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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꽃향기를 음미하며

신민형 | 기사입력 2021/05/11 [00:04]
하늘소풍길 단상

아카시아 꽃향기를 음미하며

하늘소풍길 단상

신민형 | 입력 : 2021/05/11 [00:04]

한 친구가 내게 마지막 날이 주어진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즐거운 시간 나누며 모두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꼭 안아주겠다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카톡으로 전달했다. 늙은이가 무슨 어린 감상에 젖었는가 하면서도 그의 감동이 느껴졌다. ‘가장 평범한 일상이 가장 소중한 것이란 깨달음이 이심전심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몸 아파 움직이지 못하거나 세상 소풍 끝날 때 맑은 공기 마시고, 아름다운 풍경 보며 걸을 수 있다는 것만도 얼마나 큰 은혜이고 감사한 것인가. 그러나 살다보면 그 이상의 욕구와 욕심, 자극적인 즐거움을 갈구하며 그 혜택과 기쁨을 잊게 된다. 인지상정이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이 오히려 도인(道人)이다.

 

오늘은 도를 갈고닦는 일을 시도해봤다. 내게 마지막 날이 주어졌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체온을 느끼며 가장 아름답게 떠 올릴 평범하지만 소중한 순간을 찾아나선 것이다.

 

나는 아카시아 꽃향기를 좋아한다. 수십년 내가 즐겨 다녔던 대모산, 우면산, 수리산, 법화산 산기슭 하얗게 덮인 아카시아 숲을 볼 때면 가슴이 설렜다. 꽃향기가 어떠해서 좋다는 생각없이 그냥 그 향기에 도취되었다. 아카시아 꽃이 지면 계절의 여왕 5월이 갔고 봄이 끝나는 동시에 나의 꽃 잔치도 끝난 듯 아쉬웠다.

 

지난해 이사와 날마다 산책하는 광교산엔 이상하게도 아카시아 나무가 드물다. 등산로 기슭에 하얀 꽃들이 수놓아져 아카시아인가 다가서면 이팝나무였고 기껏해야 키 큰 소나무 아래 기죽어 핀 키 작은 아카시아꽃은 생기와 향기를 잃었다.

 

그래서 광교산행 대신 최근엔 자주 찾지 않던 호수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신대호수, 원천호수를 끼고 도는 산책로엔 아카시아 나무들이 많기 때문이다.

 

10km에 이르는 호수 주변길엔 중간중간 아카시아꽃 군락이 있다. 아카시아 숲 속에선 그 꽃향기가 너무 짙어 코가 마비되지만 이렇게 드문드문 마주치는 아카시아 군락의 꽃향기는 더욱 깊이 다가왔다. 군락을 지나칠 때마다 발걸음을 늦추고 심호흡하며 들이키는 향기의 맛은 천상의 것이었다.

 

그냥 좋다고만 느낀 아카시아 향기의 맛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아카시아 향기는 청결하고 상큼하다. 향수나 분내같은 여인의 향기가 포근하고 감미롭다면 아카시아 향기는 시원하고 청순하다. 솔 내음이 강한 숲 냄새라면 아카시아향은 은은하지만 깊은 숲 냄새이다.

 

오렌지 꽃향기가 어떠한지 모르지만 마스카니의 오페라곡 오렌지꽃 향기는 바람에 흩날리고에서 느끼는 것이 경쾌함이라면 아카시아 꽃향기는 천상의 소년소녀들이 부르는 합창의 맑음과 선명함이 있다. 오렌지꽃 향기는 바람에 흩날리지만 아카시아 꽃향기는 심연으로 스며든다.

 

그냥 좋다며 즐기던 아카시아 향기를 이렇듯 음미하니 더욱 향기가 깊어진다. 음미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진 것 또한 감사하다.

 

호숫가 벤치 탁자에 부드러운 카페라테 올려 놓으니 이렇게 누려도 되는건가 싶게 눈 코 입이 다 호강한다.

 

버킷리스트가 별건가. 생의 마지막 날이 주어질 때 아마도 별난 버킷리스트보다는 일상에서 사랑했던 사람과 아카시아 향기를 떠올리고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며 떠날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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