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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선의 ‘생활의 발견’●생사의 갈림길

박현선 | 기사입력 2020/06/15 [20:43]
죽음의 순간도 이기고 나왔는데, 지금이 그때보다 더 힘들까

박현선의 ‘생활의 발견’●생사의 갈림길

죽음의 순간도 이기고 나왔는데, 지금이 그때보다 더 힘들까

박현선 | 입력 : 2020/06/15 [20:43]

죽음의 순간도 이기고 나왔는데, 지금이 그때보다 더 힘들까 

 

바다나 강에 자동차가 추락했다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생각조차 하기 싫을 것이고, 그런 사고를 겪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전문가들은 비상 망치로 창문을 깨고, 없으면 머리 받침대라도 빼서 탈출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탈출 방법이다. 유리창을 깰 때는 모서리 부근을 깨야 한다. 또는 안전벨트를 푼 후 물에 뜨는 물건이 주위에 있으면 가지고 출입문을 통해 빠져나오라고 하나 강화유리는 깨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에 그런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실제 나는 자동차가 바다로 뛰어들어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경험이 있다. 20084월 초 시누네가 당진 장고항 부근으로 이사 후 낚싯배로 어업을 하고 있었다. 의논할 일이 있어 장고항 방파제에서 낮 12시 만나기로 했다. 방파제에는 봄나들이 온 사람들이 많았다. 시누이 남편은 1시간가량 트럭 타이어 펑크를 교체하고 오느라 늦었다며 미안해한다. 바다에 정박해 놓은 낚싯배에 가서 회를 먹자고 제안하여 작은 배를 타고 나가 회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맑았던 하늘이 흐려지고, 빗방울과 함께 추워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작은 배를 타고 오후 3시쯤 4인용 트럭을 세워놓은 방파제로 돌아왔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트럭을 시누이 남편이 운전을 했다. 조수석에 남편이 앉고, 그 뒤 내가 앉았고, 운전석 뒤에는 시누이가 앉았다. 그런데 출발하자마자 트럭이 끼이익굉음을 내며 후진으로 튕기듯이 뒤로 달려나가 바위에 콰쾅!’ 부딪히더니, 멈췄다 휘이잉소리를 내며 앞으로 돌진하여 방파제를 넘어 바다로 추락했다. 느닷없이 당한 일이라 차가 왜 바다로 뛰어들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트럭이 바다로 솟구쳐 들어가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트럭은 바다에 낙하산처럼 안착했고,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죽는 건가. 뭘 어떡해야 하나.’ 차 안에 정적이 흐른다. 갑자기 남편이 차에 있으면 다 죽으니 빨리, 바다로 뛰어내려!” 하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귀를 때리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반쯤 열려있는 창문으로 시커먼 물을 보니 소름이 돋았지만, 살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뛰어내렸다.

 

몸은 칠흑 같은 깊은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가고 있다. ‘, 숨이 콱! 막히는 게 죽을 것 같아순간 나는 살려고 발버둥 치면 더 깊이 들어가니, 몸에 힘을 빼고 뒤로 눕자. 떠오르면 누군가 구해주겠지.’라는 생각으로 뒤로 누우니 몸이 신기하게 부웅 떠 올랐다. 트럭에 있던 남편과 시누이 남편은 보이지 않았고, 트럭도 수면 속으로 가라앉았다.

 

시누이가 살려주세요!” 허우적대며 절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방파제에서 보고 있던 한 남자가 다이빙해 구해주는 모습이 보인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갯속 물 위를 떠내려가고 있는데, 트럭 뒤에 실어두었던 펑크 난 타이어가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방파제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타이어를 잡아! 빨리!” 아우성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온 힘을 다해 잡았다. 타이어와 함께 몸도 가누기 힘든 급물살에 밀려 망망대해로 끝없이 떠내려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와 거칠어지는 호흡이 극한으로 치닫는다. ‘~ 이제는 죽나 보다!’ 정신을 좀 차리니 더 무서운 공포가 밀려왔다.

 

그 순간 이 밧줄 잡고 올라오세요!” 위를 올려다보았다. 큰 바위 얼굴의 사람이 밧줄을 내려주고 있었다. 뻣뻣한 밧줄을 허리에 동여매고 있는 힘을 다해 꽈악 붙들고 살아나왔다. 후에 들은 이야기다. 큰 바위 얼굴의 선장은 낚싯배를 정박하고 있었다. 사람이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급히 배를 몰고 온 것이다. 나는 긴장이 풀리니 다리가 후들거려 방파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운동화 한 짝이 없어진 줄도 몰랐다.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와 우리를 에워싸며 살았다고 손뼉을 치며 격려해주었다. ‘~ 살았구나!’ 남편은 바닷물을 토해내고 있었고 시누이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그때 물속에 8분 정도 있었다고 한다. 어항 속에 있는 착각과 기분이 좋아졌다는 말이 아마도 마지막 환각 상태까지 갔었다고 생각했다. 시누이 남편은 트럭에서는 빠져나왔는데 못 올라왔다.

 

장고항 근처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시누이 남편이 하얀 시트에 덮인 채 시신이 되어 이송되었다. 해양경찰이 바다 수심이 10미터 정도로 깊고, 밑이 갯벌이라 트럭 바퀴에 붙어있던 시신의 수습도 2시간 넘게 걸렸다며 인양도 다행이라고 한다. 내가 죽었으면 저 모습이겠구나. 가슴이 저렸다. 시누이 남편은 한강을 왕복으로 건너다닐 정도로 수영을 잘했다. 못 빠져나온 것이 아마도 사고를 일으킨 충격에 정신을 잃은 것같다.

 

사고 조사 결과 급발진이 아닌 운전 미숙으로 일어난 사고였다. 시누이 남편은 후진 기어로 된 줄 몰랐는지 엑셀 레이더를 너무 세게 밟아 차가 뒤로 튕겨 나갔고, 바위에 부딪히니 당황

하여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엑셀 레이더를 밟아 트럭이 바다로 돌진했다. 그는 평소 운전이 거칠었고 운전하면서 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나쁜 습관이 화를 부른다지금은 이 세상

에 없는 시누이 남편으로 인해 참으로 무서운 생사의 갈림길을 경험했다. 속담에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고 위급한 순간이 닥쳤을 때 무엇보다 침착함을 유지하며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면 주문을 외우듯 말한다. 죽음의 순간도 이기고 나왔는데, 지금이 그때보다 더 힘들까.

▲ 박현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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