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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와 불교-⑦ 아소카 대왕의 국제관계와 불교전도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1/02/08 [08:30]
아소카 대왕 그리스 식민국가와 헬레니즘 국가에 대사 파견, 불교사상 전파

서양문화와 불교-⑦ 아소카 대왕의 국제관계와 불교전도

아소카 대왕 그리스 식민국가와 헬레니즘 국가에 대사 파견, 불교사상 전파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1/02/08 [08:30]

아소카 대왕 그리스 식민국가와 헬레니즘 국가에 대사 파견, 불교사상 전파  

 

아소카 대왕은 인도 대륙을 통일하고 행정체제를 정비했다. 아소카 대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담마(진리)를 인도 아 대륙은 물론 인도 밖의 여러 나라에 까지 전파하기를 원했다. 전쟁에 의한 비참한 살상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참회하고 불교로 개종하여 오직 불교만을 자신의 종교 내지 국가의 종교로 채택했다. 마우리아왕조 이전의 난다 왕조(기원전 345~기원전 321)는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 세 종교를 후원했다. 난다왕조는 마가다 왕국의 마지막 왕조로서 수드라 출신의 왕조이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전 십육대국 국가들을 정복하여 사실상 십육대국 시대를 종식하였다. 난다왕조는 짧은 왕조였지만, 종교적으로는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를 이어 받았고, 아지비카교까지도 후원했다. 난다왕조는 어느 한 종파를 전적으로 추종하는 일은 없었다.

 

아지비카 교단은 부처시대에 불교, 자이나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유력하였던 나형탁발교단(裸形托鉢敎團)의 종교였다. 교단의 주도자는 불교에서 지목한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마칼리 고살라였다. 한역 불전에서는 사명외도(邪命外道)라고 번역되고 있다. 전적(典籍)은 현존하지 않고 불전이나 자이나교전 안에 인용된 단편에서 그의 설교나 활동의 일부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인간의 의지에 의한 행위를 부정한 고살라의 철저한 숙명론은 부처에 의해서 엄격하게 비판되었다. 엄격한 수행을 행하는 점에서 아지비카 교도는 자이나 교도와 공통점이 있다. 마우리아 왕조시대까지는 상당히 유력하였으나, 그 후 점차로 자이나교 안에 흡수되었다. 남인도의 타밀인 사이에서는 적어도 13세기에 이르기까지 번성했다.

 

고살라는, 생물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영혼·(((((((() ·() ·() ·() 12가지를 생각하였다. 영혼은 물질과 같이 취급되어 모든 원소뿐만 아니라 동물·식물 등에도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일체의 생물이 윤회(輪廻) 속에서 흘러가고 있는 것은 무인무연(無因無緣)이고, 그것들이 청정(淸淨)해지고 해탈(解脫)하는 것도 역시 무인무연이다. 그것들에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없고 운명·상황·본성에 지배되어 무한히 긴 시간을 어리석은 자나 어진 자가 함께 유전하다가 고통의 종말에 이른다. 그 동안에는 수행에 의해 해탈할 수도 없다. 고살라는 이상과 같은 결정론을 주장하면서 브라만교의 권위를 부정하였다.

 

알렉산더 군대가 인도 서북단에서 이들 나형 수도자들과 접촉하였고, 이들은 이스라엘까지 여행하였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난다왕조가 마우리아 왕조에 의해서 격파되고 인도 아 대륙이 통일된 다음에 불교가 인도의 주류 종교가 되었으며, 지중해까지 붓다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전도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

▲ 인도 카르나타카 주 카나가나할리에 있는 금속판에 새겨진 아소카 대왕.(기원후1〜3세기).  

 

아소카 대왕은 스스로 우파사카(Upāsaka)라고 칭했다. 우파사카는 남성명사이며, 우파시카(Upāsikā)는 여성명사이다. 우파사카는 산스크리트어나 빨리어에서 수행원(隨行員)’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불교에서는 재가의 대중으로서 승려가 아닌 거사(居士), 신사(信士), 선남신녀(善男信女)의 의미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불교의 남녀신도를 남자의 경우에는 우파사카(우바새), 여자의 경우에는 우파시카(우바이)라고 부른다

 

아소카대왕은 스스로 우파사카로서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부처님을 석가모니( Shakya-Muni 석가족 성자)라고 불렀다. 이러한 기록은 아소카 칙령(The Minor Rock Edict I)에 언급되어 있다.

 

아소카 대왕은 인도 아 대륙의 인민들만이 아닌 인도 밖의 사람들에게도 불교를 전파하고자 했다. 아소카 대왕은 많은 두타(dütas)들을 파견했다. 두타는 사절(使節), 특사(特使), 대사(大使)의 뜻을 갖고 있으며 불교에서는 불법전파의 전도승(傳道僧)을 뜻한다. 아소카 대왕은 편지나 구두상(口頭上)의 전령(傳令)을 갖고 여러 방면으로 갖는데, 이들은 그리스 식민지 국가는 물론 지중해의 그리스 본토까지 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아소카 바위칙령13> 비문에 새겨져 있다.  

 

아소카 대왕은 두타(특사)들을 보낸 결과, 그리스 통치자들로부터 답신 편지를 받았으며, 인도에는 헬레니즘 국가 왕들의 대사가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기원전 309기원전 246) 왕이 아소카 궁정에 대사로 보냈던 디오니시오스(Dionysius)는 인도 아소카 대왕의 전령을 보고하고 있다.

▲ 인도 아소카 궁정에 대사를 파견했던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의 두상, 아르시노에 2세와 함께 금화에 새겨져 있다.  

 

인도의 아소카대왕과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사이의 국제교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일은 키레네학파(리비아)의 철학자들이 인도의 불교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점이다.

▲ 키레네 학파의 창시자 헤게시아스가 살았던 오늘날 리비아 북서쪽의 키레네 폐허.  


키레네의 헤게시아스(기원전 290년대)는 키레네학파의 철학자이다. 학통을 따진다면 소크라테스의 손자 급이다. 그는 에우다이모니아(행복)’란 얻을 수 없는 것이며, 인생의 목표는 고통과 슬픔을 피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와 가난, 자유, 굴종 같은 전통적 가치들은 모두 하찮은 것들이며 고통보다 나은 그 이상의 쾌락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보았다. 완전한 행복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고 했으며, 육신은 많은 감각들로 가득 차 있고, 정신은 육신과 조화를 이루기에, 육신에 문제가 생기면, 정신도 문제가 생기게 되며, 또한 운적인 요소도 우리가 기대 속에 소중히 여기는 많은 것들을 막아서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서양의 불교학자들은 불교사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다.

 

마하왕사(大史)라는 스리랑카의 사서에 따르면, 그리스출신 불교승려인 다르마락시타(Dharmarakṣita)는 아소카 대왕의 불교 전도승으로서 매우 활발하게 불교를 그리스 식민지 국가와 지중해에 전파하는데 맹활약을 했다. 아소카 전도 이후 불교는 처음엔 인도북부 지역인 그레코-박트리아 왕국(기원전256기원전125)에 다음엔 인도-그리스왕국(기원전180기원후10)에 차례로 불교가 전파됐다. 물론 알렉산더 사후, 그의 후계 나라에도 불교가 전해졌지만 이것은 미미한 수준이었고, 아소카대왕에 의해서 불교는 그리스 식민지 국가와 그리스 본토 헬레니즘 국가들에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이다.

▲ 그리스 헬레니즘계 왕조인 인도-그리스 왕국의 메난드로스 1세 소테르(밀린다 왕 재위: 기원전 165〜155년) 시대의 그리스-인도 불교 스투파 사원의 추측 복원도.

 

서양불교학자들은 아소카 전도승 파견 이전에 이미 마우리아 왕조인 찬드라굽타 궁정에 헬레니즘 국가에서 대사를 인도에 파견했음을 상기하고 있다. 메가스테네스(Megasthenes 기원전350기원전290)는 기원전 302년 경, 알렉산더 후계자 가운데 한명인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 왕에 의하여 인도 마우리아 왕조에 파견한 대사였고, 이 때는 인도에 대한 지식이 그리스식민지와 헬레니즘 국가에 상당히 알려졌다고 보고 있다  

보검<세계불교네트 코리아 대표

▲ 아시아불교평화회의(ABCP) 제13차 이사회의가 줌 화상으로 1월 14일 진행됐다. 아시아불교평화회의는 1970년 몽골에서 창립된 세계불교기구이다. 한국 측 회장 보검스님이 참가했다.(오른 쪽 상단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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