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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주거신앙과 관련된 풍수사상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9/12/02 [22:03]
주택의 사주는 주거공간에서의 4요소-대문과 안방, 부엌과 측간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주거신앙과 관련된 풍수사상

주택의 사주는 주거공간에서의 4요소-대문과 안방, 부엌과 측간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19/12/02 [22:03]

주택의 사주는 주거공간에서의 4요소-대문과 안방, 부엌과 측간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사주란, 사람이 태어난 연(((()를 간지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네 가지를 생년···시라고 보는 것에서 유래한다. 각각 천간과 지지로 이루어진 60갑자에서 두 글자씩 모두 여덟 자로 나타내므로 팔자라고 한다. 사주의 팔자를 음양과 오행논리로 풀면 그 사람의 타고난 운명을 알 수 있다고 해서 운명이나 숙명의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주팔자풀이에 사용되는 간지는 모두 10개로 십간이라 하고, 사주의 앞 글자에 쓰이므로 천간이라고도 한다. 또한 사용되는 지지로 모두 12개이므로 십이지라고 하며, 사주의 뒤에 사용되는 글자이므로 지지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풍수지리 양택론에서 말하는 사주란, 주택의 사주를 말한다. 주택의 사주는 주거공간에서의 4요소를 말한다. 대문과 가장이 머무르는 안방, 그리고 음식을 조리하는 부엌과 생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측간이라는 네 공간을 의미한다. 4주 가운데 화장실을 제외한 대문·가장의 방·부엌을 주택의 3요소라고 한다. 3요소는 전통적으로 주거공간 내에서 이루어지는 양기의 공간이라고 하며, 이에 반해 폐기맥으로 주거공간 외에서 이루어지는 음기의 공간을 측간이라고 한다. 주택의 4주는 사대부가의 주택으로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되는 남녀의 거주위치가 명확히 구분되는 주택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하나의 주거공간인 동 안에서 이루어지는 주택의 공간배분을 말한다.

 

주택 명당은 주인과 합의가 이루어진 곳

 

그러나 사주는 사람과 주택에만 있는 게 아니다. 풍수지리에 있어서 사주는 용혈사수이고, 혈장의 4주는 결인·만두·원훈·선익이라는 혈판의 구성여건이 해당되고, 혈의 4주는 구···수를 말한다. 이처럼 4주는 무릇 만물의 중심을 이루는 4가지 요소로써 개념상의 조건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명당의 4주는 사신사라고 한다.

 

주택의 4주에서 대문은 형국에서의 수구에 해당한다. 수구는 용호의 말단사이를 말하며, 당연히 대문은 집의 격에 맞아야 한다. 수구가 빗장을 걸어 잠그듯이 좁을수록 형국내의 지기와 골육수의 누출을 막을 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 형국 안으로 유입되는 흉기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대문 또한 이와 같아야 한다. 집은 큰데 지나치게 작은 대문이나, 집은 작은데 지나치게 큰 대문은 격에 맞지 않아 흉택에 해당한다. 대문은 가정의 좋은 모습뿐만 아니라,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자신의 허실도 드러나게 한다. 이런 까닭에 대문의 위치도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과거 우리들의 조상들은 풍수지리에 있어서 방위를 무척 중요하였다. 대문은 외부의 흉기와 함께 좋은 기운도 집안으로 유입시킨다. 풍수에서 중요시 하는 4방위도 가령 하루의 날씨 상황에 따라 기온의 변화가 다르듯이 1년의 기후 역시 다르다. 4방위는 이러한 일기와 연기의 시간적 변화를 말한다. 만약 대문이 동쪽 문이라면 태동하는 목기를 받아들이는 방위의 문이 되지만, 서쪽 문이라면 성했던 기가 쇠퇴해가는 방위의 문이 될 것이다. 이 밖에 대문은 위계와 권위의 상징이자 의사소통의 구실을 하였다. 솟을대문과 평대문 등은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품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대문은 문((()양택삼요중에 속하는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외부세계와 내부세계를 구분 짓는 경계이자 일가족이 아침저녁으로 늘 출입하는 곳으로 특별히 풍수에 조예가 깊은 주인이나 지관이 그 위치와 방향을 결정할 만큼 중요시 했다.

▲ 도산 선원 솟을대문    

 

대문은 안과 밖의 경계     

 

다시 말해, 대문이란 외부의 길흉기가 주택내부로 들어오는 입구이다. 따라서 입춘절을 맞아 입춘대길이나 건양다경 내지 용(()자를 써서 붙여놓는 데, 그 이유는 대문이 길흉화복을 부르거나 막는 길목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문은 음기와 양기가 서로 상반되는 성질을 가지면서 동시에 서로를 이루어 주는 상반상성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첫 관문인 것이다. 이와 같이, 대문은 주택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로써 그 형식이나 규모가 집의 기능과 성격·재력 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대문의 종류는 생김새나 소재에 따라 분류되는데, 일반적으로 등급에 따라 분류하면 솟을대문·평대문·사주문·바자문(사립문) 등으로 구분된다. 솟을대문은 말 그대로 대문이 달린 중앙의 한 간만 불쑥 나온 높은 대문을 일컬으며, 그 형상은 산의 모양으로서 좌우의 문은 각각 용()과 호()를 상징하는 문이다. 아울러 들어가고 나갈 때는 음양의 논리에 맞춰서 동쪽으로 들어가고 서쪽으로 나와야 한다.

 

평대문은 초가지붕이나 기와지붕을 한 건물의 몸채나 행랑채와 같은 지붕 높이에 대문을 단 경우를 말한다. 바자문은 나뭇가지··갈대·수수깡·싸리 따위로 발을 엮듯이 엮어서 만든 문으로 한국의 농촌 민가에서 바자울()에 달거나 간이문·변소문 등에 많이 사용하였다. 재료에 따라 문의 명칭을 붙이기도 하나 보통 싸리문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재료가 싸리가 아니더라도 싸리문이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바자문은 전통 민가에서 흙담이나 나무울타리에도 많이 쓴 양식이다. 집의 대문에만 주로 이용되는 형식으로는 솟을대문과 바자울, 제주도의 정낭을 예로 들 수 있다.

 

주택에서 방이란 사람이 거처하기 위하여 집안에 만들어 놓은 공간을 말한다. 반드시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문이 설치되어 있다. 우리나라 주택에서 공간은 방을 중심으로 한 건물 내부의 공간과 건물과 건물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마당으로 나누어진다. 때문에 방은 주택의 기본적인 요소로서 다양한 기능을 가지게 된다. 원시시대의 주거형태는 수혈식 주거형태로 하나의 방으로 이루어진 단일공간이었다. 이곳에서 거실·침실·부엌·식당·저장 기능을 모두 담당하다가 점차 기능이 구분되었다. 각 방에 부여된 기능을 어떻게 연결·조합하느냐에 따라 주택·공공건물 등의 성격이 결정된다.

 

민가에서는 주택 내의 주생활 공간에서 나누어진 공간들을 방이라고 하며, 특히 온돌구조의 온돌방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방의 구성은 지역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북부지방에서는 추위에 견딜 수 있는 평면구성으로 부엌에 정주간을 설치하여 다목적 용도의 방으로 사용한다. 남부지방인 영·호남지역에서는 마루가 성행한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는 네 계절이 뚜렷하고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심한 관계로 철저한 열관리를 해야 되었다. 일반적으로 방은 칸 단위로 크기를 가늠한다. 한 칸의 넓이는 네모지게 세워진 네 기둥으로 구성된 넓이의 단위로써 이루어진다. 기둥의 간격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810자의 간격을 이룬다. 민가를 중심으로 한 방의 크기는 온돌이 미치는 난방능력의 한계가 고려되어 1칸 또는 2칸에 지나지 않고 있다. 방에 따라서는 가장 서열이 높은 여성이 안방을 사용하였고, 그 다음 서열에 따라 건넌방·아랫방·문간방 등을 사용하였다. 대문과 집을 지탱하는 기둥과 받침돌은 주로 원형과 사각 내지 팔각의 형태가 주류를 이루는데, 사각과 원형은 지방과 천원사상에서 연유하며 팔각은 팔괘사상에서 연유한다. 특히 사각 기둥은 뱀과 같은 파충류나 유해동물들이 기둥을 타고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 사랑방은 거처하는 방이면서 손님을 맞는 응접실 역할도 했는데 유교적 덕목에 걸맞게 꾸며진 양(陽)의 공간이었다. 사진은 장욱진 고택의 사랑방    

 

양택풍수에서 말하는 안방[]은 사대부가의 안채에 딸린 안방의 개념이 아니라 사랑방의 개념이다. 한 집안의 대표적인 사람이 머무르는 주방이란 의미이다. 반드시 남성만을 위한 공간적 의미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가장에 해당하는 사람이 머무르는 공간을 말한다. 전통적인 사랑방은 가부장의 일상적인 생활공간이자 남성에 대한 접객공간으로 주택 외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공간이 좁은데다 앉은키에서 사용하기 편리하며, 시각적으로 아담하게 정리된 선과 면의 형태로 구성된다. 사랑방은 주인이 거처하는 방이면서 손님을 맞는 응접실 역할도 했는데, 주인은 양반이면서 글을 배운 선비이기 때문에 방안을 유교적 덕목에 걸맞게 꾸며진 양()의 공간이었다. 반면 안방은 안채의 중심으로서 가장 폐쇄적인 주공간이며, 주택의 제일 안쪽에 위치하여 외간남자의 출입이 금지된 음()의 공간이었다. 출입이 허용되는 남자는 가장인 남편이나 직계가족만이 출입할 수 있다. 또한 안채는 그 주택의 안주인인 주부의 실질적인 생활공간으로서 대부분 일상생활의 무대가 되는 공간이며, 가사일 중 안살림을 전부 관리하는 공간이다. 광의 열쇠나 귀중품들을 보관하는 장소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부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풍수에서의 안방은 이러한 기능이 복합적으로 하나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집주인인 가주가 머무르는 대표성 있는 공간개념이다.     

 

가주는 그 집안의 정신적인 주체로서 집안의 대소사를 두루 관장하며 가족구성원들의 생계를 책임진다. 가족 구성원의 갈등을 조절하고 공동체가 유지되도록 하며 정신적 주재자로 가문의 성패는 가주인 가장에게 달려 있다. 가장의 건강은 곧 그 집안의 미래이다. 따라서 풍수에서는 가장이 곧 혈이며 혈이 강건해야 하고 가장의 공간은 안전과 안정이 확보됨과 동시에 권위의 방위에 있어야 한다. 안방은 주인의 생활 대부분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신분에 걸맞게 꾸며졌으며, 서민주택과 상류주택에 따라 규모와 시설에 차이를 두었다. 따라서 주택에서 안방이 갖는 상징적 의미에 따라 풍수적으로 4주의 하나로 중요시 하였다.

 

다음으로 양택삼요에 의하면, 주택의 4주 중에서 대문과 주인방에 이어 부엌의 위치는 주택 내 주요한 구성요소 중 하나를 차지한다. 우주론에 근거하면, 남향집의 동쪽에 위치한 사랑채가 남자 주인이 머무는 양()의 공간이라면, 안방과 부엌은 서쪽에 위치하는 것으로서 음()에 해당된다. 그러나 풍수론적으로는 건방인 북서방에 사랑채가 있어야 하고, 곤방인 남서방에 안채가 있어야 한다. 이는 택지를 기준으로 볼 때 주요건물은 서편에 배치되어야 하고 마당과 정원 등의 부속시설들은 동편에 있음으로써 서북을 등지고 동남을 껴안는 구조로 충분히 양기를 접할 수 있는 공간배치를 나타낸다. 전통적 부엌과 물·불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를 음양오행으로 구분하면 물은 음, 불은 양이므로 부엌은 음양오행이 공존하는 작은 우주라고 할 수 있다.  

▲ 부엌은 조왕신을 모시는 공간으로서 기복을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부엌은 음양오행이 공존하는 작은 우주  

 

부엌은 신성한 불을 담는 공간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가지고 있다. 조왕신이나 조왕각시 내지는 부뚜막신과 수명 및 재운을 관장하는 화신(火神)을 모시는 공간으로서 기복을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음양관에 의하면, 서쪽에 위치한 부엌은 음의 방위로서 밥을 풀 때 모든 것을 거두어들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주걱을 안쪽으로 향하게 하여 복이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또한 키질을 할 때 부엌을 향하지 않게 하는 것도 조왕신이 있는 신성한 공간으로 부정을 씻어주는 정화의 공간이라는 부엌의 의미와 상징성 때문이었다. 절에 가면 간혹 조왕탱화를 볼 수 있다. 조왕탱화의 특징은 조왕 좌측에 땔감을 담당하는 역사와 우측에 하얀 쌀밥을 들고 있는 아녀자를 배치한다는 점이다.

 

부엌 만드는 법으로 길이를 79촌으로 하는 것은 천상의 북두칠성을 상징하고 지상에는 구주에 대응한 것이며, 너비가 4척인 것은 4계절인 사시를 상징한 것이다. 또한 높이를 3척으로 한 것은 삼재를 상징하며 아궁이의 크기를 12촌으로 한 것은 풍수방위에서의 12실궁을 상징하는 것이다. 솥은 일월을 상징하여 두 개를 설치하고, 부엌 고래의 크기는 8괘방의 8()을 상징하여 8촌으로 하였다. 그 밖에 조적에 있어서는 새 벽돌은 씻어서 사용하되 향수를 섞은 흙을 반죽하는데 있어서는 벽에 쓰는 흙을 다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돼지의 간을 섞어 흙을 이겨 쓰는 것은 효한 부인을 두고자 함이며 부엌을 만들 때 쓰는 흙을 채취할 때는 표피층의 흙을 5촌쯤 먼저 제거하고 그 아래 깨끗한 점토질을 사용하면 대길하다고 믿었다.

 

조왕은 화신으로 불을 관리하고 재산을 관리하기도 하는 부뚜막 신으로서 부녀자들이 섬기는 신이었다. 민속에 조왕은 섣달 스무 닷샛날에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1년 동안 집안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그믐날에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하였다. 부녀자의 과오나 공덕으로 집안의 운이 결정된다는 신앙으로서 주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샘에 가서 깨끗한 물을 길어다 조왕물을 중발에 떠 올리고 가운이 일어나도록 기원하며 절을 하였다. 풍수론적으로는 조왕의 화신과 수신인 조왕물은 오행의 상극관계로 태과하는 화와 불급하는 수(조왕물)의 관계로 설명한다. 따라서 조왕신과 부뚜막, 여자의 관계는 주택의 4주에서 모두 부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풍수적 신앙임을 알 수 있다. 명절 때 성주신에게 하듯 조왕신에게도 상을 차려 부뚜막에 올려 두었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에는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부뚜막에 걸터앉거나 발을 디디는 것은 금기 사항이었으며, 대를 만들어 부뚜막을 항상 깨끗하게 하여 조왕모시기를 올려놓고 빌었다. 때문에 부엌은 아낙의 부지런하고 게으름을 따지는 잣대로 여겨질 정도였을 뿐만 아니라, 가족의 식생활과 관련이 있는 공간으로 4주 가운데 하나인 생활영역으로써 설정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밥과 국을 기본으로 한 식단에 나물과 생선이 추가되어 하루 세 끼를 먹었다. 자연식과 초식 위주로 겨울이 길고 추워 저장음식을 마련해야 했으며 계절마다 별식이 있어 많은 시간과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부엌 안에 가사공간을 모두 담기에는 면적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채마밭·장독대와 우물가·확돌·방앗간·광 등등 인접한 마당과 주변 공간에 걸쳐 부엌일이 이루어졌다. 문은 앞뒤로 두고 김치·젓갈 등의 발효식품을 저장하기 위해 부엌 옆에 찬방을 설치했다. 살림 규모가 큰 집들은 부엌 외에 만찬을 장만하는 반빗간을 따로 두기도 했으며, 뒷마당에도 대소사 때 부엌의 보조역할을 할 수 있는 한데부엌을 두었다. 이러한 여염집들의 부엌들과 달리 창덕궁 연경당에는 일각문을 따로 세운 독채 부엌이 있다. 일반 사대부가의 생활을 동경해서 지은 선비집이지만 안채의 화재를 막고 음식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부엌을 두지 않는 궁궐형식의 독채부엌을 따르기도 하였다. 보통의 사대부가에서는 간혹 사랑채에 붙은 반빗간을 볼 수 있는데 조리시설은 없고 안채에서 마련한 음식들을 그릇에 담아 내가는 일만 하는 곳이다.

 

지역적으로 특색 있는 부엌도 존재했다. 따뜻한 제주도의 부뚜막은 아궁이가 있지만 방과 떨어져 재를 모아두는 용도로도 쓰였다. 방의 건너편으로 부뚜막을 두기도 해 단순히 조리만 담당했으며 화로의 역할을 하는 부섭이 마루에 설치되었다. 한 지붕 아래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부엌이 따로 존재하거나 같은 부엌이라도 살림이 나뉘어져 있는 것은 제주의 오랜 풍습이다.

 

추운 함경도의 겹집에는 정주간이 있어 부엌도 아니고 방도 아닌 반 실내외의 공간에서 집의 대소사가 이루어졌다. 옆에는 외양간이 들어와 가축이 함께 살기도 했다. 여성의 높아진 권위를 드러낸 주택으로는 함양의 허삼둘 가옥이 있다. 대부호였던 허씨의 딸 허삼둘이 시집오면서 새로 지은 집인데, 자형의 안채 꺾인 부분을 부엌으로 들어가는 마루가 차지하고 안채의 상당부분에 부엌이 넓게 자리한다.

 

한옥의 특징인 온돌과 마루의 공존으로 인해 부엌에서 아궁이를 통해 난방이 같이 이루어지면서, 방과 부엌의 바닥 높이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단차는 주부의 가사노동을 가중시키는 한편, 다양한 형태의 주위시설을 고안하게 만들었다. 부엌바닥이 낮아지면서 안방에서 통하는 다락을 부엌 상부에 두어 수장 공간으로 사용하거나, 안방으로 통하는 작은 문을 두어 식사를 할 때면 안주인이 음식을 건네곤 했다. 작은 문의 경우 주로 음식냄새를 차단하거나 겨울에 찬 공기가 방안으로 유입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역할도 하였다. 툇마루와 부엌 사이 찬장에는 문을 양쪽으로 달아 반찬을 저장하고 내먹기 좋게 하였다.

 

부엌 벽의 반을 차지하는 살창은 채광과 환기를 담당하고 살강과 그릇장, 물두멍 등을 배치하였다. 밤마다 방을 데우기 위해 불씨를 관리하고 낮은 부뚜막에서 1365일 조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할머니들의 굽은 허리는 부엌의 부뚜막 때문이라는 말이 괜한 이야기는 아닌 듯싶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인식 속에 한옥은 불편하고 비위생적이다라는 인식을 심어준 주요인이 바로 이 부엌과 화장실이었다. 마지막으로 주택의 4주 가운데 측간을 들 수 있다.

 

서민주택에서 상류주택에 이르기까지 간 단위로 방····각 등을 구성하는 것처럼, 화장실은 측간·변소·뒷간·서각·정방·혼헌·회치실·사찰의 화장실인 해우소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었다. 이는 단순히 생리본능을 해결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고 순화시키는 조상들의 지혜로 인한 것이었다. 측간에 관련된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많고 우스갯소리의 주 단골 장소이기도 한 것을 보면, 측간도 그저 편하게 볼일을 볼 수 있는 곳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뒷간은 집과 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진 후미진 곳에 지어 놓아 그 기운이 무척 습하고 음산하여 풍수론적으로는 폐기가 있는 곳이다. 변소를 지키는 뒷간신·변소각시·측부인이 있다고 하여 신령의 상징물인 헝겊이나 흰 종이를 뒷간 처마에 매달아 놓기도 했다. 화장실 안에서는 입구의 뚫린 쪽을 향해 앉았는데 바깥공기를 마셔 악취를 피하는 목적 이외에 귀신이나 사람에 대한 생리적 경계로 홍만선의 󰡔산림경제󰡕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다. 무릇 새 측간을 지으면 즉시 옛 측간은 없애야 하며······부엌의 재를 측간 가운데 버리면 집이 가난하게 되고 크게 흉해진다.···측간에 올라가서 측간 가운데와 사면의 벽에 침을 뱉어서는 안 된다. 측간에 갈 때는 측간과 3~5보 떨어진 거리에서 두서너 번 기침소리를 내면 측간 귀신이 자연 회피한다.

 

측간의 형태와 위치도 다양했다. 서민 초가에서는 본채와 떨어진 곳에 지붕 없이 되는대로 공간을 구획하여 항아리에 판자 두 개를 걸치는 단순한 형태였고, 상류주택은 안채 영역과 사랑채 영역을 구분하면서 내외와 상하를 따졌다. 안뒷간은 주로 안채에서 떨어진 눈에 안 띄는 곳, 안행랑의 일부나 또는 독립된 건물로 두었고 바깥뒷간은 사랑채를 둘러싸고 있는 바깥행랑이나 대문 가까운 마당의 한쪽 구석 혹은 대문 밖에 따로 두었다. 바깥뒷간은 주인과 손님이 쓰는 뒷간과 아랫사람들이 쓰는 뒷간으로 구분하기도 하였다.

▲ 운강고택의 측간. 상류주택의 측간은 안채 영역과 사랑채 영역을 구분하면서 내외와 상하를 따졌다.  네이버 사진  

 

궁궐 또한 신분별로 측간이 나뉘었다. 임금은 매화틀을 이동식 화장실로 사용하여 이를 전담한 나인이 따로 있었다. 궁궐 내에 상주하는 상궁·내관·나인들과 등청하는 관료들을 위한 공중측간은 경복궁을 그린 북궐도와 창덕궁,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지역적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제주도와 지리산 깊은 산골의 측간이다. 2층 구조로 아래에는 돼지가 살고 있어 똥돼지라고도 한다. 이렇듯 측간은 뒷간이라 불릴 만큼 본채에서 최대한 멀리 안 보이는 곳에 두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는데, 삼척지방의 겹집구조인 전자집과 두렁집은 좀 다르다. 마구와 측간이 몸채로부터 분리되기 보다는 일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랑방의 난방실인 가마정지와 측간은 판자로만 나뉘고 마구와 가마정지는 여물통으로 구분되어 있다. 추위로 인해 봉당과 정지, 가마정지가 보통 일렬로 배치된 것으로 사람과 가축이 함께하는 인축동거형으로 현대식 건물의 화장실 개념과 흡사하다. 사랑방 가까이 마구가 붙고 측간이 마구에 딸려 있으며 지붕 또한 건물에 매단 눈썹지붕 형태가 많아 몸채와 일체 경향이 강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폭설이 내릴 때 측간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밤에는 맹수의 습격으로부터 보호한 것이다.

 

또 본채에 위생시설의 집중화를 도모하여 마구에서 나오는 우분과 측간에서 나오는 인분을 함께 쌓아 두었다가 농사용 거름으로 사용하는 목적도 이룰 수가 있었다. 농경생활에서 인분과 축분은 땅의 지력을 높여주는 가장 중요한 비료인데, 측간은 이것을 저장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대소변이 분리되게 통을 따로 마련하거나 볼일을 본 후 옆에 마련된 왕겨로 덮고 짚·나뭇잎·채소·옥수수염으로 뒤처리한 것을 두엄자리에서 몇 달 동안 썩혀 거름을 만들었다.

 

뒷간은 대개 행랑채 뒤나 담장의 모퉁이, 사랑마당의 외진 곳에 위치했다. 지붕은 기와나 짚으로 올렸는데 맞배지붕이나 모임지붕이 많았고, 벽체는 흙이나 판벽으로 마감했다. 따라서 뒷간보다는 거름을 만드는 퇴비장 기능이 강했다. 예컨대, 정여창 가옥의 사랑채와 안채의 뒷간은 내·외측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나무나 담장으로 시선을 차단한 것은 이용자에 대한 배려이다. 행랑채나 대문간채의 몸채 일부, 혹은 옆으로 달아내어 화장실을 만들었다. 운강고택 측간의 옆문은 담장구획 밖으로 연결된 통로이다. 인분을 퍼내어 짚과 섞어 쌓아두는 퇴비장으로 보인다. 측간 안에는 인분을 퍼 나를 수 있는 똥장군 같은 기구를 비롯해 여타의 농기구들이 같이 보관되기도 했다. 항아리를 묻고 두 장의 나무판으로 공간을 만들거나 발판을 높이 띄워 만들었는데, 소리 나는 대로 통시라는 이름이 생기기도 했다. 따로 출입문이 없어 기침소리가 곧 노크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폐기 내지는 사기가 모이는 장소로서의 측간은 이러한 이유로 풍수양택론에서는 주택의 3요소로 측간을 제외한 문· 안방·부엌이 갖는 공간을 위주로 설정하고 있다. 양택론의 대표적 동서 사택론은 물론 좌우선 육택론에서는 문주조 3요소와 측간이라는 1요소를 공간배분에서 달리하고 있다. 3요소는 항상 같은 동기택에 있어야 하고 3요소 가운데 하나라도 서로 다른 이기택에 있으면 좋지 않은 주택구조로 보고 있다. 반드시 사기(死氣)의 공간인 측간의 경우 3요소가 갖는 방위와 다른 방위에 있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되며, 만약 이를 어기면 위통기하는 것으로 가업이 패()하고 인정이 쇠하여 패절한다고 좌우선 6택론에서 강조하고 있다.

▲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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