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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39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0/10/06 [09:33]
동남아시아 이슬람 7세기 후반에 수마트라 섬에서 시작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39

동남아시아 이슬람 7세기 후반에 수마트라 섬에서 시작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0/10/06 [09:33]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이스띠끄랄 모스크에 운집한 무슬림교도들    


동남아시아 이슬람
7세기 후반에 수마트라 섬에서 시작

전체동남아시아 인구 42% 가운데 42천 만 명 무슬림

서북인도 구자라트 무슬림들이 동남아 이슬람정착에 공헌

 

인도문화에 대한 담론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전회에서 몇 차례 힌두교와 불교의 인도 내에서의 발생과 발달과정을 주마간산격으로 살펴봤다. 이슬람교는 인도 종교 가운데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종교다. 이슬람이 아랍에서 들어온 외래종교지만 인도에서의 이슬람은 엄청난 교세와 강력한 결속력 그리고 왕성한 활동으로 그 어느 종파보다도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만이 아닌 동남아시아에서도 이슬람교의 교세는 대단하다.

 

이슬람은 동남아시아에서 활동이 활발하다. 전체 인구의 약 42%에 해당하는 약22,400만 명의 신자들이 있으며, 대부분은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의 빠따니, 필리핀의 민다나오 일부에 분포해 있다.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의 무슬림은 수니파이며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의 공식 종교인 반면, 인도네시아에서는 6대 공식 종교 중 하나다.

 

동남아시아의 이슬람은 아랍이나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는 조금 다르게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며, 동남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지역 전통과 공존하도록 적응하여 개조되었다. 이슬람의 신비주의인 수피즘은 동남아시아 이슬람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슬람의 신비한 형태는 이미 확립된 기성전통과 잘 어울리도록 융합되어 있다. 이슬람이 지역 전통에 적응하는 것은 동남아시아의 무슬림들에게 긍정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이슬람은 동남아시아의 일상 생활의 일부이며 비 종교 영역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 무슬림 공동체가 동남아시아에 최초로 형성된 수마트라의 아체(붉은 색).    

 

동남아시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있으며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능가할 정도다. 그렇지만 서구의 이슬람 연구가들은 중동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연구는 무시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역사에 대한 논란은 다소 좀 다른 견해가 있기는 하지만, 호주의 빅토리아 이슬람 협의회에 따르면 역사가들은 9세기 초에 아랍 상인들이 동남아시아의 무역을 지배했다고 주장하는데서 이슬람 역사의 단초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7세기 후반부터 수마트라 서해안에 외국 무슬림 식민지가 존재했으며, 이슬람이 점차 사람들 사이에 뿌리를 내리면서 서기 878년 이후에는 다른 무슬림 정착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 공동체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이슬람은 12세기까지는 인구의 상당 부분에 퍼지지 않았다.

 

무슬림 상인들은 서아시아와 극동사이를 오가면서 무역을 했고, 주요 무역 경로를 따라 있는 무슬림 상인들은 동남아시아에 이슬람을 도입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최초의 무슬림 공동체는 북부 수마트라의 아체에서 발생했다. 말라카는 이슬람의 초기 요새였으며 이슬람이 이 지역의 무역로를 따라 전파되는 출발점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슬람이 언제 이 지역에 처음 왔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최초의 이슬람 묘비 표시는 10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마르코 폴로(1254〜1324)의 여행경로.    

 

마르코 폴로가 귀국길에 1292년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그는 펄락의 도시 항구 국가가 무슬림이었다고 기록했다. 이슬람의 확산은 일반적으로 주로 불교 지역을 통해 동쪽의 무역로를 따라 갔고, 1282년에는 수마트라 섬에 사무데라 파사이 술탄국(12671521)이 출현했다.

▲ 믈라카 술탄국(1400~1511)의 지도.    


이후 믈라카 술탄국이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 중심부에 출현하게 된다. 동남아시아에서 이슬람에 대한 기록문서가 1851년 수마트라의 한 상인에게서 나왔다. 이슬람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916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슬림 상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구가 적은 해안의 마을에 무슬림 항구 마을을 형성하게 됐으며, 이슬람 스승(수피)들은 차츰차츰 수마트라의 내륙으로 전도 모험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무슬림 항구는 인도, 중국, 아라비아 반도의 무슬림을 끌어 들였다. 이 공동체는 무역을 위한 실용적 기능을 능가하여 이슬람의 글로벌 네트워크화에 통합되었다. 이슬람이 이전의 불교나 힌두교 신념 체계와 달리 신성을 통해 통치자의 힘을 검증하는데 사용될 수 있었기 때문에 동남아시아에서 인기가 있었다. 이슬람은 인도네시아 군도(群島) 전체에 천천히 퍼졌고 그 과정은 일반적으로 평화로웠다. 큰 저항 없이 이슬람이 정착하게 되고 이 지역민들은 서서히 무슬림화 된 것이다.

▲ 남인도의 촐라 왕조(기원전 300〜서기1279).    


12세기가 되면 남인도의 촐라 왕국의 해군이 바다를 건너 스리비자야 왕국을 공격하게 된다. 촐라국은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279년까지 남인도의 타밀라캄 지역에 존재하던 타밀계 왕국으로, 체라, 판디아와 함께 타밀 3왕국 중 하나인 국가였다.

 

1010년부터 1153년까지, 촐라 제국은 남쪽으로는 몰디브와 스리랑카, 북쪽으로는 안드라프라데시까지 영역을 확장하였는데, 라자라자 1세는 스리랑카 섬의 아누라다푸라 왕국과 인도양의 몰디브 제도를 정벌하였으며, 라젠드라 1세는 갠지스 강 유역과 동남아시아의 스리비자야를 정벌하였다. 촐라 시대에 타밀의 예술, 종교, 음악과 문학 등은 탁월한 발전을 이룩했다.

▲ 스리비자야 왕국(650〜1377)의 최대 판도(8세기경).  

  

스리비자야국은 말레이 지역에서 강력한 제해권을 가졌던 도시 국가였다. 이곳에서 출토되는 비문이나 당나라 의정의 여행기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으로도 스리비자야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 신라, 탐라 그리고 인도와 활발한 교역활동을 통해 경제적으로 번영했음을 알 수 있다. 인도와 중국을 잇는 항로의 가운데 위치하고, 믈라카 해협과 순다 해협의 중앙이라는 유리한 지리적 조건이었기 때문에 8세기에 접어들어 해상무역국가로 빠르게 발전했다. 때마침 서방의 이슬람 제국에서 상선이 자주 동쪽으로 나온 시기이고, 당나라의 중국도 이곳의 풍부한 시장성을 노려 중국인도 나라밖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스리비자야는 중계 무역지 구실을 하였다.

 

7세기 후반 인도에 유학했던 당나라 승려 의정이 도중에 스리비자야에 들러 산스크리트어 연구와 불경번역 등에 힘썼는데, 당시 이 나라 불교는 매우 융성했다. 8세기 중엽에는 말레이 반도의 일부도 지배했던 것으로 보이며 영토도 넓어져 동남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한 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10세기를 최전성기로 하여 그 뒤 쇠퇴해 14세기에 몰락했다.

 

스리비자야국은 힌두교와 불교가 공존했다. 불교도 대승불교와 바즈라야나(금강승)의 전통이 수용됐다. 수마트라 팔렘방에는 인도 날란다대학의 분교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인도 촐라왕국 해군의 공격을 받게 되고, 힌두교를 믿었던 왕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일이 생기고, 말라카는 이슬람 연구와 해양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다른 통치자들도 차츰차츰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전철을 밟게 되었다.

 

15세기 말에는 현재 자바를 포함한 북부 수마트라의 여러 지역이 무슬림 통치자들의 통치를 받았다. 이슬람교는 처음에 수마트라 해안에 도착하여 해안을 따라 말라카 해협까지 퍼져 말레이 반도까지 이슬람화 한 것이다.

▲ 필자 보검스님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가.    

 

1511년 포르투갈은 말라카를 점령했지만 다른 여러 무슬림 국가의 완전한 점령이 쉽지 않았다. 이슬람이 퍼지면서 불교와 힌두교를 포함한 기존의 영적 신념과는 공존하거나 통합전략을 구사했다. 사실, 일부 종교 상인들이 도입한 신앙은 보다 보수적인 이슬람의 신비로운 버전인 수피즘이었다. 그렇지만 동남아시아의 이슬람화 과정에 대한 몇 가지 주요 배경은 첫 번째가 무역이었다. 서아시아, 인도 및 동남아시아 간의 무역 확대는 무슬림 상인들이 이슬람을 이 지역으로 가져옴에 따라 종교의 확산을 도왔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인도 서북지역의 구자라트 이슬람교도들은 동남아시아에서 이슬람을 확립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두 번째는 이슬람의 스승인 수피의 역할이다. 수피들은 이슬람 사상을 기존의 지역 신념과 종교적 관념과 융합하여 신앙을 전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지배 계급은 이슬람을 받아들여 지역 전체에 종교의 침투를 더욱 돕는 일이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의 통치자인 말라카 술탄국은 15세기에 이슬람을 받아들였으며, 종교가 지배 계급과 무역계급 사이에 통일된 힘을 제공함에 따라 지역 전역에서 이슬람의 개종이 가속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7세기 아라비아 반도에 이슬람이 도래한 이후 이슬람은 해상 실크로드의 개발에 힘입어 무역을 통해 동부지역으로 확장을 시작했으며, 무슬림은 뛰어난 항해기술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주요 항구를 함께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의 동서 무역을 독점 할 수 있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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