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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선의 ‘생활의 발견’●술이 익어있는 목소리

박현선 | 기사입력 2020/06/13 [20:42]
그리움 넘어 눈물이 보이는 아버지 노래

박현선의 ‘생활의 발견’●술이 익어있는 목소리

그리움 넘어 눈물이 보이는 아버지 노래

박현선 | 입력 : 2020/06/13 [20:42]

그리움 넘어 눈물이 보이는 아버지 노래

 

어머니! 불린 쌀은 방앗간에 미리 갖다 놓고, 시장에 들렀다가 찾아올게요.”

 

친정어머니는 딸이 못 미더운지 지팡이를 짚고 따라나섰다. 어머니는 양말을 파는 잡화점을 먼저 들러 온 가족의 양말을 준비하셨다. 열심히 살아준 것에 대한 어머니식 고마움의 표시

이다.

 

송편을 만들고, 전을 부쳤다. 허리 펼 시간이 없다. 기계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쉼 없이 제수를 만들어내며 친정집 며느리로 빙의가 된다. 추석 명절 하루 전, 친정 부모님이 살고 계신 춘천으로 갔다. 종갓집 맏며느리지만 종교가 기독교라 성묘는 추석 명절이 가까워지면 미리 벌초를 겸해 다녀온다. 친정집은 유교 식 제사를 지내는데,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를 대신해 이십여년 전부터 음식 준비는 나의 차지가 되었다.

 

친정아버지는 간소하게 차려라!” 한마디하시고는 슬그머니 자리를 뜨셨다. 저녁 무렵, 아버지의 술이 익어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뽀얗고, 달콤한 동동주는 처음 마셔봤네~.”

 

아버지! 술맛이 아무리 좋아도 건강을 생각해서 적당히 드셔야 돼요. 이제, 연세가 있으셔서 술 해독이 잘 안 돼요.”

 

아니야! , 아직도, 청춘이야~.”

 

보고 싶던 자식들 만난 기쁨을 술 한 잔 드시고 표현하신다. 황무지였던 땅을 개발한다고, 요 몇 년, 부쩍 수척해지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일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면서 아무것도 지 않고 지내는 것을 못 견뎌 하신다. 적당히 일하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이롭기는 하지만 성격이 급하셔서 술이고, 일이고, 무리하신다.

 

올해 팔순인 아버지의 고향은 북한 원산이다. 명절 때면 이북멀리서도 느껴지는 따뜻한 불빛

이 고향인 실향민들과 매년 한 번씩 모여 고향의 향수를 달래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6·25 한국전쟁 때 원산에서 식솔들을 데리고 내려와 지금의 춘천 동면에 정착하였다. 먹을 것이 없어 아침이면 가마솥에 술지게미를 한 솥 끓여서 요기를 하고, 화전밭에 옥수수, , 팥을 심고, 일궈가며 살았다. 어느 날, 집으로 의용군이 들이닥쳐 할아버지는 이북으로 끌려가셨다. 그 후 영영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깊은 어둠이 내린 밤, 할머니와 아버지, 삼촌 셋이 사는 초가집을 뒤흔드는 포성이 들려왔다. 숨 막히는 공포의 도가니였다. 떨어지는 포탄이 초가집을 덮쳐 집 안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렸

. 자고 있던 삼촌들은 폭격을 맞아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는 몸 옆구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할머니가 미군 병원으로 아버지를 들쳐 업고, 찾아가 살려달라고 애원하여 가까스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이때가 가장 힘든 시련의 시기였다고 한다. “!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을까?” 어릴 적 시작된 충격은 회복할 수 없었고, 도리어 더 깊은 상처가 되었다. 아버지는 충격을 잊기 위해 무언가를 끝없이 만들면서 집중하였으며, 할머니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군가 들어주지 않아도 혼잣말로 상처를 잊기 위해 원망은 더욱 나를 병들게 할 뿐이다.”라며 스스로 치유의 방법을 터득하였다. 삶을 뒤흔드는 강한 시련이었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몸에 감정의 근육이 생기면서 이겨냈다고 한다.

 

아버지가 인생에서 또 한 번 힘들었던 일은 장남인 남동생의 방황이었다고 하셨다.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처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아픈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들이 왜, 그랬는지 가슴 속 품은 얘기를 듣게 되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세상을 몰랐고, 마땅히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아버지만의 기준으로 판단했다. 그런 관점에서 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고 말씀하셨다.

만 마주치면 늘 피해 다니던 남동생은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어갔다.

 

아버지는 고생하며 살아서 더욱 사리에 밝고, 잔정이 뚝뚝 떨어진다. 예전에 마을회관 앞에서 버스를 같이 탄 적이 있었는데, 친구나 주위 분들이 타시면 모두의 차비를 내어주는 따스한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남의 어려운 처지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고방식을 가지셔서 주위에서는 아버지를 호인이라 칭한다.

 

종종, 아버지는 우리에게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라. 사람이 조금 빈 구석이 있어야지. 사람 냄새가 나야 한다. 너무 다 잘 하려고 하면 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빈 구석을 통해 자신의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고, 그렇게 여유가 생기면 경쟁하기보다 협력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더불어, 아버지는 우리에게 깨끗하고 선량한 마음씨가 없다면 아무리 활력이 넘치더라도 그

것은 재난의 원인이 된다. 설령, 자신이 하는 일에 반대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관용과 배려를 아끼지 말라.”고 하신다. 아버지의 말씀은 날카로운 면을 지녔으면서도 온화하고, 그 말 속에는 언제나 자식을 생각하는 따스한 마음이 숨겨져있었다.

 

아버지는 팔십에 인생을 뒤돌아보니 가정과 직장을 위해 평생을 달리는 기차처럼 살아왔지만 정작 내가 누군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단다. 예전에는 퇴직해서 여행이나 다니고, 손자들 재롱 보며 살다가 인생이 끝이 난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이제 마무리만 잘하면 되는 시기지만, 아직도 지치지 않는 도전 정신이 어디서 솟구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항상 강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인데 큰손자가 왔을 때에 이렇게 말씀하신 걸 듣고 아버지도 노인이 되니 무척 외로우시구나, 짐작했다.

 

할아버지는 용돈 받는 것보다, 자주 찾아와주고, 전화해주는게, 더 반가워~.”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때 겨울의 기나긴~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

 

술을 드시면 늘 부르는 아버지의 애창곡이다. 유년 시절에 들을 땐 아버지 기분이 좋은가?’ 했지만, 지금은 아버지 노래에 그리움을 넘어 눈물이 보인다

▲ 박현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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