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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생활·대중불교 3대지표 통해 중생구제 실천하는 천태종
천태종 중창조 상월원각대조사 탄생 108주년…12월24일 총본산 구인사 광명전서 봉축법요식
기사입력: 2020/01/09 [10:33]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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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종 중창조 상월원각대조사 탄생 108주년총본산 구인사 광명전서 봉축법요식 

 

천태종(天台宗)은 혼란한 불교를 통합하기 위해 고려시대 이 땅에 뿌리를 내렸다. 천태종의 맥()을 이은 대한불교천태종은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의 3대지표를 통해 중생구제를 실천하고 있다. 법화경은 천태종의 철학과 사상을 담고 있는 소의경전이다.

 

묘법연화(妙法蓮華)의 천태사상이 이 땅에 처음 뿌리내린 것은 고려시대였다. 대각국사 의천대사는 당시 혼란했던 고려불교를 하나로 통합하고 바로잡기 위해 6세기경 천태 지의가 개창한 천태종을 한국에 들여왔다. 천태사상은 학문과 수행을 두루 겸비한 새로운 불교정신이었으며 불교사상을 모두 아우르고 통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태종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용수보살의 맥을 타고 천태산의 지자대사와 대각국사 의천대사를 통해 불교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는데, 이를 근·현대사 이후 소백산에서 중창한 이는 상월원각대조사이다. 천태교학은 1세기경 용수보살의 공사상과 중관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를 6세기경 중국의 천태대사가 장통별원(藏通別圓: 장교, 통교, 별교와 원교)의 화법사교(化法四敎)와 화의사교(化儀四敎)를 바탕으로 오시교판(五時敎判)을 체계적으로 확립하였다. 

▲ 대한불교천태종의 총본산 소백산 구인사

 

지자대사는 교종과 선종의 극심한 대립을 하나로 융합하기 위해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교학적인 부분만 강조하는 교종과 수행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선종은 두 개와 같이 하나로 불도(佛道)의 길을 가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이를 주장하기 위해 천태대사는 교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모든 부처님은 모든 중생들을 성불하기 위해 이 세상에 출현하셨으며 성문, 연각, 보살의 수행자들이 모두 일불승에 들어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이 불교도의 목표라고 생각하였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수행방법이 있지만, 천태종에서는 염불수행을 주요 수행방법으로 정하고 있다.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출가자, 재가자 모두가 관음정진을 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관음정진은 타력신앙으로 알려져 있지만, 목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정진함으로써 스스로의 자율적 노력이 필요한 면도 있다. 해방 후에 천태종을 중창한 상월원각대조사는 구인사(救仁寺)를 창건하고,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애썼다. 2대 남대충 대종사와 3대 김도용 대종사가 이 뜻을 받들어 현재 대한불교천태종의 모습이 갖춰졌다.

 

상월원각대조사는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라는 3대 지표(指標)를 통해 구체적인 중생구제를 실천했다. 애국불교란 단합된 힘으로 자기가 사는 이 시대와 지역에 당면한 여러 가지 과제를 지혜롭게 해결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 사회, 가정, 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세계인의 한 사람으로서 세계평화를 위해 힘쓰는 것을 뜻한다. 생활불교란 일상과 수행이 결코 둘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복을 바라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스스로 복을 짓는 적극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에 주경야선(晝耕夜禪),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염불 수행하여 부지런히 복을 지어야 한다. 대중불교란 재가자 또한 출가자와 마찬가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갖추어 개인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동시에 중생구제의 서원을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천태종의 종조(宗祖) 천태지자대사 

 

천태종의 제4대 조사인 지의(智顗)대사는 중국 천태종의 실질적인 개조(開祖)로서 천태교학을 완성했다. 형주(荊州) 사람으로 속성은 진(), ()는 덕안(德安)으로 천태대사 또는 지자(智者)대사라고도 한다.

 

538년에 태어나 부모님을 여의고 18세에 출가하여 지의라는 법명을 받았다. 이후 혜광율사에게 구족계를 받은 뒤에 560년 광주(光州) 대소산(大蘇山)의 혜사대사 문하에서 수행하여 법화삼매를 얻고 스승의 인가를 받았다. 31세에 스승과 헤어져 금릉 와관사에 머물며 법화경, 대지도론, 차제선문 등을 강설했다. 38세에 천태산(天台山)에 들어가 화정에서 두타행의 고된 수련을 하고, 수선사를 세웠다. 본래 천태산은 도교의 성지였으나, 지자대사가 천태산에 머무른 이후 천태산은 천태종의 본산이 되었으며, 지자대사는 천태대사로 불릴 만큼 천태산과 인연이 깊다

 

578년 법화문구를 강의하고, 591년 진왕 광의 부름을 받고 왕에게 보살계를 베풀어 지자대사의 법호를 받았다. 이후 남악으로 가서 혜사대사의 은혜에 보답하고, 다시 고향 형주로 가서 옥천사를 창건했다. 593년에 옥천사에서 법화현의를 강의하고 이듬해에 마하지관을 강의했다. 이후 양주(楊州)로 가서 정명소를 진왕 광에게 올리고, 595년 천태산으로 돌아가 황폐해진 절을 수리하고 제법십조를 지었다. 이후 병을 얻어 석성사에서 입적했는데, 입적 후 진왕이 대사의 뜻을 받들어 천태산에 국청사가 세워지고, 천태종의 근본 도량이 되었다.

 

지자대사는 오시교판 등 천태교학(天台敎學)을 확립했을 뿐 아니라, 8년 동안 와관사에서 중생을 위한 교화활동을 펼치면서 백성들의 의지처가 되는 등 스승 혜사대사와 마찬가지로 중생들을 위한 불교교화행을 실천하였다. 또한 법화문구, 법화현의, 마하지관을 강의하였는데 이를 법화삼대부 또는 천태삼대부라고 하고, 장안관정이 이를 기록한 이후에는 법화사상의 중심이 되는 저술이 되었다.

 

지의대사는 교학적 토대를 통해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마련하고 일생을 통해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을 실천했다.  

▲ 천태종의 종조 천태지자대사    

 

지자대사는 제4대 조사이지만 천태종은 실질적으로 천태지자대사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남북불교는 남조의 이론적 불교와 북조의 실천적 불교로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지자대사는 남조불교와 북조불교를 융합하여 천태종을 개창했는데, 이는 한쪽에만 치우친 문화적인 차이를 통합한 것이다.

 

지자대사가 천태학을 교학적 체계로 완성함으로써 중국의 다른 종파들도 많은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 인도불교를 중국의 주체적인 불교로 확립시키는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교학적 토대를 통해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마련하고 일생을 통해 자리이타행을 실천한 지자대사는 중국의 작은 석가모니라고 불린다

 

한국천태종의 개창조 의천대각국사

 

대각국사 의천대사는 1055년 고려 문종과 인예왕후 이씨 사이에서 넷째 왕자로 태어났다. 이름은 후()이고, 자는 의천(義天)이며, 대각국사는 그의 시호이다.

 

11세 되던 해에 아버지인 문종이 여러 형제를 불러서 누가 출가하겠느냐?”고 물었다. 이때 어린 후가 원하여 1065년 경덕국사를 은사로 하여 왕궁에서 출가했다. 영통사에서 공부하다가 같은 해 10월에 불일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학문에 정진하여 스승이었던 경덕국사가 세상을 떠나자 강의를 대신 맡게 되었는데, 이 강의가 매우 훌륭하여 명성을 온 나라에 드날리게 되었다.

 

의천대사는 송나라로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의천대사의 안위를 염려한 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1085년 마침내 의천대사는 왕과 어머님에게 편지를 남기고 유학을 떠났다. 이후 송나라에서 의천대사는 다양한 불교철학을 배우고 이에 대해 토론하며 많은 종파의 많은 학승들과 교류하였다.

천태산에서 본국에 돌아가면 천태교학을 널리 선양하겠다는 서원을 한 의천대사는 어머니인 모후의 뜻을 받들어 1086년 귀국하였다. 의천대사는 본국에 도착하자마자 왕과 태후에게 허락 도 없이 외국으로 나간 죄를 빌었으나, 왕실에서는 대사를 성대히 환영하였다.

▲ 한국 천태종의 개창조 의천대각국사  

 

대각국사는 귀국할 때 불교서적 3000여 권을 가지고 와서 송나라의 모든 불교학을 섭렵하고, 천태학을 조직하였다. 한편으로는 제자들을 양성하고 송나라에 있을 때 사귄 벗들과 교류하여 더욱 심도있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흥왕사의 주지로 있을 때에는 경((() 삼장(三藏)의 정본 외에 그 주석서인 장소(章疏)만을 수집하여 목록을 작성한 최초의 신편제종교장총록 3권을 편집하였다. 이후 흥왕사 교장도감에서는 이 목록에 의거하여 고려속장을 간행했다.

 

1097년 국청사(國淸寺)가 완성되자 대각국사는 첫 번째 주지스님이 되어 천태교학을 강의하였는데, 이때 모여드는 사람들이 무려 1천여 명이 넘었다. 그때 한국불교 역사상 처음으로 천태종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대각국사는 그해 8월에 병이 나서 110147세에 입적한다.

 

대각국사는 한국불교의 진흥과 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다. 그 중에서도 천태종의 개립은 교단을 넘어 국가적으로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교종과 선종이 대립함으로써 종파가 서로 대립과 투쟁하여 불교계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대각국사는 고려불교의 혼란상을 바로잡아 올바른 사상을 확립하고자 하였으며, 바른 전통을 세우고자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선학과 교학을 융화시켜 분쟁을 화합하고, 모든 철학과 신앙, 교학을 귀일하여 불교의 통일을 기하였던 것이다.

 

의천대사는 300여권에 달하는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대부분 소실되어 현재에는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3, 대각국사문집, 대각국사외집의 낙장본, 원종문류(圓宗文類), 석원사림(釋苑詞林)의 잔편, 간정성유식론단과(刊定成唯識論單科)의 서문만이 전해오고 있다.  

 

천태종 중창조 상월원각대조사  

 

상월원각대조사(上月圓覺大祖師, 1911~1974)1911년 음력 1128일 강원도 삼척군 노곡면 상마읍리 봉촌마을에서 밀양 박씨가문 밀성대군의 후예로 부친 박영진(朴泳鎭)씨와 모친 삼척(三陟) 김씨 사이에 2대독자로 태어났다. 대조사의 법명(法名)은 상월(上月), 법호(法號)는 원각(圓覺)이다. 속명이 준동(準東)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총명함과 진지함을 지녀 1915(5) , 서당에 입학하였다. 총기가 탁월하여 1923(13) 가을 무렵까지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효(通曉)하고 한시(漢詩)에도 능숙하였다.

 

1925(15) 여름, 크게 발심하여 삼태산에 들어가 천수다라니를 주력(呪力)하며 100일을 기한으로 용맹정진하였다. 이 수행으로 득력(得力)을 하였고 천신의 옹위(擁衛)를 직접적으로 받게 되었다. 출가 이후 국내외의 여러 사원을 방문하고 용맹정진하던 중에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그 자리에 구인사를 창건했다.

 

1926(16) , 모친에게 하직을 고한 뒤, 불법 구도에 나서 국내 명산대찰의 성지를 역방하였다. 소백산 태백산 금강산 구월산 묘향산 등 여러 명산의 대찰(大刹)1930년까지 5년 동안 순례하며 영험을 축적하고, 부처님께서 남겨 주신 삼장교해(三藏敎海)에 두루 접하였다.

 

1930(20), 더 넓은 세상과 불법에 접하고자 중국의 오대산 보타락가산 아미산 청량산 및 천태산 국청사와 화정봉 등 성지를 6년 동안 두루 편력하였다. 베이징과 서장·몽골 근방까지 순례하여 안목을 넓히고 영감(靈感)이 충만하였다.

 

1936(26), 성지의 만행을 마치고 귀국한 뒤부터 대중에게 적합한 교화방편과 법력으로 중생구제에 힘썼다. 강원도와 소백산을 중심으로 도량을 삼아 9년 동안 만행을 이어갔다.

 

1945(35) 음력 116, 소백산 자락의 충북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栢子里) 여의생(如意生) 마을에 들어왔다. 이 마을에서 방 한칸을 빌려 따르는 대중과 함께 철야로 천수다라니를 주력 정진하였다.

 

1945(35) 음력 2, 현재의 구인사 법당 지점을 잡아 정지(整地)하고 음력 3월에 상량(上樑)하여, 소법당 외에 방 8·주방 2칸의 요사채를 완공하였다. 이어서 음력 5월 단오에 억조창생(億兆蒼生) 구제중생(救濟衆生) 구인사(救仁寺)’로 명명하니, 이 날을 구인사 창건기념일로 정하고 있다.

 

1946(36), 구인사 도량 건립 후 정진을 계속하면서 세 가지 큰 서원을 세웠다. 첫째, 큰 법을 깨달아 이곳에서 장엄한 불사를 전개하겠다. 둘째, 반야 지혜와 무애 해탈을 증득하지 않고는 중생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 셋째, 성취한 공덕은 중생에게 회향하여 다 함께 무상보리를 얻게 하겠다.

 

1950(40), 6.25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공주 마곡사 인근의 암자로 옮겨서 수행하며 난민구제에 힘썼다. 불법(佛法)으로 교화하면서 고난자(苦難者)들을 찾아 신력(神力)으로 구호하니 모두 도승(道僧)으로 모시며 따랐다. 그해 겨울, 반년 만에 돌아와 소실된 절터에 3칸 초암을 재건하고, 선정(禪定)과 주력(呪力)으로 용맹정진을 다시 시작하였다.

 

1951(41) 음력 1228일 새벽, 천수천안관세음보살로 용맹정진 하던 중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내가 탄생했다라고 대성(大聲)으로 외치니, 곧 대오(大悟)의 순간이었다. 이때 산곡(山谷)이 메아리치고 대중은 정신이 막막하였다.

 

1952(42), 대오 이후 주경야선(晝耕夜禪) 수행으로 제자들을 지도하고, 구인사를 찾는 대중을 다양한 방편으로 교화하였다.

 

1963(53), 새불교운동의 염원으로 적극 교화를 전개하였다. 이때 호국불교의 실천, 생활과 불교신행의 일체화, 모든 사람이 함께하는 대중불교의 구현을 교화활동의 세 가지 방향으로 삼았다.

 

1965(55), 1월에 경북 영주시 부석면 성화사(蓬來寺)에서 1주일간의 설법으로 그곳에 머물던 선도(仙道)수행자들을 교화하였다. 이들이 초기 종단의 토대를 세우는데 역할을 하였다. 이후 경북, 대구, 강원, 부산, 울산, 제주 등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대법회를 열어 포교하였다. 당시로서 이같은 행보는 파격적 교화의 방법이었다.

▲ 천태종의 중창조 상월원각대조사    

 

1966(56) 830, 천태종 중창(重創)을 선포하고 애국불교·생활불교·대중불교의 3대지표를 발표하였다.

 

1967(57) 124, 천태종 초대 종정에 취임하였다. 천태종은 1967124, ‘천태종대각불교포교원으로 문교부에 등록, 19691218대한불교천태종으로 종단등록을 마쳤다. 상월원각대조사는 천태종의 종헌·종법과 종기(宗旗)를 제정하였다.

 

1970(60) 15, 정부로부터 종단인가를 받고 종헌·종법을 공포하였다. 종헌 전문과 총강을 통해 종지(宗旨)로서 3대강령을 제시하였다.

1971(61) 51, 친히 교화의 기본과 지침이 되는 법어를 발표하고, 1026일에 종단의 방향과 종지 및 종풍에 관한 교시문을 공표하였다.

 

1973(63) 겨울 안거의 결제식에서 누구를 막론하고 백만독 관음주송을 실천할 것을 설법하였다.

 

1974(64) 음력 427일 밤, 좌우를 둘러보며 발보리심(發菩提心)하라고 설하고 열반에 들었다. 세수 64, 법랍 50세이다.      

 

상월원각대조사는 구인사를 세우고 여러 제자들과 수행하던 1951년 음력 1228, 마침내 대도(大道)를 이룬 후,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는 오랜 세월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었지만 결국 새로운 불교운동의 일환으로서 귀결되었다. 새로운 불교운동의 목적은 수많은 중생들을 교화하고 구제하는 것으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보살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다.

 

오래전 중국의 천태지자대사가 천태법화의 일승(一乘)의 진리를 천명했듯이 고려의 의천대각국사가 수많은 종파를 원만히 통합했듯이, 상월원각대조사도 삼대지표를 통해 중생구제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역사 속에서 이어진 오랜 사명을 다시금 되살려 고귀하고 참다운 정신을 계승하도록 천태종을 중창했다. 대한불교 천태종의 중창은 종파를 넘어 한국 불교사의 한 획을 그은 중대한 사건이다. 오래도록 단절되어 왔던 한국 천태종의 전통을 이은 대한불교 천태종은 대조사의 지도 아래 각 분야 전문가들과 천태의 사상과 역사, 신앙 수행에 적절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후 대조사는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의 새로운 불교운동을 전개했다. 천태종의 3대지표는 대조사가 추구한 불교의 모습과 정신을 담아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3대지표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한편, 한국의 전통 문화를 계승하는 생활법도와 현대생활과 조화를 이루는 계율을 확립하였다. 그리하여 역사성을 바탕으로 종단의 지표와 강령을 제정하고, 불교의 대중화와 생활화를 핵심으로 하는 종헌을 선포하였다.   

 

천태종 중창조 상월원각대조사 탄생 108주년 봉축법요식

1224일 총본산 구인사 광명전서 불교지도자 등 2만여 사부대중 동참

 

고려시대 천태종을 개창한 대각국사 의천대사의 중생구제 정신을 이어받고, 조선 500년간 은몰(隱沒)됐던 한국 천태종을 중창한 상월원각대조사의 탄생 108주년을 기념하는 법석이 천태종 총본산 단양 구인사에서 열렸다.

 

천태종(총무원장 문덕 스님)1224일 오전 1030분 구인사 광명전 5층에서 상월원각대조사 탄신 108주년 봉축 법요식을 봉행했다. 법요식에는 도용 종정예하를 비롯한 종단 스님,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차석부회장 회성 정사(진각종 통리원장)와 소속 스님 등 불교계 지도자, 오영훈·이후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김장회 충청북도 행정부지사와 류한우 단양군수를 비롯한 지자체 관계자, 송희연 금강대 총장김상규 공무원불자연합(공불련) 회장이선재 BBS불교방송 사장, 불자 등 사부대중 2만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봉축 법요식은 도용 종정예하의 헌향·헌다·헌화와 원로 스님을 비롯한 종단 대덕스님들, 내빈들의 헌향·헌화에 이어 책임부전 화산 스님을 비롯한 천태종 범음범패보존회 스님들의 상단권공 및 조사영반 의식 등으로 진행됐다.

 

의식이 끝난 후 총무원장 문덕 스님은 봉축사를 통해 대조사님은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기 이 세상에 출현하셨고, 숙세(宿世·전생)의 인연을 따라 출가하시어 각고정진으로 대각을 성취하셨다그리고 이곳 구인사 산문을 열어 억조창생 구제중생의 큰 원력을 펼치시며, 새로운 시대를 견인해 나갈 새로운 불교의 기틀을 마련해 주셨다고 강조했다.

 

문덕 스님은 또 오늘 대조사님의 탄신 108주년을 봉축하는 법석의 인연이 무량해 모든 종도가 일심청정의 정진으로 해탈지견의 공덕을 쌓아가고, 국운이 융창하고 인류의 평화가 실현되길 기원한다연말연시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빛내 주시는 여러 종단의 대덕 스님들과 내외 귀빈 여러분전국에서 동참해주신 사부대중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법요식에 동참한 내빈과 불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불교계 지도자, ·관계 인사, 지자체 관계자들의 축사도 이어졌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장 원행 스님(조계종 총무원장)은 차석부회장 회성 정사가 대독한 축사에서 천태종의 중창조이신 상월원각대조님의 탄신 108주년 봉축법요식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면서 이 자리를 함께 하는 모든 분들이 대조사님의 넓은 원력과 높은 가르침을 더욱 새롭게 되새겨 개인과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한국불교의 발전을 견인해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 상월원각대조사 탄생 108주년 봉축법요식이 지난 12월24일 오전 10시 30분 천태종 총본산 단양 구인사 광명전에서 열렸다. 사진=구인사 제공

 

이시종 충청북도지사는 김장회 행정부지사가 대독한 축사를 통해 상월원각대조사님의 3대지표(애국·생활·대중불교)인 새로운 불교운동은 지금의 한국과 충북 발전의 근간이 되고 있다앞으로도 부처님의 가피와 대조사님의 가르침으로 대한민국과 충북이 발전되길 기원한다고 강조했다. 김상규 공불련 회장과 이후삼 국회의원도 대조사님 탄신 108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오늘 법요식이 대조사님의 이념과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축사가 끝난 후 전국 47개 사찰 합창단으로 구성된 천태연합합창단이 마하연국악단의 반주로 묘법연화경의 노래상월원각대조사 찬2곡의 봉축가를 불렀다.

 

이날 상원원각대조사 탄생 108주년 봉축 법요식은 총무부장 월장 스님의 사회로 종정예하 헌향·헌다·헌화 삼귀의례 찬불가 반야심경 독경 상월원각대조사 법어 봉독(종의회의장 도원 스님) 국운융창기원 종단스님 및 내빈 헌향헌화 상단권공 및 조사영반 봉축사 축사 봉축가(천태연합합창단마하연국악단) 관음정진 사홍서원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오후 130분에는 상월원각대조사 적멸궁에서 적멸궁재를 지냈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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