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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가을

박길수 | 기사입력 2019/10/27 [20:31]
그래도 살아갈 수 있어서 고맙고, 행복하다

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가을

그래도 살아갈 수 있어서 고맙고, 행복하다

박길수 | 입력 : 2019/10/27 [20:31]

 

계절 초입(初入)부터 들이닥친 세 차례 태풍이 저마다 몰고 온 비바람 속에서, 올가을 첫 한 달은 그만 어수선하게 지나가 버렸다. 가을이란 그저 기다리다가 때만 되면 당연히 얻게 되는 황금의 계절은 결코 아닌 모양이다. 후덥지근한 여름날도 잘 견뎌야 하고, 꼭 잊지 않고 몇 차례 찾아오는 성질 고약한 태풍 또한 아무 탈 없이 겪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크고 작은 수난을 치르고 난 후에야, 높다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 둥실 떠 있는 시원하고 행복한 날을 맞이할 수 있는 듯싶다. 숨 막히는 무더위와 인정 없는 태풍이 지나지 않으면 이제는 아예 상상조차 말아야 할 계절이 가을이라는 것을 나는 망각하지 말아야겠다. 내 삶의 가을에 태풍처럼 들이닥친 비바람이 설령 또다시 나를 휩쓸어 버리더라도, 더 큰 행복이 기다리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나는 절대 잊지 않으려고 한다.

 

"힘든 길이 늘 옳다. 절대 지름길을 찾지 마라."

 

미국 '월가의 족집게', 81'바이런 윈'이 말하는, 삶의 가을에 행복하게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조언이다. 그의 말대로, 편안하고 부유한 장수(長壽)의 삶은 가을을 맞이하는 과정과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힘든 길을 꺼리거나 피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맞이하는 가을에 착한 내 아내와 포근하고 풍족한 결실을 살포시 부둥켜안고 같이 기뻐하면 좋을 것 같다. 삶에 재미를 느껴가는 지율이네 살림살이도 함께 엿들으면서, 우리는 보람 속에 이 가을을 살면 좋을 것 같다.

 

기나긴 여름이 지나고, 하늘이 높던 어느 날, 지율이 엄마는 일부러 우리 방에 들어오더니, 이번 가을 정수기 한 대 들여놓기로 했다고 한다. 그동안 지율이네는 생수를 따로 사 먹고 있었다. 나는 식구 밥을 데울 때, 먹을 물도 같이 끓여놓고 식혀서 마시고 있었으므로, 지율이네 생수에 사실 크게 관심이 없었다. 지율이 엄마 말이 생수를 사 올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매번 한꺼번에 사서 들고 오기가 너무 힘들어, 이번 가을에 정수기를 들어놓기로 했단다.

 

지율이 엄마는 평소보다 더 차분하게 나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주었고, 앞으로 온 식구 건강한 삶을 당연히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살더니, 우리 지율이네는 드디어 세간이 하나씩 늘어가는 가을 같은 보람을 느끼는 듯싶었다. 오래전 아내가 조그마한 살림살이를 하나씩 들여놓을 때 보이던 그 모습과 지금 딸의 행동이 너무 비슷하기만 했다.

 

그래도 살아갈 수 있어서 고맙고, 행복하다

 

상쾌한 가을바람은 뜨거웠던 태양의 횡포와 포악하게 거친 비바람 끝자락에 붙어서 따라왔다. 생각하면, 삶의 무덥고 두려웠던 고통이야말로 그 끝이 선선하고 아늑한 가을의 편안함을 예고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시원하면서 조금 서늘하게까지 느껴진다. 몸이 편하니, 마음도 한가롭다. 친구가 보낸 강원도 주전골의 막 불붙기 시작한 단풍 풍경도 참 황홀하다. 북동쪽 산골은 어느새 알록달록한 수채화 사생대회라도 벌린 모양이다. 맑은 진녹색 위에 밝은 노랑 빨강 원색이 물감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가끔 불타오르는 단풍의 절경이 거대하게 피어오르는 붉은 저녁노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가을 산골 단풍 숲속에서, 스산하게 윙윙대는 삭풍 소리도 인제는 들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이맘때마다, 나는 언젠가부터 습관처럼 온 삭신이 시큰거리는 한기를 느끼게 되었다. 방안에서도 반소매 면티만 입기 허전하여, 아내가 아프기 전에 사다 입혀준 모직 카디건을 꺼내 걸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갑자기 거친 길을 걸었고, 고난의 길이 항상 옳지만, 마음은 어쩔 수 없어 아픔을 느끼는 듯싶다. 그래도 살아갈 수 있어서 고맙고, 행복하다. 애처롭게 절규하는 귀뚜라미 소리에 올가을도 깊어만 간다.  

 

필자 박길수는 이 시대를 성실하게 살아온 평범한 인물이다. 41년 결혼생활 중 4년여 전 느닷없는 아내의 뇌출혈로 불행이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의식없는 아내를 편안한 집에서 보살피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을 땄다. 치료비와 생활비, 그리고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 장애인 도우미 자격증도 따서 출퇴근한다. 항상 아내 곁을 지키는 아버지를 위해 딸과 사위, 그리고 누구보다 예쁜 손녀가 합류했다. 그는 불행한 생활일 듯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고 구원도 받는다. 그리고 개인 블로그 박길수의 일기’(https://m.blog.naver.com/gsp0513)에서 그러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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