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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설교명법문/영락교회 이철신 목사:

매일종교신문 | 기사입력 2011/02/14 [11:18]

명설교명법문/영락교회 이철신 목사:

매일종교신문 | 입력 : 2011/02/14 [11:18]

자비로운 용서

고후 2장 5~11절

2011년 2월 7일


성령의 열매 가운데 자비가 있는데, 오늘은 자비에 대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자비의 마음을 가지면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행동을 하게 되고, 가난하거나 병든 사람을 불쌍히 여겨 구제하게 되며,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비로운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는 삶이고, 공동체를 은혜롭게 세우는 삶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도 많은 훌륭한 교회였지만 여러 가지 문제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당파를 만들어 분쟁했습니다. 바울파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그리스도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한 음란하고 비도덕적인 일이 일어나 교회 안으로 번져나갔습니다. 사도바울의 사도성을 부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바울을 불러서 제자로 삼은 것도 아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거나 사역하실 때 도와준 사람도 아닌데 무슨 사도냐며 바울을 따라가지 않았고, 배척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성경은 바울이 그런 일들 때문에 근심하고 슬퍼하였고, 고린도교회 교인들도 근심하고 슬퍼했다고 말합니다.


벌은 증오 아닌 회개를 위한 것


장로교 헌법에는 권징이 있고, 책벌도 있습니다만, 죄를 범한 사람이 공중 앞에서 회개하면 1년 후 사면하여 줍니다. 벌을 주는 것은 회개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범죄 한 사람이 벌도 받고 회개도 했는데 미워하고 비난했습니다. 바울은 잘못을 회개한 사람을 위로하고 사랑하라고 권면하며, 자신도 용서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용서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겠다는 것이지요.

우리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자비와 인자의 예수님이십니다. 은혜의 예수님은 그 신념 가운데 사랑과 자비가 가득 찬 분이십니다. 굶주린 자와 병든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굶주린 자를 먹이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셨습니다. 죄인을 용서하신 것은 최고의 자비의 마음입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가 그런 놀라운 일을 하신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죄인의 괴수인 자기를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기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겠다는 결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나라에서 우리 주님 앞에 설 때에 용서한 자로 칭찬과 상을 받겠다는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말할 수 없는 죄인이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지요. 우리를 그같이 용서하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의 도리입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주겠습니다.” 뒤집어보면 ‘예수님,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도 용서하지 마십시오.’ 이런 말입니다. 우리는 늘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실천해서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10절 중간에서 사도바울은 너희를 위해 용서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교회를 위해 용서한다는 말이지요. 피해를 입은 당사자 바울이 용서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교회는 미움에 사로잡혀 비난하고 잘못을 들춰내어 정죄하는 일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은혜로운 교회가 아닌 것이지요. 피해당사자인 바울이 용서하게 되면 바울을 따라가는 많은 사람들도 용서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공동체 안에서 용서가 지배원리가 될 것입니다. 허물을 사랑으로 감싸는 훈훈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증오와 분열 획책하는 사탄


미국 펜실베니아에는 아미시라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저도 몇 번 가봤는데, 그 분들은 옛날 방식대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옛날 유럽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데도 교적에 있다고 나이가 되면 세례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하다 핍박 받고 미국으로 왔는데, 그 때의 삶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르며, 여자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습니다. 그들은 마치를 타고 다니며, 전기도 안 쓰고, 농사와 목공예나 수공업을 하며 살아갑니다. 가보면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습니다. 시대가 어떤 시댄데 저렇게 불편하게 살아가나 그런 마음이 드는 한편, 신앙을 지키기 위해 단순하고,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산다고 감탄도 하게 됩니다.

아미시 학교에서 총기사고가 났습니다. 구성원 중 한 사람이 여자 아이 10명에게 총을 발사하고 자살한 것입니다. 그 중 다섯 명이 죽고 다섯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범인은 자기 딸이 딸을 낳았는데 얼마 안 돼 죽었습니다. 그때부터 미움과 저주가 가득해 소녀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고 범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범죄가 일어난 거지요. 그런데 그 날 아미시 공동체 대표들이 범인의 집에 가서 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우리도 우리 아이가 죽어서 말할 수 없이 슬프지만 당신네 가족은 가장이 그렇게 됐으니 얼마나 슬프냐고 위로했습니다. 범인의 장례식에도 아미시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전국에서 답사한 성금도 범인의 가족에게 나눠줬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은 범인의 가족들을 초대하여 식사하면서 위로하고 교제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 내가 어떻게 그렇게 했느냐고 물어보니, 우리 주님께서 용서하라고 하셔서 자신들도 용서했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따라 용서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그대로 걸은 것입니다. 이 아미시라는 공동체가 답답하게 보이지만, 그들은 누구네 집 짓는다고 하면 다 같이 도와 짓는 정말 훌륭한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는 은혜로운 공동체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가기로 작정했다고, 그래서 용서한다며, 사탄에게 속지 말라고 말합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사탄의 계책, 사탄의 악한 의도에 속아서 이용당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탄의 계책은 뭘까요. 사람들로 하여금 미워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다투게 하고, 분열하게 하는 것이 사탄의 계략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면 사탄은 견디지 못합니다. 어떻게든 싸우게 해서 서로 미워하게 만들고 흩어지게 만들려고 합니다. 이러한 사탄의 계략에 말려들어 싸우다 소멸된 교회들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야지 사탄의 길을 가서 사탄에게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용서는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흑인들을 핍박하고 억압 하는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다가 27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가 27년 만에 감옥에서 나왔을 때 “당신을 감옥에 넣고 당신을 억압한 사람들에 대해 미워하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까.”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들을 미워하면 그 사람들의 소유가 됩니다. 나는 27년 동안 소유를 당했습니다. 이제 자유롭기 위해 다 털어버리고 용서했습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속박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용서하는 것은 자신이 자유를 얻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웃으면 기분이 나쁘지요. 잘못돼야 기분이 좋지. 미워하는 사람이 잘 되면 밥이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나를 괴롭힌 사람에게 매여 밥도 못 먹고 잠도 못자는 것을 의미합니다. 용서하면 자유를 얻는 것이지요.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만델라는 자신이 자유롭기 위해 용서한 것입니다. 만델라는 화해위원회를 구성하여 죄상을 낱낱이 밝힌 후 다 용서했습니다. 만약 만델라가 처벌하겠다고 했다면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하고 화해함으로 협력하여 나라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가겠습니까, 사탄을 따라 가겠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는 자비의 마음으로 죄인인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의 길을 따라서 자비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하면 자신이 분노와 미움에서 해방되어 자유하게 됩니다. 용서하면 사랑과 은혜의 공동체를 세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자유 한 삶을 사시고, 우리 가정과 교회를 따뜻한 공동체로 세워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정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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