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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조선왕릉 조영의 사상적 배경
불교와 유교 그리고 풍수 사상이 적절히 융합된 조선왕릉
기사입력: 2020/01/08 [18:03]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장정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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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의 영릉. 조선왕릉 조영에 가장 큰 사상적 영향은 풍수 사상이라 할 수 있는데 27대 왕릉 중에 풍수적 이유로 천장을 한 왕릉은 세종 영릉 등 9기에 이른다  

 

조선왕릉 조영의 사상적 배경에는 음양오행사상과 풍수사상, 유교 사상, 불교사상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은 숭유억불 정책으로 개국을 하였지만, 고려의 백성들에게 남아있는 불심은 그대로 조선조에 와서도 간접적 수용을 하여 유교와 불교는 적절한 대립과 공존을 하며 융합하여 자리 잡고 있었으며 유교 사상은 양난 이후 국가의 절대적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고 그 실천의 형태로 효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풍수사상은 조선 초기 한양을 선정하는 택지의 기준이 되었으며 잡과로 벼슬길이 열려있었으며 9과목의 고시과목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왕릉은 조선 최고의 사회 문화적 결정체로 왕권의 상징이며 문화적 표준을 제시하는 기준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이러한 토대로 조선왕릉을 살펴보면 장명등과 사대 석의 십이지를 토대로 불교적 관점의 사상을 볼 수가 있고 망주석의 세호의 방향과 석양과 석호의 구성, 5개의 고석 등을 통하여 음양오행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계체 석과 문·무인석의 위치, 배례석, 판위 등을 통하여 유교적 사고를 볼 수가 있다.

 

왕릉 조성에서의 풍수지리 사상의 이론적 배경

 

조선왕릉 조영에 가장 큰 사상적 영향은 풍수 사상이라 할 수 있겠다. 27대 왕릉 중에 풍수적 이유로 천장을 한 왕릉이 9기에 이른다. 세종의 영릉, 중종의 정릉, 선조의 목릉, 인조의 장릉, 효종의 영릉, 정조의 건릉, 순조의 인릉, 장경왕후의 희릉, 문조(추존)의 수릉이 해당한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왕릉을 조성할 경우 풍수 이론은 절대적 관심 사항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경국대전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과거(잡과)의 과시 과목으로 청오경, 금낭경, 동림조담, 명산론, 호순신, 지리문정, 감룡, 착맥부, 의룡과 같이 총 9개 과목이 선정되어 체계적으로 풍수 이론이 체계적으로 적용되었음을 알 수 가 있다.

 

음양과는 현대의 풍수지리를 의미하며 태조원년 1932년에 음양과를 처음 시행하여 성종대에 이르러 경국대전의 완성과 함께 그 체제가 정비되어 왕성하게 운영되어 오다가 조선말기 1894년 고종31년에 폐지가 되었다. 특이사항으로 음양과는 일반 지방에서 술수로 운영되던 학문이 아닌 국가 중앙관서에서만 관장하는 학문이었다.

 

풍수사상 근간의 핵심은 동기감응에 있다. 동기감응 이론은 풍수의 명당발복론과 같은 의미로 돌아가신 분과 후손의 뼈가 서로 감응한다는 의미와 사람과 주변의 기운이 감응한다는 이론 등을 의미하며 이 이론은 음택과 양택으로 체계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론적 근원을 찾아보면 주역의 동기 감응설로 주역 건괘 오효인 구오의 문장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끼리 서로 구하는 것이다.”하였다.

 

자연 유기체 설로 한대의 동중서에서 표현한 천지인 합일 사상, ‘인걸지령설’. ‘신토불이설등이 동기 감응설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지모사상으로 노자의 도덕경을 보면 현빈지문은 천지 만물을 생산하는 근본이라는 내용으로 풍수의 태, , , 육과 같다. 황제내경의 영추편 구궁팔풍편을 보면 풍수의 황천살과 팔풍에 연결된다.

 

회남자의 지형훈을 보면 단단한 흙에서는 강한 사람을, 무른 땅은 비대한 사람을 낳게 한다는 내용이 있다, 주희의 산릉의장에는 유골을 온전하게 모셔야 그 혼령이 편안하며 자손이 번성한다. 되어있다. 또한 정자의 장설에는 땅이 좋으면 그곳에 묻힌 신령이 평안하고, 그 자손이 번성하는데.”라는 구절이 동기감응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풍수지리서인 청오경, 금낭경, 지리신법, 명산론의 동기감응론과 같은 의미이다. 즉 풍수사상은 이러한 동기감응을 토대로 조선의 건국과 함께 한양의 입지선정과 궁궐의 조성, 왕릉지의 선정과 조영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고에 풍수적 사상이 바탕이 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풍수적 길흉론에 왕릉의 천릉도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왕릉의 천릉 시에는 천릉도감이 편성되어 천릉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 헌릉은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능인 헌릉. 장명등을 비롯 십이지나 연화 문양 등은 숭유억불 정책을 전개했던 시대에도 지속된 불교의 상징물이다.


조선왕릉에서 불교사상 투영

 

조선 시대는 고려 시대와 달리 숭유억불 정책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지속적으로 왕가와 백성들 사이에 이어져 내려왔다. 불교의 사상은 유교나 풍수 사상과는 충돌되는 면도 있지만, 불교와 유교 그리고 풍수 사상이 조선왕릉에서는 적절히 융합되어 새로운 문화를 연출하게 됨을 볼 수 있다.

 

왕릉 상설에서 장명등과 사대 석(병풍석)의 십이지나 연화 문양 등은 불교의 상징물이다. 또한, 유교적 표현으로는 남좌여우 사상과 계체석, ·무인석의 위치, 배례석 등은 유교적 산물이다.

 

불교의 핵심 사상은 윤회 사상이다. 사람이 죽게 되면 생전의 업에 따라 그 혼이 새로운 사물로 환생(幻生)된다는 사상이다. 따라서 불교는 화장을 원칙으로 하여 능역의 조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있으나 능역에는 불교적 조영이 남아있다. 특히 불교적 영향으로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원찰 제도는 왕릉을 수호하고 왕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왕의 절대적 효심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융건릉의 원찰로 용주사를 들 수 있으며 부모은중경을 통하여 정조의 효심을 느낄 수 있겠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으로 불리우는 불경이지만 특히 유교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이 경이 널리 간행되었다.

▲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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