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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관점에서 ‘수제자 베드로’에 의문 제기
신간 『예수의 후계자들』…신앙의 입장 벗어나 살펴보면 사도들의 ‘노선 투쟁’ 드러나
기사입력: 2020/11/20 [15:10]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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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예수의 후계자들』…신앙의 입장 벗어나 살펴보면 사도들의 노선 투쟁드러나 

 

오늘날 거의 모든 기독교 신자는 베드로를 예수의 수제자로 여기고, 특히 가톨릭에선 최고 지도자인 교황이 베드로의 후계자를 자처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너는 베드로이다. (예수)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는 구절이다.

 

하지만 신간 예수의 후계자들(정기문 군산대 사학과 교수/도서출판 길)은 예수 사후(死後) 그의 신앙을 가장 잘 계승한 사도가 베드로라는, 진실에 물음을 제기한다.

 

예수의 후계자들의 저자 정기문 교수는 “20세기에 초기 기독교 문헌이 여럿 발굴되면서 정통 교회에 의해 폭압적으로 잊힌 목소리가 드러나게 됐다. 하지만 한국 신학자들은 대부분 연구를 안한다. 가치 없는 이단 문서라고 그냥 보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원시 기독교 역사를 들여다봄으로써 예수의 원래 가르침에 더욱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잡혀가기 전에 만찬 정경을 그린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는 예수의 말에 제자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인다. 베드로(그림 중앙 예수의 왼편 두 번째)는 요한(예수 왼편)에게 누가 배신자인지 물어보려는 듯 일어서고 있다. 가리옷 유다(베드로 아래)는 손에 있는 주머니를 통해 범인임을 암시한다. 정기문 교수의 『예수의 후계자들』은 역사학 관점서 예수 사후의 후계권 다툼을 통해 초기 기독교 역사를 다차원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정 교수는 원시 기독교 지도자들이 행했던 검열에 의해 목소리를 잃었던 소수교파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시도라며 신학적 관점이 아닌 역사학의 관점으로 보면 시대 상황 속에서 예수의 행적과 기독교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핵심 주장은 예수 사후 그의 가르침을 계승한 여러 집단이 존재했고, 이들의 주도권 다툼은 예수의 후계자를 누구로 볼 것인가를 두고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어릴 때 열성 신자라 성경을 많이 읽었는데 모순되는 부분이 많았다. 이를테면 베드로가 바울이 있던 안티오키아 교회를 방문해 여러 비()유대 기독교인들과 식사를 하는데, 예루살렘 교회 수장이며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의 제자들이 들어온다.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식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갑자기 자리를 뜨고, 바울은 격분해서 위선자라고 나무란다. 거룩한 사도들이 싸우다니 이해가 안 됐다. 이 사건을 교회에선 신앙의 입장에서만 설명하는데, 각색하지 않고 보면 노선 투쟁이 있었던 것라고 설명했다.

 

정기문 예수의 진짜 가르침 복원하려면 성경 66권에 대한 집착 버려야

 

1945년 이집트 나일강 상류에서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헌은 초기 기독교 역사 연구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꿨다. 이들 문헌은 4세기말 정통 교회 지도자들의 소각 명령에서 살아남은 것들인데, 대부분 후대에 이단으로 분류된 영지주의신앙을 담고 있었다. 특히 토마스 복음서는 예수를 구세주로 믿어 구원받는다는 타력(他力)신앙 대신 스스로 지식(진리)을 찾아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자력(自力) 신앙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문서들의 구성과 저술 시기를 검토해보니, 오늘날 정통 교회 교리가 예수의 가르침에서 직접 유래한 것이 아닌 후대에 ‘2차 가공됐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예수에게서 거대한 강이 흘러나와 그 물줄기가 사도와 주교를 거쳐 정통 교회로 이어지는 일직선적 발전이 아니라, 예수에게서 여러 작은 시냇물이 흘러나왔으며 후대에 정통 교회로 성장하는 원정통교회도 그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원시 기독교에서 최고 권위였지만, 현재는 중요성을 상실한 대표적 인물이 야고보다. 예수의 인간 형제인 야고보가 예수의 신성을 높이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는 데다, 유대인 중심 신앙을 추구한 그의 세력이 기원후 70년대 이후 유대 반란여파로 소멸하면서 점차 위상과 역할이 낮춰졌다는 것이다.

 

의심 많은 제자토마스도 기존 평가와 달리 용감한 제자이고, 예수로부터 쌍둥이 토마스라 불릴 정도로 사랑받았다고 한다. 예수를 팔아넘긴 가리옷 유다는 유다 복음서가 발견되면서 그의 배반이 예수의 수난 완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는 협력자의 측면이 조명됐다.

 

오랫동안 한미한 자로 여겨졌던 인물이 당대에는 매우 중요했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으니, 마리아 막달레나다. 오래전부터 그가 예수의 애인이라거나 심지어 창녀라는 주장이 있어왔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나 영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 이러한 상상을 부추겼으며, 소설 다빈치 코드는 둘이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는 설정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마리아 막달레나는 여성 제자단의 최고 지도자이자, 든든한 재산으로 예수와 제자들을 후원하는 권위자였다고 이 책은 전한다. 예수 부활의 첫 목격자라는 기록에서 그러한 권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후대 기독교 지도자들이 남성 중심 사회의 구조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 속에서 그의 권위를 비열하게깎아내렸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예수가 꿈꾼 하느님 나라는 계급도 없고, 성도 없는, 차별 없는 세상이다. 당시 남녀평등이 오늘날 의미는 아니었겠지만, 여성도 평등하다 가르쳤고 따르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부장주의가 강했던 고대 로마 세계에서 점차 낮아졌던 것이라고 말했다

▲ 정기문 군산대 교수  

 

유대인의 종교에서 세계 종교로 바뀌어가고, 살아남기 위해 로마의 규범을 수용하면서 정통 교회의 가르침이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베드로를 예수의 후계자로 두고, 요한과 바울을 그에 버금가는 동역자로 설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 바깥에선 진척된 연구들인데 국내에선 논의가 쉽지 않은 상황에 대해 정 교수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제도권 교회는 원래 예수의 가르침과 멀다. 고대적 세계관으로 편집한 문서를 현대에 그대로 들이대는 것이다. 예수의 진짜 가르침을 복원하려면 성경 66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외경 등 여러 문서들을 검토해 초기 예수의 말씀이 무엇인지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학의 눈으로 본 예수 사후의 후계권 문제 - 예수의 후계자들

 

기원후 1~2세기 원시 기독교의 역사를 역사학적관점에서 바라보다

 

고대 로마사를 전공한 저자 정기문 교수의 주요 연구 분야는 초기(원시) 기독교의 역사이다. 그의 연구는 역사학전공자답게 기독교 역사를 신학적관점이 아닌 역사학의 관점으로 봄으로써 보다 객관적으로 시대 상황 속에서 어떻게 예수의 행적과 그의 사후(死後) 초기 기독교의 역사가 전개되어 왔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은 예수의 사후에 그의 신앙과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하고 유지, 발전시킨 후계자가 익히 알려져 있듯이 베드로인데, 과연 그것이 진실일까라는 물음을 통해 초기 기독교 역사를 보다 다차원적으로 생각해 볼 여지를 마련해 주고 있다.

 

과연 베드로가 예수의 적통 후계자인가

 

현재 거의 모든 기독교 신자는 베드로를 예수의 수제자이자 후계자로 여기고 있다. 기독교 신자 중에서도 베드로가 예수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특히 강조하는 이들은 가톨릭 신자들이다. 가톨릭의 최고 지도자인 교황이 베드로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로마 교황은 도시 로마 교회의 주교였는데, 1세기 말부터 로마 교회의 주교는 자신이 베드로를 계승하였다고 내세우면서 다른 교회의 기독교 신자들도 그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덧붙여 4세기에 들어서는 로마 교황이 세계 모든 기독교 신자의 최고 지도자라고 주장했으며, 이는 여러 차례에 걸친 종교회의를 거쳐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어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이 제도로서 정착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 근거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예수)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지옥의 문이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들을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 것이다.”

 

이 구절을 보면 분명 예수는 생전에 베드로를 축복하고, 그에게 세계의 교회를 지도할 권리, 그리고 신자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할 권리를 주었다. 따라서 베드로가 예수의 적통 후계자라는 사실은 명확해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자명해 보이는 사실조차도 신약성경의 다른 부분의 구절들을 보면 의심스럽게 하는 몇몇 구절들이 눈에 띤다. 같은 마태오 복음서에서 예수는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구절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취지를 담고 있는데, 여기서 예수는 신자들에 대한 최종적인 권한을 베드로가 아닌 12제자에게 주고 있다. 그밖에도 여러 곳에서 베드로가 예수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있는 자료가 있지만, 맨 처음 인용한 구절의 위력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베드로가 예수의 수제자이자 후계자라는 주장은 크게 도전받지 않고 수용되어 왔다.

  

1945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헌, 초기 기독교 역사 재구성하다  

 

그런데 20세기 중반, 베드로를 예수의 후계자로 설정하고 요한과 바울로를 그의 동역자로 설정하는 인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 주는 자료가 발견되었다.

 

1945년 이집트 나일강 상류 지역인 나그함마디(Nag Hammadi)에서 이른바 나그함마디 문헌이 발견되었는데, 이 문헌은 초기 기독교에 대해 지금까지 수용되었던 여러 생각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600여 년이 지나 이 문헌이 발견된 것은 원시 기독교 지도자들이 행사했던 검열에 의해 그동안 목소리를 잃고 있던 원시 기독교의 소수교파가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목소리의 복원은 곧 그동안 원시 기독교의 역사가 정통 교회가 제공하는 자료들에 근거해서, 그것도 1세기 말부터 정통 교회의 지도자들이 수립했으며 그 이후의 교회사가들이 관성에 젖어 고착시켰던 관점에 근거해 이해되고 연구되어 왔음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정통 교회의 지도자들과 교회사가들은 이단시되었던 영지주의를 비롯해 정통 교회의 교리에 어긋난 것들에 대해 기독교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배제해 왔던 것이다.

 

나그함마디 문헌에 따르면, 영지주의는 정통 기독교에서 갈라져 나간 것이 아니라 기독교 탄생기에 이미 존재했던 하나의 사상 혹은 사유 구조였다. 영지주의를 믿는 신앙인들은 탄생 초기에 신계에 대한 과도한 상상에 집착하지 않았고 영지, 즉 참된 지식을 추구했으며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참된 지식(영지)을 얻음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초기 기독교 역사 시기에 현재의 정통 교회와 다른 신학을 추구하는 기독교 신자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정통 교회에서 이탈하거나 퇴락한 존재가 아니라 정통 교회와 같은 시점에 활동했음을 보여 주었다. 따라서 예수에게서 거대한 강이 흘러나왔고, 그 물줄기가 사도와 주교를 거치면서 정통 교회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에게서 여러 작은 시냇물이 흘러나왔으며, 후대에 정통 교회로 성장할 교회, 즉 원정통 교회는 그 시냇물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1세기 후반에는 여러 갈래의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으며, 영지주의도 그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더불어 독일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후대 정통 교회의 모태가 되는 원정통 교회는 원래 오직 로마에서만 다수파 교회였으며, 2세기에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200년경에 가서야 여러 다른 지역에서 우세를 확보했음을 보여 주었는데, 나그함마디 문헌은 이러한 연구 결과에 신빙성을 더해 준 것이다. 이렇듯 나그함마디 문헌과 독일 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기존의 정통 교회가 내세워 왔던 것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정통 교회에서 배제한 영지주의, 주의 형제 야고보와 마리아 막달레나의 경우

 

그런데 나그함마디 문헌과 독일 학자들의 연구에서 드러난 원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다양성과 원심성이라면 그런 특징은 현실적으로 어떤 쟁점을 중심으로 발현되었을까? 그것은 예수의 후계자가 누구인가라는 문제였다.

 

예수 사후에는 예수의 가르침을 계승한 여러 집단이 존재했고, 그들은 각기 자신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계승한 정통 집단이라고 주장하면서 주도권 다툼을 펼쳤다. 원시 기독교의 탄생기라고 할 수 있는 1세기 중반부터 2세기 중반까지 그 경쟁은 일반적으로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치열하게 진행되었는데, 현재에는 중요성을 상실한 인물이 유력한 경쟁자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주의 형제 야고보였다. 야고보는 신약성경의 묘사를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1세기 기독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인물로, 사도 바울로의 묘사에 따르면,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으로서 원시 기독교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에서 최고의 권위를 행사했다. 성경을 제외한 다른 자료들에서도 그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는데, 1세기 비기독교 자료 가운데 기독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최고의 자료인 요세푸스의 글에서도 그는 원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제시되었다. 주의 형제 야고보는 이렇듯 중요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역사에서 오랫동안 잊혀진 인물이었다. 일반적으로 원시 기독교의 발전을 이야기할 때 두 명의 기둥, 즉 베드로와 바울로가 있었다고 이야기되고,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와 바울로의 행적과 신학을 연구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이렇게 정통 교회에 의해 각색된 관점은 이제 그 생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한미한 자로 여겨졌던 인물이 당대에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더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도 있으니,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의 경우이다. 이 같은 평가 역시 나그함마디 문헌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그것은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가 남성 제자들보다 더 우위에 있었던 인물임을 암시한다는 점이다.

 

1~2세기 원시 기독교의 다양성과 원심성을 가시적으로 입증

 

나그함마디 문헌과 독일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연구는 원시 기독교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원시 기독교를 이해하는 패러다임의 이러한 변경에 있어 역사학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누가 예수의 후계자가 될 것인가를 놓고 벌인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가르침에 익숙한 사람들은 베드로가 예수의 후계자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전반기에 베드로 이외에도 주의 형제 야고보, 사도 요한, 토마스, 마리아 막달레나, 유다, 바울로가, 그리고 각각 그들을 추종하는 집단이 후계권을 차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경쟁했다. 물론 후계권 경쟁은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등의 신학과 연계되어 진행되어 왔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최대한 신학적인 논의는 자제하고 역사학적 관점에서 후계권 경쟁에 초점을 맞추어 각 후보자의 목소리를 복원해 보고자 했다.

 

이 작업은 1~2세기 원시 기독교의 다양성과 원심성을 가시적으로 입증하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원시 기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음이 분명하다.

 

저자 정기문  

1967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하였다. 같은 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대제의 경제 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군산대 사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역사보다 재미있는 것은 없다(신서원, 2000), 역사를 알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아름드리미디어, 2000), 내 딸들을 위한 여성사(푸른역사, 2004), 한국인을 위한 서양사(푸른역사, 2004), 역사란 무엇인가(민음인, 2010), 로마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민음인, 2010), 왜 유다는 예수를 배반했을까(자음과모음, 2010), 왜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박해했을까(자음과모음, 2010), 역사학의 성과와 역사교육의 방향(공저, 책과함께, 2013), 그리스도교의 탄생(도서출판 길, 2016), 역사학자 정기문의 식사(食史)(책과함께, 2017),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위한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책과함께, 2018), 역사를 재미난 이야기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역사책(책과함께, 2018), 14가지 테마로 즐기는 서양사(푸른역사, 2019), 교회가 가르쳐주지 않은 성경의 역사(아카넷, 2020)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공간과 시간의 역사(그레이엄 클라크, 푸른길, 1999/2011), 종말의 역사(공역, 루이스 H. 라팜, 청어람미디어, 1999), 그림으로 보는 세계 고대문명(앤 밀라드, 기린원, 1999), 성인 숭배(피터 브라운, 새물결출판사, 2002), 교양, 다시 읽기(커크 헤리엇, 이마고, 2006), 청소년의 역사(장 클로드 슈미트, 새물결출판사, 2007), 지식의 재발견(커크 헤리엇, 이마고, 2009), 고대 로마인의 생각과 힘(이디스 해밀턴, 까치, 2009/2020), 세계고대문명(앤 밀라드, 루덴스, 2009/2020), 역사, 시민이 묻고 역사가 답하고 저널리스트가 논하다(리처드 에번스, 민음사, 2010), 인문정신의 역사(루돌프 파이퍼, 도서출판 길, 2011), 아우구스티누스(피터 브라운, 새물결출판사, 2012) 등이 있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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