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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서신●무분별한 감성에 젖어 뜬구름
자아 확립 없는 평화나 행복는 거짓
기사입력: 2020/01/24 [11:42]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이옥용 매일종교신문 NEWSCLIP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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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것은 감성을 자극하는 말이라고 봅니다. 감성의 자극이 좋은 면도 있지만 이성을 마비시켜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 경우 개인은 물론 가정과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친다면 심각해집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는 것을 말합니다.

 

()은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여 어지럽힌다는 뜻이고, ()는 없는 사실을 가지고 속이거나 깔본다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그릇된 이론이나 믿음을 이용해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사이비(似而非) 종교 교주는 말할 것도 없고 일부 명망(名望) 있는 종교 지도자들, 그릇된 주장을 내세우는 학자와 정치가 등이 모두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건전한 상식은 배제한 채 너무 감성에 치우쳐 말하거나 행동하게 되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정치, 종교, 예술의 극치가 감성의 호소력에 따라 대중의 이목이 쏠리고 성패가 좌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술은 사람의 마음에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정치인이나 종교가들이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감성 호소에 치중한다면 결국 불행을 자초한다는 사실입니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유권자들의 표심(票心)을 노리고 감성에 호소합니다. 얼마나 감성에 잘 호소하느냐에 따라 당락을 좌우하기 때문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저히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도 서슴지 않습니다. 대선이나 총선 등 대형 선거 때마다 매번 경험하는 사실입니다. 이번 4월 총선에서도 얼마나 그런 일들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종교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유명하고 대형 종교 조직을 이끌고 있는 성직자일수록 감성 호소의 달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입술의 마술로 불완전한 인간의 모순과 허점을 이용하는 감성 전략을 구사해 부지불식(不知不息)간에 행동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런 전략에 잘못 걸려들게 되면 오히려 인생 전체를 망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합니다.

 

필자도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 상식과 이성적인 분별없이 그럴듯하게 포장한 감성적인 말들에 휩쓸려 행동했던 것들을 이제 와서 억울하고 분하기도 하고 뒤늦게 후회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때는 자신의 지식이 얕고 영적 수준이 낮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들이 전해 준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 말들이 다 인양,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판단하고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심각한 것은 종교계가 오히려 더 심하다는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무지해서는 이를 분별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영적인 문제들은 사람들이 대부분 무지해서 미혹당하기 쉽습니다.  

 

확실한 정보없이 함부로 나서지 마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는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 해당 분야의 정보와 지식들이 많이 공유되고 있어 조금만 신경 써서 살펴보고 건전한 사고와 폭넓은 상식을 갖추고 있으면 이에 잘 대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왜곡되고 부정확한 내용들이 많으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필자는 이제 감성보다는 이성과 상식에 근거해서 말하고 행동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지난날 이성과 상식 보다는 허황한 감성적인 말들에 현혹되어 행동했던 결과로 얻어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합니다.

 

한때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가 구멍이 난다는 일부 언론의 광우병 조작 선동에 온 나라가 요동쳤는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정치인이나 종교가는 자기식 논리를 만들어 나를 믿고 내 말을 듣고 하라는 대로 하면 평화가 오고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하지만 지난날의 역사를 보면, 어느 정치인이나 종교가가 사람들에게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었는지 자문해 보십시요. 지독한 사기꾼일수록 너무 강하게 위해주고 이익을 준다는 갖은 감언이설(甘言利說)로 꾀어 맹목적인 추종을 하게 만들어 자신의 인생을 망치게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누가 무엇 때문에 아무런 대가없이 공짜로 나를 위해 주고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단 말입니까.

 

개인은 전체를 위하고 전체는 개인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엔 개인의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생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부터 자력갱생(自力更生)의 능력이나 실력도 갖추지 않고 비이성적이고 감성만 자극하는 부당한 언설(言說)로 평화와 행복이 나에게 주어진다는 것은 신비주의적 망상에 불과합니다.

 

자아 확립 없는 평화나 행복는 거짓

 

철저한 준비도 전략도 없이 이벤트와 대회로, 결의와 맹세로는 결코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화와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면 어떤 수단이나 방법도 정당화될 수 있다면 이는 본질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폐쇄적사고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누구나 평화나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 본질을 알고 이를 누리고 사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정치인이나 종교가들이 늘 평화와 행복을 말하지만 그들 자신은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이 문제는 단선적이고 획일적인 잣대로 정리될 수 없습니다. 결국 올바른 자아 확립 없는 평화나 행복은 거짓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자아 수준을 높여주고 창의성을 북돋아주지 못하는 정치나 종교는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매일종교신문 NEWSCLIP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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