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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서양문화와 불교-⑨ 헬레니즘과 불교, 상생과 확장
알렉산더 대왕 인도의 현자들과 대화, 삶과 죽음 물어
기사입력: 2021/02/22 [08:13]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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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더 대왕은 인도원정에서 이른바 벌거벗은 철학자들인 김노소피스타이(사두)들을 만나서 경의를 표한다. 1420년 인물 세밀화.  

 

알렉산더 대왕 인도의 현자들과 대화, 삶과 죽음 물어 

 

불교라는 종교가 고등종교로서 세계화하는데 있어서 헬레니즘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고 본다. 전쟁 중이긴 했지만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를 거쳐서 인도에 당도하는 동안 지중해와 인도는 너무나 가까운 거리가 되었고, 지리공간상의 교섭은 결국 생각의 교환으로 까지 전개된다. 생각과 정보를 나누는 도구는 언어인데, 그리스어는 페르시아어와 산스크리트어를 만나면서 언어 충돌을 일으킨다. 다국어가 공존할 때는 강한 세력의 언어가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가 된다.

 

링구아 프랑카는 서로 다른 모어를 사용하는 화자들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공통어(共通語)로 사용하는 제3의 언어를 말한다. 국가나 단체에서 공식적으로 정한 언어를 뜻하는 공용어와는 다른 개념이다. 링구아 프랑카는 이탈리아어(라틴어)로 프랑크의 언어라는 의미다. 중세 유럽에서 형성된 어휘이지만, 어원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링구아 프랑카는 아랍인들이 유럽인들을 통틀어 프랑크(Frank)라고 칭하던 아랍인들의 표현을 이탈리아로 번역해 온 것이 정착된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링구아 프랑카는 특정 언어를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라, 언어 가교의 기능을 수행하는 언어들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상당 기간 동안 국제 링구아 프랑카의 지위를 독점한 언어는 영어다. 외교, 국제 무역, 지식 분야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프랑스어는 현대까지도 외교 분야에서 상당한 입지를 지닌 유럽의 링구아 프랑카로 라틴어의 시대와 영어 시대의 사이에 있는 기간을 장악한 언어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재위 기간 동안 프랑스의 패권에 힘입어 정치, 문화의 링구아 프랑카로 성장하였고,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의 설립에 힘입어 라틴어 이래 처음으로 성문화된 문법을 가진 언어로 발전, 유럽 학계의 링구아 프랑카로 성장하였다.

 

아랍어는 UN6개 공용어 중 하나로, 국제 정세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어다. 7세기 이슬람교의 형성 이래 지속적으로 영향권을 확장해 온 이슬람 문화권의 공통어로서 국가 공용어이기도하다. 이디쉬어는 많은 유태인들이 사용하는 링구아 프랑카로, 중세에 형성된 혼합어다. 민족 특성상 세계 각지(유럽)에 흩어져 사는 유태 민족의 의사소통을 위해 독일계 아스케나지 유태인들이 인공적으로 만든 언어로, 히브리어와 독일어를 바탕으로 한 각종 로망스어, 슬라브어의 혼합어다. 나우아틀어는 아즈텍 제국과 주변 영역의 링구아 프랑카로,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중미, 남미 지역의 여러 문명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 지중해 그리스 본토에서 인도 국경까지는 헬레니즘 국가로서 헬레니즘 삼국이 정립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된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코이네 그리스어(코이네 헬라어)가 공통어였다. 코이네는 헬레니즘 시대와 고대 로마 시기 사용했던 고대 그리스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대 그리스와 지중해 연안을 정복한 기원전 4세기 무렵 태동하여 고전 시대 지중해 지역 링구아 프랑카였다. 훗날 코이네 그리스어는 4세기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한 로마제국, 비잔티움 제국의 공용어였고, 중세 그리스어와 현대 그리스어의 바탕이 되었다.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침공하고 인도원정을 하면서 문화충격을 받는 것은 사실이고 영토를 확보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 식민지를 만들게 됐다. 이 과정에서 군사적 승리는 두 가지의 뚜렷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국제결혼과 링구아 프랑카(국제어)의 탄생이다. 국제결혼은 그리스인들과 페르시아인들 사이에서 주로 이루어졌는데, 알렉산더는 자신을 포함한 100여명의 자신의 고급 지휘관들과 페르시아 여인들 간의 합동결혼식을 거행했다. 나중에는 그리스-인도계와의 국제결혼도 이루어졌다. 지금도 파키스탄의 탁실라 지방에 가면 그리스-인도(페르시아)계의 후예들을 가끔 목격할 수 있다.  

▲ 알렉산더가 군사작전을 폈던 인도 서북지역. 벌거벗은 철인들은 주로 고대 도시 간다라 탁실라에서 고행수도를 하고 있었다.    

 

헬레니즘 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에서 죽은 기원전 323년으로 비정하고 있는데,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 3세를 무찌르고 페르시아 제국 전체를 정복했다. 정복지는 소아시아, 아시리아, 레반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메디아, 페르시아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일부 지역,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를 망라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새 제국의 후계자를 정할 겨를도 없이 젊은 나이에 죽었다. 내전 상태가 40년간 계속되다가 어느 정도 안정기로 접어들었고, 당시 네 세력이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중부의 안티고노스 왕조. 알렉산드리아 중심의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안티오케이아 중심의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 페르가몬 중심의 아나톨리아 아탈로스 왕조 등이다. 이후 두 왕국이 더 들어서는데, 그리스-박트리아 왕국과 인도-그리스 왕국이다.불교적 관점에서 담론을 하는 무대는 그리스-박트리아와 그리스-인도 왕국이다.

 

헬레니즘 왕국들은 각자의 길을 걸어가다가 대부분 왕조 말기에 이르러 로마에 흡수되기까지 서서히 쇠퇴했다. 로마에 흡수되기 전 까지 이들 간에는 동맹, 정략결혼, 전쟁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나 디아도코이 왕국들의 지배자는 모두 스스로를 그리스인으로 여겼으며, 다른 헬레니즘 국가들도 야만인이 아닌 그리스인나라로 인식했다.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그리스-인도 왕국은 불교가 주류 종교역할을 했고, 그리스인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이미 알렉산더 대왕 시대에 그리스 군대는 인도 접경에서 이상한 철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벌거벗은 철학자들인 김노소피스타이(gymnosophist)들인 사두(sadhu 고행자)들이었다.

 

이들 벌거벗은 고행자들은 6개 그룹으로 나눠볼 수 있다. 힌두교(바라문)에 속하는 어떤 파의 브라만 수행자들은 숲속에서 살면서 머리를 깎고 벌거벗은 채로 과일과 우유만을 마시면서 명상하는 그룹이다.  

▲ 서양출신 비구니 스님들이 모임을 갖고 함께 서 있다.    

 

아지비카(Ājīvika)교는 고타마 싯다르타와 동시대에 활동한 고대 인도의 사문인 마칼리 고살라에 의해 창시된 종교이다. 마우리아 제국의 2대 황제인 빈두사라가 이 종교를 믿을 정도로 높은 교세를 자랑하였지만 점차 비슷한 교리를 지닌 자이나교에 흡수되면서 소멸하였다.

 

이들은 옷을 입지 않았으며, 이들의 도덕윤리는 그리스철학자 피론(Pyrrhon)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피론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정(東征)에 참가하여 인도에 갔을 때, 아지비카 나체 고행수도자를 만나서 비술(秘術금욕·현자의 도()를 배웠다고 한다. 이들은 육체적 쾌락을 피하고 자연의 관상(觀想)을 주로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 회의론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베다 종교의 수행자들은 브라마나범서(梵書)를 공부하는 자들로서 네 가지 베다의 주해서이자 야즈나 의식(儀式)의 정확한 수행 방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는 힌두교 경전인 제의서(祭儀書)를 학습하는 자들이다.

 

그리스 철학자 티로스의 포르피리오스(Porphyry 234~305)3세기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로 많은 저작을 남겼는데, 그가 다룬 주제들은 호메로스 서사시와 같은 서양 고전으로부터 철학, 논리학, 수학의 학문들과 기독교와 미트라교 등의 종교와 채식주의에 이르기까지 광대하고 다양하였다. 그는 베다종교 수행자들은 나체로 우유와 과일만을 먹으면서 고행하는 벌거벗은 철학자들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다음은 자이나교의 고행자들로서 비폭력을 주장하면서 나체로 다니는 고행자들이다. 자이나교는 제24대까지의 스승의 법통을 계승하면서 오늘날까지 인도의 주류 종교가운데 하나로서 명맥을 잇고 있는데, 자이나교는 두 개의 종파가 있다. 디감바라(Digambara 空衣)와 스벳탐바라(Svetambara 白衣)가 그것이다. 디감바라파는 스벳탐바라파에서 기원후 3세기경 갈라졌는데, 지금도 인도에 가면 가끔 거리를 행진하는 이런 공의파(벌거벗은) 승려를 볼 수 있다. 공의파는 옷을 입지 않고 나체로 다니는 고행수도자들이다.

 

나가 사두는 벌거벗은 성자들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무기를 들고 무예를 익히는 힌두교의 일파이다. 이들은 나체로 무기 외에는 아무것도 몸에 지니지 않는다. 이제 여섯 번째 그룹은 슈라마나(沙門)로서 유행승(遊行僧)들이다. 이들은 거의가 벌거벗은 철학자들이다. 불교 승려와 자이나교 사문들이 여기에 속한다.

▲ 티아나의 아폴로니오스 철학자.  

 

또 하나 재미있는 스토리는 신피타고라스주의 철학자인 티아나의 아폴로니오스(기원후15100)가 상 이집트에서 에티오피아 나체 수행자들을 만난 이야기다. 이들은 에티오피아 벌거벗은 철학자들로서 인도에서 온자들로서 아폴로니오스가 이미 인도에서 만난 자들이었고, 이들은 수행단체를 이끌고 있었다고 하며 집이나 움막도 없이 나체로 고행 수도하는 자들이었다고 하며, 그들과 채식을 함께 했다고 한다. 다만 방문자를 위한 쉼터는 있었다고 한다.

 

인도의 고행자들은 헬레니즘 시대가 되면 인도에서 지중해까지 다녔으며, 레반트(시리아 이스라엘)를 경유하여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나 상 이집트인 에티오피아까지 유행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헬레니즘 세계에서 동쪽 변경에는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이 셀레우코스 제국의 뒤를 이어 들어섰다. 기원전 2세기경 그리스-박트리아는 인도 북서부를 정복하여 인도-그리스 왕국을 세워 헬레니즘의 확산을 촉진했다. 인도-그리스 왕국은 유럽과 떨어져 있었지만, 최후의 헬레니즘 국가이다. 1~3세기경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와 인도의 불교문화가 결합하여 간다라 미술이 나타났고, 간다라 미술은 불상 조각 양식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아시아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스님이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상상에 잠겨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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