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뉴스종합범종교가톨릭개신교불교민족종교해외종교이슬람생활 종교인의 성경 분석탐방 기획
전체기사 Trend & View 마음을 비춰보는 포토에세이 종교지도자 칼럼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편집  2020.07.03 [18:08]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안내데스크
신문사소개
광고안내
저작권문의
구독신청
불편신고
독자투고
제휴안내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 보호정책
기사제보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21
인도에서의 티베트 불교, 세계불교위상 높여 서양도 주목
기사입력: 2020/06/02 [21:43]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보검 이치란 스님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인 제14세 달라이 라마가 인도 다람살라 주석 처에서 지난 5월 30일 전 세계 가상청중(virtual audience)들에게 온라인 영상법문을 하고 있는 장면.    

 

인도에서의 티베트 불교, 세계불교위상 높여 서양도 주목

 

달라이 라마 세계불교 대표성 인정받아 사실상 법왕 역할

 

전 세계 불교계에서 달라이 라마처럼 주목을 받는 불교인사도 없을 것이다. 또한 달라이 라마처럼 영향력 있는 종교계 인사도 몇 안 된다. 불교를 떠나서 다른 종교인들도 달라이 라마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으며, 존경심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의 많은 정치 사회 지도자들도 달라이 라마에 대한 존경도가 매우 크다고 해야겠다.

 

티베트 불교의 수장이란 점 말고도 달라이 라마가 쌓아온 여러 가지 경력이나 업적으로 봐서 그는 세계적인 유명인사로서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불교 역사상 석가모니 부처님 말고, 달라이 라마처럼 유명한 고승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인도불교는 12세기 이후 인도에서 거의 자취가 사라질 정도로 쇠퇴해 버렸다. 역사에서나 그 흔적을 찾을까 인도 땅에서는 불교의 존재가 망각되고 있었다. 19세기 영국식민지 시절 스리랑카 불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인도 내 불교 성지가 주목을 받으면서 보호되고 서서히 발굴되기 시작했으며 19561014일 나그푸르에서 50만 명과 함께 불교에로의 개종선언이 기폭제가 됐다.

 

개종선언 주도자는 영국에서 독립한 인도 공화국 초대 법무장관을 역임 했고, 공화국 헌법제정을 주관 한 빔라오 람지 암베드 카르(Bhimrao Ramji Ambedkar,1891~1956) 박사였다.

 

그는 인도의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교육자, 인권 운동가며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인도 참여인권운동의 선구자, 인도불교의 부흥자, 정치인, 대학교수, 영국 변호사다. 그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붙지만 가장 주목 받는 것은 인도 땅에 불교를 다시 부흥하게 한 업적이 가장 돋보이는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하겠다. 암베드카르와 인도불교 이야기는 두고두고 해도 모자랄 정도로 인도 현대불교에서 그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그는 어디까지나 재가 불교지도자로서 불교 부흥을 이끈 분이다.

▲ 2003년에 인도 보드가야에서 열린 칼라차크라 법회. 수 만 명의 티베트 라마승들이 달라이 라마의 법문을 경청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1959년 인도로 망명했다. 올해로써 61년이 지났다. 1935년생인 달라이 라마는 24세 때 중국의 추적을 피해 인도로 망명하게 된다. 당시 인도 네루 수상의 배려로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인도에 정착하게 된다. 달라이 라마가 비록 망명자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는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이면서 티베트 망명정부 수장이었다  

▲ 라마(학승)들이 학습한 내용을 논쟁을 하는 장면.    


티베트 불교를 인도 땅에 재현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함께 온 정부 관료나 정치 지도자들도 있었지만, 티베트의 많은 라마(승려)들이 함께 와서 티베트 불교승가를 형성했다. 티베트 불교에는 크게 4개종의 종파가 있는데, 달라이 라마 자신은 개혁불교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겔룩파 소속이다.

 

인도에서 불교가 티베트에 전해질 때 험준한 산악과 거친 기후를 무릅쓰고 힘겹게 티베트 고원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티베트에는 예로부터 토속종교인 본교(Bön)가 있어 항마· 예언·점복(占卜) 등의 주술신앙이 성행했다. 그러던 중 7세기경에 송짼감뽀(569~650)가 라사를 중심으로 왕조를 개창하였다. 그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는데, 중신(重臣) 톤미 삼보타를 인도에 파견, 불교를 티베트로 수입하게 했다. 이것이 티베트로의 불교 전래의 공식적인 경위이다. 불교의 수용을 위해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올바르게 번역할 수 있도록 티베트 문자가 새로 만들어졌다.

 

그 후 티송 데첸왕(755~781)은 불교를 국교로 하고, 많은 승려들을 인도로부터 초빙했다. 티베트 불교의 승려를 라마라고 부른데서 라마교라고도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호칭이다. 라마(La­ma)‘는 구루(Guru), 즉 스승()을 뜻하는데, 인도 나란다 사원대학 학통을 본격적으로 이어 받게 된다. 대개 불교에서는 불법승(佛法僧) 3보를 내 세워서 귀의하는데, 티베트 불교에서는 라마 즉 스승을 하나 더해서 4()를 존경하는 전통을 확립했다. 이로 인해 티베트 불교가 서양에 알려진 초창기에는 라마교(lamaism)라고 일컬어졌으나 대승 불교와 별개의 종교인 양 혼동을 초래하였지만, 지금은 라마교란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10세기에 들어와서는, 계율을 강조하는 까담파(Kadampa)가 성립했다. 이즈음 티베트 불교 종파 가운데 사캬파(Sakyapa)가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여 법왕국가를 건설하였고 세력을 신장하였다. 이 무렵에 티베트 불교는 몽골인 원나라에도 퍼지게 되었다. 티베트 불교는 원, , 청대에 걸쳐 중국 대륙과 몽골, 중앙아시아 등에 전파되었고 인근국가인 한국과 일본의 불교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15세기가 되면서 쫑카파(Tsong­ka­pa 1357~1419)에 의한 티베트 불교의 개혁이 이루어져 계율의 준수가 더욱 강조되었다. 이 파는 라사의 동남쪽에 있는 간덴사()를 근거로 하여 겔룩파(Gelugpa) 일명 황모파(黃帽派)라고 불렀으며, 종래 티베트 불교의 닝마파(Nyingma)는 홍모파(紅帽派)와 원시 종교인 본교(Bön)와 구별하였다. 겔룩파는 라사의 포탈라사()와 시가체의 타시룬포사()로 분열하여 쫑카파의 두 명의 제자가 각각 라마의 칭호를 가지고 이들 사찰들을 근거로 하여 법맥(法脈)을 유지하였다.

▲ 달라이 라마의 미소와 영적 힘이 서구의 정치인과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관세음보살의 화신(化身)이라고 여기는 달라이 라마는 포탈라사()에서 집무를 봤으며, 티베트 불교 제2 서열인 판첸라마는 아미타불의 화신으로서 시가체의 타시룬포사에 주석했다. 1959년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했지만, 판첸라마는 타시룬포사에 그대로 남았다.

 

 

이런 역사와 전통을 지닌 티베트 불교는 달라이 라마와 함께 인도로 망명하여 인도 땅에서 티베트 불교전통과 문화를 그대로 재현시켜 현재는 티베트 본토보다도 더 티베트적인 티베트 불교가 확립되었다. 티베트불교의 강점은 교육체계다. 날란다 사원대학의 학통을 고스란히 이어 받았기 때문에 불교교학 연구에 강하다.

▲ 할리우드 스타이면서 불교신자인 리처드 기어와 함께.    

 

달라이 라마는 특히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티베트인의 인도 정착과 더불어서 티베트 불교교육기관의 설립이었다. 전통사원대학 과정은 물론이지만, 인도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학원 수준의 교육기관을 설립한 것이다. 대체로 티베트연구를 위한 중앙대학(Central University for Tibetan Studies CUTS)으로 부르지만, 공식명칭은 티베트연구중앙대학(西藏研究中央大學 Central Institute of Higher Tibetan Studies CIHTS)이다. 1967년 바라나시 사르나트에 네루 수상이 달라이 라마의 건의와 자문을 받아서 설립했는데, 1차적인 목적은 망명 온 티베트의 젊은이들과 히말라야 산록의 티베트 불교권 학생들을 위해서였고, 산스크리트 경전의 복원을 위해서였다. 이미 중요 산스크리트 불교경전이 없어진 상황에서 산스크리트(梵本)에서 티베트어로 번역된 불교경전 등을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는 목적과 티베트 경전의 힌디어와 기타 인도 현대어로 번역을 위한 학자 양성이 목적이다.

 

10여 년 전 영국 BBC왜 서양인들은 달라이 라마를 사랑하는?” 라는 방송과 기사를 내 보낸 적이 있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꺼이 달라이 라마를 만나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도 있을 수 있겠지만, 달라이 라마는 서방의 많은 정치인과 사람들에게 자비의 미소, 영적, 정치적 슈퍼 히어로이기 때문이라는 평을 한 적이 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매일종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주간베스트 TOP10
배너
광고
광고
  안내데스크신문사소개광고안내저작권문의구독신청불편신고독자투고제휴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 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범 종교의 진정성을 두루 살펴 보고 이해함으로써 각 종교와 사회의 화평과 상생, 조화를 이룬다.
회장 이옥용 /발행-편집인 신민형 / 양형모 상임고문 / 편집국장 이부평 / 청소년보호책임자 강은나
우) 140-846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가 70번지 (83길 21)
대표 전화: 02-703-8267 | 팩스: 02-3211-4419 인터넷 매일종교신문
등록번호:서울 (아)01319(범종교신문 등록 2009년 9월 1일,2013년 6월 15일 제호변경)
기사제보 : minhyung-s@hanmail.net
Copyright ⓒ 2009-2013 매일종교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