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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와 불교-③ 문화적 혼합주의, 헬레니즘과 불교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1/01/11 [07:59]
헬레니즘 왕국들, 각 지역 토착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다

서양문화와 불교-③ 문화적 혼합주의, 헬레니즘과 불교

헬레니즘 왕국들, 각 지역 토착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다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1/01/11 [07:59]

헬레니즘 왕국들, 각 지역 토착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다

 

알렉산더 대왕의 이집트-페르시아-인도 침공은 종교 사상 문화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른바 싱크리티즘(syncretism)이라고 하는 혼합주의(混合主義)가 생겼다. 싱크리티즘(혼합주의)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거나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다양한 믿음을 충돌 없이 조화롭게 공존케 하고 여러 학파의 사상들을 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혼합주의는 신학과 종교적 신화의 영역에서 근본이 전혀 다른 몇 개의 전통을 하나로 합하고 유추하여 조화시키려 할 때, 흔히 나타난다고 정의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각 도시와 지방의 신과 신화, 신학들을 혼합하여 새로운 강력한 신앙을 만들었다. 이집트 신화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확산되기 이전에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생각해온 신들의 체계를 의미한다. 고대 이집트인의 신앙은 대략 3000년에 걸친 긴 여정에서 여러 번 변화를 거듭해왔다. 일반적으로는 헬리오폴리스(이우누)라는 도시에서 신앙되고 있던 엔네아드(아홉 신의 집단)를 기반으로 말해지는 것이 많다. 엔네아드의 집단 신은 그리스 신화 올림포스 12신과 개념이 비슷하다. 엔네아드 집단 신 가운데 창조신은 아툼이다.

▲ 이집트 헬리오폴리스에 있는 오벨리스크.  

 

▲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있는 이집트 룩소르 오벨리스크.    

 

여기서 잠시 오벨리스크(Obelisk,方尖塔)이야기를 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오벨리스크는 높고 좁으며 4개의 면을 지닌, 점점 가늘어지는 피라미드 모양의 꼭대기를 지닌 기념 건조물이다.

 

고대 방첨탑은 한 덩어리의 암석으로 만들어졌다. 오벨리스크에는 전승을 기념하거나 왕의 위업을 과시하는 문장이나 모양을 새겼는데, 태양 숭배인 태양신 와도 관계가 있다. 현존하는 최대의 것은, 이집트 제18왕조 하트셉수트 파라오의 카르나크 신전에 세운 것으로 높이 30m이다.

 

로마나 파리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서 가져간 것이다. 로마제국시대가 되면서 로마로 옮겨간 오벨리스크는 무려 아홉 개나 된다.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있는 것은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서 옮겨온 것이다.

▲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라’.

 

(Ra)’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이다. 고대 이집트 제5왕조 때부터 주신으로 숭배 받았다. 그는 이집트 낮, 정오의 태양신으로, 아침에는 케프리, 저녁에는 아툼이라고 불리었다. 벽화에서 라는 매의 머리로 코브라가 태양을 둘러싼 모양의 왕관을 쓰고 있다. 주요 숭배 도시는 태양의 도시라 불린 헬리오폴리스다. 태양신은 파라오를 보호하고 왕권을 상징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라에 대한 숭배의식은 더 강력해졌다.

 

알렉산더 대왕은 인도 침공을 하기 전에 발칸반도를 시작으로 페르시아 세력 아래 있던 소아시아(터키), 시리아(이스라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박트리아를 점령한 다음, 인도 공략에 나섰다.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그리스) 출신이기 때문에 헬레니즘 문화에서 성장했다. 페르시아 세력권에 있던 시리아나 이집트를 점령하면서 이들 고유의 문화와 사상을 접했다.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하고 박트리아에 이르는 동안 이미 싱크리티즘(syncretism)이라고 하는 혼합주의(混合主義)가 태동할 수밖에 없었다.

▲ 알렉산더 대왕이 다리우스 황제와의 전투 장면.  

  

알렉산더는 이집트를 점령하고 메소포타미아를 거쳐서 박트리아에 이르게 된다. 박트리아(Bactriana)는 중국에서는 대하(大夏)라고 불렀다. 대하는 힌두쿠시 산맥과 아무다리야 강(옥서스)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불교가 왕성했던 고대 간다라 지방과 마주하고 있다. 박트리아 언어는 박트리아어로서 고대 이란어 계열로 인도-이란어파와 인도-유럽어족 계통이다. 박트리아인들은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타지키스탄에 거주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선조들의 일파다. 박트리아는 아프가니스탄의 북쪽으로, 근래에는 중앙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지칭하는데 쓰이기도 하는데, 기후가 적합한 산지로 물산이 풍부하고 물이 많고 땅은 비옥하다.  

 

학자들은 박트리아는 인도-이란인들의 초기 거주지였다고 한다. 기원전 2500-2000년경 그들은 남서쪽으로 이동하여 이란과 인도로 들어왔으며 후에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제국의 북부 지역이 되었다. 산지 국가의 비옥한 토양이 투란 사막으로 둘러싸인 이 영역에서 조로아스터교(자라투스트라)가 성장하였다. 아베스타어는 조로아스터교의 최고 오래된 부분의 언어로 산스크리트어와 연관된 고대 이란어이다. 오늘날 학자들은 아베스타어와 산스크리트어는 매우 가까운 사촌 언어라고 믿는다. 그 이유는 두 언어 모두 인도-이란어파이기 때문이다.

 

박트리아는 기원전 600년 무렵에는 메디아(고대 이란인의 국가)의 일부 지역이었는데 기원전 6세기 중반 키루스 대왕에 의해 병합되었다. 그 후 페르시아 제국의 총독령이 되었다.

▲ 페르시아(이란)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케메네스 제국 키루스 2세 보졸그(재위: BC 550년~BC 530년).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3세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패하자 박트리아의 총독 베수스는 민족적 저항을 조직하려고 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소그디아나와 이란에 그리스 국가들을 건국했다. 다시 옥수스 강 너머로 향하던 그는 강력한 저항을 만났다. 2년간 마케도니아 제국에 병합하였지만 백성들을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마케도니아 제국은 결국 분열되었고, 박트리아는 셀레우코스 제국이 되었다.

▲ 바빌로니아에 잡혀 있던 유대인을 해방하는 키루스 2세.

 

키루스는 기원전 554년 메디아와의 전쟁을 시작, 메디아 제국을 정복하였다. 키루스는 메디아에서 페르시아로 나라 이름을 바꾸고 아케메네스 제국이 시작된 셈이다. 기원전 539년 키루스의 군대는 신바빌로니아를 침략했다. 이 원정은 별다른 저항 없이 고대 세계최대의 도시이자 바빌로니아의 수도인 바빌론의 함락으로 끝났다. 신바빌로니아는 키루스에게 정복당하기 전 바빌로니아를 비롯하여 팔레스타인의 유다 왕국과 시리아 왕국 등 많은 왕국들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키루스의 수중에 떨어졌다. 이때부터 키루스 2세는 자신을 바빌론의 왕,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세계의 사면의 왕으로 칭했다. 키루스 2세는 그의 특유의 관용정책으로 바빌론에 잡혀와 있던 유대인을 해방시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고 유대인의 신성한 예루살렘 성전을 짓도록 허락했다.

 

이런 대 제국을 건설한 키루스였지만, 몇 세기 후에는 다리우스 3(기원전 380~기원전 330)가 지배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아케메네스 왕조는 막을 내렸다. 다리우스는 마지막 왕으로 기원전 336년부터 기원전 330년까지 재위했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으로 폐위되었고 페르시아 제국은 멸망하고야 말았으며, 큰 딸은 나중에 알렉산더 대왕의 왕비가 되었고, 둘째 딸은 알렉산더의 친구인 헤파이스티온의 아내가 되었다.

 

박트리아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그리스- 박트리아 왕국인 셀레우코스 제국이 되었다.

▲ 셀레우코스 제국의 판도(기원전 312년~기원전 63년 ) 


그렇다면 헬레니즘이란 무엇인가? 헬레니즘 문명은 기원전 323년에서 146년 사이의 고대 세계에서 그리스의 영향력이 절정에 달한 시대를 일컫는다. 헬레니즘은 그리스 고전기 이후의 시대로, 이후 로마가 그리스의 정복지를 지배하게 되면서 로마 시대로 넘어간다. 그러나 로마 시대에도 그리스 문화, 예술, 문학은 로마 사회에 계승되어, 로마의 지도층은 라틴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어를 구사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여 마케도니아 왕국은 서남아시아에서 고대 이집트에 이르는 대제국으로 발전했다. 그리스 문화와 언어가 그리스인 지배자들과 함께 새 제국 전역에 널리 퍼졌으며, 반대로 헬레니즘 왕국들은 각 지역 토착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어 필요나 편의에 따라 지역 관습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서 시작된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제국 시대에 각 지역의 다른 종교들이 서로 결합되었다. 기원후 1세기부터 3세기까지 융성하였던 나스티시즘(영지주의)은 고대의 대표적인 혼합주의 종교 운동 중 하나이다. 3세기에 페르시아의 마니는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불교의 요소를 혼합하여 나스티시즘의 일파인 마니교를 창시하였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스님이 동로마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앞에 서 있다. 390년 이집트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에 기원전 1490년 세워졌던 것을 테오도시우스(재위: 347년~395년) 황제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에 운반해 와 세웠다. 현재는 터키 이스탄불 술탄아흐메트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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