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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도산서원 풍수적 고찰
강당을 혈 자리, 좌청룡‧ 우백호 역할 동재‧서재를 좌우 배치 양택풍수 서원
기사입력: 2021/02/19 [08:40]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장정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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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을 혈 자리, 좌청룡우백호 역할 동재서재를 좌우 배치 양택풍수 서원

조선 명종 16년 유생들 교육 도산 서당에서 영남 유림의 총 본산으로

 

도산서원은 한국 서원 중에서 학문 및 학파의 전형을 이룬 대표적 서원으로 한국 서원의 역사에서 학술,정치, 사회적 영향력 면에서 상징적이다. 원래 해동 주자라 일컫는 퇴계 이황 선생(1501-1570)은 안동 출신으로 중국에서 전래한 성리학을 한국에 정착 시키고 제계화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조선 명종 16(1561)에 도산 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으로 퇴계 선생의 사후 선조 7(1574)에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림이 상덕사란 사묘를 지어 선생을 향사하였고 전교당과 동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하였으며 선조 8(1575)에 한석봉의 친필인 도산서원의 현판을 사액 받음으로써 영남 유림의 총 본산이자 한국 유교 문화를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다. 현재도 강학 공간 전면에 도산서당이 있다. 토론을 중심으로 한 독특한 형태의 강학활동이 존재했다.

 

입지- 도산을 주산으로 마치 꽃봉오리 중앙에 있는 형국

 

도산서원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도산을 주산으로 마치 꽃봉오리 중앙에 있는 형국으로 배치되어 있다. , 영지산에서 뻗은 도산을 배신으로 삼고 낙동강을 임수로 하여 서원이 들어섰는데 꽃술의 중심에 있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퇴계 이황이 쓴 도산잡영살펴보면 도산서원이 자리하고 있는 주산인 도산에 대해 풍수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 영지산의 한줄기가 동쪽으로 나와 도산이 되었고, 산은 그리 높지도 크지도 않지만 넓게 트인 곳에 자리 잡아 형세가 아름다우며 또한 점하고 있는 방위도 치우치지 않아서 산봉우리와 메 시내 골짜기 모두가 이 산에서 두 손을 맞잡고 절하며 둥글게 껴안고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국과 파 분석

내외당의 양기 흐름이 좌선수로 자연 순행하는 터이며 패철 8층으로 수구를 보았을 때 파는 미파로 목국의 묘파가 된다. 혈처를 완벽하게 감싸주는 좌청룡과 우백호를 확인할 수 있어 장풍은 잘 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 국세가 좋아 생기를 보호하고 혈장에 붙어오는 외부의 나쁜 기운을 차단할 수는 있으나 지나치게 높아 다소 압혈(壓穴)의느낌이 든다.

 

내룡의 분석

주산인 도산에서 서원으로 흐르는 용맥의 이기(理氣)를 패철 4층으로 감결해보면 간인용(艮寅龍)으로 내려오다가 계축용(癸丑用)으로 최종수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즉 목욕룡으로 오다 관대룡으로 혈 자리에 입수함으로써 생기 충만하지만 좌선수에 묘파인 경우는 제왕룡과 임관룡만이 득수하기 때문에 관대룡이면 득수하지 못한다. 용맥의 박환 상태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으며 비교적 완만한 형태의 산줄기이고 좌우요동치는 용맥의 모습은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용맥의 흐름은 산줄기 방향과 같이 내려오다가 사당으로 1차 입수되어 흐르다. 강당의 혈처로 최종 입수되었다.

 

수의 길흉판단

도산서원의 입지는 향상으로 살펴볼 때 정향을 놓고 아울러 좌선수라면 정향은 목국의 정묘향이므로 향상으로 목국이라고 정한다. 다음에 패철 8층으로 득수와 소수 방위를 측정한다. , 득수방위를 측정해보면 계축 관대수가 들어오고 병오 사수가 들어온다. 소수 방위는 정미 묘수가 된다. 득수는 구빈황천수와 살인황천수가 같이 들어오므로 길과 흉이 같이 나타난다. 소수는 구빈황천수가 되어 길흉을 살펴보면 부귀할 수 있다. 임수로 맞이하는 낙동강은 오성수중에서 목성수 형태로 도산서원을 나무토막처럼 가로로 길게 곧게 뻗는다. 이 경우는 용진(龍眞)하면 귀함이 있으나 부함은 논하기 어렵고 성품이 곧고 강한 자손이 대대로 이어진다는 길수로 알려져 있다.

 

향 분석

도산서원의 입지는 계좌정향으로 좌향을 놓았으나 자연의 흐름이 좌선수이고 양기가 목국의 묘파인 미파로 빠져 나갈때는 정향법은 정왕향인 갑묘향을 놓아야 정법이다. 그러나 당국의 형세상 정향을 놓기 어려우므로 자왕향인 사처봉왕향을 놓아야 한다. , 자좌오향이나 임좌병향인 남향을 놓는다. 이 경우 좌수가 오른쪽으로 흘러 정미방으로 나가니 자왕향이 된다. 의 유유쇠방가거내(惟有衰方可去來;시방으로는 물이나 가도 되고 들어와도 좋다) 합당하고 발부 발기하고 오래 살고 인정이 왕한다.(지리오결 P306)라고 하여 올바른 변국향법이 된다.

 

배치-제향공간과 강학공간을 비대칭으로 설정해 서원 건축의 혁신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이 생전에 도산서당을 연고로 하여 만들어진 서원이다. 전각 형식에 있어서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제향공간과 강학공간을 비대칭으로 설정해 서원 건축의 혁신을 보여준다.

 

낙동강이 흐르는 경사지에 자리한 도산서원은 탁월한 자연경관으로 그 모습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이 남아있다. 도산잡영(陶山雜詠)은 퇴계 선생이 만년에 도산서당에서 지은 시들만 뽑아서 만든 시집인데, 여기서 도산서당을 터 잡기 한 심정과 이유를 밝히고 있다. , “서당을 고쳐 지을 땅을 도산 남쪽에서 얻었다.(改卜書堂得地於陶山南同)고 밝히고 있는데도 산에 서당을 짓게 된 이유는 종전의 계상 서당을 지은 지가 오래되고 곳곳이 낡고 허물어져 새로운 터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도산서당은 퇴계 선생이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쳐서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거처하던 방은 완락재라 하고 마루는 암서헌이라 하였다. 이곳은 양택풍수의 원리인 좌상우하의 배치에 따라 좌측에 도산서당을 배치하고 우측에는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인 농운정사를 자모 양으로 배치하여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도산서당의 좌향은 임좌병향으로 자왕향을 놓았는데 원래 자연 양기의 흐름이 좌선수이고 목국에 미파인 경우는 갑묘향 즉, 동향의 정왕향을 놓아야 하지만 당국의 형세가 정향이 어려워 완락재는 병향을 하고 절우사와 정우당 연못을 동쪽에 배치하여 암서헌은 동쪽을 볼 수 있도록 좌측에 설치하였다.

 

도산서원은 강당인 전교당을 풍수의 혈 자리에 위치하고 좌청룡 우백호 역할을 하는 동재 서재를 좌우에 배치한 양택풍수 서원이다. 전교당의 좌측은 다른 서원들과는 다르게 방이 배치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좌상 자리에 도산서당이 자리하고 있어 좌측을 비워두었다. 도산서원 배치의 전형적인 형태는 전학후묘. 즉 강당을 앞쪽에 배치하고 사당을 뒤쪽에 설치하는 형식의 배치법을 적용하였다.

 

이때 사당인 상덕사의 터는 풍수의 혈맥을 살펴볼 때 잉의 자리에 위치하고 강당인 전교당은 육의 자리, 즉 혈처에 입지 시켰다. 이때 내룡의 흐름은 간인룡에서 계축룡으로 흐르면서 뻗어있다. 즉 동북쪽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져 내리고 있다. 장판각은 서적을 펴내는 목판이나 서책을 보관하는 곳이다. 좌상우하의 배치에 따라 강당 좌측에 위치하고 서원을 지키고 관리하는 원 지기들의 생활공간인 고직사는 장판각의 반대편에 상하로 나뉘어져 배치되어 있다.

 

*좌상우하의 양택풍수의 예제 배치 원리에 따라

도산서원은 좌상우하의 양택풍수의 예제 배치 원리에 따라 좌측의 도산서당을 중심으로 건물의 간잡이를 하였다. 즉 강당을 혈 자리에 자리 잡게 하고 동 서재를 사신사 삼아 좌우에 배치하고 사당과 그 부속 건물인 전사청은 강당 뒤쪽인 풍수의 잉자리에 배치했다.

 

또한, 도산서원 터는 자연의 흐름에서 최적의 양기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때의 올바른 향은 동향이 되어야 하나 당국의 형세상 동향이 어려워 변국향법으로 최적의 향을 선택하면 현재 향인 남향을 놓게 된다. 그러면 배산임수의 형국으로 입지하게 된다.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철학박사. 한국불교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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