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상주향교의 역사와 문화, 풍수입지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1/04/03 [10:48]
내룡, 혈장, 주변사격, 수세, 공간구성에 대한 풍수적 해석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상주향교의 역사와 문화, 풍수입지

내룡, 혈장, 주변사격, 수세, 공간구성에 대한 풍수적 해석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21/04/03 [10:48]

 

    

상주향교는 상주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왕산(王山)을 배산(背山)으로 자리하였던 옛 주치로부터 남쪽으로 약 1km에 상거한 남산 구월봉을 등지고 남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자리의 지형적 특징은 주치와 가까운 곳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나고 한적한 곳에 전학후묘(前學後廟) 형태로 건물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지금의 위치는 창건 당시의 자리로 알려지고 있다.

 

세종 8년 창건 설, 尙州鄕校誌 기록엔 고려말 고종 34(1247) 이전으로 추정

 

상주시는 삼한 시대에 고대국가의 하나인 사벌국(沙伐國)이었으며 삼국시대에는 사벌주로 불리었다가 상주로 개칭되었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는 상주목이 되어 경상도 지역의 행정, 사법, 군사의 중심지가 되었다. 상주향교는 경주, 안동향교와 더불어 대설위(大設位) 향교로서 여타 향교와 마찬가지로 조선 초기 일읍 일교의 원칙에 따라 세종 8(1426)에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상주향교지(尙州鄕校誌)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말인 고종 34(1247)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상주향교의 창건연대의 문헌상 기록으로 발견된 것은 없으나 상주향교는 고려 성종6(987) 12목에 향교를 설치할 때 설치된 것으로 보이며 성종11(992)에 경학박사 전보인을 교수로 임명하여 흥학케 하였다고 하며 고려시대 1247년 최자의 보한집에 상주향교 관련 기록이 최초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향교는 주() () 5리에 있으며 선덕 초선(德初)에 판목(判牧) 조치(曺致)가 남루(南樓)를 세우고 홍여방이 기()를 썼다고 하였다 이후 성화(成化)년 간에 목사(牧使) 강구손이 성전 3칸과 루제 5간을 중수하고 홍귀달이 기()를 지었는데 이후 임란 때 병화로 모두 불타 버렸다. 난정후(亂定後) 향교에 대한 계속된 중수가 있었는데, 1618(광해 10) 목사 정호선(丁好善)이 정경세와 더불어 성묘(聖廟). 서무(西廡), 명륜당(明倫堂), 서제(西齊)등을 중수하였고 이준(李埈)이 상량문을 지었다 이후에도 6차례의 중수가 이루어졌다.

 

1832(순조 32) 상주목사 유병주가 쓴 향교명륜당중수에 이르기를 지역의 유력인사 강세륜, 강세규 등이 참여하여 수 개월만에 향교공사가 마무리 되어 대성전과 명륜당, ·서재가 잘 갖추어 졌다. 이때 중수 공사에는 불우(佛宇)를 헐어 중수 재료로 사용했음을 밝혀 놓았다.1841(헌종 7) 동무 전면에 도광신축(道光辛丑)”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남아 있어서 이 시기에 한 차례 중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동무와 서무에 사용된 석재중 일부 석탑재는 향교의 봉우리에 있었던 고려시대 봉두사지(鳳頭寺址)의 석탑재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봉두사의 위치를 찾지 못핬다.

 

해방 이후 1949년에는 남산중학교의 전신인 상주고등공민학교를 건립하면서 대성전과 동서무가 교실로 사용되었으며, 1951년에는 남산중학교를 개교하면서 동서무를 개조하여 교실로 사용하고 대성전을 강당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명륜당이 학교 교무실로 사용되다가 화재로 전소되어 1961년에는 상주 시내에 있던 관아 건물인 누각 1(태평루)를 옮겨와 명륜당으로 사용하였다.

 

1990년에는 태평루를 다시 다른 곳으로 이건하고 1991년부터 2년간에 걸쳐 명륜당 복원공사를 완료하고 동재를 옮겨 세웠다. 이후에도 서재를 복원하는 등 향교시설에 대한 부분적인 보수와 증축 등이 이루어져 왔다.

 

내룡에 대한 풍수적 해석 

 

상주향교의 태조산은 속리산이다. 백두산에서 출발한 백두대간이 한반도의 큰 등뼈를 형성하면서 남으로 달려오다가 태백산 부근에서 낙동정맥을 분맥하고는 그 머리를 서남쪽으로 선달산, 소백산, 도솔봉, 묘적봉 등 수많은 고산을 기봉하면서 힘차게 달려오다가 갑자기 멈추고 큰 산을 하나 기봉하는 데 이산이 속리산이다.

 

속리산에서는 다시 크게 두 갈래의 산맥으로 갈라지는데 하나는 백두대간의 주맥이고 하나는 한남금북정맥이다. 백두대간의 주맥은 상주 서쪽의 구봉산, 봉황산을 기봉하면서 남쪽으로 고개를 돌려 행용하다가 추풍령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서 큰 가지 하나와 작은 가지 하나를 분맥 하게 되는데 크게 분맥 한 지맥은 경북내륙으로 가지를 뻗어 금릉군 개령면의 감문산, 구미시의 비봉산, 상주 동쪽의 갑장산, 병풍산 등을 차례로 기봉하게 된다.

 

작은 가지 하나는 거꾸로 고개를 북쪽으로 돌려 행룡하게 되는데 이 지맥이 상주향교의 주룡이 된다. 추풍령 근처의 국수봉에서 행룡을 시작한 이 용은 상주시 공성면의 큰재, 모서면의 백학산, 외남면의 글방고개까지 500m 내외의 산들을 기봉 하면서 북쪽으로 행룡하다가 다시 고개를 동쪽으로 돌려 상주시 외남면 지사리의 정퇴재에 가서는 두 갈래로 다시 분맥을 하게 되는데 동쪽으로 뻗은 지맥은 상주공업고등학교 뒤에 가서 멈추게 되고 남쪽으로 고개를 돌려 박환한 한 지맥은 이어서 크게 과협을 하면서 주룡에게서의 살기를 털어버리고 200내외의 순룡으로 변질을 하여 삼괴리의 주산을 거쳐 가압동의 학마루까지 행룡하게 된다.

 

이 내룡은 학마루고 개에서 다시 한번 크게 과협을 하고 결인하여 상주시의 남산을 토해내게 되는데 이 남산이 바로 상주향교의 현무봉이 되는 것이다. 84.3의 봉대(烽臺)에서 시작한 남산은 몇 차례 개장 백환 하면서 크게 기복이 없는 행룡을 하다가 상주향교의 뒷산에 가서 다시 한번 결인을 하고는 용의 좌우 선법으로 결지를 하게 된다. 용의 결지 방법에는 크게 결인 속기법과 태식잉육법, 용의 좌우 선법이 있는데 용의 좌우 선법이란 용맥의 끝이 좌측이나 우측으로 돌아 더 생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혈에 응축되는 것을 말하는데 상주향교의 내룡은 상주향교의 좌측에 가서 행룡을 멈추게 되는데 이를 좌선 용법이라 한다. 이때는 물은 우선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상주 향교터의 입수룡은 횡룡입수(橫龍入首). 횡룡입수 혈에는 혈장 반대편 수룡 측면에 귀성(鬼星)이 받쳐주어야 하고 또 그 뒤에는 낙산이 있어야 하는데 상주 향교터는 용이 크게 좌선하면서 하나의 큰 귀성을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현재 상주 기상대가 위치한 곳이 된다. 전체적으로 봐서 상주향교의 내룡은 주맥인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와서 현무봉에 이르기까지 비록 짧은 거리이긴 하지마는 수많은 기봉과 개장을 하면서 생기있게 행룡하여 왔고 혈장 근처에 이르러서는 큰 과협을 두 개나 이루면서 충분하게 탈살을 한 생룡이고 순룡이라고 보인다.

 

혈장에 대한 풍수적 해석

 

상주 향교터의 전체적 구조를 살펴보면 상주 향교터도 다른 향교와 마찬가지로 제향 구역과 강학 구역으로 나누어지는데 강학 구역과 제향 구역은 두 개의 단으로 분리되어있는데 뒤가 높고 앞이 낮다. 높은 곳에는 제향 구역이고 낮은 곳에는 강학 구역이다. 제향 구역은 전체적으로 평평하고 강학 구역도 전체적으로 평평하나 외삼문은 다소 낮은 곳에 있다.

 

상주 향교터의 혈장은 대성전이 자리한 곳이 혈장으로 보인다. 향교터의 뒤를 돌아 입수맥(入首脈)을 확인해 보면 대성전 정 중앙에 입수맥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고 제향 구역과 강학 구역의 높이가 2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혈장을 둘러싸고 있는 양쪽 선익이 제향 구역의 끝부분에서 끝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따라서 내명당은 명륜당이 위치하는 강학 구역이 되는데 명당은 원만하고 평탄해야 보국이 안정되고 진혈을 맺을 수 있는데 앞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명륜당을 포함한 강학 구역 전체가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쳐 짐이 없고 밝고 평탄하여 좋은 명당을 가졌다 할 것이다.

 

그리고 상주 향교터는 혈의 와겸유돌(窩鉗乳突) 사상(四象)중 태양(太陽)인 와혈(窩穴)에 속한다. 와혈은 오목 들어간 부분의 깊고, 낮고, 넓고, 좁음에 따라 심와(深窩), 천와(淺窩), 활와(活窩), 협와(狹窩)로 구분하는데 상주 향교터는 활와에 속한다. 그만큼 혈장이 넓다는 얘기다.

 

상주향교는 대설위 향교로서 모시는 위패가 많으므로 동무, 서무가 다른 향교에 비하여 칸수가 많다. 따라서 혈장이 비교적 넓어야 한다. 또한, 상주 향교터는 장구와(長口窩)에 속한다 와혈의 두 선 익사 이의 간격이 넓어 앞이 터진 형태를 장구와라 하는데 상주 향교터는 동무와 서무 뒤를 흐르는 선익이 넓게 벌려져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상주 향교터는 혈장이 넓어서 양택지로서 아주 적합하다고 할 수 있고 혈장과 내명당이 평탄 원하고 특히 토색이 양명하여 혈장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할 것이다.

 

주변 사격에 대한 풍수적 해석

 

상주는 일설에 의하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이것은 상주 읍지의 주변 산들이 다같이 높고 또 남천과 북천이 읍성을 완벽하게 감아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상주향교가 위치하는 남산이 그 정 중앙에 위치하여 마치 봉황의 알에 해당하는 지형을 이루고 있는 데서 생겨난 형국론(形局論)일듯하다.

 

상주향교의 현무 봉은 상주 남산의 주봉인 신봉인데 금성에의 산이다. 구성(九星) 으로는 춤곡 성의 산인데 상주향교에서 보았을 때 원형의 산 형태를 띠고 있다. 무곡성은 복덕을 가져다주는 기운이 가득하다고 풍수에서는 흔히 얘기하는데 주로 부()를 관장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태음금성(太陰 金星)에 속한다 금성중에서도 낮고 작기 때문이다 흔히 현무 봉은 혈장의 바로 뒤에 있는 산을 얘기하는 데 앞서 내룡의 해석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상주향교는 횡룡입수 혈이다. 따라서 현무봉에서 몇 차례 위 이하면서 낮게 행룡하면서 개장하다가 상주향교 뒤에 와서 한번 결인 하고 이어서 좌선용으로 혈을 결지를 하고 있으므로 향교에서 봤을 때 오른쪽에 현무봉이 있다.

 

그리고 상주향교의 청룡은 본신룡(本身龍)으로 내청룡만 있는데 내룡이 좌선하면서 만들어진 산이 청룡에 해당한다. 청룡은 비록 높지는 않고 별도의 기복이 없이 낮게 흐르고 있기는 하나 향교터의 가까이 붙어있고 향교터를 완벽하게 감아주고 있으므로 바람의 피해로부터 향교를 보호해주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할 것이다.

 

다음은 상주향교의 백호에 해당하는 사격이다. 상주향교는 현무봉을 포함한 남산 전체가 하나의 큰 백호 줄기를 형성하는데 현무봉에서 향교터까지 내룡이 행룡하면서 몇 가닥의 지각을 만들어 내는데 이 지각들이 향교터의 또 다른 백호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상주향교는 여려 겹의 백호를 형성하고 있고 남산 자체는 향교터보다 높다 할 것이나 거기에서 흘러내린 지각들은 혈보다 낮은 높이로 상주향교를 다정하게 감싸주고 있다. 그러나 내백호는 아주 가까이 혈장에 붙어있고 또 혈을 그가 완벽하게 감아주고 있기는 하지마는 다른 백호들의 길이는 짧아 향교터를 완전히 감아주지는 못하고 있는 결점이 있다. 그러나 청룡보다 백호가 훨씬 좋다고 할 수가 있다.

 

다음은 상주향교의 주작이다. 상주향교의 안산은 백호 안()이다. 상주향교의 남산에서 여러 개의 지각이 흘러내리면서 외백호를 형성하는데 그중에서 한 지맥이 길게 뻗어 내리면서 아주 완벽히 평평한 사면을 형성하는데 이 능선이 바로 상주향교의 안산이다. 바로 상산 김씨 시조 묘의 백호에 해당하는 줄기인데 혈 앞에 아주 유정하게 엎드려 있다. 마치 책상에 해당하는 형태와 같이 극히 유순하고 순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리고 상주향교의 조산은 백두대간의 추풍령에서 크게 분맥한 한 가지가 경북내륙을 향하여 행룡하면서 상주 남쪽의 속문산에서 북쪽으로 분맥한 한 지맥이 상주 남천을 따라 북으로 행룡하면서 상주 북천을 만나 행룡을 멈추면서 만들어진 산들이 조산이 되는데 조산은 우면산이 된다. 상주향교의 조산(朝山)에 해당하는 우면산이 참 아름답다. 이산은 남천 건너 상주향교의 정면에 있는데 목성에 해당하는 문필봉이다. 구성으로는 탐랑성에 해당하는데 그 끝이 뾰족한 첨탐랑으로 볼 수 있다. 문필사는 붓 또는 죽순과 같이 뾰족하고 수려하게 생긴 산으로 바르고 맑고 기이한 것이 좋은데 갑장산은 상주향교를 향하여 배반함이 없이 아주 바르게 앉아있는 것이 참 좋다. 우면산은 다소 높기는 하지마는 상주 남천 건너 좀 멀리 있으므로 전혀 고압하는 느낌은 가지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우면산뿐만 아니라 병풍산, 갑장산, 수선산, 기양산들이 다 600m에서 800m의 높은 산들로서 그 이름과 마찬가지로 상주향교를 향하여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므로 보국은 아주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상주향교의 사세는 청룡보다는 백호가 좋고 현무보다는 주작이 양호한 보국을 형성하고 있다 할 것이다.

 

수세에 대한 풍수적 해석

 

상주향교는 앞의 사세에 대한 설명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횡룡입수 혈이다. 따라서 내청룡과 내백호의 길이가 짧기 마련이다. 내청룡과 내 백호의 길이가 짧다는 것은 내당수의 발원지가 멀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당수의 발원지가 길지 않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그 수량은 많지가 않다. 그러나 풍수에서는 적은 물이라도 혈장과 음양 교합하는 물을 귀하게 여긴다고 했는데 비록 상주향교의 내당수는 그 물의 발원이 길지 않고 짧기는 하나 향교터를 완전히 감싸주기 때문에 음량교합은 완벽하다고 볼 수 있다. , 상주향교는 청룡 쪽의 내당수는 극히 미미하다. 왜냐하면, 용의 좌선 용법으로 결지를 하므로 혈장과 청룡이 아주 가깝게 붙어있기 때문에 내당수를 만들어 낼 만한 겨를이 없다. 그러나 백호 쪽의 내당수를 살펴보면 먼저 비록 물의 양은 적지만 상주 향교터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주고 또 청룡 줄기마저 완전히 감아주고 내명당을 빠져나가고 있다.

 

그리고 앞서 사세론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상주향교는 몇 겹의 외백호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들 외백호의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물도 전부 내명당으로 모여 내당수와 함께 내명당을 빠져나가고 있다. 따라서 물의 4길 형세(四吉形勢) 중 교()와 결()에 해당한다. 물의 사길형세인 교(), (), (), ()을 말하는데 교란 청룡 쪽의 물과 백호 쪽의 두물이 혈앞에서 합쳐지는 것을 말하고 쇄란, 수구처가 관쇄(關鎖)된 것을 말하는데 관세란 수구에 한문, 화표, 북신, 나성등의 사격들이 있어 수구를 막아주는 형세를 의미하며 직이란 명당에 들어오거나 나가는 물이 直去 하지 않고 꾸불꾸불하게 나가고 들어오는 형세를 말한다. 다만 형세적으로는 양호하나 그 물의 양이 많지 않은 흠은 어쩔 수 없다 할 것이다. 그러나 상주향교의 외 당수는 좋다. 상주향교의 외당수는 상주의 남천(南川)(일명 병성천屛城川)을 외당수로 볼 수 있는데 상주향교의 내당수는 청룡 줄기를 감아주면서 내명당을 빠져나가 이 남천에 합류하고 있다. 상주의 남천은 중조산에서 부터 상주향교의 주룡을 끌고 온 물이다. 따라서 그만큼 물의 발원도 16의 긴 수원을까지고 있고 그 물의 수량도 그만큼 많을 뿐 아니라 청정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남천은 상주향교의 정면으로 득수를 하여 상주향교가 위치하는 남산을 감아주고 왼쪽으로 거수를 하고 있으며 이어서 남산을 북쪽에서 감아주는 상주의 북천과 합류하여 위 이하면서 흐르다가 낙동강과 크게 합류를 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상주향교를 비롯한 상주읍지는 형세 적으로는 득수국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주변의 사격도 물론 좋지만, 수세가 대단히 좋기 때문이다.

▲ 대성전과 명륜당    

 

공간구성에 대한 풍수적 해석

 

상주 향교터의 전체 가상을 살펴보면 제향 구역은 넓은 직사각형의 가상을 이루고 있는데 동, 서무가 위치한 곳은 넓고 대성전이 위치한 곳은 다소 좁다. 따라서 앞은 넓고 뒤는 좁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강학 구역은 외삼문 쪽에는 좁다가 뒤로 들어갈수록 넓어진다. 따라서 상주 향교터는 전체적으로는 전착 휴관하고 전저후고한 좋은 가상을 이루고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상주향교의 건물배치에 대하여 설명하면 외삼문을 들어서면 먼저 명륜당이 자리하고 있다. 명륜당 뒤에는 동, 서제가 나란히 서 있고 이어서 내삼문이 있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먼저 동서무가 좌우에 나란히 위치하고 하고 제일 뒷면에 대성전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정택, 동택, 변택, 화택 중 이원동택(二院動宅)에 속하는 건물이다 그리고 상주향교는 외삼문과 명륜당, 내삼문, 그리고 대성전이 일직 선상에 놓여있다. 대성전과 명륜당이 같은 좌향을 취하고 있다. 나경을 가지고 좌향을 확인해 보니 자좌오향(子坐 午向)이다. 북쪽에서 남쪽을 향하고 있다. 따라서 동서 사택 중 동사택(東四宅)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대성전과 명륜당이 일직 선상에 놓여있기 때문에 외원의 중앙에 정반정침했을 때 명륜당과 외삼문이 다같이 리방(離方)에 있으며 대성전의 위치는 감방(坎方)에 속한다.

 

그리고 내원인 제향 구역의 중앙에 전반 정친하여 향을 보았을 때도 역시 대성전은 감방에 위치하게 되고 내삼문, 외삼문, 명륜당은 다 같이 리방에 해당한다. 따라서 동무와 동제는 서향이고 서무와 서제는 정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상주향교를 문, , 조의 위치를 구성 길흉 법으로 보았을 때 먼저 대성전은 감방에 있고 외삼문은 리방에 있다. 리방에 대한 감방은 연년궁(延年宮)으로 무곡성이며 금성으로 길한 방위이다. 그리고 외삼문과 명륜당은 다 같은 리방으로 보필성(輔弼星)으로 시세에 따라 영달이 달라지는데 길한 것을 만나면 길하고 흉한 것을 만나면 흉해지는 방위이다.

 

그런데 동택번성관정용정오행(動宅番星貫井用正五行)에 의하면 감방에 대해 이방은 보필로 오행으로는 목성(木星)이고 그 첫 번째 줄에 해당하는 명륜당은 목생화(木生火)가 되어 오귀성(五鬼星)에 속하여 흉한 배치가 된다. 그러나 대성전을 고대방으로 봐야 하므로 전체적으로 상주향교는 이문감주(離門坎主)로서 음양이 정배(正配) 되어 부귀의 판이다. 이름하여 연년의 안방으로 부부 정배이고 수화기제(水火旣濟)의 집이다.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철학박사. 한국불교사 전공)

 

 

 
  • 도배방지 이미지

많이 본 기사
1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