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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19. 성전(聖戰)

주형식 | 기사입력 2019/10/10 [21:15]
하나님은 거룩한 전쟁을 통제하셨으며, 성경적 명령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19. 성전(聖戰)

하나님은 거룩한 전쟁을 통제하셨으며, 성경적 명령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주형식 | 입력 : 2019/10/10 [21:15]

미국에서 운전하던 한 남자가 십대의 히치하이커를 태우게 되었다. 몇 마일을 달리다가 그 소년은 갑자기 칼을 꺼내 위협하면서 운전자의 지갑을 요구했다. 운전자는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면 챨리가 안 좋아할 걸.” 어리둥절한 그 소년은 칼을 그에게 더 가까이 휘두르면서 소리쳤다. “지갑을 내 놓으라고!” 재차 운전자는 조용히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면 챨리가 안 좋아할 걸.”

 

바로 그때 강도질을 하던 이 소년은 그의 목 뒤에 뜨거운 입김을 느꼈고, 저음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는 뒷좌석을 힐끔 둘러보았다. 공포스럽게도 그는 운전자의 애완동물인 커다란 흑표범과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필사적으로 소년은 운전자에게 애원했다. “저를 여기서 내려주세요.” 운전자는 속도를 줄였고, 소년은 자동차가 여전히 달리고 있는 중인데도 탈출하였다. 그러고 나서 죽어라 도망쳐서 길로부터 멀어져 갔다. 이 운전자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은 언덕 너머로 사라질 때 활기차게 움직였던 그 소년의 엉덩이였다.

 

이 십대 소년은 칼을 가지고 있었지만 운전자는 챨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와 비슷하게 아랏의 가나안 왕은 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뭔가 다른 것, 정확히 말해서 누군가를 갖고 있었다. 가나안 왕이 믿지 않았던 것, 즉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을 떠나 가데스로부터 처음으로 가나안에 접근했을 때, 그들이 주님과 협력했더라면 남쪽으로부터 진격하여 약속된 땅을 빼앗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부족 때문에, 그들은 그 기회를 잃어버렸다(14). 거의 40년 후에 남쪽으로부터 가나안에 입성하는 것은 더 이상 좋은 방법이 아니었었는데, 왜냐하면 그곳의 정치적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요단강 건너편에서 동쪽에서 가나안을 침공하기 위해서 훨씬 더 먼 길로 가야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길 앞에 놓인 한 가지 장애물은 에돔 왕국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곱(이스라엘)의 쌍둥이 형제인 에서의 후손인 에돔 사람들과 친척관계였다(25; 36). 그래서 모세는 에돔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의 영토를 통과하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형제로서의 어떤 환대도 없이 그는 무력을 과시함으로써 그의 거절을 뒷받침하였다(20:14-21).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을 공격하는 대신에 그들과의 대결을 피하여 그저 돌아섰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에돔에게 그 지역을 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도발을 감행하거나 그들의 땅을 조금이라도 점령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다(2:5).

 

그러나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고 그들 중 일부를 사로잡아 포로로 삼았는 때는 전혀 이야기가 달랐다. 그와 그의 백성들은 이스라엘과 혈연 지간이 아니라 가나안 족속이었고, 가나안 땅을 넘겨받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쫓아내야 할 백성들에 속해 있었다(34:11-16). 이것은 그 왕의 마지막 실수였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21:2,3).

 

백성들이 하나님 없이 가나안을 강습하려고 시도했을 때 아말렉 족속과 가나안 족속에게 패하여 호로마까지 도망갔었던 것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모든 실패들 후에(14:5), 여기 중요한 믿음의 승리가 있었다. 이 경험은 젊은 세대들에게 그들이 약속된 땅을 빼앗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호르마라는 이름은 완전히 파괴하다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동사와 동일한 어근에서 유래되었다. 이 어근은 여호와께 대하여 개인들이나 사물들이 되돌릴 수 없도록 완전하게 바치는 것을 가리킨다. 즉 그것들이 성소에 드려지던지 아니면 완전히 파괴시켜 버리던지 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27:21,28,29; 2:34; 3:6; 7:2 참조). 이 같은 헌신의 본질은 왜 아간이 후일 곤란에 처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즉 그는 파괴를 목적으로 여호와께 바쳐진바 된 여리고로부터 물건들을 취함으로써 신성모독을 범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과 함께 멸망을 당했다 (7).

 

특정한 때와 장소들에서 고대 이스라엘이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였음은 아무런 의심의 여지도 없다. 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함께 거주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은 이와 같은 전적인 파괴를 명하시거나 허락하셨다. 그분은 성전(聖戰)을 이스라엘의 특정 원수들에게 국한하셨다 (15:16 참조). 여호와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리고 세상 끝에 악한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처럼(20), 그들을 불로 진멸시켜 버릴 수도 있으셨다(19). 그러나 그분은 그분을 신뢰하도록 그들을 시험하고 가르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분의 도구로 사용하기로 선택하셨다(3:1-4 참조).

 

성경이 말하는 거룩한 전쟁은 여러 면에서 지하드”(성전)와 유사하다. “지하드또한 종교 단체에 속한 사람들이 그들의 신이 승인하였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의 힘닿는 데까지 전쟁을 하고 상대방을 전멸시키는 일에 관여한다. 하지만 우리는 결정적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이단자들에 대한 지하드는 시간과 장소의 한계가 전혀 없다. 그에 반해서 성경의 하나님은 직접 거룩한 전쟁을 통제하셨으며, 그것을 성경적 명령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이스라엘 국가가 그 영토를 취하고 거기 정착해가는 시기의 팔레스틴에 그것을 국한하셨다. 하나님의 쉐키나의 임재가 더 이상 이 지구에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는 나라가 아니라 교회가 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군사적 의미에서 적법한 그리스도교 성전(聖戰) 같은 것은 결코 이 땅에서 용납될 수 없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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