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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

주형식 목사 | 기사입력 2021/08/17 [16:55]
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

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주형식 목사 | 입력 : 2021/08/17 [16:55]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28:16~20)

 

이 사건 전에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있었고, 부활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사명이라고 하면 2819절부터 시작하는데 사실은 19~20절 말씀 전의 배경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16절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28:16) 이 말씀은 마치 출애굽한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한 것처럼 제자들이 산에 도착합니다.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28:17) 새 이스라엘이 최초로 한 일은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한 일입니다. 주님은 통치권을 가진 권세자로 나타나셨기 때문에 제자들이 주님을 보고 경배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17절 후반부가 조금 거슬립니다.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11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대면합니다. 며칠 전 갈바리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목격하였고, 주께서 다시 부활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누구일까요? 도마일까요? 도마는 얼마 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입니다. 교회는 그들로 말미암아 설립될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는 그들의 마음과 자세가 어떻습니까?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왜 이 말씀이 굳이 포함되었을까요? 예수께서는 의심하는 제자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교회를 설립하셨습니다. 완벽한 사람들로 교회를 설립하지 않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내 삶을 올바르게 한 후에 복음을 전하겠다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단은 우리의 삶을 항상 엉망으로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내 삶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제자가 되겠다.” “내 삶을 완벽하게 하고 교회에 다니겠다.” 이것은 성경말씀에 비추어 볼 때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대사명을 완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해해야 할 첫번째 일입니다. 어떤 말씀으로 전해야 할지 잘 모른다면 우리는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말했던 와보라라는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그 말의 힘을 기억해야 합니다. 증거하기 위하여 완벽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의심하면서 사역을 시작하더라도, 사역을 하면서 의심이 사라질 것입니다. 의심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서는 결코 증거할 수 없습니다. 의심이 사라지는 유일한 방법은 말씀을 증거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8:18) 예수께서 지상에서 하신 사역 중 가장 강력한 기별입니다. 이보다 더한 권세를 어디서 찾을까요?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세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권세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내려오실 때 말씀하신 바로 그 권세입니다. 이 사건을 시내산 사건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산 위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1,500년전 있었던 시내산 사건과 기가 막히게 들어맞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에 모으셔서 하나의 국가를 만드셨습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임명하시고 사명을 주셨는데, 그때 이들에게 사명을 주셨던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산 위에서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을 임명하십니다. 주님은 이 때 가장 강력한 권세를 사용하셨습니다. 온 우주의 최고사령관께서 교회를 향한 매우 직접적인 명령을 내리시는 장면입니다. 어찌 이를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종교적 용어로 바꾸면 최고사령관의 이 명령을 거절하는 것은 라고 부릅니다. 교회를 설립하신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거절하는 것은 입니다. 이 명령을 따르기를 거역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죄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를 설립하는 주님의 유일한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28:19)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 구절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라예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권위로 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질문이 필요 없습니다.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약의 교회는 가는 교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을 발견합니다. 시내산에서 설립된 구약교회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우도록 이스라엘로 오게 했습니다. “오라고 하는 것이 구약교회의 모토입니다. 예수께서 신약교회를 설립하신 후 급진적으로 교회의 축을 바꿉니다. “오라는 표현이, 이제는 가라는 표현으로 바뀝니다. 신약적 교회는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가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성육신적 모델이라고 합니다.

 

신약은 성육신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다가오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우리 자신을 성육신해야 합니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만큼 이 일을 잘한 사람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내가 유대인이 된 것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법이 없는 자처럼 된 것은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그랬다고 말합니다. 그런 이유로 신약교회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제사장으로 선택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

 

모든 성도를 그리스도의 사역에 합류하도록 초청합니다. 신약교회는 구약의 선교모델이나 전통을 따르지 않습니다. 제사제도가 더 이상 효력이 없는 것처럼 구약의 선교모델도 더 이상 따르지 않습니다. 신약의 교회는 모든 평신도 교인에게 권능이 부여되었습니다. 목사는 평신도를 대신하는 중보의 역할이 아니라 그들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역할을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20)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사명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다시 말씀드린다면 선교의 목표가 무엇일까요? 선교는 제자삼기, 침례주기, 가르치기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삼중선교입니다. 3가지 일이 성도가 가는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선교입니다. 교회건물로 오라는 선포가 아니라 세상 속에 흩어진 작은 무리들이 제자삼고, 침례주고, 가르치는 것이 온전한 선교입니다. 만약 가르치고 침례는 줬는데 제자를 만들지 못했다면 어떨까요? 제대로 된 선교가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새신자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교인을 만드는 일까지는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제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거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대사명의 최종목표는 가르치고, 침례를 줘서, 제자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예수님의 명령을 충실하게 실천했기 때문에 성장했습니다. 교회가 이런 제자도 없이 건물과 교인수 증가에만 열중했을 때 교회는 힘을 잃었습니다. 현대교회의 비극은 교회가 그동안 제자훈련에 너무 등한시함으로 제자가 아닌 팬을 키워내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각 그리스도인은 제자도의 성숙한 수준까지 자라나야만 하고, 그 결과 다른 제자들을 재생산해야만 한다. 모든 제자들은 또 다른 성장하는 제자들에게 영적 부모가 되어야 하며, 그런 다음에 조부모가 되고, 증조부모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Kent R. Hunter, Foundations for Church Growth, p.85)

 

이같은 의미에서 회심은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활동적이고 참여적이고 봉사하기를 기뻐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로 변화하는 것이다” (Charles Van Engen, God's Missionary People, p. 152)

 

제자란 무엇인가?

 

제자는 헬라어로 마테데스”(부르심을 받은 자), 즉 함께 먹고, 잠을 같이 자며, 교사가 하는 모든 것을 같이 따라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자는 깊은 관계를 의미하는 관계적 용어입니다. 제자되는 것은 제자를 만드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맺은 관계가 내가 어떻게 살도록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맺은 그 관계가 내 삶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런 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제자가 되는 일은 평생의 일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교회의 모든 시스템은 주님의 제자 만드는 시스템이 되어져야 합니다. 과연 제자란 무엇일까요? 몇 가지 정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제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과 조롱을 기꺼이 감수하며 견디는 사람이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10:24,25)

 

예수님이 이런 취급을 받은 것처럼 제자들도 이런 취급을 받을 것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바알세불이라 불림을 받았다면 제자들도 그런 불림을 받는 것을 두려워말라는 말씀입니다. 선생이 조롱받으면 제자도 조롱받는 것입니다. 제자는 선생이 받은 취급을 그대로 받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와 우리의 가정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교회문을 닫으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각자가 제자되는 훈련을 지금 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에게 다가올 핍박과 조롱을 견고하게 견딜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2. 제자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전적으로 충성하는 사람이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14:26,27)

 

예수님이 우리 삶에 우선순위가 되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주님은 내 모든 시간의 주인이십니다. 주님은 또한 내 모든 재물의 주인이십니다. 주님은 내 몸의 주인이십니다. 내 몸에 먹는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 때문입니다. 주님이 내 몸의 주인인데 아무 것이나 먹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100% 온전한 헌신을 요청하십니다.

 

3. 제자는 예수님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이해하고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8:31,32)

 

우리는 다시 한 번 책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알게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성경적으로 점점 문맹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책의 백성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4. 제자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인하여 그들의 삶에 나타난 아가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5)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타적인 사랑으로 서로가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처음 오는 사람들이 교인들을 보고 얼마나 이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을 알려면 그 제자들을 봐라. 그들은 사랑이다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진리의 우산 아래 있다는 핑계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합리화시켜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에 뭐라고 소문이 나야 합니까? 사랑의 공동체로 소문이 나야합니다. 오늘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요한은 십자가에 가장 가까이 간 제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핵심요소를 가장 잘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뭐라 말합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를 사랑하는 자가 거듭난 자라고 말씀합니다.

 

5. 제자는 또 다른 제자들을 만들어 열매를 내는 사람이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15:8)

 

본문의 앞뒤정황을 보면, 이것은 그리스도인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제자는 제자를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제자 만들어서 열매를 맺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죄인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 주님의 제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15:16)

 

열매가 많이 남아있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단순한 팬이 아니라 제자로 남아있는 사람들입니다. 제자는 더 많은 열매를 맺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결코 한 사람 인도하고 만족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가끔씩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열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요청이고, 제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는 것, 우리 교회에 이런 제자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제자도가 핵심가치가 되는 교회

 

우리는 위에서 제자의 정의 5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이것이 잘 실현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일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그분의 전 사역에서 어떤 것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지고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만들어야 할 문화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자삼는 사역은 신약교회의 핵심가치, 즉 모든 성도들이 사역자로서 사역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의 삶에서 최고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사단은 우리가 너무 많은 일에 연관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시간을 낼 수 없게 만듭니다. 이런 저런 일에 너무 바빠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게 합니다.

 

우리는 이제 성경이 가르쳐주는 진리에 따라 우리의 삶을 재구성해야 합니다. 제자도의 핵심은 내 삶에서 예수님을 첫번째에 두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이 제자도 중심의 형태로 만드는 것은 모든 성도들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첫번째로 여기는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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