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뉴스종합범종교가톨릭개신교불교민족종교해외종교이슬람생활 종교인의 성경 분석탐방 기획
전체기사 Trend & View 마음을 비춰보는 포토에세이 종교지도자 칼럼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편집  2020.09.19 [13:06]
守岩 칼럼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안내데스크
신문사소개
광고안내
저작권문의
구독신청
불편신고
독자투고
제휴안내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 보호정책
기사제보
守岩 칼럼
“경허 선사의 수행처 ‘지장암’ 복원은 불교계 정신유산 되살린 것”
책으로 전해지던 토굴 지장암 복원한 서산 천장사 회주 옹산 스님 “가르침 올곧게 전승해야”
기사입력: 2020/09/11 [21:37]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책으로 전해지던 토굴 지장암 복원한 서산 천장사 회주 옹산 스님 가르침 올곧게 전승해야” 

 

무너진 집터에는 주춧돌 서너 개만 남아 있을 뿐 아무런 흔적도 없었는데 그것은 분명히 경허가 홀로 머무르던, 지장암(地藏庵)이라고 불려지던 토굴의 옛 자리임이 분명하였다.’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鏡虛·1846~1912) 선사의 삶을 다룬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의 한 대목이다. 이처럼 책과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던 충남 서산 천장사(天藏寺) 지장암이 최근 복원됐다. 지장암은 경허 선사가 깨달음을 얻은 후 머물렀던 곳이다. 암자는 건평 60m², 주변까지 합하면 331m²에 이른다.

 

지장암을 복원한 천장사 회주 옹산(翁山·76·전 수덕사 주지)스님은 “(지장암) 주변 연암산은 높이가 해발 441m로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험해 쉽지 않은 불사(佛事)였다천장사가 신도가 없는 사찰이라 여러 스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장암 복원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장암은 토굴로 불리던 작은 암자였지만 경허 선사에 얽힌 일화들을 간직하고 있어 한국 불교사의 기념비적인 공간이다.  

▲ 충남 서산 천장사 전경. 오른쪽이 지장암, 왼쪽은 염궁선원.    

 

 

옹산 스님 "이 시대에도 경허 선사 같은 도인 많이 나왔으면"

 

경허 선사(禪師)전설적 인물이다. 전주 출신으로 어려서 출가해 한학(漢學)을 공부한 스님은 젊은 시절 경전에 통달한 명()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선사는 1879년 돌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비참한 상황을 목도하고 참선 수행 끝에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야 한다’(忽聞人語無鼻孔홀문인어무비공, 頓覺三千是我家돈각삼천시아가: 홀연히 콧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는 말에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천장암(최근에 천장사로 개칭)에 머물며 만공·혜월·수월 등 제자들을 가르쳤다. 1886년부터는 범어사·해인사·천은사·화엄사와 오대산·금강산 등 전국의 사찰에 선원(禪院)을 만들어 참선 수행을 지도하며 조선 후기 맥이 끊기다시피 한 선()불교를 중흥했다. 1904년 천장암에서 제자 만공에게 마지막 법문을 한 후 홀연히 북쪽으로 떠나 갑산과 강계 등지에서 서당 훈장을 하다 입적(入寂)했다. 경허 선사는 총18년을 천장사와 지장암에서 살았다. 그의 생애 중 가장 오랜 기간을 보낸 곳이다.

 

요즘 우리 국민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옹산 스님은 역병(疫病)과 관련한 경허 선사의 일화를 들려줬다. 경허 선사는 젊은 시절 충남 천안의 한 헛간에서 발심(發心)했다고 한다. 역병으로 주변에 시신이 즐비한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론적으로는 생사(生死)가 둘이 아니라고 가르쳤지만 모두 소용없다며 한탄했다. 가던 길을 돌아간 선사는 강원(講院)을 해체한 뒤 문을 걸어 잠그고 화두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 선사

 

옹산 스님은 “(경허) 선사는 이곳에서 비지떡 같은 이들이 득실거려도 전혀 개의치 않고 용맹정진했다선사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지장암 복원은 우리 불교계의 소중한 정신적 유산을 되살린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름처럼 걸림 없이 살았던 때문인지 한국 불교계에서 경허 선사를 기리는 움직임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다.

 

수덕사 주지를 지낸 옹산 스님은 경허·만공선양회장을 맡아 경허의 업적을 알리는 데 발 벗고 나섰다. 2012년 경허 선사의 입적 100주기 때 천장사에 기념비를 세우고 염궁(念弓)선원을 열었다. 경허의 삶과 수행을 정리한 작은 방에서 도인나다라는 책도 펴냈다. 책 제목의 작은 방은 지금도 천장사에 있다. 성인 남성 한 명이 누우면 꽉 차는 1평 남짓한 방이다. 이곳에서 한국 근대 선불교가 다시 싹텄다는 뜻이다. 옹산 스님은 “2011년 천장사 회주(會主)를 맡아 왔을 때 암자는 건물 전체가 오른쪽으로 기울어 쓰러지기 직전이었다한국 근대 불교를 다시 세운 경허 선사가 가장 오래 머무르신 공간을 이렇게 놔둘 순 없다는 생각으로 한 발짝씩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이번 지장암 복원도 선양 사업의 하나다. 천장사 뒷산에 집터만 남았던 지장암을 충남도와 서산시 등의 지원을 받아 18평짜리 건물로 복원했다. 옹산 스님은 상량식 때 칼을 갈아 턱에 받치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 무섭게 정진하신 경허 선사의 정진을 본받아 지장암을 복원한다고 대들보에 적었다. 옹산 스님은 경허 스님이 깨달은 후 수행하던 암자를 통해 스님의 삶과 사상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이 시대에도 경허 선사 같은 도인(道人)이 나왔으면...”이라고 발원했다.  

 

깨달음의 성지이자 문학적 명소가 된 천장사최인호 길없는 길무대가 된 사찰

 

633년 백제 때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충남 서산시 천장사(天藏寺)는 근현대 불교의 선맥(禪脈)을 잇는 경허(鏡虛·18461912), 만공(滿空·18711946) 선사가 머무르며 도를 깨친 곳으로 유명하다. 사찰 경내에는 경허 선사의 열반송이 적힌 기념탑과 만공 선사의 득도를 알리는 비()가 있다

▲ 충남 서산에 있는 천장사    


입구 바위에는 최인호 문학의 금자탑 길없는 길의 무대-천장암이라는 표지가 있다. 과거 이곳은 천장암으로 불렸다.

 

이곳 연암산 천장암은 경허 대선사께서 18년간을 주석하신 정신적 도량으로서 그의 수법 제자인 수월, 해월, 만공이 수행했던 곳입니다.’

 

작가 최인호(19462013)는 그 내용을 주제로 한 소설 길없는 길을 썼고, 이로써 천장암은 한국문학사에 길이 전하는 명소가 되었다. 이처럼 사연이 많은 곳이 천장사다. 

▲ 최인호의 소설 『길없는 길』의 무대임을 알리는 표지석    

 

수덕사 주지를 지낸 천장사 회주 옹산 스님이 경허 선사의 삶을 장편소설 길 없는 길로 풀어낸 소설가 최인호를 기념하는 비를 세웠다. 옹산 스님은 인근 지장암을 복원하는 등 경허-만공 선사의 흔적과 향기를 되살리기 위해 힘써왔다.

 

경허·만공선양회장 옹산 스님 경허·만공 대선사의 가르침 올곧게 전승

 

경허·만공 대선사의 드높은 선풍(禪風)과 그 가르침이 올곧게 전승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덕사가 본찰로 있는 덕숭총림은 지난 324일 임회를 열어 경허스님열반100주년기념사업회경허·만공선양회로 개칭할 것을 결정했다. 아울러 경허·만공선양회 신임회장에 천장사 회주 옹산 스님을 선출했다. 옹산 스님은 그동안 경허·만공 두 선사의 업적을 기리는 탑비를 조성하고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선사들을 선양하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옹산 스님은 경허 선사는 조선의 억불(抑佛)정책으로 꺼져가던 선불교의 숨결을 되살려낸 큰 스승이라며 그럼에도 정작 스님의 행적을 증명하는 것은 천장사 요사채 1평 남짓한 작은 방사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옹산 스님은 경허 선사는 단발령에 항거하는 뜻으로 머리와 수염을 길렀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스님의 행동을 단순한 기행(奇行)으로 평가절하 하는 등 한국선불교 중흥조로서의 역할 이외에는 스님의 행적을 연구하고 알리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반성했다.

 

만공 선사에 대해서도 스님은 일제강점기 사찰령을 비판하고 창씨개명(創氏改名)을 끝까지 거부했다. 만공 선사의 이같은 역사적 사실도 대부분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 천장사 회주 옹산 스님    

 

옹산 스님은 가톨릭 교황이 서산을 다녀간 뒤 시는 교황방문도시라는 문구로 지역을 홍보하고 있다그러나 선불교를 중흥시킨 우리의 큰 스승은 무관심과 오해로 그 진면목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경허·만공선양회 발족은 한국 선불교 중흥조 경허 선사의 수행가풍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하고 선수행의 세계화 방안과 한국 선불교의 나아갈 방향을 밝히는데 주력할 것이라며 선사들의 진면목을 연구하는 것은 물론 민족의 스승으로서의 행적을 연구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옹산 스님은 어두운 세상에 등불을 밝히는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한 개의 등불이 천 년을 밝혀 어둠을 없애고, 하나의 지혜가 만 년의 어리석음을 밝힌다고 했다. 스님은 올해 봉축 표어대로 자비로운 마음이 꽃피는 세상을 염원하면서 자비는 즐거움과 기쁨을 주고 괴로움을 없앤다. 그런 생각이 있다면 언제나 세상이 봄이다. 아름다운 꽃은 한 주간을 가기 힘들다. 하지만 영원한 향기의 꽃은 사람 가슴 가슴마다 사랑을 주기 때문에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설했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 매일종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주간베스트 TOP10
배너
광고
광고
  안내데스크신문사소개광고안내저작권문의구독신청불편신고독자투고제휴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 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범 종교의 진정성을 두루 살펴 보고 이해함으로써 각 종교와 사회의 화평과 상생, 조화를 이룬다.
회장 이옥용 /발행-편집인 신민형 / 양형모 상임고문 / 편집국장 이부평 / 청소년보호책임자 강은나
우) 140-846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가 70번지 (83길 21)
대표 전화: 02-703-8267 | 팩스: 02-3211-4419 인터넷 매일종교신문
등록번호:서울 (아)01319(범종교신문 등록 2009년 9월 1일,2013년 6월 15일 제호변경)
기사제보 : minhyung-s@hanmail.net
Copyright ⓒ 2009-2013 매일종교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