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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37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0/09/21 [21:33]
스리랑카 불교부흥에 기여한 독일계 고승과 섬 숲속 불교학파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37

스리랑카 불교부흥에 기여한 독일계 고승과 섬 숲속 불교학파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0/09/21 [21:33]

 

▲ 스리랑카 불교부흥에 기여한 유태계 독일출신 냐나뽀니까 대장로(1901∼1994).  


스리랑카 불교부흥에 기여한 독일계 고승과 섬 숲속 불교학파  

사랑과 종교적 신념은 국경을 초월

국적 인종 불문하고 진리 추구 구현

출가의 길 택해 나치 홀로코스트 면해

 

전회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냐나띠로까 대장로(大長老)는 독일에서 음악가로서의 전도양양한 길을 마다하고 구도의 길을 택해서, 스리랑카 남서부 갈레 부근의 도단두와의 한 섬에서 일생을 보내면서 스리랑카 근대불교 부흥에 기여했다. 종교와 신앙의 힘은 이처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종교와 사랑은 국경을 초월한다고 한다. 진리의 근원을 찾아서 떠나는 한 인간의 행로는 이처럼 가시밭길이면서 결국에는 평안과 행복을 찾고 자신을 발견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물질적인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이 종교적 신념을 갖는 자들의 영역이다. 그렇다고 세속의 길을 걷는 자들을 속물적(俗物的)이라고 낮춰봐서도 안 되는 것이 더불어서 함께 공존하는 지구촌이 아닐까. 어쩌면 성속(聖俗)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나 해야 하겠다. ()의 길이 있고, ()의 길이 존재함으로서 인류사회는 균형을 잃지 않고 조화롭게 평화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 독일 불자들이 합장한 채, 법문을 경청하고 있다.    

 

불교가 보편적인 종교라면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야 한다. 다른 종교도 같은 논리에서 같다고 본다. 불교가 인도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인도적이어야 한다는 것도 너무 일방적이지 않을까. 사실 고오따마 싯다르따 불교는 26백년이란 시간 공간 속에서 많은 변화와 시련을 겪으면서 전파되어 가고 있다. 가능하면 부처님 당시의 모습을 지키려고 하는 전통이 테라와다(上座部)이고, 상좌부에서 시대와 환경에 적응하면서 현지인들에게 어필하는 불교로의 전환을 모색했던 불교가 대승불교(마하야나)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부단하게 변용을 겪었다. 12종파(宗派)가 출현했고, 선종불교(禪宗佛敎)가 대세를 이룬 적이 있었다. 한반도는 미륵신앙 미타신앙 관음신앙 등이 유행했지만 선불교가 주도하면서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고 미륵.미타.관음신앙은 기복불교(祈福佛敎)의 형태를 띠면서 한국불교가 이른바 통불교적인 종합불교로 발전했다. ‘과연 한국불교 이대로 좋은가를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됐다고 본다. 사회와 대중으로부터 외면 벋는 종교라면 어딘지 문제가 심각하다하지 않을 수 없다.

 

스리랑카 불교를 보고, 여기서 활동하는 외국계 승려들의 모습에서 우리 한국불교는 많은 시사점을 발견해야 한다고 본다. ‘70년대부터 다수의 서구출신 승려들이 한국불교에 관심을 갖고 찾아와서 한국불교를 접해왔다. 그런데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내는 분이 없는 것 같다. 하버드나 예일 대학 출신이라는 데에 관심을 갖고 이른바 강남 신도들은 열광했다. 아마도 자신들의 자녀들이 선망하는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이라는 데에 호기심이 갖던 것 같다. 정작 이런 아이비리그 출신 고학력 서구 출신 승려들에 대한 기대가 단순히 미국 유명대학 출신이라는 데에 멈춰 있는 것이다.

▲ 하버드대학 불교공동체 모임.  

 

당사자인 서구 출신 승려들은 구도의 열정에서 한국불교를 찾아왔지만, 이를 대하는 한국불교 신자들은 생각이 달랐던 것이다. 대부분의 서구 출신 승려들은 거의가 한국을 떠나고 있다. 어딘지 자신들이 설 자리가 어색하고 뿌리내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꾸준히 뭔가 지속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는 서구 출신 승려 또한 희소하다는 것도 문제이긴 하다.

 

이에 반해서 남방 상좌부 권에서 활동하는 서구 출신 비구들은 뭔가 이뤄내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관점이지만, 남방 상좌부 승가는 이들에게도 비구로서의 평등성을 부여해주고 있음이 가장 큰 장점이다. 같이 모여서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의식주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도 수행과 전법 내지는 연구 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는 환경이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냐나띠로까 대장로가 세계 1차 대전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독일 출신이라는 이유로 수용소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스리랑카에서 비구로서의 수행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냐나띠로까 대장로가 머물렀던 섬 암자를 방문해 보고 그의 전기를 읽으면서 참으로 감동을 받았는데, 그의 소신과 열정 때문이었다. 그가 인도 북부의 데라둔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때에도 그는 경전 번역을 했다고 한다. 그에게는 수용소도 수행공간이었던 것이다. 1차 대전 때 브리티시 정부가 그를 독일 국적이라는 이유로 스리랑카에서 추방해서 일본 중국 등지로 유랑하면서도 그는 스리랑카를 잊지 못했다. 그것은 그에게 안식을 주는 스리랑카라는 환경 때문이었고, 출가 수행자로서 전법자로서 할 일이 있었기에 그는 지속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 스승과 제자: 냐나띠로까 대장로와 냐나뽀니가 장로.  

 

불교는 스승과 제자라는 유대감이 강한 종교이다. 독신 승려들이 사는 집단이기에 이런 사제 간의 유대감에 의한 신의와 상속은 비중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데, 불교에서는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는 스승에게서 제자(弟子)에게로 법이 이어져 전()해 져 감을 중하게 여긴다.

 

냐나띠로까 조실의 대를 이어서 제 2대 조실로 활동하셨던 냐나뽀니까 비구는 유태계 독일인으로서 22세 때, 가족과 함께 베를린으로 옮겨서 생활할 때, 독일의 불교도들과 만나게 되고 불교를 접하게 되는데, 섬 암자에서 불교학파를 주도하고 계시던 냐나띠로까 대장로 비구의 저작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냐나띠로까 비구는 섬에 암자를 세우고 유럽의 비구들과 수행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그는 이내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몇 차례 편지를 냐나띠로까 비구에게 보내서 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부모님을 봉양해야할 입장이어서 당장 섬으로 갈 수 없었으나, 부친이 사망하자, 1936년 실론으로 향했고, 드디어 섬 암자에 도달해서 비구계를 받고 불문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 아돌프 히틀러.    

 

1939년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하자, 그는 그의 어머니와 일부 친척들을 실론으로 옮기도록 했다. 이런 결과로 나치에 의해서 자행된 홀로코스트(Holocaust)를 면하게 된다. 2차 세계 대전 중,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이 독일 제국과 독일군 점령지 전반에 걸쳐 계획적으로 약 6백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사건이 홀로코스트다. 그 당시 유럽에 거주하던 9백만 명의 유태인 중 약 3분의 2가 죽임을 당했다. 유태인 어린이 약 백만 명이 죽었으며, 여자 약 2백만 명과 남자 약 3백만 명이 죽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유태인과 기타 피해자들은 독일 전역과 독일 점령지의 약 4만여 개의 시설에 집단 수용, 구금되어 죽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유럽의 많은 유태인들은 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정신적 트라우마가 너무나 크다.

▲ 독일점령 바르샤바에서 2500명의 유태인을 구한 이레나 센들러(1910∼2008).폴란드 지하저항 운동을 했던 인도주의자, 사회복지사 및 간호사였던 그녀는 수많은 유태인을 구했다. 98세로 사망했다는 신문기사.  


냐나뽀니까 비구는 섬 암자에서 수행을 한지 얼마가지 않아서 냐나띠로까 장로와 함께 독일 국적이라는 이유로 1939년부터 브리티시에 의해서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되는데, 수용소에서 그는 숫따 니빠따(the Sutta Nipata 經集)를 독일어로 번역한다. 그리고 아미담마삐따카(Abhidhamma Pitaka 論藏)의 첫째권인담마상가니 (Dhammasangani 法集论를 번역하고 싸띠빠따나 명상(Satipatthana Meditation 思念處을 완성한다.

▲ 냐나뽀니까 장로 저 ‘불교명상의 핵심’.    

 

1952년 냐나띠로까 대장로와 냐나뽀니까 장로는 버마 정부로부터 1954년에 개최하게 될 제 6차 경전결집회의(the Sixth Buddhist Council)에 참가하도록 초청을 받는다. 냐나띠로까 대장로와 냐나뽀니까 장로는 1954년 제 6차 경전결집대회 개회식에 참가하여 냐나띠로까 대장로는 축하 메시지를 낭독하였다. 냐나띠로까 대장로는 이후 실론으로 귀환하고, 냐나뽀니까 장로는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장로 문하에서 명상 수업을 받고 1956년 제 6차 경전결집대회 폐회식에서 냐나띠로까 대장로의 축하 메시지를 대독하게 된다. 냐나뽀니까 장로는 명상 경험을 하고 난 다음, 그의 마스터 피스인불교명상의 핵심을 저술하게 될 동기가 부여된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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