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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누적 사망자 550명 넘어…韓종교계 “민주화 항쟁에 연대”
SNS인플루언서·언론인 18명 체포영장…한국외교부, 미얀마 여행경보 3단계 ‘철수권고’로 상향
기사입력: 2021/04/07 [21:30]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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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인플루언서·언론인 18명 체포영장한국외교부, 미얀마 여행경보 3단계 철수권고로 상향    

 

미얀마 군·(軍警)이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시위대에 발포해서 4명이 또 숨지면서 누적 사망자 수가 550명을 넘어섰다. 미얀마 사태가 악화하면서 한국 외교부는 미얀마 전()지역의 여행경보를 철수권고로 상향했다.

 

44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얀마 나우등 현지 매체들은 3일 군인들이 미얀마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 참가자들에게 총격을 가해 총4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중부 몽유와 지역에서 3명이 숨졌고, 몬주() 타똔에서 1명이 사망했다. 또 중부 바고에서도 1명이 총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연합(AAPP)은 이날 오전 집계 결과 지난 21일 군부 쿠데타 발생 이후 지금까지 모두 550명이 숨졌고 이 가운데 46명이 어린이라고 발표했다. 미얀마 군부는 전날 시민들의 의사소통을 막기 위해 전역에서 와이파이(WI-FI) 등 무선 인터넷 접속을 전면 차단했다. 미얀마 당국은 또 이날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influencer: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과 2명의 언론인을 포함해 모두 18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들은 시위 진압에 나선 군인들의 명령에 불복하도록 선동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죄로 인정되면 최대 3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 4월3일 미얀마 군경에 저항하기 위해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시위대가 공기총을 들고 있다.    

 

미얀마 내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한국 외교부는 43일 미얀마 전지역의 여행경보를 3단계(철수권고)로 상향 조정했다. 외교부는 이 지역으로의 여행을 취소·연기하고, 이미 체류 중인 경우에도 긴요한 용무가 아닌 한 철수할 것을 권고했다.

 

미얀마에 체류하고 있던 한국인들의 귀국 행보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5양곤 등 일부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된 315일 전후로 귀국하는 재외국민 규모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지금까지 411명이 귀국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또 교민들의 귀국을 돕기 위해 46일과 7, 11, 13, 27일에 편성된 임시항공편으로 귀국을 예약한 교민은 5일까지 274명이라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미얀마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파악한 바로는 귀국을 희망하는 교민이 100여명 정도다. 이들은 130~140명이 탑승 가능한 미얀마국제항공(MAI)편을 타고 귀국하게 된다. 현재 미얀마에 체류 중인 교민 3500여명 가운데 대기업 주재원 등이 분포한 만달레이와 네피도는 이미 상당수가 귀국한 상태다. 교민의 90% 이상이 몰려있고 한국 기업 250여곳이 위치한 양곤의 경우에는 생업을 버리고 떠날 수 없는 교민이 많은 상황이라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앞서 외교부는 41일 미얀마에 체류 중인 재외국민은 중요한 업무가 아닌 경우 귀국하고 상황이 상당히 호전될 때까지는 일체 입국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의 여행경보는 남색경보(여행유의)-황색경보(여행자제)-적색경보(철수권고)-흑색경보(여행금지) 4단계로 운영된다. 외교부는 또 미얀마 정세 악화에 따라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대책본부를 구성, 운영하기로 했다  

 

한국 종교계 미얀마 민주화 위한 항쟁에 연대미얀마 종교계는 별다른 움직임 없어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서 민주화 항쟁을 벌이고 있는 미얀마 국민을 향해 국내 종교계도 지지와 연대의 뜻을 보내고 있다. 종교 간의 차이는 물론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넘어 미얀마 군부가 주도하는 진압과정에서의 폭력과 살상을 멈추도록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국내 종교인들의 목소리를 미얀마까지 전달해 아직 미온적인 미얀마 내 종교지도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요청하려는 시도도 이어진다.

 

미얀마는 전체인구 가운데 불교를 믿는 인구가 88%에 달할 정도로 불교문화가 생활 속에 뿌리 박힌 나라다. 상좌부 불교의 전통 속에서 초기불교의 수행법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불자들 역시 미얀마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국 불교계 내에서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특히 높은 것도 그동안 이어진 미얀마에 대한 관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실천불교전국승가회를 시작으로 불교환경연대와 참여불교재가연대 등 11개 불교 시민단체, 이어서 국내 최대 불교종단인 조계종까지 성명을 내고 미얀마 민주화 세력에 연대 및 지지의 뜻을 밝혀왔다.

▲ 3월16일 서울 조계사에서 총무부장 금곡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이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대한불교조계종의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 3명이 41일 서울 한남동 주한 미얀마대사관을 방문해 현지 평화기도를 위한 특별입국을 신청했다. 특별입국 신청자는 조계종 사노위 위원장 지몽 스님, 위원 혜도 스님, 종수 스님 등 3명으로, 기도 장소는 부처님 머리카락이 보존된 성지로 유명한 쉐라곤 파고다이다.

 

특별입국 신청은 사노위 스님들이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사노위는 쿠데타 발생 초기부터 군부의 무자비한 탄압에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회, 미얀마 민주주의 발원 오체투지(五體投地) 등을 진행하며 미얀마 국민을 지지하고 연대해왔다. 그럼에도 미얀마 현지에서는 군부의 무차별 총격이 계속되고, 사상자가 급격히 증가하자 스님들은 더 이상 비극을 지켜만 볼 수 없다며 미얀마 현지 기도를 결정했다.

 

사노위는 특별입국 신청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얀마 탄압의 현장에 직접 들어가 군인들은 악행를 멈추고 미얀마인들에게 고통이 사라지길 발원하는 기도를 올릴 것이라며여건이 된다면 군부쿠데타 반대 시위 현장에서도 온몸이 찢기고 부서지는 그날까지 기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조계종 사노위는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 공포의 현장으로 가서 기도하는 것이 종교인의 도리라 생각하면서 불교국가인 미얀마가 더는 부처님의 정신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며 특별입국을 신청한다고 특별입국 신청취지를 밝혔다.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미얀마 국민을 향한 국내 종교계의 지지는 어느 한 종교에만 국한되지 않고 나오고 있다. 종교지도자들의 모임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역시 미얀마 민중항쟁은 반드시 승리합니다라는 성명을 내고 미얀마의 민중이 반드시 승리하리라 확신하면서도 순수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쏟아내는 피눈물의 극한 현실이 너무나도 아프다민주적 절차에 따른 선거 결과를 무시하는 군부는 군사반란세력이며 미얀마 민중을 통치할 권한이나 군사행동을 할 어떠한 명분도 없다고 밝혔다. KCRP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민족종교협의회 등이 참여하는 연합기구다.

 

국내 종교계 중 가장 먼저 성명을 발표한 단체는 천주교 인권위원회다. 천주교 인권위는 미얀마 군부쿠데타가 벌어진 지 이틀 뒤인 23일 긴급성명을 통해 미얀마 군부는 즉각 쿠데타를 종료하라. 202011월 총선 결과를 존중하고 민간 정부에게 권력을 즉각 이양하라고 촉구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자 국내 교계를 대표하는 염수정 추기경도 미얀마 국내 유학생들을 만나는 한편, 미얀마 양곤대교구장 찰스 마웅 보 추기경에게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어 329일에는 국내 천주교인들을 향해서도 매일 많은 사람이 총격에 희생되고 언론이 통제되고 계엄령 이후 사망자와 부상자들을 확인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현지 상황을 전하며 미사 전·9일 기도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미얀마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움직임은 개신교계에서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교계 단체들이 연합해 진행하는 미얀마 민주주의와 인권 회복을 위한 목요기도회는 목회자와 평신도를 가리지 않고 미얀마를 걱정하는 교인이면 누구나 나와 함께 기도하는 자리다. 41일 서울 용산구 주한 미얀마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기도회에서 대한성공회 교무원장 최준기 신부는 이웃이 힘들 때 함께 비를 맞아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이웃이라며 우리는 미얀마 민중의 아픔과 함께해야 한다고 설교했다.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44일 부활절에 즈음해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대한 국내 개신교인들의 관심과 기도를 당부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NCCK부활절을 맞아 교회는 진실과 평화가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만천하에 드러나는 공의와 사랑의 역사를 만들어가야 하겠다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위해 투쟁하는 미얀마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 종교계가 시민사회단체들과의 연대와 모금 등의 방식으로 미얀마 민주화 항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지원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나 막상 미얀마 현지 종교계에서는 군부를 견제하는 움직임을 포착하기 어렵다.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불교도를 비롯해 여러 다른 종교인들이 한 명의 시민으로서 저항에 참여하는 모습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종교기구나 조직 차원의 대응은 물론 종교지도자들이 시위를 주도하는 모습은 과거에 비해 찾기 어렵다.

 

천주교 우리신학연구소가 지난 317일 온라인을 통해 미얀마 현지 활동가의 목소리를 전달한 긴급토론회에서는 일반 시민과 달리 미얀마 종교계가 미온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알려졌다. 불교 승려가 약 40만명에 달하지만 2007샤프란 혁명을 스님들이 나서서 주도했던 때와는 달리 이번 사태에선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족 탄압사태와 얽혀 미얀마 불교계의 적극적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불교 지도자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군부의 폭력을 줄일 여지가 있음에도 미얀마승려연합회가 쿠데타 발발 한 달이 넘은 38일에서야 소극적인 입장 발표만 했을 뿐이다.

 

미얀마 천주교주교회의 역시 교인들에게 시위에 참여하지 말라고 공지하는 한편, 교계 지도자들이 나서지 않고 있어 교인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미얀마 가톨릭계 지도자 중 만달레이대교구장인 마르코 틴 윈 대주교와 미치나 명예주교 프란시스 다우 탕 주교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현지 사정이 엄중하고 급박하므로 국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청으로 이어졌다. 마웅 존 미얀마 평신도선교교육원장은 토론회에서 주교회의는 공식적으로 시위 참여를 막았지만, 수녀들이 앞장서 시위대를 보호하고 평신도들도 십자가를 들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국제사회가 나서서 민족민주동맹(NLD)이 선거를 통해 승리한 것을 인정하고, 유엔은 립서비스가 아닌 미얀마에 실질적 영향을 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쿠데타는 미얀마 군부의 '비즈니스'

 

미얀마 국민은 327일을 저항의 날이라고 부른다. 미얀마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미얀마를 점령한 일본군에 맞서 무장 저항에 나섰다. 그때 국민적 영웅으로 등장해 일본군에 저항했던 인물이 아웅산 수치 여사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이다. 1962년 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군부는 이날을 미얀마군의 날이라 했다. 하지만 2021년 미얀마는 또다시 닥친 군부 쿠데타로 국군의 날 대신 시민의 피로 얼룩진 저항의 날이 됐다.

▲ 2018년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회의에서 민 아웅 흘라잉 군(軍) 최고사령관(오른쪽)이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위원과 나란히 앉아 있다. 미얀마 군부는 2021년 2월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국군의 날저항의 날로 돌변

 

국군의 날(327) 하루 동안 어린이를 비롯해 미얀마 전역 40개 도시에 걸쳐 군경에 의해 숨진 사람은 114명에 달한다. 군부 쿠데타 이후 가장 많은 일일 사망자를 기록했다. 군부는 이날 새벽부터 실탄과 고무탄 등을 발사하며 시위대 진압에 나섰다. 시위 현장은 피와 비명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현장에서 취재한 한 기자는 양곤 시내 모처에서 열리는 시위에 나갔다. 하지만 미처 시위대 대열이 생기기도 전에 군인들이 총을 쏘아 구호 한번 제대로 외쳐보지도 못하고 비명과 아수라장이 됐다. 맨 앞에 있던 청년이 쓰러지는 걸 보고 도망쳤다고 말했다.

 

희생자 중에는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도 많다. 미얀마의 최대 도시 양곤 메이크틸라에선 군인들이 시위대를 찾겠다며 주택가에서 실탄을 쏴 인근 자택에 있던 13세 소녀 등 민간인 4명이 사망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갑자기 군인들이 쏜 실탄에 사망한 시민도 있다. 그날 사망한 이들의 장례식을 취재했던 또다른 기자는 너무 슬펐다. 어떤 사람은 관도 없이 묻혔다. 갑자기 하루에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 관을 구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15세 이하 아이들의 희생이 많았다. 14명의 아이가 군인들의 실탄에 사망했다고 미얀마 현지언론 미얀마 나우가 보도했다. 쿠데타가 이후 군인들에 의해 사망한 어린이들의 누적 숫자는 30여명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군인들이 아이들을 표적으로 삼는 이유는 가장 약한 아이들을 희생시킴으로써 그 부모들과 이웃들을 공포와 슬픔에 몰아넣어 시위에 동참하지 못하게 하려는 고도의 심리전술이다.

 

통상 이는 전쟁 중 적군의 마을을 공격하며 최소 공격으로 최대 효과를 보는 심리전이다. 미얀마 군부는 국가에 세금을 내는 비무장 국민을 대상으로 군대를 동원한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그렇게 공포를 조성해 시위를 잦아들면 군부가 안정적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국제사회에 미얀마의 정권 주체로 인정받으려는 계산으로 보인다. 미얀마 시민의 피를 보는 한이 있어도 군인들에겐 당장 그 일이 매우 중요하다.

 

미얀마 시민에게는 피의 하루였지만 군부는 국군의 날을 기념해 수도 네피도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했다. 미얀마 군부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흘라잉 사령관은 TV 연설에서 안정을 해치는 폭력적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며 국민을 향해 경고했다. 친군부 매체 국영 MRTV에는 머리와 등에 총을 맞을 수도 있다는 보도까지 나갔다.

 

이날 국군의 날 행사에는 국외 귀빈도 많이 참석했다. 러시아에서는 알렉산드르 포민 국방부 차관이 참여해 미얀마 군부의 전·현직 핵심 인사들과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부의 한 소식통은 러시아 포민 차관은 흘라잉 사령관이 직접 접견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도 여러 외교경로를 통해 이번 미얀마 군부 행사에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 8개국 대표자가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군부의 배경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중국은 본토에서 고위직 관계자를 보내지는 않았다. 국제사회의 눈을 의식한 것 같다.

▲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시민들이 군사쿠데타에 항의하며 민 아웅 흘라잉 군사령관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흘라잉 최고사령관의 쿠데타

 

국군의 날에 흘라잉 사령관이 나비넥타이에 흰색 메달로 장식된 재킷을 입고 화려한 레드카펫을 밟으며 군()인사들과 호화로운 저녁 만찬을 즐기는 모습이 SNS 영상에 올라왔다.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영국단체 버마 캠페인의 마크 파마 너 대표는 이번 쿠데타는 군부 쿠데타라기보다 민 아웅 흘라잉의 쿠데타라는 평을 했다.

 

흘라잉 사령관은 1956년생 64세로 현재 미얀마군 통수권자인 최고사령관이다. 역시 군 출신 대통령인 탄 쉐의 2011년 퇴임 이후부터 사실상 미얀마 실권자이다. 그는 미얀마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은 군인이다. 양곤인문사회대학교 법학부에서 법학사 학위 취득 후 한국의 육군사관학교에 해당되는 국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미얀마는 대통령과 총리 등에게 군 통수권이 없다. 대신 최고사령관이 군대 내 합의로 알아서 추대되며 군부의 일은 외부 간섭없이 군대 내에서 알아서 관리한다.

 

거기에 더해 군부는 미얀마 경제에도 힘을 발휘한다. 그들은 대부분 미얀마 기업들을 소유하고 직접 운영하므로 자금력도 막강하다. 흘라잉 사령관은 미얀마군 소유의 미얀마군인복지법인의 최대 주주이며, 미얀마의 대표적인 대기업 미얀마경제공사와 미얀마경제홀딩스에 대한 지분도 상당하다. 이처럼 자금력과 정치력을 함께 쥔 흘라잉은 이번 쿠데타를 일으킬 배경을 두루 갖춘 셈이다.

 

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미얀마 인사는 미얀마 군인들의 내부 결속은 대단하다. 마치 한 특별한 종족이 모여 있는 듯하다. 군 수뇌부에 대한 충성도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끼리 돈과 권력을 나눠 먹는 구조에 익숙하기에 쿠데타는 또 하나의 비즈니스다. 쉽게 권좌를 내려놓을 집단이 아니다. 흘라잉은 그 힘의 정점에 있다고 보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흘라잉은 2017년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탄압 당시 직접 명령권자로 로힝야족 대량학살의 주역이기도 하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국민의 시위에도 끄떡없이 하루에도 100여명을 사살하는 군부의 모습에서 로힝야족 대량학살의 그림자가 보인다. 총사령관 지위만으로도 부()와 권력을 쥐고 흔들 수도 있는데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NLD가 장악했던 정권을 찬탈함으로써 그의 힘과 특권이 더욱 확대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가 지금 국민의 저항에 밀린다면 기존에 쌓아왔던 부를 잃게 되고 현재까지 벌어진 국민의 희생으로 전쟁범죄에 달하는 책임을 묻게 될 수 있어 그의 선택은 당연히 직진뿐으로 보인다. 327일의 국군의 날 화려한 행사와 사상 최대 인명 피해가 벌어진 배경은 그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보여준다

 

군부 수치의 날

 

국군의 날 행사 때 벌어진 미얀마 시민의 비극을 두고 미얀마 임시정부 역할을 하고 있는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오늘은 군부 수치의 날이라며 군 장성들은 무고한 국민을 300명 넘게 살해해놓고 기념식을 열었다고 비난했다. 국제사회도 미얀마 군부를 비난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 영국 등 12개국 합참의장들은 이날 같은 군인인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미얀마 군경이 비무장 민간인에 살상 무력을 가한 것을 비판한다고 분노했다. 그러나 흘라잉 사령관과 그를 따르는 군부는 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시민의 시위에 더욱 가혹한 진압과 체포를 이어가고 있다. 

 

미얀마 군정의 뿌리에는 스파이양성소 나카노 학교가 있다

1940년대 아웅산에게 군사훈련법 전수버마 독립의용군 지도자로 키워

 

19953월 미얀마에서 열린 군() 창설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이즈미야 다쓰로(泉谷 達郞)는 귀빈석에서 퍼레이드를 지켜보며 자부심을 느꼈을 법하다. 1941년 중국 하이난섬에서 게릴라 지도자로 훈련시킨 청년 30명이 미얀마 독립과 군 창설 주역이 됐기 때문이다. 초대 국방장관을 지낸 아웅산과 국방장관·대통령으로 30년 가까이 집권한 네윈이 ’30인의 동지' 멤버이다.

 

요원 2500명 배출한 스파이학교

 

이즈미야는 일본이 19384월 비밀 정보요원을 양성하기 위해 만든 육군 나카노(中野)학교’(전신은 방첩연구소) 출신이다. 도쿄 나카노구에 위치한 이 학교는 19458월까지 2500여명의 요원을 배출했다. 19449월 문을 연 후 타마타 분교 출신까지 합해서다. 신간 그림자전사들(스티븐 C. 메르카도 지음/박성진·이상호 옮김/섬앤섬)은 이 정보요원들의 활약을 파헤친다. 이들은 만주와 중국, 인도, 동남아, 남태평양, 라틴 아메리카까지 흩어져 정보를 수집하고 현지 독립운동 세력을 지원하며 게릴라 부대 훈련과 지휘까지 맡았다. ‘아라비아의 로런스로 알려진 영국 정보장교 토머스 로런스가 이들의 모델이었다. 간디·네루와 맞먹는 인도 민족지도자 수바스 찬드라 보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와 미얀마의 아웅산·네윈 등 내로라하는 지도자들이 이들의 지원을 받거나 협력했다.  

 

싱가포르·네덜란드령 동인도 점령  

 

일본이 1942년 영국령 싱가포르와 말레이반도를 점령하는 데에는 나카노 출신 정보요원들의 역할이 컸다. 책임자인 후지와라 소좌의 이름을 딴 후지와라기관은 나카노 출신 6명이 핵심이었다. 육군 최고의 선전 전문가인 후지와라는 일본의 침략 전쟁을 동남아와 인도 대륙의 민족들을 서구 압제에서 해방시키는 전쟁으로 묘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방콕에 본부를 둔 인도독립연맹프리탐 싱을 포섭, 대영제국 인도군 병사들을 항복하도록 설득했다. 후지와라기관의 공작 아래 19422월까지 5만 명의 인도 병사가 항복했다.

 

석유 부족은 일본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세계 최대 유전(油田)지대로 꼽히던 네덜란드령 수마트라섬 팔렘방을 장악해야 했다. 호시노 데스지 중위는 나카노 학교에서 인도네시아 공용어인 말레이어를 배웠다. 1942214일 공수부대와 함께 낙하한 호시노는 정유 시설을 지키던 인도네시아군에게 네덜란드군만이 일본군의 적이다. 우리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친구라고 외쳤다. 일본은 네덜란드군이 정유 시설을 폭파할 틈도 주지 않고 시설을 확보했다.

 

전쟁 당시 영국령 버마는 연합국이 장제스(蔣介石) 정부에 물자를 공급하는 통로였다. 책임자인 스즈키 대좌 가명을 딴 미나미기관은 1941년 후반 버마에 무기와 요원을 잠입시키는 게릴라 작전에 착수했다. 나카노 학교를 막 졸업한 야마모토 마사요시 중위 등 5명이 핵심에 있었다. 미나미 기관이 훈련시킨 아웅산은 버마에 잠입, 3만 가까운 병력을 거느린 버마 독립의용군 지도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일본 군부는 버마를 군정(軍政) 아래 뒀다. 분노한 아웅산은 일본에 반기를 들었다. 연합군 공격과 버마인 반란에 직면한 일본은 손들 수밖에 없었다

▲ 버마 독립영웅 아웅산이 독립투쟁에 함께 나선 30인의 동지와 기념촬영했다. 일본 나카노 정보요원들은 1942년 중국 하이난섬에서 아웅산을 비롯한 30인의 동지를 게릴라지도자로 키웠다. /섬앤섬    

  

전후(戰後)그림자전사

 

나카노학교 출신 정보요원들은 패전 이후 일본의 생존에도 기여했다. 이들이 확보한 만주와 시베리아 지형 정보는 점령자인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용한 지렛대로 활용됐다. 194811월 맥아더 사령부는 청진, 원산, 평양 인근 지역에 요원을 투입해 소련군 현황을 정찰했다. 이 팀에 최소 1명의 나카노 출신 베테랑이 포함됐다. 인천상륙작전에도 나카노 학교를 지원한 연구소 출신들이 만든 북한군 위장복과 위장문서가 침투작전 필수 물품으로 사용됐다. 그림자전사들은 정계와 기업, 사회단체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나카노학교 출신 중 가장 유명한 스파이는 19743월 필리핀 루방 섬에서 발견된 일본군 최후의 패잔병 오노다 히로 소위일 것이다. 소총을 움켜쥐고 배낭을 멘 채, 차렷 자세로 옛 상관 앞에 서서 임무 중단 명령을 받는 사진은 단연 눈길을 끌었다. 국민 영웅으로 귀환환 오노다는 전후(戰後) 일본에서 희미해져 가던 애국심과 사명감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나카노학교가 알려진 것은 1966년 개봉한 영화 육군나카노학교덕분이다. 영화 속엔 뛰어난 스파이 1명은 2만명 정규사단 하나와 맞먹는다는 대사가 나온다. 국익을 위해 헌신하는 정보요원의 활약을 그린 이 영화는 고도성장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일본사회에 애국 열풍을 부추겼다. 나카노학교 출신들은 서구 열강을 상대로 동남아시아의 민족해방 전쟁을 수행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의 속셈은 서구 열강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체하려는 것뿐이었다

▲ 1974년 3월 일본군 ‘최후의 패잔병’ 오노다 히로(오른쪽) 소위가 마르코스 당시 필리핀 대통령에게 군도를 건네며 항복하고 있다. 오노다는 나카노학교 후타마타 분교 출신으로 1944년 12월 게릴라전을 펼치기 위해 필리핀에 왔다. /섬앤섬

 

이 책을 읽어보면 일본이 침략전쟁을 펼치면서 전개한 정보전의 규모와 깊이에 놀라게 된다. 나카노학교엔 도쿄대, 와세다대, 게이오대 출신 엘리트들이 모여들었다. 정보 요원을 양성하면서 당시 유행하는 장발에 정장 차림을 허용하고, 절대복종 대신 유연성과 자율성을 요구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래야 합리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훈련받은 정보요원들은 방콕과 사이공, 양곤과 자바섬을 누비면서 군국주의 일본의 이익을 위해 싸웠다.

 

나카노 정보요원들이 이렇게 쌓아 올린 정보와 네트워크로 전후 일본이 인도와 동남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지적도 흥미롭다. 요즘 미얀마로 불리는 버마 군정은 나카노의 유산이고, 일본의 대인도 외교에도 나카노 출신들이 구축한 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 스티븐 메르카도는 전 CIA(미 중앙정보국) 분석가이자 아시아 전문가이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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