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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여객기 격추 시인에 神政 체제도 개혁될까

김희성 기자 | 기사입력 2020/01/12 [11:57]
대학가, 최고종교지도자의 신정체제 비판 시위재개

이란, 여객기 격추 시인에 神政 체제도 개혁될까

대학가, 최고종교지도자의 신정체제 비판 시위재개

김희성 기자 | 입력 : 2020/01/12 [11:57]
▲ 하메네이 공식 홈페이지 캡쳐  

 

이슬람 혁명의 유지와 확산에만 관심국민은 여전히 가난

 

미국의 솔레이마니 암살로 반미 정서가 불길처럼 일어나 중단됐던 이란의 국내의 시위가 여객기 격추 시인과 함께 되살아났다.

 

미국의 공격으로 숨진 솔레이마니에 대한 추모와 그를 순교자로 만드는 열기는 8일의 우크라이나 여객기 추락이 11일 이란 방공망의 미사일 때문으로 드러나면서 정부와 체제에 대한 국민 저항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이란군이 176명이 희생된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를 시인하자, 많은 민간인이 희생됐음에도 사건을 은폐하려 한 군과 지도부에 대한 비판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이란 대학생과 시민 등 천여명은 현지시간 11(현지시간) 오후 수도인 테헤란 시내에서 혁명수비대 등 군부와 정부를 비판하는 항의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거짓말쟁이에게 죽음을, 부끄러워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고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까지 거론하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엄격한 이슬람체제에서 최고지도자를 비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란 혁명수비대와 군 통수권자인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판과 개혁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 내 SNS에서는 12일 오후 테헤란 남부 아자디 광장에서 추모 집회를 열자는 제안이 유포됐다. 아저디 광장은 1979년 이슬람혁명 당시 테헤란 시민이 모여 시위를 벌이던 상징적인 장소다. 지난 6일 이곳에선 지난 3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군 드론 공격으로 숨진 거셈 술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의 영결식이 열려 주최측 추산 100만 명 이상이 모여 미국에 죽음을등 반미 구호를 외쳤다. 혁명 구호와 반미 구호로 넘쳤던 광장이 체제를 비판하는 구호로 가득 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란 지도부는 최근 자국 테헤란 인근에서 발생한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사고와 관련해 책임자를 엄벌하는 한편 대중에게 격추 정보를 공개하라고 지시했다.이란 파르스통신은 11(현지시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긴급히 열린 최고국가안보회의에서 여객기 격추 관련 정보를 보고받았고, 이를 대중에 공개하라고 지시했다"라고 보도했다.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끔찍한 이번 사태의 진상을 명명백백 규명해야 한다"라며 "용서받을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책임자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고 처벌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미사일을 쏜 당사자인 이란 혁명수비대도 사건 경위를 자세히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한편 이란은 군대가 2개인 독특한 제도를 운영한다. 지역 방어를 맡는 정규군과 함께 큰 작전을 맡는 정예 혁명수비대를 별도로 운영한다. 두 개의 군대 모두에 육해공군이 모두 있다. 군의 반란을 우려해서다. 그 중에서 혁명수비대는 체제수호 임무를 맡고 있으며 예산과 대우에서 특별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혁명수비대의 고위 지휘관이 공개적으로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1979년 이슬람혁명의 상징인 루홀라 호메이니의 이름을 딴 국제공항에서 막 이륙한 민항기를 수도권 대공 방위를 책임진 혁명수비대 방공부대에서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해 격추한 사건을 무려 사흘 만에 인정한 이번 사건으로 이란의 국가 이미지는 나락에 떨어졌다. ‘정예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혁명수비대도 평판이 추락한 것은 물론 책임을 져야 할 처지가 됐다.

 

이번 사고의 뒤처리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로하니 대통령이 이란 체제에선 군 통수권자도 국가원수도 아니다. 공식 명칭이 이란 이슬람공화국인 이란의 국가원수는 대통령이 아니라 최고지도자(라흐바르 에 모아잠)로 불리는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다.

 

1979년 이란혁명 직후 만든 헌법은 지도자(라흐바르)’가 국가원수와 최고 종교지도자는 물론 군 통수권자와 사법부·입법부·행정부의 상징적 수장을 겸하도록 하고 있다. 최고지도자가 종교는 물론 국정까지 좌지우지한다. 사실상의 정교일치 또는 종교우위 체제다.

 

국민이 투표로 뽑은 로하니 대통령은 행정부의 우두머리일 뿐이다. 그런 로하니가 자신이 통수권도 없는 혁명수비대가 저지른 여객기 격추 사건의 책임을 온통 도맡고 있는 셈이다. 신정 체제의 모순이 온통 드러나는 순간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게 그에 걸맞은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로하니 대통령이 이날 사건의 원인이 이란군의 실수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책임 있는 모든 사람이 처벌받도록 하겠다고 유난히 강조했다는 사실에 관심이 쏠린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란에선 지난해 111일 정부가 석유 보조금을 전격 삭감해 석유 값이 L1만 리알(100)에서 15000리알(150)50% 인상되면서 수도 테헤란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대규모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거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비롯한 강경파의 주도로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서 10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이 국민 저항에도 석유 보조금을 폐지한 이유는 경제난에 따라 재정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서다.

 

2015년 핵합의가 가동하면서 일부 경제제재가 풀렸던 이란은 20173.8%의 경제성장률을 이뤘다. 하지만 미국이 핵합의에서 탈퇴하고 경제제재를 재개하면서 경제성장률은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2018년 추정치가 -4.9%로 악화했으며 2019년 전망치는 -8.7%로 더욱 떨어졌다. 물가도 40% 정도 올랐다.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특히 의약품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이처럼 이란은 경제가 심하게 뒷걸음치고 민생에 타격을 주면서 국민의 불만이 고조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 정부는 재정 부담을 줄이려고 석유 보조금을 줄였으나 택시 기사와 배달업자는 물론 정부의 무능함과 모험주의를 비난하는 대학생 등의 저항에 부딪혔다.

 

이란은 국민이 선출하지 않는 최고지도자에게 과도한 권력을 부여하고 있다. 최고지도자는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을 최종 임명하는 것은 물론 의회의 3분의 2 찬성을 얻으면 해임할 권한도 있다. 사법부와 군부의 인사권도 쥐고 있다. 임기 8년의 대법원장과 국영방송 사장에 정규군과 혁명수비대, ··공군 수장까지 임명하고 해임한다. 서구에서 이란을 사실상의 신정(神政)국가라고 부르는 이유다.

 

종신직인 최고지도자는 전문가회의(지도자 선출 전문가회의라고도 함)라는 합의체에서 선출한다. 이 회의는 보통·직접 선거로 뽑힌 임기 8년의 의원 86명으로 이뤄졌다. 전문가회의는 최고지도자 다음 가는 최고 권위의 조직이다. 헌법을 해석하고 대통령과 의원 선거를 감독하는데 입후보자 자격을 심사·인증하는 막강한 권한이 있다. 국회가 가결한 법안이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부합하는지 심사해 합법성을 보증하거나 거부할 수도 있다. 의회 위에 종교조직이 옥상옥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이런 조직이 생긴 이유는 79년 이란혁명을 주도한 아야툴라 호메이니(1902~89)의 이상 때문이다. 호메이니는 이슬람 율법학자와 세속 법학자를 망라한 법학자들이 지배하는 제정일치의 법치를 꿈꿨다. 최고지도자를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보호자로도 부르는 이유다.

 

전문가회의는 최고지도자의 활동을 감독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 각 주도의 중앙 모스크에서 금요예배를 주도하는 이맘(이슬람 예배지도자이자 종교지도자)을 임명하는 권한도 있다. 하지만, 임기 8년의 전문가회의 의원이 종신직인 최고지도자를 견제하기란 쉽지 않다.

 

이란에는 국민이 뽑은 의회(마슈레스)가 존재하지만 이슬람 법학자 6명과 일반 법학자 6명 등 모두 12명으로 이뤄진 감독자평의회가 있어 상원 역할을 한다. 이슬람 법학자 6명은 최고지도자가 지명하며 일반 법학자는 대법원장이 지명한 사람 중에서 의회에서 최종 선출한다.

 

이란의 초대 최고지도자는 호메이니가 맡았다. 그가 1989년 세상을 떠나자 오른팔이던 알리 하메네이가 자리를 이어 지금까지 맡고 있다. 하메네이는 어려서 이슬람 종교학교에 다닐 적 호메이니의 제자였다. 그는 혁명 전인 60년대 이슬람 활동으로 친미 샤(이란 군주) 정부에 체포되기도 했다. 샤 정부의 박해를 피해 소련으로 피신했다. 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샤가 해외로 망명하자 오랜 망명생활을 끝내고 프랑스 파리에서 귀국한 호메이니는 제자인 하메네이를 수도 테헤란의 금요예배 이맘에 임명했다. 자신의 오른팔로 공인한 셈이다.

▲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공식 홈페이지 캡쳐  

 

하메네이는 국방부 장관과 혁명수비대 감독관을 지내는 등 혁명 정부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1981년 폭탄을 이용한 암살 기도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그는 그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95%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돼 3대 대통령에 올랐다. 유권자들이 하메네이가 호메이니의 복심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메네이는 혁명수비대 감독관과 대통령이라는 세속 권력을 경험하고 최고지도자를 맡고 있다.

 

이런 신정체제에서는 군과 공직자는 국민이 아니라 최고지도자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 실제로 이란에서는 혁명 유족이나 참가자를 중심으로 능력이 아닌 낙하산으로 공직을 맡은 사람도 적지 않아 불공정특혜시비를 불러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란에서 전근대적인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지 주목된다.”고 분석했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지난해로 40주년을 맞았다. 이란은 그동안 반미와 반서구, 반사우디아라비아를 외치면서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부,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을 지원하면서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워왔다. 이 과정에서 큰 비용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국민은 여전히 가난하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로 이란의 20191인당 국내총생산(GDP)5506달러로 세계 95위다. 미국의 경제제재 탓도 크지만, 국가의 번영과 국민 복지보다 이슬람 혁명의 유지와 확산에만 관심을 가진 신정체제 지도층의 인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번이 체제 개혁의 계기가 될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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