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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岩 칼럼
삶에 지친 현대인에 들려줄 만한 ‘신화의 힘’…불안감 해소에도 도움
20세기 최고권위 神話학자 조지프 캠벨의 저서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출간
기사입력: 2020/10/16 [09:20]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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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권위 神話학자 조지프 캠벨의 저서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출간  

 

삶에 제대로 반영되는 신화(神話, myths)’는 어떤 것이며 그 기능은 무엇인가. 인류의 첫걸음부터 함께해온 신화는 현대인의 압도적인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까.

 

언뜻 허무맹랑하고 고리타분한, 오래되어 사라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신화는 지금도 우리 일상 깊숙한 곳에서 살아서 숨 쉬고 있다. 인어(人魚)의 모습을 한 세이렌 여신(스타벅스)과 정복과 승리의 여신 니케(나이키), 뱀의 머리를 가진 메두사(베르사체), 포세이돈의 삼지창(마세라티)처럼 신화적 모티프가 상업적으로 활용된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종교와 예술의 영역을 넘어 기업들마저 신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지금도 강한 소구력(訴求力·appeal power)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마케터들의 말처럼 신화적 상징은 소비자들의 무의식에 영향을 준다. 현대인은 왜 까마득히 먼 옛날이야기에 불과한, 심하게 말해 미신이나 다름없는 신화에 끌리는 것일까.

 

조지프 캠벨 꿈은 개인의 신화이고 신화는 집단의 꿈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강연들(195871)을 한데 묶은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MYTHS TO LIVE BY(권영주 옮김·더퀘스트)은 이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캠벨은 꿈은 개인의 신화이고, 신화는 집단의 꿈이라 말하는데, 이를 풀어서 얘기하면 고래로부터 이어져 온 인류의 이 신화에 녹아 있다는 것이다. 고대인들의 꿈인 신화는 동시에 현대인의 꿈이기도 하다. 미국의 세계적인 신화학자이자 신화 해설가였던 조지프 캠벨(19041987)은 신화의 힘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탐사했다.

 

인간 내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힘신화, 내면이 만든 세계  

 

모든 신화의 뿌리는 인간 내면세계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는 초월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신화에 대한 캠벨의 시각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일반적으로 신화란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나 우주의 기원, 신이나 영웅의 행적 등을 두루 이르는 것인데, 캠벨은 지역에 따라 그 모습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신화적 사고는 네안데르탈인 때부터 현재까지 동일하다고 본다. 죽음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초월하려는 욕구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 각지의 신화들을 살펴보면 어떤 유사성이 발견되곤 한다. ‘대홍수가 대표적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구약성경 속 노아의 방주말고도 인도 신화 속 브라마의 밤은 물론 바빌로니아와 메소포타미아, 아즈텍, 힌두교 등 신화에도 대홍수 모델이 등장한다. 뱀과 생명의 나무, 영생의 정원 같은 이미지들 역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화와 전설, 미술과 의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신화의 외형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신화적 질서는 환경에 기반한다. 남성 구성원의 역할이 큰 수렵부족의 신화가 동물숭배적인 것과 달리, 열대밀림의 신화는 식물과 여성, 재생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밀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패 식물에 새싹이 돋는 현상에서 비롯된 죽음이 삶을 가져온다는 믿음은 수천년간 이어진 인신공양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런 신화적 상징들은 종교와도 맞닿아 있는데, 캠벨이 큰 틀에서 종교와 신화를 묶는 핵심은 영혼의 풍경이다. 가령 기독교에서 말하는 에덴동산은 유사 이전의 실제 사건이 아니라 영혼의 풍경’, 그러니까 인간 내면의 영적 상태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현병 환자가 체험하는 이른바 내적 낙하에서 힌두교와 불교, 이집트 및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의 이미지가 발견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세계 각국에서 유사한 형태의 신화적 사고나 신화적 원형이 나타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일인 셈이다. 현대 과학이 대신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고유한 정신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 캠벨의 시각이다.

 

캠벨은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에서 동서양의 신화, 종교, 예술, 사상을 넘나들며 보편적 신화의 힘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는지 탐사한다. 과거 원시시대에서 첨단과학이 새 지평을 열어주는 오늘날까지, 모든 신화가 솟아나는 근원, 다시 말해 인간의 창조적인 상상력을 돌이켜보면서 신화가 태어나고 교체되는 과정을 탐사한다. 그리고 이 앎이 어디에서나 인간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수많은 저작을 남겼다. 그중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은 우리의 삶에 끊임없이 참조하고 반영해야 하는 신화, 인생의 준거틀(FRAME OF REFERENCE)’로서 신화를 이야기하는 일종의 특강록이다.  

 

혼돈의 세상에서 중심 잃지 않고 살아가는 힘신화 통해 현실세계서 발현될 수 있어

 

현대로 접어들어 지난날 사람들의 삶을 강력하게 장악해온 옛 신화 체계(또는 종교)가 힘을 잃고, 우주뿐 아니라 인류의 기원과 역사에 관해서도 과학이 구시대의 믿음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비교 문화 연구 덕에 이제 세계 곳곳에 비슷한 신화가 존재했다는 것도 알려졌다. 세상은 새로운 기대에 부풀기도 했지만, 삶을 지탱하던 환상이 흔들리면서 인간의 내면도 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혼돈 속에서 현대인은 쉽사리 정신의 온전함과 건강을 잃었고, 통과의례가 사라진 현대사회에서 젊은이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배울 길이 없었다. 옛 신화들이 받쳐주던 삶의 토대를 새롭게 다시 세워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신화는 살아 있는 이야기 꼭 필요한 생물학적 기관이자 자연 산물

 

왜 지금 신화를 이해하는 일이 중요할까.캠벨은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카를 융의 설명을 빌려 인간 영혼에 보편적으로 존재한 어떤 이 신화 속에 담겨 있는데, 현대인이 이를 올바르게 해석하면 인간 내면의 힘과 연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캥거루 주머니비유를 들며 종교가 인간을 유년기에 머무르도록 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 반면, 신화는 가상의 사회 영역이 아닌 현실세계에서 이성적으로 기능하는 성인이 되도록 미성숙한 정신을 길러준다고도 보았다. 신화를 자연스러운 인간 성장 과정의 일부로 여기는 셈이다. 그는 신화는 제2의 자궁에 못지않게 없어서는 안 될 생물학적 기관이고 자연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 신화의 모티프는 상업의 영역에서 곧잘 활용된다. 신화는 그 자체로 인간에게 강한 소구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와 나이키의 로고.    

  

꼭 종교나 심리적인 접근이 아니더라도 신화에 대한 통찰은 현재를 이해하는 데 여러모로 도움을 줄 수 있다. 가령 세계적인 흥행을 거둔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어벤져스 시리즈를 뜯어보면 모두 출발(Departure)입문(Initiation)귀환(Return)’이라는 영웅 신화의 구조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신화가 소구력 있는 스토리텔링의 질료로 쓰인 것이다. 때로 신화는 인간이 겪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언어를 초월한 인간 내면을 인식하도록 돕기도 한다. 죽음과 늙음, 사랑 등 인간 삶의 본질은 수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화학자들이 신화는 살아 있는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고대부터 이어진 인류의 꿈 신화에 담겨

 

신화란 ‘삶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인류가 존재하면서부터 함께해온 신화는 보편적이고 영원한 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런 보편적 힘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삶은 신화로부터 깊이와 심리적 안정, 그리고 의미를 얻는다.종교적 전설에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 본질적 원칙이 담겨 있고, 모든 거대 문명에는 유사한 구세주, 영웅, 구원받은 자들이 등장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기적이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들이 자기 마음속 공포의 담장을 뛰어넘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 생애는 언어를 초월한 상징으로 인간 내면을 인식하는 통로이다.

 

신화란 곧 인생의 답을 찾아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이고, 그 과정은 크고 작은 모험으로,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그렇기에 신화와 영웅 또는 성인들의 삶은 글자 그대로 읽어서는 안 된다. 그 모든 것은 상징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가 중요하다. 아마도 조지프 캠벨이야말로 그 상징을 읽고 되새기는 여정에 가장 좋은 동반자가 아닐까.

 

캠벨은 영토를 구분하는 경계란 언제나 무너져왔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세상 곳곳의 신화와 종교의 뿌리를 더듬어 내려가 보면 그 토대에는 언제나 특정한 기본 원형들이 존재했으며, 그 원형들은 이제 더 이상 단일민족이나 특정 지역 또는 특정 종교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왜 신화들의 공통분모를 인식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이 앎이 어디에서나 인간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캠벨은 이 책에서 종교와 예술, 사랑, 전쟁과 평화 등을 다룬 신화를 통해 사라진 것과 변하지 않는 것, 현대인이 찾아야 할 것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새로운 신화의 모습을 제안한다.  

▲ 20세기 최고 권위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  

  

책속으로

 

융은 우리가 신화를 올바르게 해석하면 다시 내면의 힘과 연결될 수 있다고 봤다. (...) 언제나 인간의 영혼에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이 힘은 인간이 수천 년 세월을 헤쳐 나올 수 있게 해준 종()의 지혜를 나타낸다. 그렇기에 신화는 과학이 찾아낸 것으로 대체된 적이 없을뿐더러 대체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과학은 우리가 잠자는 중에 진입하는 의식의 깊은 곳이 아니라 외부세계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꿈과 신화 연구를 통해 이들 내면의 힘과 대화하면 우리는 좀 더 심오하고 지혜로운 내적 자아의 좀 더 넓은 지평을 알고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신화를 소중히 간직하고 살아있게 하는 사회는 인간 영혼의 가장 온전하고 풍요로운 층에서 양분을 얻을 것이다.

-1. 신화가 과학을 만났을 때중에서

 

기독교와 불교 설화의 상징적 이미지는 이처럼 형태상으로는 유사하나 관점은 서로 어긋난다. (...) 성경의 설화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 수준에서 불복종과 그에 대한 벌을 다루며 흡사 부모 자식 관계에서처럼 의존과 두려움, 공손함과 헌신을 심어준다면, 불교는 스스로를 책임지는 어른들을 위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사실 이 둘에 공통되는 이미지는 구약성경보다, 불교보다, 심지어 인도보다도 더 오래됐다. 뱀과 나무, 영생의 정원 이미지는 초기 설형문자 문헌과 고대 수메르의 원통 인장, 전 세계 원시부족 촌락의 미술과 의례에 이미 나타나기 때문이다었다.

-2. 인류가 출현하다중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의식(ritua)l의 기능은 표면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깊은 곳에서 인간의 삶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3. 잃어버린 의례를 찾아서중에서

 

원시사회의 통과의례, 나아가 전세계의 교육이 하는 최초의 기능은 청소년의 대응체계를 의존에서 자기 책임으로 바꿔놓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환은 결코 쉽지 않은 데다, 요즘처럼 부모로부터 자립하는 시기가 20대 중반, 심지어 후반까지 늦춰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어려워서 우리 사회의 실패는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신경증 환자는 성인으로서 2의 탄생이라는 중요한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이라 볼 수 있다.

-3. 잃어버린 의례를 찾아서중에서

 

다시 말해 그리스의 신은 인간의 편으로, 그의 공감과 신의(信義)는 인간의 것이었다. 반대로 유대인은 신의 편이다. 그리스 사람이라면 욥과 같은 말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온전하고 정직한욥은 까닭 없이 그를 친뒤 폭풍우를 타고 나타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 주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사오며 ()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회개라고? 뭘 회개한다는 말인가?그와는 대조적으로, 작자 미상의 욥기가 쓰인 5세기에 활동했던 위대한 그리스의 비극 시인 아이스킬로스는 프로메테우스(그 역시 낚시로 리워야단(레비아단)을 끌어내고 그것을 새를 가지고 놀듯 하며 많은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는신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에게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을 하게 만든다. “그는 괴물이요. () 나는 제우스에게 아무 관심이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해라.”

-4. 동양과 서양의 분리중에서

 

살아 있는 신화적 상징의 가장 중요한 효과는 사람을 각성시켜 삶의 에너지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이 상징은 에너지를 방출하고 요샛말로 스위치를 켜주는데’, 스위치가 켜지면 특정한 방식으로 기능하도록 이끈다. 그래서 개인이 삶에 참여하고 사회집단이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사회집단이 제공하는 상징이 효력을 잃고 다른 집단의 상징이 유효해지면, 개인은 집단에서 떨어져나가 소속감과 방향감각을 잃고 우리는 상징의 병리학이라 할 것에 직면하게 된다.

-5. 동서양 종교는 어떻게 대립하는가중에서

▲ 비교신화학자들은 유사한 신화적 상징이나 원형의 이미지들이 각국의 신화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구약성서 속 ‘노아의 방주’와 같은 대홍수는 아메리카 대륙과 아시아, 중동 지역 고대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상징 중 하나이다.    


부주의로 인한 죄(경계하지 않고 깨어 있지 않은 죄)는 삶의 순간을 놓치는 죄다. 반면에 무위는 끊임없는 경계의 기술이다. 그러면 항상 깨어 있게 되는데, 삶은 의식의 표현이므로 그 상태에서는 저절로 삶을 살게 된다. 따로 가르치거나 지시하지 않아도 삶이 알아서 움직인다. 알아서 산다. 알아서 말하고 행동한다.  

-6. 동양 예술이 주는 영감중에서

 

황홀경에 빠진 젊은이는 여전히 나는 신이다. 저 코끼리는 신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키라는 소리를 듣고 신이 신을 두려워해야 하나? 신이 신 앞에서 비켜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남자는 계속 비키라고 소리치고 코끼리는 다가오는데, 젊은이는 명상을 중단하지 않고 길에서 비키지도 않고 초월적인 통찰을 고집했다. 이윽고 진리의 순간이 찾아와 코끼리는 거대한 코로 이 미치광이를 감아 길옆으로 던져버렸다. 젊은이는 육체적·정신적으로 충격을 받고 땅에 쿵 떨어졌다. 다행히 멍은 심하게 들지 않았지만 너무 놀라 옷매무새를 바로잡지도 않고 스승에게 돌아갔다. 그는 사정을 설명하고 이렇게 말했다. “스승님은 제가 신이라고 하셨습니다.” 구루는 그래, 너는 신이다라고 대답했다.“만물이 신이라고 하셨죠.”“그래, 만물이 신이다.”“그럼 코끼리도 신이었습니까?”“그래, 코끼리도 신이었다. 그런데 왜 너는 신이 코끼리 머리 위에서 비키라고 소리치는데 그 말을 듣지 않았느냐?”

-7. ‘을 찾아서중에서

 

내가 아는 사랑의 이미지 중 가장 놀라운 것은 페르시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사탄이 누구보다도 신을 사랑하고 신에게 충실한 존재로 그려진다. 신이 천사들을 창조했을 때 오로지 자신만을 경배하도록 명령했다는 이야기는 다들 알 것이다. 신은 이어서 인간을 만들고는 천사들에게 자신의 가장 숭고한 작품에게 절하도록 명령했다. 우리는 루시퍼가 자존심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교에서는 신을 너무나도 강렬하게 사랑한 나머지 다른 존재 앞에서 머리를 숙여 절할 수 없었던 것으로 해석한다. 그 때문에 그는 지옥으로 떨어져서 자신이 사랑하는 신과 영원히 헤어져 지내는 벌을 받았다. (...) 페르시아의 시인들은 사탄은 어떻게 버텼는가?” 하고 물었다. 여기에 대해 그들이 찾아낸 대답은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라고 말한 신의 음성을 기억하면서였다. 사랑의 환희와 번뇌가 한꺼번에 일어나는 영적 고통의 이미지로서 참 절묘하지 않은가.

-8. 사랑의 신화중에서

 

대립을 초월해 세상을 긍정하는 그 같은 자세로 동양에서 가장 널리 존경받는 것은 앞에서 이미 상세히 다룬 바 있는 무한한 자비를 베푸는 관세음보살이다. 평생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다가 세상을 영원히 떠난 붓다와 달리, 윤회의 소용돌이 안에 남기를 선택한 관세음보살은 살아서 영원한 해방을 아는 것의 신비를 상징한다. 그렇게 해서 가르치는 해방은 역설적이게도 소용돌이로부터 벗어나는 게 아니라 자비에 의해 자발적으로 그 슬픔에 동참함을 의미한다.

-8.. 사랑의 신화중에서

 

서구의 2대 전쟁 신화는 일리아드와 구약성경이다. (...) 뿐만 아니라 두 전설의 기본적인 신화적 개념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양쪽 모두 세계는 지상과 신들이 존재하는 천상 두 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상에서는 전쟁(‘우리민족이 상대민족을 정복하는)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전쟁의 추이를 결정하는 것은 천상의 신이었다. 일리아드의 경우, 천상의 여러 신이 양 진영을 지지하며 다투었다. (...) 그런데 구약성경과 예루살렘의 신화 속 천상과 그곳에 거하는 신은 일리아드나 아테네와는 매우 다르다. 여러 신이 양 진영을 동시에 지지하는 게 아니라 유일신이 언제까지고 한쪽 편만을 든다. 그리고 그리스에서와 달리 적은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된다.

-9. 전쟁과 평화의 신화중에서

 

신화의 영웅, 샤먼, 신비주의자, 조현병 환자의 내적 여행은 원칙적으로 동일하다. 그들의 귀환 또는 증세의 완화는 재생으로 체험된다. 다시 말해 현실의 지평에 더는 구속되지 않는 거듭난자아가 탄생하는 것이다.

-10. 내면으로 떠난 여행: 조현병의 연구중에서

 

이전에 우리를 지상에 묶어놓았던 것은 모두 깨졌다. 우주의 중심은 이제 어디든 될 수 있다. 지구는 하나의 천체이되 그 어느 것보다도 아름답다. 이러한 생각에 담긴 경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문학은 이제 낡은 것이다.

-11. 세상 바깥으로 떠난 여행: 달 위를 걷다중에서

 

따라서 우리 신화는 이제 무한한 우주와 우주의 빛(안에 있는 동시에 바깥에 있는)의 신화여야 한다. 우리는 나방처럼 그에 매료되어 밖으로, 달과 그 너머로 날아가지만, 그러면서 또한 안으로 날아가는 셈이다. 지구에서는 우리를 갈라놨던 모든 지평이 무너졌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속한 곳에 사랑을 주고 다른 곳에 공격성을 투사할 수 없다. 지구라는 이 우주선에는 이제 다른 곳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곳국외자를 계속해서 가르치는 신화는 이 시대에 필요한 게 아니다. 이제 이 장을 열었던 질문으로 돌아가자. 새로운 신화는 무엇인가 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12. 끝맺으며: 지평의 소멸중에서

 

저자 조지프 캠벨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리는 신화종교학자이자 비교신화학자. 1904년 뉴욕에서 태어난 캠벨은 어린 시절부터 아메리칸 인디언에 관한 책을 즐겨 읽었으며, 맨해튼에 있는 미국자연사박물관을 자주 찾았다. 캠벨은 박물관에 있는 토템 폴 컬렉션에 특히 매료되었다고 한다. 이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파리와 뮌헨의 대학교에서 중세 프랑스어와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했다. 한동안 캘리포니아에 머물며 작가 존 스타인벡과 그의 친구인 생물학자 에드 리케츠와 교분을 나누기도 했다. 1934년에는 명문 사립고등학교인 캔터베리스쿨에서, 이어 세라로런스대학 문학부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다. 1940년대와 50년대에는 사상가이자 작가인 스와미 니칼라난다를 도와 고대 인도의 경전인 우파니샤드스리 라마크리슈나의 복음등을 번역했다.

 

캠벨은 평생에 걸쳐 왕성하게 지적 연구 활동을 펼치며 방대한 저술을 남겼는데, 주요한 저작으로 신의 가면(4), 신화의 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화와 인생, 신화의 세계, 신화의 이미지등이 있다. 한편으로 그는 프린스턴대학교 볼링겐 시리즈의 탁월한 편집자로도 명성이 높았으며 한 권으로 읽는 아라비안나이트, 한 권으로 읽는 융등을 편집하기도 했다. 1987년 세상을 떠났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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