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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이 손을 붙잡아 주소서

주형식 목사 | 기사입력 2021/09/27 [15:52]
주형식 목사의 성서이해

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이 손을 붙잡아 주소서

주형식 목사의 성서이해

주형식 목사 | 입력 : 2021/09/27 [15:52]

 

천사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천사라고 하면 무슨 생각들을 할까요? 2001, 미국의 한 신문사에서 천사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해가 갈수록 세속화되어 가고 있는 나라이지만 놀랍게도 응답자 중 77%가 천사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리고 다섯명 중 한명은 개인적으로 천사를 만나거나 경험해 보았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천사의 존재를 믿으십니까? 우리는 또한 천사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천사에 대해 아는 것은 중요할까요? 천사라고 하면 무엇이 생각날까요? 귀여운 아기천사 같은 모습이 생각날까요? 성경은 천사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할까요? 성경은 천사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만 총 32번에 걸쳐 천사들의 출현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103:20,21)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성경은 천사는 분명히 실존하며 가상의 존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둘째로 천사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셋째로 예배하는 중에 기쁨을 경험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넷째로 능력이 탁월하고 눈부신 광명의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지구가 창조되기 이전에 하늘에서 큰 전쟁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전쟁은 보좌를 인한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이 전쟁이 시작될 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달과 태양과 별들을 지나고 은하계를 지나서 저 깊은 우주로, 천국이라 불리는 곳으로 가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악마, 또는 마귀라고 불리는 존재를 창조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악한 천사를 창조하지 않으셨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루스벨(루시퍼)이라고 명명된 천사의 기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루스벨은 빛의 운반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이라는 말 럭스운반자라는 말 페로가 합쳐진 말로, “하늘 빛의 운반자라는 아름다운 이름이었습니다.

 

루스벨에 대해서는 에스겔 28:12-14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28:12-14)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왔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하나님께서는 한 완전한 천사 지도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영광스럽게 창조된 이 천사에게 큰 역할이 위임되었지만, 이 천사는 자신이 가지지 않은 권위를 탐했습니다.

 

(14:13,14) “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눈부신 광명의 존재로 그를 창조하셨지만 그는 하나님의 보좌를 넘봤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권위와 법을 거절하였고, 자신이 직접 하나님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 위에 자신의 생각을 두었습니다. 루스벨의 죄는 어떤 규칙을 어긴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거스려 반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떠나 자기의 선택을 하였으며,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권위 위에 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자신이 또 다른 하나님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결국 우주의 보좌를 향한 전쟁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먼저 하늘에서 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죄도 하늘에서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지를 떠나 살 때 죄를 짓습니다. 우리의 의견과 의지를 하나님의 뜻 위에 두게 될 때에 루스벨처럼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반역을 할 가능성이 있도록 루스벨을 창조하셨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루스벨을 처음 창조하실 때 결코 반역할 수 없도록 프로그램하지 않으셨을까요? 만약에 그렇게 하셨다면 지금 세상의 수많은 문제들은 결코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선택의 힘을 빼앗겨 버린다면 여러분은 사랑할 능력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결코 강요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선택되어져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사랑할 능력을 빼앗긴다면 여러분은 행복하게 될 기회를 빼앗기는 것입니다. 행복은 선택에 기초되어 있습니다.

 

여기 컴퓨터에 프로그램된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아이의 머리에서 나사를 빼내고 새로운 칩을 넣습니다. 이 아이는 안녕하세요? 학교에서 말 잘 들을께요라고 말하고 로봇팔로 당신을 껴안고 무쇠입술로 여러분을 뽀뽀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몇 분이나 자녀로 이런 아이를 원하시겠습니까? 지저분한 청바지에 헝클어진 머리로 집안을 뛰어다녀도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아이가 더 자연스러운 내 아이같습니다. 강요 때문에 순종하는 아이는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천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중 하나님의 보좌를 탐낸 한 천사가 하나님께 반역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 반역의 결과를 이야기합니다.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하늘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어떤 천사들은 루스벨에게 미혹당해 그의 편에 가담했습니다.

 

(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사단은 미혹하는 자이기 때문에 뱀으로, 파괴하는 자이기 때문에 용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사단은 하늘천사의 삼분의 일을 꾀었습니다. 성경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이 쫒겨났다고 말합니다. 이 쟁투에서 예수님은 사단을 내어 쫒으셨습니다. 좋은 소식은 예수님께서 사단과 마주칠 때마다 예수님이 승리하시고, 사단은 패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구는 어떻게 이 선과 악의 전쟁에 개입하게 되었을까요?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어떤 사람들은 사단을 뿔과 꼬리가 달리고, 쇠갈퀴를 가진 불을 내뿜는 존재로 상상합니다. 하지만 사단은 원래 찬란하고 빛나는 아름다운 존재였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12: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사단은 하늘로부터 이 지구로 쫓겨 내려왔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내버리기 위한 곳으로 지구를 창조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지구가 완전하게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사단이 아니라 아담에게 지구의 권위가 주어졌습니다. 아담은 지구의 왕자였고, 사단은 기만자로서 동산에 왔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마음을 기만자가 꾀어도 넘어가지 않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을까요?

 

사단은 하나님의 정부가 공의롭지 못하다고 비난하였습니다. 공정하지 못하고, 독재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절대로 미혹당하지 않도록 창조하셨다면, 사단은 자기의 방법이 더 낫기 때문에 하나님이 두려워서 그랬노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단이 동산에 오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중에 오직 한 나무만을 정하시고 아담과 하와에게는 그 나무에 가까이 가지도 말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하지만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그 나무에 가까이 가자 사단은 거기서 그녀를 유혹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3:1)라고 묻습니다. 하와가 대답합니다.

 

(3:2,3) “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에 대한 하나님의 간단한 선택사항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시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나무의 실과를 마음대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것은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충성심과 순종을 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되는 뱀의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사단은 하나님을 반박하여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단은 하와에게 너도 하나님과 같으니 너 좋은 대로 행하라. 너도 너 자신의 하나님이 될 수 있다. 그 나무의 실과를 먹기 원하면 그렇게 해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와의 죄는 금단의 열매를 먹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죄는 훨씬 더 깊은 것입니다. 하와의 죄는 최상의 권위를 가진 하나님을 거절한 것입니다. 하와의 죄는 하나님께 반역하고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 위에 둔 것입니다.

 

사단은 기만자입니다. 그는 기쁨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죄는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죄는 죄책감과 수치심과 두려움을 가져다줍니다. 예수께서는 사단을 모든 거짓의 아비라고 부릅니다.

 

(8:44)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아담과 하와에게 거짓말한 사단은 지금도 우리에게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범죄하기 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왕국의 왕자로서 지구의 통치권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범죄하자 종이 되었습니다. 다른 주인의 종, 죄의 종이 되었고, 그 결과로 죄는 그의 후손인 우리 세대에까지도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부끄러움을 당하고 슬픔에 잠겨 동산을 떠났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한 이 지구상에 타락으로 인한 어떤 결과가 찾아왔을까요? 기쁨, 즐거움, 행복이 슬픔, 고통, 눈물, 실망, 죽음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창조하신 이 세상이 이제 깊은 어둠이 빠져든 것입니다. 지구는 반역의 행성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도대체 하나님, 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라고 외쳐보신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그렇게 좋은 분이라면 세상은 왜 이렇게 힘이 듭니까?”라고 원망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 땅에 슬픔이 있는 이유는 이 지구는 반역의 행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죽음이 있는 이유는 이 행성은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행성은 죄의 결과들을 보여줍니다. 탐욕, 육욕, 이기심, 방종, 죄와 비탄, 슬픔, 죽음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을까요? 반역에 빠진 이 지구를 포기하시고 그냥 떠나버리셨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이 그토록 좋은 분이라면 세상은 왜 이렇게 악한가?”라고 의아해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는 오직 좋은 씨만 뿌렸다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가라지, 즉 악과 슬픔과 비탄이 그 밭에서 싹이 텄다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덧붙이시기를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13:27,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집 주인으로서 좋은 씨를 뿌리셨습니다. 완전한 지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질병과 죄의 아픔 속에 던져졌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후손들에게 전해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 하고 하나님을 포함한 모든 권위를 거스려 반역하려는 욕망입니다. 고통과 죽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반역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이 사단에게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는 18년 동안 병을 앓고 있는 한 여인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자 유대인들이 분노했습니다.

 

(13:16)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여인은 사단에게 매인 바 되어 18년간 병을 앓았습니다. 모든 질병과 죄, 고통과 비탄과 죽음은 루스벨의 타락, 이 지구의 타락에 근원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313절은 우리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이 지구는 어두운 그림자, 죽음의 형벌로 싸여 있습니다. 반역,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다시 찾아올 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분의 계획이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사단에게 네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반면에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3, 메시야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분은 탈출한 길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언제나 우리 죄보다 더 큽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계획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정해진 때가 이르러 메시야는 마리아의 태를 통해 나시어 오실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 지구는 죽음의 형벌 아래 있게 되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형벌을 뒤집으시고 새 생명의 소망을 주십니다. 아담과 하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었으나 그들이 범죄 하였을 때 죽음은 인류에게 계승되었습니다. 그 때에 구세주인 메시야의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이 구세주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그가 저희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정면으로 사단의 유혹에 직면하셨습니다. 아담이 실패한 그곳에서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아담이 굴복한 그곳에서 예수님은 견뎌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들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과 같은 이 잃어버린 세상에 구원의 손길을 뻗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목자에게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 한 마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목자가 어떻게 하였을까요?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섰습니다. 예수께서는 충성된 99개의 세계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의 잃어버린 세상, 반역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공의는 멸망을 요구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반역한 지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반역의 형벌은 죽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았어야 할 완전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사단을 대면하셨습니다.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문제는 한 두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멸망할 지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심은 이 지구를 구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온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이는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하므로 너를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사망의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깨어졌습니다. 이 지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마귀는 여러분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려고 어떤 짓이든 합니다.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는 십자가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그로 인해 영생이 보장되었습니다. 그분은 그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제공하십니다. 이사야 4915절을 주목하십시오.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어미가 그 자식을 잊을지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를 나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고통, 슬픔, 질병, 가난, 전쟁, 사고, 깨진 관계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모른 척 하십니까? 우리에게 관심이 없으십니까?” 예수께서 그런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나는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겪었다. 고통과 슬픔을 겪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가 잘 안단다. 네 이름이 내 손바닥에 새겨져 있단다.” “네가 질병으로 괴로워할 때 내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네가 외로울 때, 그것이 어떤 마음인지 내가 잘 안다.”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고통을 다 이해한다.”

 

그 날은 어둡고 어두운 금요일이었습니다. 그 금요일에 새들은 노래하기를 그쳤습니다. 그 금요일에 꽃들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금요일에 땅에는 지진이 일어났고, 하늘에서는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그 금요일에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그 금요일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아주 어둡고 어두운 그 금요일에 저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에 한 천사가 내려옵니다.

 

(28:2,3,6)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그 형상이 번개 같고...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천사가 말합니다. “두려워 말라. 그가 죽음에서 살아나셨다. 두려워 말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부활하셨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셨다면, 여러분도 질병의 고통, 상실의 아픔, 경제적인 어려움, 슬픔과 상심, 심각한 역경들.....이런 것들로부터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너의 인생을 바꾸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해하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그분의 능력을 부여해 주십니다.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주에 선과 악 사이에 대쟁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전쟁은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의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당신의 인생을 바꾸는 그리스도의 삶에 관한 것입니다. 언젠가 그리스도께서 이 전쟁을 끝내실 것이고, 선과 악의 쟁투는 마쳐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마침내 사단을 멸하시기 위해, 그가 구한 이 지구를 구속하시기 위해 그분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19:11,14,16)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마침내 예수께서 천천만만의 영광중에 빛나는 천사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사단은 패배하고 지구는 새롭게 만들어 집니다. 에덴동산이 다시 지구를 덮고 마침내 전적으로 완전히 사단을 멸망시킬 사건들이 시작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우리는 어느 쪽에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 선택을 하도록 초청하십니다.

 

1930, 토미 도르시라는 음악가가 아내와 함께 시카고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했고, 아내는 만삭이었습니다. 어느날 전보가 날라왔습니다. “토미, 이곳 세인트루이스로 와서 연주를 해주었으면 좋겠소.” 그의 아내는 만삭이어서 언제 아기가 태어날지 몰랐습니다. 고민하는 그에게 아내가 말합니다. “여보, 가세요. 아기가 오늘밤 태어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기를 낳고 키우려면 돈이 필요하니 다녀오세요.” 토미는 기차를 타고 세인트루이스로 가서 연주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연주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아기를 낳다가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차에 오르며 울었습니다. 그날 밤 아내를 혼자 내버려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시카고로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아들도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토미는 심하게 우울증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낙심했습니다. 음악도 포기했습니다. 한 주, 두 주가 지나고 한 달, 두 달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우울하고 낙심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피아노 앞에 문득 앉고 싶어졌습니다. 피아노를 치며 손가는 대로 조금씩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곡이 떠오르고 가사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여 이손을 꼭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몸을 폭풍우 흑암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소리 귀기울 이시사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선과 악 사이,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예수님의 손을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는 혈과 육에 대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들에 대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사단의 힘은 너무나 강합니다. 악한 자의 힘을 우리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저도 제 마음에 약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제가 약할 때 예수님은 강하십니다. 사단이 강할지라도 예수님은 더 강하십니다.

 

우리가 고개 숙여 기도할 때, 우리는 선과 악의 대쟁투 사이에 속해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예수님, 당신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이 전쟁을 싸울 힘이 제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저의 모든 신뢰를 당신의 힘에 맡깁니다라고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제 손을 잡아주십시오. 폭풍이 지날 때까지 저를 안아주십시오. 견딜 수 있는 믿음과 인내를 주십시오라고 말해 보십시오. “예수님,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저의 손을 잡아주십시오라고 예수님께 우리의 손을 전적으로 내밀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겨보시기 바랍니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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