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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가고 싶은 길, 가지 말아야 할 길

신민형 | 기사입력 2021/04/25 [21:51]
하늘소풍길 단상

가지 않은 길, 가고 싶은 길, 가지 말아야 할 길

하늘소풍길 단상

신민형 | 입력 : 2021/04/25 [21:51]

  


생태계 복원을 위해
3년 동안 폐쇄했던 광교산 등산로가 마침내 다음 주 개방된다

 

마스크 제껴놓고 거닐고 싶어 슬쩍 침범했었는데 맑은 계곡물 흐르는 길이 맘에 들었다. 나무들이 비바람에 쓰러져 널브러져 있는 것도 좋았다. 1년여 찾아낸 스무개 가까운 광교산 코스 중 앞으로의 단골 코스가 될 것이다. 좋은 등산로 였기에 더욱 잘 보존하기 위해 휴식기를 주었을 게다.

 

만약 나같은 무법자가 없었더라면 개방되는 등산로 운치를 한결 더했을 것이다. 나를 비롯해 생태복원길을 무단출입한 무법자들로 인해 완벽한 복원엔 실패했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오히려 모험심, 개척정신을 자랑하지 않았을까.

 

나 역시 폐쇄 길을 드나들며 친구들과의 카톡 대화방에서 자랑스레 무용담을 전했다. 심지어 외도, 오입 등을 거론하며 은밀한 맛, 짜릿한 맛을 거침없이 늘어놓기도 했다.

▲ 지난 겨울 내가 무용담을 늘어놓았던 폐쇄 등산로 모습.     © 매일종교신문

 

세월 지나 생각해보면 생태복원 산길에 무단출입하듯 아무런 의식없이 행했던 일들이 지금 기준으로선 용납 못할 일들이 많았다. 또 세월 지나면 또 다른 기준이 생겨날 지 모르지만 위험하고 불법적이며 못된 짓들이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은 개척, 도전과 용기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끝이 없다.

 

광교산 하산길 중엔 이정표 없는 길이 여럿 있다. 사람 다닌 흔적이 조금 있는 길이다. 대강 내려갈 지점이 추측된다. 짐작과는 다르게 좀 어긋나기도 하지만 큰 차이가 없고 새롭게 찾아낸 길에 뿌듯해졌다. 다만 두 번 다시 들어설 길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한번 가봤다는 정도로 만족하게 된다.

 

지난주에는 하산 도착점이 좀 의심되어 아직 들어서지 않았던 마지막 남은 하산 길에 도전했다.

 

사람 닿은 흔적도 희미했다. 얼마 지나지 않자 철제 계단이 나타났다. 거의 직각으로 설치된 계단 밑으로 고속도로가 보였다. 내려가다 보면 중간에 산기슭 통로길이 나타나겠거니 하고 과감하게 내려왔다.

 

그러다가 결국 뛰어내린 곳은 고속도로 갓길. 갓길은 의외로 좁았다. 자동차들이 100km 이상의 속도로 지나쳤고 대형트럭이 스쳐지나갈 때는 덮쳐올 것 같은 느낌에 갓길 옆 둔덕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스릴이 넘쳤다. 빠져 나갈 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스릴을 즐겼다.

 

동수원 인터체인지 톨게이트에는 고속순찰대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만난 순찰대원이 고속도로는 위험한 길이라며 친절하게 빠져 나가는 길을 안내해주었다. 그리고 잇따라 나타난 순찰대원은 울그락불그락 달아오른 얼굴로 체포할 듯 화를 냈다. 그제서야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운전자들이 고속순찰대에 마구 신고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서자 아내에게 나의 도전과 용기, 개척정신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아내는 놀란 토끼 눈을 뜨고 한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 겁없고 용기있는 게 아니라 무모한 객기였어요. 고속도로 운전자들이 등산 스틱 집고 허겁지겁 위태로운 갓길 걷는 백발 노인보며 정신나갔거나 노망 들었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많은 운전자들이 구조요청 신고를 했을 것이고 순찰대도 위험해 고속도로에 끼워들 수 없어 가까운 인터체인지에서 기다렸을 거에요

 

나의 행적을 거울로 비춰주듯 하는 아내 말에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음을 그제서야 깨달은 거다.

 

이렇듯 뉘늦게 알아채는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아마도 채 깨닫지 못하고 길 아닌 길을 길이라고 믿는 것 역시 숱하게 많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콜롬버스 신대륙 발견이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편찬과 같은 개척정신과 모험심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오간 광교산 산행서 경험하려 한 것처럼 세상 살아가는 길에서도 정도(正道) 아닌 외도(外道)를 가면서도 자기합리화하며 잘난체, 내 멋대로 살았을 것이라는 섬뜩함이다.

 

광교산의 가지 않은 길, 가고 싶은 길, 가지 말아야 할 길과 아내의 잔소리, 충고를 떠올리며 비약된 생각도 하게 된다.

 

일찌감치 반성하고 배우는 자세로 아내가 제시하는 길을 따랐다면 나의 정신적 성숙과 신체 건강 등 삶의 질은 월등 높아졌을 것이다.

 

정도(正道)와 외도(外道)를 구별하는 아내의 충고와 잔소리는 옛 성현 말씀이나 경전, 고전에서 제시하는 길과 동급이다!

 

* 단상 첨언

콜롬버스 신대륙 발견이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편찬과 같은 개척정신과 모험심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오간 광교산 산행서 경험하려다 낭패를 당했다. 광교산의 가지 않은 길, 가고 싶은 길,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찾아들며 이정표 설치한 정도만큼 좋은 길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기 아닌 무모함으로 마지막으로 남겨놓았던 가지 않은 길로 들어섰다가 고속도로로 뛰어들게 되었다.

 

고속도로 순찰대가 출동하는 해프닝을 겪고서도 아내에게 산행길 무용담을 늘어놓았으니 한심하기 그지 없다. 아마 아내의 잔소리 겸 충고를 들으며 나의 행적을 거울보듯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나의 젊은 개척정신과 용기, 도전을 높이 사는 착각에 빠져있을 듯 싶다.

 

이렇듯 뉘늦게 알아채는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아마도 채 깨닫지 못하고 길 아닌 길을 길이라고 믿는 것 역시 숱하게 많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찌감치 반성하고 배우는 자세로 아내가 제시하는 길을 따랐다면 나의 정신적 성숙과 신체 건강 등 삶의 질은 월등 높아졌을 것이라며 정도(正道)와 외도(外道)를 구별하는 아내의 충고와 잔소리를 옛 성현 말씀이나 경전, 고전에서 제시하는 길과 동급으로 보게 되었다.

 

하늘소풍길 단상의 소재로 떠오른 광교산 정도와 외도로 짧지 않은 산문을 작성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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