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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동성 커플 법적 보호’ 언급에 바티칸 술렁

김희성 기자 | 기사입력 2020/10/23 [20:32]
사흘째 침묵 속 성직자와 신자들 크게 당혹

교황 ‘동성 커플 법적 보호’ 언급에 바티칸 술렁

사흘째 침묵 속 성직자와 신자들 크게 당혹

김희성 기자 | 입력 : 2020/10/23 [20:32]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애 커플에 대해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발언한 인터뷰의 파문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전 세계 가톨릭 본산인 바티칸도 술렁이는 모습이다.

 

오랜 금기를 깬 교황의 '폭탄선언'(Bombshell)에 언론에선 문의가 빗발치고 있지만 바티칸은 사흘째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교황청 안팎의 성직자와 신자들도 크게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이다.

 

23(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교황은 지난 21일 로마 영화제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에서 시민결합법(Civil union law)을 통한 동성커플의 권리 보호를 공개 지지했다.

 

시민결합법은 이성 간 결혼을 통해 발생하는 모든권리와 책임을 동성 커플에게도 법적으로 동등하게 부여하는 내용이다. 교황은 이전에도 동성 커플이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발언한 적 있지만, 시민결합법을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때문에 이번 발언은 수천년간 성소수자(LGBTQ)를 죄악시해 온 가톨릭교회의 보수주의와의 결별로 평가됐다. 교황 발언 이후 가톨릭교회 최고위층은 충격에 휩싸였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하지만 바티칸에선 교황의 발언이 몰고 올 파장을 의식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바티칸 라디오·텔레비전·일간지·트위터 등에는 교황 관련 어떤 언급도 없다. 교황 대변인도 블룸버그 등 미국 언론들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바티칸이 운영하는 언론 매체에서 근무하는 2명에 따르면 "이번 사태에 대응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바티칸 고위 관계자도 교황 발언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앞서 교황은 "동성애자들은 한 가족을 만들 권리가 있다. 그들도 하느님의 자녀로 가정을 이룰 권리가 있다""누구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버려지거나 불행해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시민결합법"이라며 "그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방법이다. 나는 이를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진보·보수를 떠나 상당수 사제와 신자들은 교황의 발언이 1천년 넘게 유지된 기존의 가톨릭 교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본다.

 

가톨릭 교리는 결혼이란 남성과 여성이 결합해 부부의 연을 맺는 것으로, 성행위도 이러한 부부의 틀 안에서만 허락된다고 가르친다.

 

시민결합법상의 커플도 법적으로는 부부와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교리상으로는 정식 부부가 아닌 동거 형태에 불과해 여기서 이뤄지는 모든 성행위는 간음으로 간주된다. 이런 맥락에서 시민결합법을 지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간음을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가톨릭 교계에서 시민결합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실제 가톨릭교회의 신앙·윤리 문제를 다루는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2003년 훈시를 통해 "동성애자를 존중하되 이것이 동성 행위나 동성 결합에 대한 승인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당시 신앙교리성 장관이 보수적 교리 해석으로 유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20052013년 재임)이었다.

 

교리상 이성 간의 시민결합도 금기시되는 마당에 동성 간의 결합을 지지한다는 취지의 언급이니 성직자나 신자들이 받은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다.

 

교황청 안팎에서는 이러한 발언이 어떤 맥락과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재임 기간 있었던 다양한 교리·사회적 이슈를 얘기하는 과정에서 나온 개인적인 의견으로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이미 이탈리아를 비롯해 전 세계 많은 국가가 채택한 시민결합 이슈를 교계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논쟁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교황 나름의 치밀한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까지 다양하다.

 

가톨릭 교리도 시대 흐름에 발맞춰 가야 한다는 교황의 오랜 지론이 반영됐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현지 성직자들 사이에선 발언의 배경이 무엇이냐와 관계 없이 전 세계 교계 사회에서 시민결합을 둘러싼 치열한 찬반 논쟁이 이미 시작됐으며 이는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데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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