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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 “AI시대일수록 근본을 찾는 마음 필요"
해인총림 해인사, 정대불사로 코로나19 종식 기원…제60회 팔만대장경 정대불사 봉행
기사입력: 2020/05/31 [19:51]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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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총림 해인사, 정대불사로 코로나19 종식 기원60회 팔만대장경 정대불사 봉행  

 

해인사 팔만대장경 높은 뜻 널리 펴지어 모든 백성 어질고 슬기롭고 강인해져서 이 땅에 모든 재난 구름 물러가게 하시옵소서.”

 

세계문화유산 고려 팔만대장경이 봉안된 해인총림 해인사에 스님들의 합송(合誦)으로 호국 금광명경(護國 金光明經: 신라와 고려에서 매우 존숭된 호국경전의 하나로서, 5세기 중엽 인도 출신의 학승 담무참이 번역했음. 419품으로 된 이 경은 금으로 된 북에서 울려나오는 경의 설법을 믿고 자기의 죄를 참회하면 자신은 물론 나라와 왕도 귀신들의 보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설법하고 있음)1시간 내내 장엄하게 울렸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새겨진 대장경판을 양손에 든 스님들과 머리에 인 재가불자들은 일제히 장경판전 내 법보전을 출발해 학사대를 거쳐 구광루 앞마당에서 느린 걸음으로 화엄일승법계도일명 해인도를 그리며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세계평화를 발원했다. 800년 전 고려인이 지극정성으로 팔만대장경을 조성하며 나라를 지켜냈듯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종식과 안녕을 염원하는 사부대중의 원력은 쟁쟁한 염불성(念佛聲: 부처님의 성호를 관하면서 그 공덕을 간절히 생각하는 것을 염불아라 하고 소리를 내서 하는 것)을 타고 가야산을 휘감아 허공으로 퍼져 나갔다.

 

60회 고려 팔만대장경의 날을 기념하여 법보종찰 해인사에서 800년 전 팔만대장경 조성 불사의 원력을 현대에 이어받아 세계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코로나19의 종식을 서원하는 원력의 법석이 마련됐다.

▲ 해인총림 해인사 스님들이 4월11일 경내 일대에서 ‘제60회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의 날 정대불사’를 봉행하고 있다.    

 

해인총림(海印叢林) 해인사(주지 현응 스님)는 지난 411일 경내 일대에서 60회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의 날 정대불사(頂戴佛事)’를 봉행했다. 정대불사란 불경(佛經)머리에 얹고(頂戴) 가는 불사 참여를 뜻한다. 60회의 전통을 가진 이 법석(法席: 법회)은 경내 일대에서 이틀에 걸쳐 봉행되는, 해인사의 연중 법회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하지만 2020년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산중 스님들과 일부 재가불자들만 동참한 가운데 오전과 오후에 걸쳐 하루 동안 의식이 봉행됐다. 이 자리에는 해인총림 해인사 방장 원각,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을 비롯한 산중 원로 대덕 스님과 본·말사 주요 소임자 스님 등 사부대중 500여명이 동참했다.

 

특히 해인사는 행사가 진행되는 대적광전과 장경판전 그리고 구광구 앞마당에 각각 좌복과 의자 간격을 넓게 배치했으며 각 공간마다 손소독제를 비치하고 전체 동참 대중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사항을 철저하게 이행하며 법회를 진행했다. 법회는 종밀, 광해, 능허, 만봉 스님이 집전하는 가운데 대적광전에서 1부 봉찬법요식을 봉행한데 이어 장경판전에서 2호국 금광명경합송, 3부 장경판전 내 법보전 합장 순례 및 대장경판을 머리에 이고 돈다는 정대요잡(頂擡繞匝)을 거쳐 4부 보경당 앞 특별재단에서 팔만대장경 및 장경판전 공덕주 헌다례를 올리며 회향됐다. 해인사는 이날 모든 법회 일정도 유튜브 해인사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불자들이 각 가정에서도 동참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 상공에서 본 해인사 스님과 불자들이 정대불사를 하고 있는 모습    

 

1부 법요식에서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은 팔만대장경 몽고의 난 그리고 코로나19’라는 주제의 법문을 통해 대장경 불사의 원력을 이어 세계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종식에 앞장설 것을 발원했다. 원각 스님은 법어에서 고려 말 몽고군의 침입으로 인하여 나라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백성의 민심을 한 곳으로 모아 부처님의 가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팔만대장경을 조성했고 그 공덕으로 전쟁의 극심한 고통이 멈추었던 것이라며 그보다 더 앞선 시대인 신라의 순응 이정 대화상은 애장왕비의 병을 치료해준 공덕으로 해인사를 창건한 만큼 이 도량은 질병 극복의 영험처라고 소개했다.

 

이어 사회적 불신 대신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마음인 자비심으로 사회적 거리는 넓게 하고 심리적 거리는 더욱 줄여 어려울수록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인드라망이 되자팔만대장경을 한 자 한 자 깎아내던 그 정성으로 이 어려운 난관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원각 스님은 당부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팔만대장경 평화 메시지를 통해 팔만대장경은 평화의 비전이요 정신이라고 밝혔다. “우리 다함께 평화의 길로 가자고 강조한 스님은 평화는 질병의 괴로움이 아닌 건강의 즐거움이며 양극단의 절충이 아닌 한계를 인식하는 조화라며 상생의 역사로 인해 평화와 번영을 이어가는 이 세상의 실상을 바로 알아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발원했다.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도 고유문에서 팔만대장경이 조성된 지 800, 해인사에 옮겨 모셔진 지 600년에 이른 지금 팔만대장경의 정신과 대장경을 조성했던 뜻을 기리는 법석이라며 특히 올해는 세계적으로 확산일로에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사태의 조속한 종식 그리고 국가사회의 안녕과 세계평화를 기원한다고 취지를 전했다. 이날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은 법요식에 앞서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에게 조계종 백만원력결집불사동참 기금 5000만원을 전달하며 종단 발원과 전법을 위한 염원에도 힘을 실었다.

 

전왕중 해인사 신도회장 역시 기원문에서 코로나19라는 불청객의 방문으로 나라와 세계와 인류가 일상의 자유를 잃어버린 지금 팔만대장경을 조성하여 국민의 마음을 모아 국난을 극복했던 700년 전을 되새긴다코로나 극복 국민성원 기도도량 해인사 불자들은 자리이타(自利利他), 동체대비(同體大悲: ·보살菩薩의 대자비를 말하는 것으로 불·보살은 중생과 자신이 동일체라고 관찰하여 대자비심을 일으킴)의 마음으로 재난에 대처하며 마음의 봄이 올 때까지 가행정진 (加行精進: 번뇌를 끊고 성불하기 위해 더욱 힘껏 수행)할 것이라고 염원했다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에 담겨있는 뜻과 조성 과정에 담긴 선조들의 정성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61년부터 매년 전국의 불자들과 함께 팔만대장경 정대불사를 봉행해왔다. 해인사에 따르면 정대는 존경의 뜻으로 대장경판을 머리에 이고 받든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해마다 봉행 되어 온 대장경 정대불사의 가치가 국가적으로 인정받아 4년 전부터는 고려팔만대장경의 날 기념법회라는 명칭으로 전환됐으며 202060번째 기념 법회를 봉행하게 됐다.

 

해인총림 해인사 제9대 방장 원각 스님   

 

해인총림 해인사 제9대 방장((方丈) 벽산당 원각 스님을 위한 추대 법회가 201557일 봉행됐다. 해인사는 그해 410일 임회에서 방장추대위를 구성하고 57일 방장 스님 추대법회를 봉행했다. 방장추대위는 해인사 주지 선해, 백련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전 조계종 종회의장 향적 스님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앞서 해인총림은 37일 방장 선출을 위한 산중총회에서 원각 스님을 차기 방장 후보로 추대했으며 317일 조계종 임시 중앙종회를 통해 추대가 확정됐다.  

 

해인총림 初代 방장 성철 스님

 

1967년 자운 스님의 초청으로 해인사 백련암에 자리 잡은 성철(性徹, 1912~1993) 스님은 그해 여름 해인사가 총림(叢林: 강원講院, 선원禪院, 율원律院을 갖춘 종합 도량)이 되면서 방장에 취임하게 된다. 물론 자운 스님이 "해인사의 법통을 위해" 성철 스님을 모셔오면서부터 예정됐던 일이지만, 통합종단 조계종 최초의 총림과 방장이란 예사롭지 않은 위상이었다.

 

총림이란 원래 '선승(禪僧)들이 모여 수행하는 곳'이란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종합도량으로 갖춰야할 세 가지 기관을 거느린 대찰(大刹)을 말한다. 세 가지란 곧 참선하는 선방, 교리를 배우는 강원과 계율을 가르치는 율원이다. 그리고 총림의 최고 지도자가 방장이다.

 

해인사가 최초의 총림인 '해인총림'이 된 것은 1967725일 해인사에서 열린 임시중앙종회에서 총림법(叢林法)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종회는 이어 성철 스님을 방장으로 추대하는 결의까지 마쳤다.

 

당시 성철 스님은 백련암에서 하안거(夏安居: 여름철 외부출입을 않고 수행에 전념하는 것) 중이었다. 성철 스님이 해인사 큰절로 내려온 것은 안거가 끝난 다음날이었다.

 

"앞으로 불사 잘하라는 '보국대'로 징발 당했다."

 

성철 스님의 첫 마디는 '징발'이었다. '보국대'란 일제시대 전쟁에 강제로 동원된 노동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다시 말해 원치 않은 일인데 할 수 없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때 성철 스님의 생각은 방장으로 나서 제대로 된 수행처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총림 운영의 기본 방침은 계((·)()의 삼학(三學)을 바탕으로 엄격한 계율과 일관된 이론,그리고 철저한 참선정진으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성철 스님은 그런 생각에서 수행 환경부터 정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관람객들이 큰절 대웅전까지 밀려드는 상황에서 제대로 수행을 못한다는 판단이었다. 장기적으로 해인사 경내로 관광객이 들어오는 것을 통제하고, 법당인 대적광전을 선방으로 고쳐 사용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가장 큰 중심건물인 법당을 선방으로 사용하려 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세 가지 기관 중 선원(禪院)을 가장 강조한다는 취지다. 교리나 계율보다 참선이 기본이라는 선승(禪僧)다운 판단이다.

 

이와 관련, 오래 전부터 해인사에 전해 내려오는 풍수 얘기가 있다. 풍수지리 차원에서 보면 가야산 주봉이 큰절에서 보이지 않고, 또 가야산 주맥이 큰절에 떨어지지 않고 개울 건너로 흘러버렸기 때문에 항상 주인이 객()에게 밀리고 사는 것이 해인사의 운명이었다. 그래서 일주문 앞쪽 옆에 영지(影池: 연못)를 파 가야산 주봉이 그 못에 비치게 하여 객의 기상을 조금이나마 꺾고자 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전설 같은 얘기가 성철 스님에 의해 현실화됐다. 해인총림 방장 자리에 오른 성철 스님이 선방에서 참선 수행하는 수좌(首座: 선승)들을 워낙 존중해주는 바람에 주지 스님 등 절 살림을 꾸려가는 주인들이 전혀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다.

 

어떤 수도승이든 일단 해인사 선방에 들어오면 모두 주인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성철 스님의 후원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방장인 성철 스님은 선방 수좌들과 주지 스님 간에 의견이 안 맞으면 일단 선방 스님들을 지지하곤 했다.

 

성철 스님은 대신 선방 수좌들에겐 엄격한 수행을 요구했다. 성철 스님은 매년 두번, 하안거와 동안거 중에는 꼭 일주일씩 용맹정진(勇猛精進: 눕지 않고 잠자지 않으며 참선수행 하는 일)을 하게 했다.

 

처음에는 죽을병이 든 스님만 아니면 누구도 빠짐없이 용맹정진에 참여하게 하고 탈락하면 걸망을 싸 쫓아버렸다. 그러니 용맹정진 기간이 되면 산중의 분위기가 냉랭하고 스님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살벌했다.

 

선승이라면 예외가 없었다. 해인사 큰절에 있는 선방에서 수행하는 스님들만 아니라 여러 부속암자 스님들에게도 용맹정진을 하라고 지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예외가 많아졌지만 안거 중 일주일간의 용맹정진은 지금도 해인사의 자랑이자 전통으로 남아 있다

 

원각 스님 불안은 마음바탕이 맑아져야 사라져

나쁜 일 와도 흔들리지 않으면 그것이 참다운 부처     

 

천겁이 흘렀어도 옛날이 아니고, 만세를 흘러도 언제나 지금이네(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 亘萬歲而長今긍만세이장금)` 해인사 일주문(柱門) 뒤에 쓰여 있는 문구(文句).   

 

천년고찰 해인사에는 소문난 선지식 한 분이 있다. 해인총림의 가장 큰 어른이자 방장인 원각

 

(源覺) 스님. 스님이 머무는 곳은 해인사 경내 퇴설당이다. 성철, 혜암, 법전 스님이 머물렀던 바로 그 방이다.  

 

원각 스님은 전생과 윤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스님은 어제가 전생이고 오늘이 금생이고, 내일이 내생이라며 평범하게 답했다. 이어 윤회? 끊임없이 윤회는 계속되지만 그것도 실체가 있는 건 아니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또 내일이고, 내일은 또 어제다. 어제와 오늘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일주문에 쓰여 있는 말이 그 말이라고 했다.

 

현대인들이 물질은 풍족하지만 마음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원각 스님은 과학이 발전하면서 살기는 편해졌다. 그런데 사람들 간의 시비장단(是非長短)은 더 많아졌지. 갈등 시비가 늘어나고 각박해지니까 피폐하고 불안해지는 것이다. 아무리 재물이 풍족하고 자리가 높아져도 갈등은 거기서 또 시작되는 것이지. 근본적인 것을 해결해야 한다. 원리를 알아야 한다. 풀이 나오면 당장은 돌로 누를 수 있지만 그것으로는 안돼. 풀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해인총림 해인사 제9대 방장 벽산당 원각 스님  

  

그러면 현대인들이 불안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님은 맑아져야 한다. 흙이 섞인 물은 조금만 흔들면 흙탕물이 되지만 맑은 물은 아무리 흔들어도 흙탕물이 안 된다. 그 안에 흙이 없기 때문이라며 본마음 바탕을 깨달아야 한다. 이조(二祖) 혜가 스님은 아주 공부를 많이 한 분이었다. 그런데 계속 마음이 불안한 거야. 그래서 달마 스님을 찾아가 스님, 제 불안한 마음 좀 해결해달라고 하니까 달마 스님이 네 마음을 내놓아라. 그러면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다시 혜가 스님이 아무리 찾아도 마음을 찾을 수 없다고 하자 달마 스님은 이제 내가 네 불안을 해결했다고 했다. 그때서야 이조 혜가 스님은 깨달았다고 한다.

 

본성을 깨달은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 원각 스님은 당나라 혜해(慧海) 스님이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에서 忍辱第一道 先須除我人 事來無所受 卽眞菩提身(인욕제일도 선수제아인 사래무소수 즉진보리신)’이라 했는데, 이를 풀이하면 참는 것이 제일가는 도라, 먼저 나다 너다 하는 양변을 버리고, 일이 와도 받는 바 없으면, 바로 거기가 참다운 부처다. 거울은 세상 모든 것을 비추지만 거울에는 자취가 남지 않는다. 거울처럼 본성의 바탕에서 살아야 한다고 설했다.

 

그게 결코 쉽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원각 스님은 성철 스님도 그러셨다. 인간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걸 계발해서 써야 한다고 했다.

 

AI(인공지능)가 나오는 과학기술시대에 불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원각 스님은 그런 시대일수록 근본이 더 필요하다. 불교의 교리가 더 절실해진다. 부처님의 말씀이 지금 시대에 더 맞다. 현상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거다. 하지만 본래의 마음 바탕, 즉 진리의 당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있다. 상황이 달라진다고 바탕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게 AI든 뭐든. 근본에서 출발하면 안심이 되고 서로 편해진다고 말했다.

 

어떤 방법으로 마음공부를 해야 할까. 스님은 참선하고 명상하고 산란한 마음들을 다스려야 한다. 근본 마음자리를 깨달아 시비장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종교를 향해 무엇을 해달라는 기도를 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도 스님은 내 본래의 마음 바탕을 찾고, 그 자리에서 자기 본분을 다해야 부처님의 가피도 입고하는 것이다. 무조건 뭐해 달라고 하면 안 된다. 불이 났으면 불을 꺼야지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게 지혜다. 내 노력이 우선이고 그다음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인 죽음은 뭘까. 원각 스님은 옛 스님 게송에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삶이란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라.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하니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죽고 살고 오고 가는 것이 모두 그와 같으니라고 했다. 구름이 일어나고 꺼져도 하늘 바탕은 그대로 있다. 나고 죽는 것은 현상계의 일일 뿐 근본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근본을 등지고 중생의 업으로만 사니까 자꾸 세상이 복잡해진다. 본성의 바탕에서 출발해야 우리 마음이 안심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    

 

코로나19 확산이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것은 다 같이 업()을 지어서 그 결과를 받는 것이다. 자연을 파괴하고, 살생을 하고 그것을 먹고 했던 것의 과보(果報)를 받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함께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기 2564(2020)년 부처님오신날 행사가 530일로 한 달 연기 됐다. 스님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해인사도 한 달간 산문을 폐쇄했다. 이번 부처님오신날은 `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천지여아동근 만물여아일체)`의 심정으로 등()을 밝혀야 한다. `하늘과 땅은 나와 그 뿌리가 같고, 온갖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는 뜻인데 이번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그걸 가르치는 것이라 했다.

 

부처님오신날의 의미에 대해서도 원각 스님은 부처님은 태자로서 왕궁에서 태어나 영화를 누릴 수 있었는데 생로병사의 고통을 보고 출가를 했다. 난행과 고행을 해서 진리를 깨닫고 보니, 중생의 본성이나 부처님의 본성이 차이가 없었다. 그때부터 법을 펼치셨다. 본성은 부처나 중생이나 같다. 지구촌 사람들이 미혹에서 벗어나 근본을 회복하기를 기원하는 날이라고 했다.

 

출가를 하게 된 동기에 대해 원각 스님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요 밑에 약수암에 와서 공부를 했다. 그때 해인사 중봉암에 계시던 도림 스님(봉철 스님으로 개명)이 자주 약수암에 다녀가셨다. 어느 날 스님께 "저는 어렸을 때부터 `착하게 사는 것`에 대한 강박 관념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착하게 살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스님이 착한 것도 내려놓고 악한 것도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발심(發心)이 됐다고 한다.

 

혜암 스님은 어떤 선지식이었을까. 평생을 눕지 않고 장좌불와(長坐不臥)로 살았다. 하루 한 끼만 먹으면서 정진했다. 혜암 스님은 법문할 때 늘 공부하다 죽어라, 죽을힘을 다해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원각 스님과도 인연이 많았다. 원각 스님은 “(혜암) 스님이 1946년도에 출가하셨는데 내가 1946년에 태어났다. 스님이 1117일 입적하셨는데 내 생일이 1117일이다. 승속이 둘이 아니고 생사도 둘이 아니라는 걸 나에게 법문해주신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2020년이 스승인 혜암 스님 탄생 100주년이다. 원각 스님은 “414일에 탄신 100주년 행사를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로 행사를 919일로 연기했다. 그때 종정 스님 모시고 법회를 여법하게 봉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혜암선사 삶과 사상혜암선사 선사상연구라는 책도 같이 봉정하고, 뒤를 이어 혜암평전도 출간할 예정이다.

 

해안사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수륙대재 및 추모음악회를 66~7일 개최한다.

 

원각 스님은 해인사에서 한국전쟁 70주년 해원과 상생을 위한 수륙대재(水陸大齋)를 봉행한다. 희생된 영혼들이 서로서로 용서하고 화해해서 천도가 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수륙대재는 66~7일 양일간 하는데 10만개의 등을 밝힌다. 돌아가신 영가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이고득락(離苦得樂)하고 남북한도 서로 화해하고 상생해서 이 인연으로 세계가 평화로워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요즘 불교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아진 것에 대해서도 원각 스님은 보편적으로 각자가 신심 있게 살고 있는지 그것을 반성해야 한다. 부처님 말씀대로 신심 있게 실천하는지가 중요하다. 수행을 제대로 하는지, 소임을 맡으면 공심(公心)으로 사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스스로 각자 반성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 도움을 줘야지 부담을 주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종단 안팎으로 갈등과 반목의 목소리도 많은 것에 대해서도 서로 어떤 일이 있으면 부처님 법을 믿고 해결을 해야 한다. 부처님이 중도(中道)를 말씀하셨다. 중도는 이것저것 중간으로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도 내려놓고 저것도 내려놓고 본래의 마음 바탕에서 해결해야 한다. 나의 이해관계 욕심에만 맞추다보면 갈등과 시비가 생긴다. 중도로서 상대방 안()이 좋으면 상대방 안을, 내 안이 좋으면 내 안을 수용해서 처리하면 문제될 것이 없고, 상생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각 스님

1946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조계종 전 종정 혜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67년 계()를 받았다. 이후 해인총림, 영축총림, 조계총림 선원과 범어사, 상원사 등 제방선원에서 수행정진했다. 경남 거창군 가조면에 있는 고견사 주지, 해인사 원당암 감원 겸 달마선원 선원장, 해인총림 사무를 총괄하는 유나(維那) 등을 역임했다. 2015년 해인사 사찰, 참선도량인 선원(禪院), 경전 교육기관 강원(講院), 계율 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총괄하는 해인총림 방장에 추대됐다.

수암(守岩)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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