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말씀에 초점을 맞추면...

주형식 목사 | 기사입력 2021/10/18 [10:03]
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말씀에 초점을 맞추면...

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주형식 목사 | 입력 : 2021/10/18 [10:03]

누가복음 19장에는 삭개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얼굴을 보기 위하여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뽕나무 아래로 오셔서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준 것이 감격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기의 집에 와서 자신의 친구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예수님께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4배로 갚겠나이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가 됩니다. 삭개오의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께로만 집중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보잘것없고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려고 하는 한 가련한 사람을 주목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오로지 예수님만을 바라보려는 열망뿐이었습니다. 그런 간절한 열망이 전달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생애를 살아가면서 삭개오와 같은 열망이 있습니까? 매일의 생애에서 삭개오와 같이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삶을 사고 있는지요?

 

(14:8-9)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이 말씀에 나오는 앉은뱅이는 우리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때 태어나면서부터 다리를 쓰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바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바울은 앉은뱅이를 주목하여 보았을까요? 정답은 앉은뱅이가 말씀을 집중하여 들었기 때문입니다.

 

9절에 나오는 듣거늘이라는 말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라고 할 때 그 들음과 같은 단어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지금 당신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라고 하는 집중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루스드라의 앉은뱅이가 바울의 설교를 듣는 모습입니다. 앉은뱅이가 말씀에 집중하여 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고 말씀을 듣습니다. ‘이 말씀을 들어야 내가 살 수 있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집중력을 가지고 말씀을 들었기에 자신이 얼마나 몸이 불편한 사람인지 조차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말씀에 집중하고 있는 앉은뱅이를 주목하여 보았고, 그를 고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앉은뱅이를 주목하였다는 사실은 아주 특별한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바울은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로 왔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더 이상 거기에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피하여서 루스드라로 내려 온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이 한 지역에 오랫동안 머무르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전략적으로 병든 자를 고치고 빠른 시간 내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필요를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울이 전략적으로 루스드라의 앉은뱅이를 찾았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의 앉은뱅이를 주목한 것은 그가 단지 말씀을 잘 들었기 때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비록 바울은 이방지역의 선교라는 거대한 그림과 비전속에 살고 있었지만, 어떠한 형편과 상황 속에서도 그는 말씀에 집중된 사람을 항상 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눈에는 어려움 가운데 나를 도와 줄 사람이 누구인가?”하는 시각으로 사람을 보지 않고, 말씀을 주목하여 듣고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만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교회가 어디에 집중을 해야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여러 가지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더 좋은 형편이나 상황에 관심을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바울의 전도여행을 보면 복음을 전하기 좋은 형편이나 상황이 아니라, 말씀에 집중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하여 사람을 구원하고 지역을 변화시키는 그러한 사역을 펼쳐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도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형편과 상황 속에 얽매인 사역이 아니라, 복음과 말씀에 집중된 그런 사역을 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말씀에 집중하는 교회다운 교회인지를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나는 아볼로에게,나는 게바에게.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뇨” (고전 1:12,13)

 

고린도교회는 바울파, 아볼라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왜 교회가 이렇게 분열되어져 있었는가? 그것은 교회가 말씀이 아니라, 사람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바울에게 복음을 받아 들였기 때문에 바울파가 되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에게 침례를 받은 사람은 게바파가 되어서 오직 베드로만 따르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어질 때 교회는 분열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고린도교회가 이렇게 사람에 치중하여 분열되었을 때, 교회 안에 많은 은사와 능력이 있었지만 전혀 그 은사와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 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지를 짓는 것이니라” (고전 8:10-12)

 

고린도지역은 아시다시피 우상숭배가 매우 심한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우상숭배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먹지 말아야 하는지를 가지고 논쟁이 생겼습니다. 세상에 우상숭배가 심하면 말씀으로 세상의 전통과 악습을 물리치도록 지역사회에 영향을 끼치는게 교회의 할 일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많은 은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세상의 문제가 교회 안에 논쟁과 분열의 근거가 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가 말씀 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8장에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논리와 지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고린도교인들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사람중심으로 분열된 교회는 아무리 많은 은사가 있다고 할지라도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집중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돋보기로 실험을 다 해 보았을 것입니다. 낮에 뜨거운 햇빛이 비추고 있는데, 그냥 돋보기를 대면 따뜻하구나!’ 정도로만 느끼지 그것으로 불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돋보기로 그 햇빛의 초점을 정확하게 모으면 그 순간에 불이 일어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 다양한 은사의 사람이 있고, 또 능력의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말씀의 돋보기로 모으지 않으면 교회는 불의 능력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이제 말씀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에 집중하게 될 때에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어질 것입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님들 마음판에 새겨지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지 못하면 손해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은혜없는 말씀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준비되지 못한 마음만이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의 마음속에 조용히 질문을 던져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나는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가? 그것이 사람인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인가? 아니면 말씀인가? 이 질문에 말씀입니다하고 대답을 하셔야 삭개오에게 다가가신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다가가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앉은뱅이의 믿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날 때부터 다리가 아프기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어!”라는 생각이 아니라, 어떤 형편과 상황에 놓여 있던지 말씀에 집중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말씀에 집중하여,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던지 끝까지 함께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많이 본 기사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