 것이 영양가 측면에서 좋아 보이지만 여러분이 먹어서는 안 되는 어떤 것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드셨고 그것이 음식으로 좋을 것이라는 하와의 시각적인 평가는 의심할 여지없이 정확했다(3:6).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녀가 그것을 먹는 것을 옳게 만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먹는 일을 금하셨기 때문이었다(2:17). 섞인 무리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강에 좋은 몇 몇 것들, 예를 들면 오이, 멜론, 양파, 그리고 마늘을 갈망하였다. 하지만 이것들은 애굽으로 돌아가야 얻을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고 계시는 광야에서는 자라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들을 갈망하는 것은 애굽을 갈망하는 것을 의미하였으며, 주님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가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암시했다.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신 것은 지극히 당연하였다. 모세 역시 너무도 속이 상했다(11:10).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치명적인 위험 가운데 빠졌다.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들을 위하여 이렇게 탄원했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32:32). 다베라에서 그는 다시 그들을 위하여 중재하기 위하여 기도했었다(11:2). 하지만 여기서 모세는 이 모든 철부지 같은 백성들의 짐을 그에게 지우신 데 대하여 하나님을 비난하였다.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그는 비명횡사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다(11-15).

 

역사상 모세가 용기가 꺾인 유일한 목사는 아니었다. 마녀 왕후 이세벨을 피하여 도망친 엘리야도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왕상 19:4). 이사야는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1:6)인 조국의 도덕적 상태로 인하여 비탄에 빠졌다. 여호와께서는 용기가 꺾인 당신의 종들을 돌보시며 그들을 부드럽게 대하신다. 그분은 사람들이 그들을 힘들게 만들 때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경험을 통해서 아신다. 그들을 꾸짖는 대신에 그분은 그들이 용기를 얻고 다시 회복하도록 세심하게 그들을 돌보신다. 금송아지 사건의 스트레스 후에 그분께서는 모세에게 그분의 영광을 보도록 허락하셨다(33:18-34:8). 무자비한 여왕으로부터 도망친 후 엘리야가 기진맥진해진 후에, 천사는 두 번이나 그에게 음식과 물을 갖다 주었고(왕상 19:5-8),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를 위하여 자신을, 그리고 세미한 음성으로 그분의 계획을 계시해 주셨다(12-18). 이사야가 젊은 시절,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들처럼 보이는 것에 직면하여 사역을 위한 그의 동기가 거의 소멸되었을 때, 하나님은 성전에서 그의 영적 배터리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놀라운 이상이란 배터리에 연결시켜 주셨다(6).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에 대해 불평하면서 고기를 요구하였을 때 모세가 심한 불평을 하자(11:1-16), 여호와께서는 두 가지 실제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셨는데 두 가지 모두 그분의 기적적인 중재가 필요한 것이었다. 첫째, 그분은 70명의 선택된 장로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하셨는데, 그들은 이미 그들의 백성들에 의해 지도자로 간주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세가 그 공동체를 운영하는 짐을 지도록 도울 것이었다(16, 17, 24-30). 이런 방법으로 모세는 책임을 위임하고, 이 대표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국가의 다양한 부분들과의 소통을 용이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지도력에 대한 어떠한 불만을 제기할 때에라도 강력한 큰 위원회가 공동 책임을 지도록 허락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모세는 모든 비평을 외로이 도맡아 감당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여호와의 신이 장로들에게 임하였을 때 그들은 그 당시에 예언을 하였지만, 그 이후에는 그렇지 않았다(25-30). 성경은 그들이 무엇을 말했는지 기록하지 않았다. 그들이 무엇을 말했는지가 아니라 그들이 예언을 했다는 사실이 요점이다. 그것은 모세를 조력하는 새로운 역할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에 의해 임명되고 성령에 의하여 승인된 조력지도자들은 현대 교회에서도 또한 유익하다(10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70인의 제자들과 비교해 보라). 어느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은 건전하지 않다. 선택받는 사람들은 그들이 대표하는 그룹들 사이에서 이미 신뢰할 만한 지도자들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두번째 실천적 해결책은 그들이 달라고 하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는 것이었다. 고기를 주되 아주 많이 주는 것이었다. 그분께서 모세에게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고기를 매일 제공하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믿기지가 않았다. 장정이 60만 명, 그리고 여자와 아이들을 위하여 그렇게 많이 제공하시겠다는 엄청난 실행 계획은 모세에게는 이해가 안 되었다(11:18-22). 하지만 그는 홍해 바닷가에 서서 이렇게 공표했던 동일한 모세였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14:13). 모세는 믿기 어려운 기적들에 관여했었고, 그렇기에 진정한 필요가 있을 때 하나님께는 어떤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지금쯤은 알았어야 했다. 그런데 왜 사소한 불평에 응답하시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이런 엄청난 규모의 기적을 행하려고 하시는 것일까?

 

그 기적은 단순히 음식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백성들이 그분께 적대적인 통치 아래 살았던 애굽에서의 삶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는 동안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여 약속된 땅에서 승리하도록 하실 수 없었다. 배급량에 대한 불평을 해대는 군대는 강대한 적군 앞에서 움츠러질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고기 없이 살 수 없다면, 그들은 몹시 곤란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달을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심으로써 대단히 중요한 공과를 가르치실 필요가 있었다. 그분은 모세에게 그들이 한 달 동안 고기를 먹게 하실 것이라고 발표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 개월 간을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거하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 함이라 하라”(11:20).

 

하나님의 전략은 담배를 피우려고 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와 같다. 아버지는 담배에 대한 아들의 호기심을 의심할 여지가 없이, 단번에 뿌리 뽑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 아들의 입에 물려주고는 힘껏 빨아들이라고 말했다. 그 소년은 이내 그만 두고 싶지만, 아버지는 그 개피를 다 피우도록 만들어서, 마침내 그의 눈과 코에서 눈물과 콧물이 흘러내리고, 헉헉하며 공기를 들이마시고, 기침을 심하게 하고 있다. 이 경험은 너무도 끔찍해서 아들은 결코 다시 담배를 피려는 유혹을 받지 않을 것이다.

 

고기는 메추라기의 형태로 왔는데, 엄청난 수효의 메추라기들이 도착하여 이스라엘 진영 도처에서 지면에 아주 낮게 날아다녀서(지면에서 약 3피트), 백성들은 이 속수무책의 새들을 손쉽게 잡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너무도 욕심이 많아서 메추라기들을 하루 종일, 밤새도록 그리고 이튿날에도 잡았다. 그들은 각기 최소한 십 호멜을 모았다(11:32). 한 호멜(나귀 한 마리가 지고 갈 수 있는 양)이 약 6 부쉘(12) 정도 되는 것을 고려하면, 각 사람이 60부쉘(120) 이상씩은 모은 것이다. 60만 명의 장정들(21)이 각기 60부쉘 씩만 모았다 하더라도(아마도 여자들과 아이들이 그들을 도왔을 것이다), 총 합계는 3,600만 부쉘(7,200만 말)이 넘을 것이다. 그리고 한 부쉘에 다섯 마리의 메추라기만 담는다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18천만 마리 이상의 새들을 죽인 것이다! 눈길이 미치는 곳까지 진영 도처에 죽은 새들이 널려 있었음에 틀림없다.

 

많은 메추라기들이 자연스럽게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다리 역할을 하는 땅인 시내반도 상공을 지나서 이주하는 것이 사실이다. 몸이 무겁기 때문에 메추라기는 그들을 소진시키는 오랜 비행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 바람에 의존한다. 1900년대에 그 지역의 아랍 사람들이 그물들을 이용해 일백만에서 이백만 마리의 메추라기들을 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바람(31)만이 민수기 11장에 기록된 그런 수효의 메추라기들을 실어 나를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섞인 무리들을 포함하여)은 앉아서 실컷 먹어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한달 간 먹을 만한 메추라기들을 가지고 있었지만(20절 참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것을 만끽하도록 버려두심으로써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심으로써 그분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시험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아담과 하와가 그들의 충성에 대한 시험에 실패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3) 비참하게 낙제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금단의 과실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아담과 하와에게 경고하셨다(2:17). 비록 그들이 범죄한 그 날 죽을 수 밖에 없게 되었지만, 그분께서는 자비롭게도 그들이 한동안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그들은 범죄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저지른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회개할 희망이 있었다. 아담과 하와와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이미 구제 불능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공동체로부터 제거하셨다. 메추라기 고기를 먹은 바로 그 날 그들은 정녕 죽었다.

 

고기가 아직 잇 사이에 있어 삼켜지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11:33,34). 이 구절이 전염병의 성격이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는지를 기술하지 않지만, 사망자 수는 매우 많았음이 틀림없다. 그 곳의 이름은 탐욕의 무덤들을 뜻한다.

 

에덴에서 뱀에 의해 초연된 번지르르한 광고와 더불어, 세상은 욕망은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랑받은 제자 요한은 이 사상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 주셨다. 40일간 금식하신 후 배고픔으로 인해 연악해진 후에라도 그분은 단 하나의 돌도 떡으로 변하게 하심으로써 그분의 아버지께 대하여 불충성하게 되기를 거절하셨다(4:1-4). 이와 같은 이적을 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어렵지 않았다. 후일 예수께서는 무리를 위하여 떡과 물고기를 제공하셨을 때 이와 유사한 일을 행하셨다(14). 문제는 그런 제안을 한 마귀이다. 그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을 표명하고 있었고, 그것을 증명해 보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주님은 이렇게 응수하셨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4:4). 생명의 원천이신 주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탐욕의 무덤에서 그들의 생을 마감하지 않을 것이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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